패션 트렌드

가림으로써 얻는 매력

2018.11.28

by VOGUE

    가림으로써 얻는 매력

    가림으로써 얻는 매력이 있는가? 위장으로 얻는 안전함이 있는가? 앙증맞은 베일과 방한용 모자 발라클라바, 얼굴 전체를 뒤덮은 글리터 메이크업을 보며 숨바꼭질을 떠올린다.

    한껏 가려 보이지 않음. 새로운 커버링의 숨겨진 세련미는 감추고 싶어 하는 욕구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튀고 싶은 영원불멸의 소망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헬멧은 리차드 퀸×슬램 사인즈(Richard Quinn×Slam Signs), 의상과 액세서리, 기타 소품은 리차드 퀸(Richard Quinn).

    모델들이 백스테이지로부터 등장했다. 망토를 걸치고 모자를 눌러쓴 채 런웨이를 거침없이 질주했다. 모두들 이런저런 옷을 몸에 두름으로써 자신들의 빛깔을 가리고, 머리 모양을 감추고, 매력적인 얼굴도 숨기고 있었다. 디올 패션쇼에서는 베일 때문에 모델들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지만, 눈 부분은 가리지 않았다. 가장 세련된 스키 마스크 같았다. 구찌 패션쇼에서는 말 그대로 스키 마스크를 터키석 컬러 파이러트 셔츠(Pirate Shirt) 위에 씌워놓았다. 샤넬은 트레이드마크인 여러 가닥의 진주를 늘어뜨린 앙상블 의상과 타이트하게 두른 발라클라바를 매치했다. 발렌티노 쇼에 선 모델들은 러시아 전통 스카프 바부슈카를 등 뒤 머리카락 아래에 묶고 있었다. 이는 전통문화에 뿌리를 둔 스타일을 화려하게 해석한 것이었다. 그리고 영국 출신 디자이너 리차드 퀸의 컬렉션은 이 모든 것을 능가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참석한 것으로 유명한 그의 패션쇼에서 모델들은 밝은 프린트 스카프를 꽁꽁 싸매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워킹을 잘할 수 있을지, 행여 잘 보이지 않아 여왕 무릎 위로 굴러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꽁꽁 싸매서 숨으려는 경향은 캣워크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 4월 열린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에서 리한나가 구찌 스키 마스크와 샹들리에 귀고리를 착용하고 싸이하이 부츠를 신은 채 등장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얼굴을 완전히 가렸지만, 다리 때문에 그녀의 정체가 드러났다) 트렌드 얼리어답터 비욘세는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취했다. 뉴욕에서 열린 샤넬의 파리-잘츠부르크 쇼에 샤넬 프린트 후드 바람막이를 입고, 심지어 후드를 눌러쓴 채 등장했다. 그녀가 예전에 추구한 사샤 피어스(비욘세의 애칭으로 그녀의 세 번째 정규 앨범 제목이기도 하다)의 과한 노출증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처럼 노출 부분을 최소화하는 패션이 지닌 의미는 뭘까? 2018 F/W 컬렉션에서 머리를 덮어쓰고 수수한 목선과 풍성한 롱 슬리브로 분명해진 ‘가리려는 욕구’는 #미투운동에 대한 반향, 즉 성적 대상화를 겨냥한 격렬한 분노일까? ‘매력’에 대한 전반적 정의를 극단적으로 재고하고 젠더에 관한 전통적 편견이 뒤집히는 이 시점에, 놀랍게도 디자이너들이 그들만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방법으로 이런 문제를 다루는 걸까? 아니면 중동(서아시아) 지역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선, 히잡이 패션 스타일로 자리 잡은 것이 영향을 미쳤을까? 혹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본인의 허영을 뽐내는 시대이므로 잔뜩 가리는 것, 즉 ‘무한대로 이용될 수 없음’이 지닌 매력이 나름 통하는 걸까?

    이유가 뭐든, 이처럼 가림으로써 불분명해진 특징 이면에 매력적인 패러독스가 숨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전략은 변장의 기능을 할 수도 있지만, 익명성을 시사하지는 않는 것이다. 젊은 신진 디자이너 매티 보반(Matty Bovan)의 지난 패션쇼에서 역시 모델들은 머리를 싸매고 눈 주변에 사각 모양으로 으스스한 코발트색 화장을 한 채 자랑스럽게 무대를 거닐었다. 디자이너에게 이유를 직접 물었다. “매티, 뭔가를 보호하기 위한 건가요? 혹은 익명성을 위해?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나요?” 그가 대답했다. “보호하기 위한 것이에요. 그렇지만 발라클라바로 밖으로 빠져나온 모델들의 머리 색이 보였죠. 그래서 모델들 모두 각각의 색깔이나 질감 면에서 개성을 지니게 됐죠.”

    물론, 그의 말이 맞다. 두건이 아무리 넓다 한들 개성보다 강할 수 없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제임스 칼리아도스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마침 그가 소말리아 난민 출신 미국인 모델 할리마 아덴(Halima Aden)과 함께 하던 작업을 막 끝낸 상태였다. 그녀는 2017년 초 최초로 히잡을 쓰고 런웨이를 질주한 모델로 등극함으로써 경계를 허물었다. “저는 그녀가 히잡을 쓰도록 도왔죠. 그것을 쓰는 과정을 지켜보니 굉장히 흥미롭더군요.” 그러면서 칼리아도스는 가장 수수한 액세서리 히잡이 어떻게 하면 후드처럼 아름다운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히잡은 아주 흥미롭게도 얼굴을 구분 지어준답니다.” 그는 얼굴의 구분을 강조하면서, 과거에 터번을 자랑스럽게 쓰고 활동하던 디바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피아 로렌은 튤 스카프를 겹겹이 둘러싸 머리를 가렸다. 그리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스카프 여러 장을 조화롭게 두르고 다녔다. 또 칼리아도스의 주장에 따르면, 머리를 가리는 것은 눈에 덜 띄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얼굴의 형태, 그러니까 광대뼈, 턱 라인, 눈썹의 곡선이 갑자기 주요 위치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적으로 아름답도록, 두툼한 입술과 깊은 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색조가 있어요. 생동감이 있어야 해요. 정말 멋지죠.”

    한편 이 단호한 냉랭함, 이 무궁무진한 미적 스타일은 잠깐 동안만 먹힐 것으로 보인다. 얼마든지 두툼한 입술과 현혹적 눈매로 다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감추고 싶은 충동은 저 하늘에 폭풍우 구름이 있다는 것을 나타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발렌시아가와 베트멍(이 두 브랜드에서도 턱을 가린 스카프와 스트리트 스타일 후드가 존재감을 드러냈다)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는 뎀나 바잘리아는 어린 시절 조지아 공화국에서 성장했다. 불안한 정치 상황 속에서 그곳의 할머니들은 바부슈카를 두르고 다녔다. 그가 고백하기를, 그에게 있어 머리에 덮는 커버링은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안전을 향한 일반적인 갈망’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비, 소음, 오염 등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려고 뭔가를 쓴 거죠. 후드를 쓰면 모습을 조금 더 가리게 되죠. 감추는 범위가 더 넓어지는 겁니다. 저는 그런 것이 좋아요.” 바잘리아가 덧붙였다. “제 생각에는 그것이 현대적인 것 같아요.” 그의 주장처럼 숨기고 가리는 것이 현대적이라면, 바잘리아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 혹은 적어도 얼굴에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현시대 풍조가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 베트멍 컬렉션 모델들은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것은 점차 커지는 불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반응이었다. “지금 제가 가장 좋아하는 메이크업 분위기는 절반 정도 씻긴, 밤새 운 듯한 화장이죠.”

    물론, 신문을 읽다가 밤새 울 수도 있다. 그런데 그다음 일어났더니, 햇빛이 차양 사이로 고개를 들이민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될 대로 되라지! 오늘 얼굴 전체에 글리터 룩 화장을 하고 나가야겠어!’ 반짝이가 너무 많아서 당신의 특징을 완전히 덮어버릴 수도 있다. 물론 극단적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이것이 스키 마스크를 씀으로써 숨을 곳을 얻는 것과 과연 다를까? 메이크업 아티스트 발갈랜드는 이번 시즌 지암바티스타 발리 패션쇼에서 모델들의 얼굴에 얼룩덜룩 글리터 메이크업을 했다. 예를 들면, 소매가 길고 깃이 높은 투명 카프탄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얼룩덜룩 메이크업을 하고 등장한 것이다. 그는 슬픔을 달래려는 충동이 반짝거리는 메이크업을 통해 단순한 감정에 대한 욕구로 축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취감을 느끼고 싶다’는 한마디 말로 말이다. 이런 도취감을 느끼기는 정말 쉽다. “얼굴 전체에 8시간 지속되는 크림을 바르도록 하라. 그러면 얼굴에 반짝이가 잘 달라붙는다. 입 앞에 반짝이가 담긴 접시를 놓고 후~ 불어보라.”

    자신의 특징을 모호하게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 반짝이 속에 풍덩 빠지는 것이라면, 튤 스카프로 자신을 감싸는 것도 마찬가지 방법이다. 어덤 모랄리오글루는 최근 패션쇼에서 베일 쓴 모델들이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을 조용히 누비도록 했다. 그는 이 컬렉션의 뮤즈로 아델 아스테어(Adele Astaire)를 선택했다. 아델은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의 누나로 남매는 함께 노래와 춤 공연을 했다. 그러다 아델은 영국 귀족과 결혼하면서 1932년 은퇴와 함께 쇼 비즈니스를 접고 아일랜드에 있는 리스모어 성에 살림을 꾸렸다. 모랄리오글루는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된 아델이 검은 베일 뒤에 엄청난 매력을 감춘 채 귀신 들린 성 복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것은 누군가의 슬픔을 모피 코트와 무도회용 드레스로 감춘다는 발상이었다. 그는 망사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스모키한 짙은 눈과 강렬한 붉은 입술을 지닌 이 멜랑콜리한 호수의 여인(Lady of the Lake, 신비주의적 의미를 담은 영국의 여신이자 영국 시인 월터 스콧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여인)을 찾아내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암시’를 제안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이 바로 ‘아름다움에 대한 암시’일 수 있다. 베일 뒤로 얼핏 보고, 후드 아래로 살짝 봄으로써 말이다. 또 슬픔과 기쁨, 표출과 은폐, 행복에 관한 아주 작은 암시도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때로 후드 속에 숨고 싶어 하고 터번을 두름으로써 숨을 곳을 찾다가도, 그다음 머리에 쓴 것을 벗고, 반짝이를 지워버리고, 두려움을 묻어버리고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한들 누가 우리를 비난할 수 있겠나.

      에디터
      남현지, LYNN YAEGER
      포토그래퍼
      Mikael Jan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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