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아이돌 월드투어

2018.12.19

by VOGUE

    아이돌 월드투어

    월드 투어는 이제 음악 방송만큼 필수적인 스케줄이다. 아이돌이 월드 투어를 떠난 까닭.

    ‘방금 동남아 순회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이라는 표현이 있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각종 ‘국제 가요제’가 열리던 시절 만들어졌음이 분명한 이 수사는 과거 한국 대중음악과 해외가 어떤 방식으로 이어져 있는지를 느슨하게 알려준다.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가요계엔 서울, 동경, 칠레 등 다양한 국가의 국제 가요제 입상을 통해 새로운 목소리가 발굴되었고 ‘월드’라는 수식어와 함께 스타 명찰을 다는 이들이 왕왕 등장했다. 꽤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다 세기말쯤 소멸되었다 알려진 이 수사는 그러나 21세기에도 주요 단어만 변경된 채 살아 숨 쉬고 있다. ‘방금 월드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애국심과 민족주의, 동포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적절한 비율로 섞인 그 모습 그대로다.

    아직도 폴 맥카트니, 콜드플레이, 레이디 가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록 스타나 팝 스타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월드 투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철저한 오산이다. 한국 가요계, 특히 K-pop 아이돌에게 월드 투어란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 일상화되어버린 일종의 고정 스케줄이다. 혹시 한창 활발히 활동하던 아이돌 그룹이 갑작스레 방송에서 사라진다면 그들은 현재 해외 투어 중일 가능성이 높다. 월드 투어 자체가 음반 발매와 음악 방송 출연, 자체 콘텐츠 제작과 같은 선상에 놓고 구상해볼 수 있는 활동 영역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관객 동원력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신감 또는 미래를 위한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뿐이다.

    시작점도 제각각이다. 국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은 그룹만 월드 투어가 가능하던 해외 진출 초기와 달리 최근엔 각 소속사에서 자체적으로 산출한 데이터를 통해 해외 진출의 방향과 방식을 결정한다. 동방신기, 빅뱅, 샤이니, 인피니트 등이 얼마간의 리스크를 안고 개척자의 마음으로 첫 월드 투어에 엄숙하게 임하던 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여기에서 국내 대중이 해당 가수의 존재나 음악을 알고 있냐 아니냐는 그다지 큰 고려 사항이 아니다. 충성도 높은 팬덤 크기를 알아볼 수 있는 음반 판매량, 해외 팬덤 형성 여부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유튜브 조회 수, SNS 피드백 등을 통해 추정 가능한 수치가 중요하다.

    쉬운 예로 방탄소년단, 엑소, 카드의 경우를 비교해 살펴보자. 이들은 각각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보이 그룹’이 된 7인조, 오랜 기간 정상에 군림한 K-pop을 대표하는 보이 그룹, 트로피컬 하우스 바람을 타고 나타난 4인조 혼성 그룹으로 소속사도 스타일도 음악적 성향도 전혀 다르다. 단 하나, 이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2018년 한 해 월드 투어를 성공적으로 개최했거나 개최 중인 아이돌이라는 점이다. 데뷔 이래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경우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지난 8월 25일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시작된 이들의 는 11월 현재 LA, 뉴욕, 포트워스, 오클랜드, 시카고 등 북미 주요 도시를 거쳐 런던, 암스테르담, 베를린, 파리를 아우르는 유럽 횡단을 마친 상태다. 반응이 워낙 뜨겁다 보니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각국에서 추가 공연 요청이 끊이지 않아 대만, 태국 등 아시아 4개국을 추가해 현재 20개국 총 41회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예상 관객 동원 수 역시 80만여 명으로 투어 시작 당시 예정한 28만 명에서 무려 세 배 가까이 규모가 늘어났다.

    방탄소년단이 익히 알려진 대로 청춘의 보편적 서사와 SNS의 효과적 활용을 통해 든든히 구축한 팬덤 아미(Army)의 열정에 힘입어 성공적인 월드 투어 기세를 이끌어가고 있다면 엑소와 카드는 기존 K-pop 해외 진출의 틀 내외에서 선전하는 대표적인 그룹이다. 엑소의 네 번째 월드 투어 은 K-pop 그룹 대부분이 진행하는 월드 투어 형태의 정석에 가깝다. 지난해 11월 시작해 올 8월 마카오를 끝으로 마무리된 투어를 통해 엑소는 일본, 대만, 태국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11개 주요 도시에서 총 25회 공연을 펼쳤다. 확실히 구축된 아시아권 팬덤을 기반으로 새 앨범 발매와 더불어 개최되는 가장 보편적 형태의 투어다.

    반면 카드는 기존 K-pop 그룹이 개최한 월드 투어 상식의 틀을 모조리 깬 경우다. 이들은 아직 국내 데뷔도 하지 않았던 2017년 초 월드 투어 로 캐나다, 미국, 브라질, 멕시코를 도는 4개국 투어를 열었다. 같은 해 7월 드디어 정식으로 한국에서 데뷔 앨범을 발매한 이들은 앨범 발매 직후인 9월 곧바로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을 아우르는 유럽 투어에 돌입했다. 2017년 한 해 동안 북남미 13개국, 25개 도시를 섭렵한 카드는 2018년 역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투어로 1년의 3분의 2 이상을 월드 투어 관련 스케줄로 메우고 있다. 카드에게 한국 활동은 ‘내한 공연’이라는 농담이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이들 외에도 2018년 한 해 동안 동방신기, 세븐틴, 몬스타엑스, 갓세븐, 데이식스, 워너원 등의 그룹이 스타일과 팬덤 규모에 맞는 형태로 월드 투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K-pop 아이돌은 왜 이렇게까지 해외 투어에 공을 들일까. 정답은 다름 아닌 ‘수익’이다.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방탄소년단의 경우 ‘Love Yourself’ 투어 티켓 매출액만 1,0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공연에 비해 두 배, 많게는 세 배 이상 비싼 티켓 가격이 큰 수익의 주원인이다. 여기에 ‘굿즈’ 판매가 더해진다. 공연장에서만 살 수 있는 응원봉부터 멤버들의 사진이 들어간 생필품, 기념품까지 다양하게 구비된 이 팬 물품으로 거둬들이는 수익은 총 티켓 판매액의 최소 30%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소속사의 기업 가치 상승이라는 덤도 뒤따른다. JYP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대표 그룹인 트와이스가 일본 아레나 투어를, 갓세븐이 월드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연일 최고 주가를 갱신하고 있다. 아직 주식시장에 진출하지도 않은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기업 가치 추정만으로 올 한 해 경제지와 경제 전문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K-pop과 월드 투어는 당분간 무척이나 밀접한 사이로 서로를 밀고 당기며 성장해나갈 것이다. 이 의미심장한 영합은 비단 K-pop만이 처한 현실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대음원 시대, 대영상 시대를 맞이하며 ‘소장’ 가치를 상실한 음악계가 자연스레 택한 대안이 다름 아닌 ‘체험’이 강조된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음악 시장 전체 매출액에서 콘서트 및 음악 페스티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가 갈수록 점차 높아져 최근에는 60%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단순한 음악뿐이 아닌 화려한 퍼포먼스와 영상, 각종 스펙터클한 무대효과에 스토리 있는 연출까지 가미된 ‘종합 엔터테인먼트’적인 K-pop 공연 특유의 매력이 더해진다. 국경과 인종과 성별을 넘어 한마음 한뜻으로 한 팀의 아티스트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흔히 ‘팬심’이라 부르는 뜨거운 마음도 더불어 흐른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월드 투어는 K-pop 인기의 살아 있는 현실 증명이자 준비된 믿을 구석이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글쓴이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