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자를 위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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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자를 위한 공간

2019-01-02T10:54:57+00:00 2019.01.02|

여자들이 여성 전용 사무실에 보내는 환호는 지금까지 사무실이 얼마나 여자들에게 불친절했는지를 보여준다. 일하는 여자들을 위한 이상적 공간 혹은 보편타당한 공간에 대하여.

나는 ‘키 157cm의 여성’이다. 십수 년째 내 다리는 허공에 동동 떠 있다. 이직으로 네댓 번 사무실을 옮겼지만 한 번도 의자에 앉은 채 육지를 밟지 못했다. 회사에 내 몸에 맞는 책상과 의자를 요구하는 대신 탄탄한 발받침을 구했다(숱한 셀프 테스트 결과 A4 용지 묶음을 블록처럼 사용해 높이를 맞추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키 157cm의 임신한 여성’이 되었을 때는 팔다리가 아무리 퉁퉁 붓고 저려도 편히 올려놓고 주무를 공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내 손으로 내가 주무를 공간이다). 출산하고 돌아온 동료는 유축 공간이 여자 화장실 세 칸 중 한 칸뿐임을 알았을 때 즉각 단유를 결정했다.
사무실의 비극은 ‘175cm 남성’이라는 조건을 벗어난 자들에게 일어난다. 몇 년 전 밝혀진 사무실 에어컨 적정 온도의 비밀을 기억하는지. 네덜란드 어느 의대는 사무실 에어컨 온도가 남성의 신진대사율에 맞게 설정되어 있어 여성 대부분이 춥게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여자들의 의자에만 카디건이 걸쳐 있던 오랜 미스터리가 풀린 셈이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여성은 ‘경제성’이라는 목표에 손쉽게 희생되어 크고 작은 불편을 겪어왔다.

여성 전용 공유 사무실이 등장과 동시에 여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은 건 예견된 바였다. 연회비가 약 3,000달러임에도 불구하고 대기 인원이 이어지는 ‘더 윙(The Wing)’은 여성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설계한 사무실이자 커뮤니티다. 핑크빛 디자인 체어, 아보카도 토스트를 제공하는 카페, 샤넬 제품을 갖춘 메이크업 룸, 사적인 전화 통화를 위한 1인실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나는 더 윙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마더스 룸에서 수유 중인 어느 여성의 사진을 보고 뉴욕으로 이사를 결심할 뻔했다. 여성의 인체를 패턴화한 벽지, 은은한 조명, 파스텔 컬러 카펫과 폭신한 소파로 꾸며진 공간에서 엄마와 아이는 집만큼 편안한 표정이었다. 더 윙에는 엄마가 일할 동안 아이를 봐주는 프로페셔널한 시터와 우리 집보다 9,000배는 귀여운 놀이방도 있다. 더 윙뿐만이 아니다. 햄버거 프랜차이즈 지점 증가 속도보다 빠르게 여성 전용 공유 사무실이 생기는 중인데, 시애틀에 자리한 ‘리베터(The Riveter)’에는 요가 명상 스튜디오가 갖춰져 있고, ‘헤라 허브(Hera Hub)’는 처음부터 스파의 미학으로 오감을 만족시키는 공간을 컨셉으로 잡았다(긴장을 풀어주는 아로마 향이 가득하고 귓가에서는 새소리가 들린단 얘기다). ‘뉴 위민 스페이스(New Women Space)’ ‘쉬웍스 컬렉티브(SheWorks Collective)’ ‘메이크 레모네이드(Make Lemonade)’까지 여성 전용 공유 사무실이 제공하는 서비스 면면을 보며 지금까지 내가 몸담았던 사무실이 얼마나 여성들에게 물심양면으로 불친절했는지 다시 실감했다.

유리 천장,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과 같은 이슈에 비하면 사무실 가구나 집기, 편의 시설 같은 물리적 조건의 문제는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환경은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몸에 맞지 않는 사무 집기, 컨디션에 악영향을 끼치는 환경은 출발선부터 차이가 난다. 자신에게 최적화된 사무실에서 출근과 동시에 업무에 돌입하는 ‘평균’ 범주에 든 남성과 작은 몸집을 탓하며 허리를 두들기며 일하는 여성의 업무 집중도가 같을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예시는 어떤가. 성인 남성의 손 크기에 맞춰 설계된 수술 도구로 수술하는 여자 외과 의사들의 수술 정확도는 어떨까. 여자 의사들은 그 오차를 줄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할 것이다. 물리적 환경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게다가 환경으로 인해 불편을 느낄 때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를 탓한다(만성 허리 통증에 시달리던 나는 나쁜 자세를 반성하며 사비로 척추 보호 의자를 구입했다. 그리고 상사로부터 유난스럽다는 핀잔을 들었다).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끊임없는 환기는 부지불식간에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 말콤 글래드웰은 <티핑 포인트>에서 “외적 환경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내적 상태를 만든다”고 했다. 우리는 물리적 환경의 영향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건축과 디자인에 얽힌 편견과 차별에 목소리를 내온 건축가 캐스린 H. 앤서니는 저서 <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에서 소수자를 외면한 디자인의 문제점을 밝힌다. 여성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로 오하이오주 법원의 유리 계단을 제시한다. 유리 계단은 미학적으로 아름답다고 호평을 받았지만 여성들의 치마 속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도 떠올랐다. 치마를 입은 여자는 법원 예상 이용객의 범주에 없었다. 이 법원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과연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까. 법원을 방문할 때마다 계단을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겪으면서 동시에 존중받지 못한다는 기분에 휩싸일 것이다. 이와 같은 공간이 담고 있는 함의는 결코 평평하지 않다. 캐스린 H. 앤서니는 앞서 말한 인체 사이즈를 고려하지 않은 의자의 위해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인체 사이즈에 맞지 않는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건 흡연만큼 건강에 해롭다고 경고한다. 우리나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도 한국에서 제작·판매되는 사무용 의자와 책상 대부분이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음을 밝힌 기사를 내놓은 적 있다. 수년 전 기사임에도 여전히 여성용 책상과 의자 제작을 권고하는 움직임이라든지 어떤 규정도 찾아볼 수 없다. 사무실 내 화장실 개수는 또 어떠한가. 볼일 보는 방식의 차이에도 불구, 항상 동일한 면적으로 남녀 화장실을 설계하여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 대기하는 불편을 겪곤 한다.

사실 여성 전용 공유 사무실도 인체공학적으로 여성을 위해 완벽하게 설계되었다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일하는 여성이 자신의 필요만 생각하며 설계한 공간이 얼마나 편리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보여준 것 같다. ‘여성 전용’은 곧 ‘여성을 위한’을 의미한다. 불편함을 애써 감수하는 대신 일하는 데 있어 필요한 공간과 커뮤니티를 여자들 스스로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실제로 오드리 겔맨은 스타벅스 화장실에서 다음 회의를 위해 옷을 갈아입다가 여성들을 위한 쉼터 더 윙을 떠올렸고, 펠레나 핸슨은 교통사고를 당한 후 집에서 일하다가 침실은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환경이 아니라는 생각에 헤라 허브를 창업했다.

이들 사무실은 핑크빛 가구로 둘러싸인 예쁜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끼리 교류하고 에너지를 얻고, 업무를 확장 혹은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잡는 공간으로까지 나아간다. 여성 전용 공유 사무실에서는 상시로 클래스, 소모임, 파티가 열리고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동지가 되어준다. 애초에 위워크 같은 공유 사무실이 단순히 사무실 대여가 아니라 새로운 네트워크의 장을 내세워 성공했듯, 여성 전용 공유 사무실도 여성들의 든든한 커뮤니티가 동력이 된다. 물리적 공간을 통해 네트워크가 생기고, 네트워크는 물리적 공간을 지탱한다.

얼마 전 한국에도 여성 전용 커뮤니티 ‘헤이조이스’가 문을 열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껏 뒹굴 수 있는 라운지, 요가 스튜디오와 회의실, 팟캐스트 룸 등을 갖춘 노란색 인테리어가 산뜻한 공간이지만 공유 사무실보다 커뮤니티에 무게를 실었다. 정기적으로 여성 리더를 강사로 초빙하고, 커리어 성장에 도움을 주고 일과 삶의 조화를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멤버들은 각자 자기 분야의 콘텐츠를 소모임 등을 통해 공유하기도 한다. 헤이조이스에서는 창업 파트너를 만날 수도 있고, 다음 직업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도 있으며, 업무 능력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일하는 여자들에게는 남자들과는 다른 방식의 커뮤니티가 필요했음을 말해주듯 헤이조이스는 아무런 마케팅 없이 오픈 50여 일 만에 회원 200명을 넘어섰다.

영화 <나인 투 파이브>에는 성차별을 하는 상사 때문에 인생이 고단한 커리어 우먼 세 명이 등장한다. 상상 속이지만 의기투합해 상사에게 벌을 내리고 사무실을 위한 개혁으로 유연 근무제와 직장 어린이집을 주창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책상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회색 사무실을 부수고 책상과 파티션을 자유롭게 배열한 뒤 초록빛 화분을 가득 들여온다. 앙리 르페브르가 말한 “새로운 사회적 관계가 새로운 공간을 요구하고 새로운 공간이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낳는다”는 걸 몸소 실천한 통쾌한 결말이었다. 공간에 끼워 맞추는 게 아닌, 사람이 공간을 지배할 때 비로소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 이 기사 역시 여성 전용 사무실에서 썼다면 좀더 빠른 시간 안에 제출할 수 있었을까? 그랬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