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마음의 정원

2019.02.15

by VOGUE

    마음의 정원

    나비는 뇌출혈로 전신이 마비되어 눈꺼풀의 깜빡임만으로 글을 쓴 작가 장 도미니크 보비가 가장 갈망하던 존재다. 마음이 마음에 닿는 과정에 대한 영화 〈증인〉. 배우 정우성과 김향기의 날갯짓은 온기가 되어 마음의 정원에 안착한다.

    화이트 반팔 티셔츠는 톰 포드(Tom Ford).

    영화란 삶의 단면을 담는 매체라는 점을 떠올려봤을 때 온갖 인간군상들이 등장해야 마땅한 무대다. 하지만 영화 <증인>은 비슷한 체온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영화다.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빛을 슬쩍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는 사람들. 서로 보듬으며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전하는 어떤 이야기 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품은 건 두 배우가 ‘따뜻함’이라는 단어를 계속 입에 올렸기 때문이다. 정우성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스스로 치유받는 느낌이었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리고 김향기는 촬영 현장의 편안하던 공기를 전했다.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하는 변호사 ‘순호(정우성)’와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소녀 ‘지우(김향기)’.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이 ‘따뜻함’의 정체일 것이다. 사막의 동물이 오아시스를 찾아갈 수밖에 없듯, 정우성은 영화를 통해 일상을 찾아가는 특별한 삶을 산다. 익명성을 띤 대다수의 일상을 질투할 수밖에 없는 그에게 일상 연기는 오아시스다. 필모그래피에서 꾸준히 보통 사람이 발견되는 이유는 일상의 결핍에서 오는 간절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을 연기할 때면 감정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증인>에서 정우성이 만난 일상은 민변에서 활약하다가 대형 로펌 변호사가 된 순호다. <똥개>에서 아버지로부터 “언제까지 그리 살끼가?” 잔소리 듣던 철없는 청춘은 40대 중년이 되어 다시 아버지와 밥상을 두고 마주 앉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정우성이 무슨 변호사야?” “정우성이 무슨 북한군이야?” “그럼 제가 다시 질문을 하죠. ‘정우성은 뭘 해야 돼? 아무것도 하지 말고 하나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어야 하나?’ 그럴 순 없는 게 배우의 숙명이잖아요. 주변에 보면 사실 멋진 사람들이 많아요. 다수에게 보이지 않을 뿐이에요.”

    화이트 셔츠는 렉토(Recto).

    순호의 현실은 정우성과 닮아 있을 수 없다. “순호의 타고난 성품, 순호가 자기의 미래에 대한 선택을 할 때 기본 성향이 제가 추구하는 바와 닮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어요. 그저 내가 추구하는 사람의 인성일 수도 있겠다 느낄 뿐이죠. 순호에게 마음에 드는 한 부분을 끌어다 나답게 표현해서 순호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고요. 정우성도 제도권 안에 있었으면 그런 타협을 할 수 있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선망의 대상으로 존재감은 이제 하나의 캐릭터로까지 자리 잡혔지만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관객들은 정우성이 정우성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좇는다. “정우성이 일상과 맞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서는 연기를 잘해야 하는 거죠. 제가 조금만 삐끗하면 ‘거봐, 안 맞잖아’ 그렇게 되니까요.”

    한편 김향기가 연기하는 지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소녀다. 제작 보고회에서 자폐 연기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김향기는 “어떻게 하면 지우의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저 또 다른 개성을 가진 친구를 만난듯 보였다. “자료나 영상을 많이 찾아봤어요. 처음에 연기 연습을 하는데 저도 모르게 계산적으로 하고 있었어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왜 이럴까 생각했죠. 사람은 누구나 개성도 성격도,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잖아요. 지우는 표현을 하지 않지만 속으로 많이 생각하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처럼 하자고 생각했어요. 마음으로 느껴야 손동작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실제로 이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위축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조승우는 <말아톤> 당시 “자폐 연기 힘들지 않았어요?”라는 질문을 질리도록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김향기의 대답은 “더워서 힘들었어요”이다. “힘든 정도를 따지자면 더 힘들진 않았어요. 새로운 캐릭터는 늘 처음이 힘들고 소통하면서 편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지우’는 감정을 공부해야만 한다. 추상적인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세로 스트라이프 베이지 재킷과 팬츠는 김서룡(Kimseoryong), 이너로 입은 보트넥 셔츠는 코스(Cos),
    화이트 레이스업 에스파드리유 슈즈는 지미 추(Jimmy Choo).

    “사람 눈을 쳐다보면 수천 장의 사진이 한 번에 보이는거랑 똑같대요.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고요. 전 느껴본 적 없는데, 고통스러울 텐데, 그 친구에게는 어느정도로 다가올까요? 흔히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는 친구들이 생각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고 지식이 떨어진다고 오해를 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는데 몸의 감각이 발달해서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작품을 하지 않았다면 저도 몰랐겠죠?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이해하고자하는 마음이 있으면 좀더 다가갈 수 있어요.”

    이런 김향기 앞에서 정우성은 순호인 척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눈앞의 지우를 받아들이면 됐다. 김향기는 정우성에게 순수한 영감을 주는 배우였다. 정우성은 늘 현장에 머물렀다. 촬영장에 일찍 도착하기도 했고 자신의 촬영이 끝나도 다른 배우의 촬영이 남아 있다면 현장을 지켰다. 영화 촬영할 때 그의 모든 시간은 영화를 기준으로 움직인다. “영화는 한 세계의 구현이 잖아요. 그 세계 속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저에게 더 부여하는 거죠. 촬영 분량 끝내고 빨리 가는 게 저한테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현장에 머물수록 늘어나는 건 감독, 배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감독님도 되게 좋아하셨어요. 촬영 끝난 뒤 반주도 즐거워하시고요. 이 장면이 정말 마음에 드는구나, 하는 건 밥 먹을 때 분위기에서 알 수 있어요. 정말 원하는 감정이나 장면을 만들어냈구나 하면 밥 먹는 내내 촬영 얘기만 해요. <증인>은 그런 시간이 많았던 현장이었어요. 아무리 즐겁게 일을 해도 현장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감정선과 깊이가 있기에 다들 긴장 속에 있어요. ‘오케이!’ 해도 왜 좋았는지 얘기는 할 수 없단 말이에요.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복기되는 건데 그때 수다가 나오는 거죠.” 물론 과거에 지키던 현장과 지금은 다르다. “어릴 때는 지나치게 힘을 잔뜩 주고 있었어요. 그래도 현장을 지킨 게 도움이 된 것만은 틀림없어요. 주변 상황을 보기 시작했고 초반에는 같이 일하는 영화 현장의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틈틈이 살피는 게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모든 현장 사람들과 그런 시간이 흘렀던 거죠.”

    주머니 디테일 가죽 재킷은 로우클래식(Low Classic).

    <증인>은 이한 감독과 김향기의 세 번째 영화다. <우아한 거짓말>에서 엄마와 언니에게 한없이 살갑고 착했지만 죽음을 선택한 소녀는 똑같이 교복을 입고 다시 현장에 섰다. 김향기가 느낀 이한 감독은 ‘한결같음’이다. “감독님께서 감정이 풍부하셔서 모니터 하시면서 같이 우시고 하세요. 이번에 감독님 뒷모습을 보는데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한 감독은 아버지 같은 따뜻한 말투, 헤어스타일까지 똑같았지만 그 사이 김향기는 많이 변했다. “일단 외적으로 변했죠.(웃음) <우아한 거짓말> 때만 해도 제 의견을 먼저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지금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때보다 대화를 길게 해나가고 있다는 게 스스로 느껴지더라고요. 연기할 때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구나 싶었어요.” 누군가의 아역을 연기한 적도 있지만 김향기는 김향기로서 연기를 해왔다.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연기한 시점은 언제일까. “주도권이랄 건 아직도 없는 것 같아요. <신과 함께>부터 호흡을 맞출 때 대화의 폭이 좀 넓어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됐기 때문에 연기에 대한 얘길 많이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웃음)” 부담감의 무게 변화가 김향기가 느끼는 성장 지점이다. “이번 작품은 부담감을 좀 내려놓고 편안한 상태에서 표현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지금도 사실 첫 촬영전에는 잠을 잘 못 자요. 그래도 촬영을 할수록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어요. 달라진 거죠.”

    김향기는 감독님과 이야기가 많이 필요한 캐릭터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속마음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다. 미움과 호감이 범벅이된 김향기의 얼굴이 깊숙이 각인된 영화 <영주>의 영주가 그럴 것이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 소통이 필요한 인물들이에요. 그렇다고 감독님에게 질문을 많이 던지진 않아요. 설명을 듣는 편이에요. 타고난 성향인 거 같은데 현장에서도 먼저 다가가진 못해요. 하지만 뭔가 좋은 사람인 거 같고 괜히 옆에 있으면 편해지는 느낌을 받으면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잖아요. <증인> 배우분들이 그랬어요. 또래 배우들과 북적북적 신나는 느낌과 다른 의미로 좋았어요.” 정우성은 이한 감독의 영화 중 <우아한 거짓말>을 기억한다. “사실 무서운 얘기잖아요. 학내에서의 왕따, 그로 인한 피해. 그런데 그 안에도 인간의 따뜻한 시선과 치유하려는 마음이 있더라고요. <증인>도 감독님의 특화된 따뜻함이 유지되는 영화예요. 앞으로도 계속 그런 영화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매번 영화를 보면서 주제 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어떤 영화는 시대를 대변하고 어떤 영화는 개인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개인이 되어야 할까, 어떤 마음으로 옆 사람을 대해야 할까. <증인>은 서로에게 어떤 시선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가볍지 않은 질문을 하는 얘기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문학이나 예술은 그런 개인적인 가치를 좇아야 하잖아요. 시대가 그렇지 않다 보니 국가나 정치, 특정 계층에 대한 불합리함을 많이 얘기하던 시기였는데 이제는 개인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얘기도 나온 거예요. 시대가 더 좋아지면 사랑을 얘기하고, 궁극적으로는 어떤 주제 의식 없이도 엔터테이닝 할 수 있는 영화가 많은 시대가 오기를 바라죠.”

    화이트 오버사이즈 로고 셔츠는 발렌티노(Valentino), 화이트 와이드 팬츠는 우영미(Wooyoungmi),
    레드와 네이비 패턴이 섞인 에스파드리유 슈즈는 발렌티노.

    <비트> 이후 배우가 가진 영향력을 느끼고 조폭을 미화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던 정우성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곤 한다. 그 책임감은 20여 년 동안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그러다 보니까 순호까지 온 거죠.(웃음) 30대에는 책임감이 영화를 선택하는 최우선 조건은 아니었어요. 즐길 거리가 다양해지면서 대중이 영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시기가 지나갔어요. 덕분에 조금 자유로울 수 있었죠. 정우성을 찾는 역할도 다양해졌고요.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느낌이 있었어요. 40대가 됐는데 20대와 똑같은 관점으로 영화를 찾아야 하 는 건가? 시나리오를 보고 후배들이 하면 되지 싶어서 놓은 작품도 많아요. 그렇게 내가 지향하는 주제 의식을 가지는 영화를 찾아나갔죠.” 20대에 가진 기준점이 흐려지긴 했지만 놓은 적은 없었다. “<아수라>는 정말 모험이었어요. 감독님이 3~4년 계속 얘기하다가 시나리오를 던져주셨는데 도대체 무슨 얘긴지 모르겠더라고요. 나중에보니까 이 세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고 악마들이 위에서 다 지배하고 있다는, 자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무섭고도 큰 주제를 가지고 있었어요. 김성수 감독과 특수 관계로 인해 뭐 그렇게 됐죠. <더 킹>은 주제 의식이 좀더 쉽게 표현되는구나, 확실하구나 싶었고, <강철비>는 엔딩이 되게 위험하지 않나 하면서 나눈 논의가 재미있었어요. 왜 그런 시나리오를 썼는지 얘기를 듣고 영화를 통해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세상과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이었죠.”

    화이트 셔츠는 펜디(Fendi).

    정우성의 행보에는 일관성이 없다. 그의 표현대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자신감은 넘치되 안정적이지 않은 연기자’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데뷔할 때부터 새로울 수 있는 무언가가 갖고 있는 기회가 어떤 결과물로 만들어졌을 때, 그게 세상과 교감으로 엄청나게 큰 빛을 발하는 과정을 몸소 겪었잖아요. 그러니까 안전한 것보다는 새로운 도전의 찬란함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비트> 끝나고 민이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민이가 제게 성대한 만찬이었다면 라면 한 그릇 먹고 싶은 거예요. 뷔페먹고 굳이 아침에 또 뷔페를 먹어야 하나요. 김치찌개에 밥 먹어도 맛있거든요. 나름대로는 즐긴 거예요.”

    반면 김향기의 필모그래피는 지금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해가 바뀌면서 김향기는 스무 살이 됐다. “아직 실감이 안 나지만 ‘이제 안 해본 역할을 더 많이 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TV를 볼 때마다 ‘내가 저런 역할 하면 어떨까?’ 그런 얘기를 가족들이랑 많이 나눠요.(웃음) 예를 들면 다중 인격. 한 얼굴로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가 무척 어렵겠지만 욕심이 생기기도 해요.(웃음)”

    하늘색 셔츠는 코스(Cos).

    우리는 모두 27개월부터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친 김향기의 성장을 지켜본 목격자들이다. 우리의 과거가 사진 앨범에 담겨 있다면 김향기의 시간은 작품에 담겨 있다. 영화 <증인>에는 열아홉 살 김향기의 한여름이 담겨 있다. 김향기는 영화 속 자신을 남 보듯 볼 때가 있다. 부모님을 비롯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사는 김향기는 가족들이 틀어놓은 TV를 통해 가끔씩 자신을 본다. “제가 출연한 작품이 가족 얘기가 많다 보니 추석이나 설날에 그렇게 방송에서 틀어주더라고요.(웃음) 제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연기했나 싶기도 하고요.” 이한 감독을 비롯해 그동안 함께 연기한 배우들은 김향기를 두고 ‘연기 천재’라고 말한다. 타고난 감수성에 대한 경탄이자 순수함에 대한 감탄이다. 김향기의 연기에 영향력을 미친 존재는 캐릭터 그 자체뿐일 것 같다. 김향기는 유일하게 엄마를 꼽는다. “<마음이…> 때 글도 잘 못 읽었는데 대본을 읽어주시고 이해시켜주셨어요. 동화 읽어 주듯 ‘이 아이는 지금 그랬대, 어땠을 거 같아?’ 물어보면 제가 막 반응을 했대요.” 더 이상 촬영장에 함께하지 않지만 연기가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고민 없이 달려가는 존재도 엄마뿐이다. 여전히 날카롭고 객관적인 눈으로 조언을 건넨다. 다른 배우를 롤모델로 삼은 적은 없지만 팬심을 발휘하는 대상은 있다. 제임스 맥어보이다. “눈을 보고 팬이 됐어요. 강렬한 연기를 할 때는 강렬하게, 아련하고 감동적인 작품을 할 때는 또 많은 걸 눈에 담고 계시더라고요.(웃음)”

    리본 디테일의 슬리브리스 셔츠와 팬츠는 코스(Cos).

    영화계 동료로 꼽는 배우는 김유정, 김새론이다. 동네 친구들처럼 따로 만나서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지만 비슷한 시기, 성장이라는 터널을 함께 통과한 그녀들에게는 동지애 비슷한 감정이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속상한 지점은 있다. “아역 배우들은 주변에서 뭔가 서로 견제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을 만들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그렇게 만드니까 약간 속상해요. 저에겐 어릴 때부터 봐오던 언니인데, 왜 그런 상황이 만들어질까요. 아역 배우 나이가 정해져 있다 보니 이해는 하지만 속상해요. 서로 말은 안 해도 똑같이 느낄 거 같아요.”

    2000년생 김향기는 사회의 분류법에 따르면 Z세대다. Z세대다운 취향은 유튜브 시청뿐이다. 요리하는 영상과 영화 소개해주는 영상을 틀어놓곤 한다. Z세 대답지 않는 건 나머지 전부다. “저는 ‘아싸’입니다.(웃음) 집에 있으면 전화를 안 받고 카톡도 잘 안 봐요. 대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놀 시기인데 그런 거에도 기운이 빠져서요. 신곡도 잘 몰라요. 엄마가 좋아하는 7080 노래 아니면 힙합. 극과 극. 중간이 없어요. 힙합은 재미있어서 들어요. 직설적인 가사도 많고 박자를 타게 되잖아요.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해보는 거 좋아해요.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살다 보니까 향토 음식을 좋아합니다. 강된장, 고등어김치찜 그런 거. 하지만 빵도 좋아합니다.(웃음)” 무엇이 초심인지조차 아직 명확히 설명하기 힘들지만 김향기는 초심을 잃지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사람이 변하는 게 한순간이라고 항상 생각을 해요. 초심은 열정이기도 한 것 같아요. 열정이 크면 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고민도 많이하니까요. 당연한 말이긴 한데, 중요한 것 같아요.”

    화이트 보트넥 셔츠는 코스(Cos).

    김향기가 대학생이라는 설레는 출발선에 있다면 정우성은 스무 살 때부터 꿈으로 말하곤 했던 장편영화 연출을 기획 중이다. 여러 이유로 미뤄졌지만 정우성은 늘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그동안 뮤직 비디오와 단편영화를 선보이며 감독이라는 일과 어떤 지점이 잘 맞는지 물었을 때 ‘전부 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프로덕션에서 많은 걸 선택해놓고 ‘이런 걸 구현할 거야’ 할 때, 예상과 달라져서 빨리 새로운 걸 찾아서 구현할 때 그리고 그 구현이 제법 괜찮을 때, 편집해서 이야기를 연결할 때, 거기에 내가 생각하던 음악을 얹어서 영상과 함께 보여줄 때, 작업 단계마다 느껴지는 재미가 다 다르거든요. 매력 있는 직업인 건 확실해요.” 주제를 무겁게 다루고 싶은 욕구가 크던 시절을 지나 가볍게 전달하는 방식이 오히려 친절하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라고 했다. 반면 배우로서 고민은 좀 다른 것이다. “고민보다는 너무 재미있으니까 재미있을 때 조심해야 한다는 강박? 조심해야죠.”

    이정재와 함께 시작한 매니지먼트 회사 아티스트 컴퍼니는 순항 중이다. 배우들이 주체적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서로 의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사례로 손꼽힌다. 정우성은 많은 가족과 더불어 책임감을 얻었고, 배우들과 대화할 때면 이 고행길을 자청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대화할 대상을 못 찾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외로움이 자리하게 되고, 외로움이 커지면 우울해질 수도 있어요. 소속사 배우들과 두루두루 대화를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지나왔던 길이기 때문에 어떤 얘기를 던져줄 수 있어요. 제 의견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대화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잖아요. 들어줄 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게 좋아요.”

    화이트 보트넥 셔츠는 코스(Cos).

    돌이켜보면 힘든지도 모르고 지나온 시간이었다. 주변에 누구 하나만 있었어도 마음고생하진 않았겠다 생각한다. 그래도 지금 배우들처럼 부담을 크게 느끼며 연기 생활을 해오진 않았다. “뻔뻔스럽게 왔어요. 스타라는 자부심보다 영화를 하고 있으니 글을 써볼까, 감독을 해볼까 궁리한 시간이었죠. 작업할 때는 늘 좋은 선배와 친구들, 특히 김성수라는 굉장히 좋은 선배, 감독님이 계셨으니까요. 내가 가진 게 무엇인지 우둔할 정도로 모르고 지나왔기 때문에 그나마 덜, 모나지 않게 지나왔구나 생각이 들어요.” 그는 후배 배우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 조바심이 생기고 압박을 느끼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지우는 순호에게 묻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정우성은 대답을 순호에게 미뤘다. “영화 엔딩에 지우가 인정을 해줘요. 그래서 순호가 대답하는 말이 있어요. 그게 제 대답이에요. 나중에 영화로 보면 알 거예요.”

      에디터
      조소현, 김미진(패션 에디터), 이소민, 서준호
      포토그래퍼
      김보성
      헤어
      임해경(정우성), 정심(김향기)
      메이크업
      배경란(정우성), 서지윤(김향기)
      스타일리스트
      김혜정(정우성)
      세트 스타일링
      한송이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