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분싸 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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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분싸 캐슬

2019-02-01T10:46:22+00:00 2019.02.01|

모두 거짓말할 때 진실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갑분싸 캐슬’. 개그우먼의 연대를 바탕으로 일에 소명을 담고, 정형미에서 해방된 이은형, 허안나, 장도연.

카키색 점프수트는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가죽 점퍼는 푸시버튼(Pushbutton).

이은형의 인스타그램을 본 <보그> 편집장이 인터뷰 지령을 내렸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지 않니?” 이은형이 눈을 부릅뜨고 이중 턱을 만든 사진이었다. 나도 그녀의 계정에 들어갔다. 오, 멀쩡한 사진이라곤 한 장도 없다. 아름답다! 속박 따윈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훨훨 나는 원더(개그)우먼 같다고나 할까.

이은형은 tvN <코미디빅리그>에서 허안나, 장도연과 함께 ‘갑분싸’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장과 나는 크루의 활약도 마저 훔쳐보면서 프러포즈하기로 했다. “〈보그>는 당신 같은 여성을 원합니다.” 허안나와 장도연은 <개그콘서트>에서 ‘패션 넘버 5’를 하던 2011년, <보그> 화보를 촬영한 적 있다. 패션 넘버 5는 알렉산더 맥퀸, 레이 가와쿠보, 빅터앤롤프 컬렉션에서 영감을 얻어 박나래와 함께 패션을 개그로 승화한 코너였다. 그 당시 〈보그> 인터뷰 제안을받고 장도연은 이렇게 말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우리가 추구하는 것의 종착역.”

이번 <보그> 촬영의 컨셉은 ‘진짜 미녀 캐슬’이라고 설명했다. “세상에나, 우리는 누가 예쁘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코를 팔 수도 있다고요. 배우나 가수들은 예쁘다는 말이 자연스러울지 모르지만 저만 해도 못 견뎌요. 부러 ‘예쁘다’란 단어는 잊었어요. 다시 말하면, 정형화된 미의 기준은 아예 신경 쓰지 않아요. 웃기는 게 제일 중요해요! 화면에 일그러진 얼굴로 나와도 관객이 많이 웃으면 됐죠.”(은형)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어요. 안 하고 응어리를 남기느니, 다음 단계에 도전해서 성장하고 싶어요. 개그도 그렇게 해왔어요. 시도한 게 안 터질 때도 있지만 나중엔 제게 플러스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도전하는 여성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으하하. 제가 아름답다는 건 아니고요.”(안나)

골드 스팽글 톱과 치마는 마이클 마이클 코어스(Michael Michael Kors), 이어링은 렉토(Recto), 크리스털 스트랩 슈즈는 앤아더스토리즈(& Other Stories).

갑분싸 멤버들은 정말이지 일을 사랑한다. 모두 데뷔 이후 거의 쉬지 않았다. (이은형은 2006년, 장도연은 2007년, 허안나는 2009년 데뷔.) 그것도 프로그램이 안 풀려서지 자의인 적 없다. 장도연은 “특히 여성 개그맨들이 자부심이 엄청나다”고 말한다. “개콘과 코빅의 코너가 잘 안 돼서 한두 달 쉰 게 다예요. 무대에 설 기회가 참 귀했어요. 코너가 통과돼도 캐스팅이 바뀔 수 있고, 제가 못해서 잘릴 수 있었죠. 녹화하는 꿈을 꾸고, 개콘 오프닝 음악만 들어도 가 슴이 막 뛰었어요. 전전긍긍, 떨림, 긴장을 달고 살았지만 늘 무대가 좋았어요.”(도연)

요즘 장도연은 고정 코너만 다섯 개 정도를 하면서도(요즘엔 프로그램 수명이 워낙 짧아서 한두 개는 유동적이다) 공개 코미디를 포기하지 않는다. 공개 코미디는 여타 예능보다 많은 시간을 요한다. <코미디빅리그>를 위해 매주 4일을 함께 모인다. 수요일 회의, 목요일 점검, 월요일 리허설과 최종 검사, 화요일 녹화다. “공개 코미디만의 매력이 엄청나거든요. 너무 웃겨서 점프 뛰는 걸 저희들끼리 ‘돌고래 웃음’이라고 해요. 현장에서 보는 그런 웃음에 중독됐죠.”(안나) <개그콘서트> <웃음을 찾는 사람들> <코미디빅리그> 등 어느 하나 폐지되거나 주춤하면 ‘공개 코미디의 위기’라고 운운하는 것은 언론이지 코미디언이 아니다. 그들은 방송이든 대학로든 늘 공개 무대에 서왔다.

이은형은 공개 코미디는 슬랩스틱에서 스탠딩 개그로 바뀌는 장르의 흐름이 있을 뿐, 공연 자체는 없어지지 않을 거라 단언했다. 그녀는 서울예대에 다닐 때 공개 코미디를 보고 전율을 느꼈고, 바로 개그 동아리에 들었다. “객석이 아니라 무대에서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어요. 물론 쉽진 않았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도 수백 명의 관객과 숨 쉬고 분위기를 타고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하고 희열을 느껴요.”(은형)

스트라이프 스팽글 재킷은 앤아더스토리즈(& Other Stories), 블랙 원피스는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프린지 부츠는 마이클 마이클 코어스.

<보그> 에디터들은 코미디언 촬영이 “기를 받는 시간”이라 말한다. 그들은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등 스태프의 역할을 존중하고, 김밥에도 감사하고, 정말이지 열심히 촬영에 임한다. 무엇보다 내내 웃어 그 에너지를 받는다. 그들은 누군가를 웃겨야만 숨을 쉴 수 있는 것 같다. “생활의 바탕에 개그가 있죠. 슬픈 개인사가 터진 날에도 개그를 하면 다 까먹어요. 누군가에게 기쁨을 전했으니까요. 개그맨이라면 비슷할 거예요.” (은형)

연인이라고 개그 소재에 예외 없다. 이은형의남편이자 코미디언 강재준이 갑분싸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 있다. 이은형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여자 없지? 너랑 결혼할 여자가 불쌍하다. 그 여자는 똥을 제대로 밟았네.” 강재준이 답한다. “너랑 결혼할 남자가 누굴지 모르겠지만, 그 남자는 하루하루 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야.” 이 둘의 ‘디스 케미’ 덕분에 갑분싸에 강재준이 고정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무대 위에선 애인이고 뭐고, 얼마나 더 웃길지가 중요해요. 연애할 때도 ‘웃찾사’에서 서로 싸우는 극만 했어요. 우리는 개그맨이잖아요.”(은형)

이렇게까지 직업 사랑이 깊은 이들은 오랜만이다. 주변뿐 아니라 그간 만난 인터뷰이를 털어도 그렇다. 우린 모두 힘든 날을 보내고 있으니까. 여성 개그맨을 인터뷰할 때는 자긍심과 자부심이 흐르는 특별한 나라에 입국한 듯하다. “저는 어느 자리에서든 ‘개그우먼 장도연’이라고 소개해요. 개그우먼을 호처럼 붙이죠. 그렇게 수백 번, 수천 번 부르면서 자긍심을 잊지 않으려 해요.”(도연)

스트랩을 어깨에 걸칠 수 있는 점퍼는 준지(Juun.J), 이너는 마이클 마이클 코어스(Michael Michael Kors).

이전에 김신영은 <보그> 인터뷰에서 자신을 꼭 ‘코미디언’이라 칭해주길 원했다. 코미디언은 희극배우고 개그맨은 한 갈래라는 이유다. 장도연은 이 얘기를 듣더니 멋지다며 발을 동동 구른다. “제가 김신영 선배님 ‘빠’거든요. 그 말씀도 한번 생각해봐야겠어요.”(도연)

다른 멤버에게도 호칭 정리를 부탁했다. <보그> 피처 에디터라는 직업 소개처럼, 개그맨, 희극인, 코미디언 등 무엇이 맞느냐고.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가볍게 보이다 보니 저평가되고 있죠.”(은형)

하긴, 무에서 유를 창조해서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아티스트가 아닌가. 이은형의 꿈은 배우 유아인의 ‘스튜디오 콘크리트’처럼 개그우먼들의 ‘팩토리’를 만드는 거다. “개그맨들이 정말 예술적이거든요. 공연도 올리고, 예술 작업도 하고, 전시도 하고, 옷도 디자인하고, 백남준아트센터처럼 미술관을 만들 수도 있죠. 우리도 다양한 예술적인 시도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싶어요.” 가열찬 포부 앞에서 허안나는 “아티스트까지 나온 마당에 어떤 호칭을 해야 하나”라며 웃는다. “음… 제 직업은 연예인이죠. 재주로서 즐겁게 하는 사람이니까요. 요즘엔 분야의 경계가 무너졌잖아요. 연기에도 관심이 있어서 개그맨, 연기자 등을 아우를 수 있는 연예인이 좋겠네요.”(안나)

허안나는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코미디야말로 종합예술로서 연기력 동반이 필수지만, 그간 드라마나 영화는 개그맨을 편협하게 소비해왔다. 허안나 역시 카메오 몇 번과 한 번의 뮤지컬 출연이 다다. “연기 전공이다 보니 지금도 연극하는 친구들을 보면 가슴이 싸해요. 개그 사랑과는 또 다른 마음이죠.”(안나)

그녀는 배우로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선망한다. “<길버트 그레이프>를 보고 레오가 정말 장애가 있는 친군 줄 알았어요. 그의 작품은 다 찾아봤죠. 이미지가 굳힐 때마다 그걸 깨고 훨훨 날아올랐어요. 게다가 환경 운동가라니,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구나 싶고요. 천재 예술가도 인간미가 부족하면 반짝할 뿐 오래 못 가요. 사달이 나죠.”(안나)

허안나는 6년째 유기견 봉사 활동을 다니고 있다. 동물사료 회사 내추럴발란스에서 동료들과 유기견 봉사단을 시작해 한창때는 일주일에 한 번은 갔다. “요즘 ‘나만 없어 고양이’란 말이 유행이던데, 잘못된 거 아닌가요?”(안나)

그녀는 동물권을 침해당하는 젖소를 생각하며 우유를 끊었고, 환경을 위한 채식과 ‘노푸’ 등도 시도했다.

검은색 가죽 블라우스와 치마는 와이씨에이치(YCH), 벨트는 에이치앤엠×이티스(H&M×Eytys).

이은형, 허안나, 장도연이 코너를 함께 한 이유도 사람이 괜찮아서다. “열심히 짠 개그가 안 웃기면 스트레스가 심해요. 준비 과정이라도 좋은 사람이랑 하고 싶었어요. 안 맞는 사람과 기를 쓰나, 편한 사람과 하나 결과는 어디서 터질지 모르니까요. 안나, 은형 언니가 인간적으로 좋아서 코너를 제안했죠. 코미디계는 친한 사람끼리 코너 하면 망한다고 해요. 자기네끼리만 재밌어한다고요. 다행히 재능 있는 작가 친구가 4의 멤버로 합류하면서 잘 이어지고 있어요.”(도연) 갑분싸 멤버들은 성정도 비슷하다. 낯가림도 심하고, 어느 자리든 나서지 않으며, 조용하다. “우리의 단톡방은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소심한 대화투성이죠.” (은형)

“가끔 기획하고픈 프로그램을 물어보는데, 누군가 깔아놓은 판에 제 자리가 있으면 감사할 뿐이죠. 좋은 사람이랑만 하면 돼요.”(도연) 약자 혐오, 과도한 연출, 반복되는 레퍼토리 등 개그가 저지를 수 있는 실수도, 셋의 비슷한 성정이 자연스럽게 걸러낸다. 갑분싸에서 결혼식 하객 모두 비슷한 베이지 트렌치 코트를 입고 나타난다는 편이 있다. 환절기면 그런 패션이 많아진 것을 잡아냈다. “개그는 과장해서 재미를줄 수도 있고, 공감대를 건드려서 감탄하게 할 수도 있죠. 저희는 후자를 따르기로 했어요.”(도연)

프린트 원피스는 앤아더스토리즈(& Other Stories), 네이비 스팽글 재킷은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워커는 마이클 마이클 코어스(Michael Michael Kors), 틴트 선글라스는 구찌(Gucci).

그들은 여성 동료 간의 연대가 무척 깊다. “저희뿐 아니라 개그우먼들이 참 착해요. 경조사 다 챙기고, 힘든 일, 좋은 일 함께 격려하고 축하하죠. 사회에서는 개인을 우선시할 수 있는데, 이 세계는 진짜 동지애가 넘쳐요. 그런 착한 사람들 틈에서 일하니 행운이죠. 이 직업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고요.”(은형)

특히 여성 선배를 얘기할 때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극존칭을 쓴다. 이영자가 KBS와 MBC 연예대상에서대상을 탄 모습에 장도연은 “국가 대표가 상을 받는 모습 같았다”고 회상한다. “하늘 같은 선배님과 <밥블레스유> 방송을 한다니 너무 신기했어요. 직접 축하 인사를 전할 수 있다는 것도 영광이었고요. 영자 선배님은 늘 ‘이순재 선배님도 늘 배우신다는데 우리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일이 많아지면서 안일해질 수도 있지만, 선배님들 보면 아차차, 하고 동기부여가 돼요.”(도연)

언제부턴가 여성 개그맨들이 20~30대 여성들의 워너비가 됐다. 패션, 뷰티,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관련 광고도 찍으면서 이전보다 행보를 넓히고 있다. 이영자는 여성지 표지 모델로 등장하고, 장도연은 주얼리 광고를 찍었다. 이런 변화를 장도연은 “이전에도 여전히 멋진 선배님들이 많았지만, 이제 알아봐주시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전엔 배우나 가수를 이상형으로 얘기했다면 요즘엔 개그맨도 많이 거론되죠. 사람의 매력, 마인드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시청자들이 알기 시작한 거 같아요. 요즘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 김숙 선배님의 인기는 당연해요. 인간적인 면모가 전달된 거죠.”

장도연이 입은 레오퍼드 프린트 반팔 셔츠는 겐조(Kenzo), 노란색 퍼 트리밍 레더 팬츠는 참스(Charm’s), 허안나가 입은 입술 모양 레오퍼드 프린트 원피스는 참스, 이은형이 입은 레오퍼드 프린트 원피스는 레오나드(Leonard).

갑분싸 멤버 모두 이 길을 닦아준 선배들에게 감사했다. 박미선이 2013년 KBS 연예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26년째 일을 하고 있는데, 요즘 예능은 남자들이 지들끼리 다 해먹는다. 그게 많이 속상했다. 여자들도 힘을 합쳐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란 소감을 말한 적 있다. 7년 장수 프로그램인 ‘세바퀴’에서 직언하는 이경실은 강한 여성이 아니라 ‘드센 아줌마’로 포지셔닝되었으며, 안영미의 자유분방한 ‘몸짓’에 패널들은 부끄러운 척 얼굴을 가렸다. 공중파와 케이블의 구분이 무의미하더라도, 남성 출연진의 <무한도전>과 <라디오스타>는 MBC에, 여성 출연진의 <무한걸스>와 <비디오스타>는 MBC every1에 편성되었다. 스핀오프라서? 그렇다면 왜 여성 출연
진의 몫은 스핀오프여야 할까. 몇몇 예능을 빼곤 여성출연진으로 구성된 경우는 패션·뷰티 특화 프로그램 뿐이다. 송은이와 김숙, 강유미 등이 자체 프로그램을 기획해 TV가 아닌 팟캐스트와 유튜브 등 다른 플랫폼에서 활약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나마 요즘에는 이영자의 연예대상이나 김숙과 박나래의 인기에서 보듯 드세게 치부되던 여성들이 삶을 개척해나가는 진정한 미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듯하다.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말이다. “선배님들께서 굳건히 해나가시는 모습에 저희는 정말 든든해요. 안일해지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뿐이죠.”(도연)

이은형, 허안나, 장도연은 자신들은 ‘잔잔바리’라며 겸손했지만, 그들 역시 아름답다. 여성 개그맨의 연대를 바탕으로 부족한 환경을 개척해가는, 한 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은 미인이다. 거짓 없는 진짜 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