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창의 미개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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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창의 미개봉작

2019-02-07T13:22:54+00:00 2019.02.07|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카메라로 촬영한 시점을 작가로서의 시작점으로 여겼다. 그러나 한평생 예술가로 산 구본창의 출발점은 훨씬 이전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공개’한 ‘미공개작’과 이야기에서 작업과 삶을 잇는 존재와 부재, 우연과 필연, 채움과 비움의 질서를 발견했다.

실제와 이미지 구본창 작가의 셀프 포트레이트. 이탈리아 여행길, 미술관 유리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찍었다. 구본창은 무언가가 유리에 비친 형상을 좋아한다. 어렴풋하게 반사된 형상은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반영하지 않으면서도 존재를 시사한다. 실제와 이미지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는 경계의 이미지.

“사진작가 구본창은 내게 새로운 탄생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며 비로소 자긍심을 갖게 되었으니까. 그전에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인생인지, 너무 쓸모없는 건 아닌지 회의감이 나를 끈질기게 지배했어요. 취미에도 없는 경영학 전공하면서 대학을 즐겁게 다녔을 리 만무하고, 미팅에서 무슨 이야기로 2시간을 떠드나 걱정이 앞서는 타입이니 사회생활이 편했을 리 없고, 술자리 3차에 노래방까지 가야 하는 직장 생활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독일로 탈출했죠. 그곳은 달랐어요. 항상 숨기고 싶었던 예민하고 여성스럽고 섬세한 나의 취향과 성향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과제 발표 날이면 선생과 친구들이 둘러앉아 모두 칭찬을 해주니 내가 어땠겠어요. 매일 찍고, 매일 다니고, 그때 정말 죽어라 열심히 살았어요. 그러다 한국에 딱 들어왔는데 돈을 꾸러 다닐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당장 알아주는 사람은 없지, 처음 몇 년은 독일로 돌아갈 생각만 했죠. 그러다 우연히 <일본의 하루>라는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가했는데, 어떤 사진가가 내게 “네가 뉴욕 오면 우리는 굶어 죽겠다”라고 하더군요. 그 말 한마디 덕분에 견딜 수 있었어요. 그러니 ‘사진작가 구본창’은 곧 살아 있다는 의미일 수밖에요. 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그냥 살다 끝나지 않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고 그걸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났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어요. 나머지는 덤이죠.”

사물과 내러티브 구본창 작가는 유학 시절부터 사진 매체를 통해 사물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특히 이 사진에서는 빈 공간과 사물이 상호작용하는 광경에 내러티브를 부여했다. 빈 벽 뒤에 어느 여인이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고, 인간적인 사연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미니멀한 사진 한 장에서 상상력, 위트, 서정성, 애틋함 등 다양한 요소가 엿보인다.

롤랑 바르트는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 “사진은 존재의 본질과 자아, 거짓으로 닮음이 아닌 진실한 존재 자체가 하나로 융합되는 곳”이라고 썼는데, 이는 구본창 작가를 위한 전언이다. ‘사진작가 구본창은 인간 구본창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위의 답은 그의 도저한 사진은 말할 것도 없고, 삶 자체가 사진이라는 예술로 수렴됨을 의미한다. 구본창의 스토리는 3할의 공개된 활약과 7할의 미공개 작업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내면에는 수십 개의 폴더가 존재하고, 각 폴더에는 각각의 작업이 자리하며, 각 작업은 저마다 사연을 가진다. ‘구본창의 현재’를 설명하는 ‘세계적 사진작가’라는 영예는 이 많은 폴더를 여닫고 채우며 살아 있게 하는 행위에서 기인했다. 그의 폴더를 지배하는 시간의 개념은 현실의 시계로는 가늠할 수 없다. 이를테면 도예가 루시 리가 달항아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고 “전 세계에 흩어진 백자를 내 사진으로 모으고 싶다” 열망한 건 1989년의 일이지만, 15년 후인 2004년 무렵에야 백자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고, 다시 15년 후인 지금 <백자> 연작과 그 확장인 <청화백자> 연작을 공히 소개하는 최초의 전시(국제갤러리 부산점, 2월 17일까지)가 열리고있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백자와 청화백자 작업 이면, 15년과 15년 사이, 그 전후의 여백을 채워가는 흥미로운 시도를 가능케 한다.

전쟁과 인간 <전쟁> 연작 중 유럽의 군인들이 십자군 전쟁 때 입었던 갑옷.

존재와 부재 구본창에게 <백자> 연작은 길 위에서 보낸 인생의 증거다. 백자 촬영으로 다닌 박물관만도 열여섯 군데가 넘고, 웬만한 소장가들의 집을 방문했으며, 이마저도 한 번에 그치는 일이 잘 없었다. 출판사 아마나살토(Amanasalto)가 만든 책 (백금 인화한 백자 사진 열두 장이 포함된 한정판의 가격은 5,000달러에서 시작, 에디션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은 8,000달러에 육박한다)의 첫 페이지는 구본창의 여정을 표기한 세계 지도다. 여기에 대영박물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 <백자> 작품을 소장, 전시한 곳까지 더하면 훨씬 풍성해진다. 간곡한 청을 담은 편지를 교토의 고려미술관에 보내 허락을 구한 끝에 소담한 사발을 촬영한 어느 크리스마스 날, 마침내 기나긴 <백자> 여정이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유해에서 발견된 접시와 숟가락을 함께 배치했다. 전쟁에 대한 그의 시적 접근은 전쟁을 직설적으로 발언하는 보도사진이 말하지 못하는 바를 말한다. 특히 부러져버린 숟가락은 전쟁의 폐해와 인간의 존엄을 상징할 뿐 아니라 태초의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백자> 연작을 구본창의 대표작이라 칭하는 이유는 단순히 유명세 때문이 아니다. 그가 백자의 존재감을 읽고, 보고, 경험하고, 기억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백자를 시각적으로 재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형태를 빌려 존재 자체를 담아냈다. 상상과 현실의 고요한 공모의 순간을 사실적, 기계적인 사진 매체로 포착함으로써 백자의 이미지와 실체간의 경계를 없앤 것이다.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의 큐레이터 가타야마 마비의 말처럼 “오래된 물건에만 깃든 요기(妖氣)”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렇기에 구본창의 백자는 밀폐된 유리 안 박물관의 백자와도, 도록에 찍힌 백자와도, 김환기의 그림 속 백자와도 다르다. 어느 선비의 일상, 창호지를 관통한 자연광 아래 사방탁자에 놓여 있었을 백자나 이름 모를 도예가가 도달하고 싶은 이상향의 경지에 가깝다. 이는 육안으로 볼 때 더 강렬히 실감할 수 있다. 이를테면 대상과 배경 사이 흐릿한 경계선, 몽환적인 핑크 톤의 부유하는 느낌, 평면적인 동시에 입체적인 효과, 시각과 촉각의 공감각적 이미지등은 비정형적이고 불완전한 오브제인 백자로 경험할 수 있는 초현실성의 출발점이자 결과물이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이나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아트 뮤지엄에서는 실제 백자 뒤에 <백자> 사진을 배치한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런 ‘사건’이야말로 그간 구본창이 이뤄낸 거대한 변화인 셈이다. 오는 6월에는 건축계의 거장 노먼 포스터의 부인인 엘레나 포스터가 운영하는 아이보리프레스에서 <청화백자> 연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2013년 첫 개인전 당시에는 포스터 부부의 침실에 그의 담쟁이덩굴 작품 <화이트>가 걸려 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패션의 본질의 가죽 장갑은 벼룩시장에서 산, 오래된 종이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새 물건이었다. 아직 누군가의 손을 타지는 않았지만, 태생적으로 누군가의 체온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게 목적인 장갑 특유의 온기가 인상적이라 작업으로 남겼고, 스튜디오에 액자로 걸어두었다.

“당연하게도, 백자를 찍지 않았더라면 청화백자를 만날 수 없었을 테니 엄청난 우연과 필연이죠. 청화백자 자체도 그렇지만, 이걸 그린 이들에게 관심이가요. 그들은 작은 자기의 표면을 화폭으로 생각하고 그림을 그렸어요. 동그란 우주 속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그 안에는 달도 뜨고, 호수도 펼쳐지고, 꽃도 핍니다. 삐뚤빼뚤한 선과 희미한 푸른색에서 조심스러운 떨림도 느껴지는데, 정말 남다르게 다가와요. 그래서 다소 외로운 느낌이 드는 청화백자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해요. 맨 처음 교토의 어느 개인 소장가로부터 본인의 백자를 찍어달라 요청받았는데, 그의 집에 청화백자가 많았어요. 그때 청화백자의 원시적인 묘한 매력을 알게 되었죠. 올해는 독일에 가보려고 해요. 1800년대 후반부터 일본뿐 아니라 서양 강대국도 우리 유물을 많이 가져갔거든요. 언제나 그랬듯 타향에서 보는 우리 백자는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거울 사진은 유학 시절에 찍은 작품. 그 당시 패션 잡지의 사진을 일일이 오려 붙여, 작고 사소한 일상적 사물에 즐거운 초현실성을 더했다.

청화백자도 백자의 일종이다. 다만 어떠한 무늬 없이 고아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순백자와는 달리, 청화백자는 도자기 표면에 푸르스름한 그림이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가타야마 마비는 구본창의 백자를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아씨”라고 표현했는데, 청화백자는 해학적이고, 수더분하며, 청신하여 은은한 웃음을 자아낸다. 유난히 무늬가 뚜렷하고 화려한 중국, 일본 청화백자와는 달리 도공이 그림을 그리다 말고 술 마시러 간것처럼 허술하고, 소박하고, 간결하다. 구본창은 한때 왕실 이외에는 청화백자 사용을 금지했고, 중국 사신을 통해 밀수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메소포타미아산 안료가 지나치게 값비쌌기 때문이 아닐까 예측했는데, 그의 사진은 이렇게 당시 소유에 대한 욕망, 기호, 가치의 변화를 시사하는 청화백자의 가치를 포착한다.

“<백자> 연작이 세상에 알려진 후 그간 조명받지 못한 백자가 회자되고, 연구되고, 예술 작품으로 다뤄진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껴요. 예전엔 완성도가 높다 인정받은 고려청자만 집중했는데, 언젠가부터는 해외 전시라든가, 유물을 홍보하는 자리에서도 달항아리를 많이 앞세우죠. 하다못해 김포공항에는 거대한 달항아리가 회전하고 있잖아요. 언젠가는 목기를 작업해보고 싶은 이유도 그래서예요. 작가로서 나는 우리가 잃어버리거나 놓치고 있는 우리의 가치, 가졌어야 하거나 유지했어야 하는 미의식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일에 큰 의미를 둬요. 현재를 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고나 할까요. 나도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빙해 풍경 그림이나 에드워드 호퍼 작품 속에서 멈춰버린 시간과 적막감을 발견하고, 이를 인지하면서 비로소 내 삶을 돌아보게 되는데, 청화백자도 그런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예요.”

순간과 영원 <백자> 작업을 시작할 때, 맨 처음 폴라로이드로 백자를 찍었다. 조명의 밝기와 공기의 밀도 덕분에 전혀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핑크빛 사진을 얻었다. 몽롱하고도 서정적인 이 톤이 현대에 재해석하는 백자를 이야기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해, 프로토타입 삼아 이후 백자 작품도 핑크색으로 작업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폴라로이드의 특성상 셔터를 누르면 바로 사진이 나오는 즉흥성과 순간성으로 수백 년 동안 존재해온 백자의 시간을 압축해 포착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모든 예술적 사건의 시초가 되는 문제의 사진 속 루시 리의 달항아리는 본래 영국 도예가이자 미학자 버나드 리치(Bernard Howell Leach)가 일본 민예운동의 선구자 야나기 무네요시와 1920년대 한국 방문길에 손에 넣은 백자였다. 영국으로 돌아갈 때 달항아리를 한품 가득 안은 버나드 리치가 “행복을 안고 간다”고 말한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 ‘행복’은 세계대전을 피해 결국 루시 리가 살던 오스트리아까지 오게 되었고, 이번 전시에서는 구본창이 2005년 대영박물관에서 직접 촬영한 예의 그 달항아리 작품도 볼 수 있다. 이 사진은 버나드 리치와 루시 리 같은 역사 속 존재는 물론 이들이 없는 현재를 상기시킨다. 어떤 유물이란 인식 속에만 자리한 시대가 실재했음의 증표인 동시에, 부재한 시대와 사람들, 결국 세상만사 영원한 건 없다는 진리의 표현이다. 평소 “모든 사진은 존재와 부재의 갈림길이다”라 말한 구본창은 백자를 통해 자기 명언에 방점을 찍는다.

<백자> 작업을 시작할 때, 맨 처음 폴라로이드로 백자를 찍었다. 조명의 밝기와 공기의 밀도 덕분에 전혀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핑크빛 사진을 얻었다. 몽롱하고도 서정적인 이 톤이 현대에 재해석하는 백자를 이야기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해, 프로토타입 삼아 이후 백자 작품도 핑크색으로 작업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폴라로이드의 특성상 셔터를 누르면 바로 사진이 나오는 즉흥성과 순간성으로 수백 년 동안 존재해온 백자의 시간을 압축해 포착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돌이켜보면 나의 전작도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탈> 연작은 탈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궁금증과 함께 실제냐 허상이냐 하는 문제가 남아요. <비누> 연작도 다 써서 작아져버린 비누를 통해 이걸 쓴 사람, 지난 시간을 예측하게 하고요.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숨> 연작이야말로 존재와 부재의 가장 강렬한 경계를 기록한 작품이죠. 초창기에 눈 오는 날 차가 서 있던 빈 자리나 마네킹 사진을 찍은 것도, 롤랑 바르트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이, 존재와 부재가 사진 매체를 넘어 우리 삶의 주효한 질서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백자> 작업을 시작할 때, 맨 처음 폴라로이드로 백자를 찍었다. 조명의 밝기와 공기의 밀도 덕분에 전혀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핑크빛 사진을 얻었다. 몽롱하고도 서정적인 이 톤이 현대에 재해석하는 백자를 이야기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해, 프로토타입 삼아 이후 백자 작품도 핑크색으로 작업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폴라로이드의 특성상 셔터를 누르면 바로 사진이 나오는 즉흥성과 순간성으로 수백 년 동안 존재해온 백자의 시간을 압축해 포착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우연과 필연 구본창 작가는 지난 연말을 인도 아마다바드에서 보냈다. 전통시장에 금박을 만드는 장인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만 듣고, 2년 전부터 벼르다 20년 만에 간 인도 여행이다. 그의 카메라에 조그마한 금덩어리를 망치로 수없이 두들겨 얇고 넓적한 금박으로 만드는 과정이 촘촘히 기록되었으니, 이는 <백자> 연작의 ‘존재와 부재’의 예술적 화두를 이어받은 <황금> 연작의 완벽한 심정적, 역사적 명분이 될 것이다. 여행 전, 스튜디오에 들렀을때 두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후지와라 신야가 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땅에 대한 이야기 <인도방랑>과 피터 번스타인의 책 <금, 인간의 영혼을 소유하다>. <인도방랑>은 빛바랜 채 해져 있었고, 금의 방대한 역사를 다룬 책의 갈피에는 빼곡한 포스트잇이, 연필로 그은 밑줄이 물결치고 있었다.

<백자> 작업을 시작할 때, 맨 처음 폴라로이드로 백자를 찍었다. 조명의 밝기와 공기의 밀도 덕분에 전혀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핑크빛 사진을 얻었다. 몽롱하고도 서정적인 이 톤이 현대에 재해석하는 백자를 이야기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해, 프로토타입 삼아 이후 백자 작품도 핑크색으로 작업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폴라로이드의 특성상 셔터를 누르면 바로 사진이 나오는 즉흥성과 순간성으로 수백 년 동안 존재해온 백자의 시간을 압축해 포착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과연 금이 어떤 마력으로 인류를 사로잡아왔을까 궁금한 마음에 <황금> 연작을 시작했어요. 전시 때문에 호주에 갔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침 금광 지역이었던 거예요. 그 후에도 유물을 찍으러 리마, 마드리드, 일본 등에도 갔지만, 금 자체의 날것의 물성을 꼭 사진으로 남겨야겠다 싶었어요. 지금도 동남 아시아에서는 불공의 의미로 불상에 얇은 금박을 붙이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는지 부처 얼굴이 아주 동글동글해요. 일상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금은 염원을 이룰 수 있는 대상을 상징하지요. 동시에 욕망과 쟁탈의 보편적인 상징이기도 해요. 잉카를 침략한 스페인 사람들이 가져온 금덩어리를 찍은 적 있어요. 쉽게 운반하기 위해 잉카의 유물을 죄다 녹여 덩어리로 만들어버린 거죠. 금에 대한 집착은 태양을 향한 숭배에서 비롯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여전히 금은 인류학적 화두를 낳아요. 금이 어떻게 부귀의 상징이 되었는지, 어떻게 불멸에 대한 욕망을 반영하는지, 금에 대한 오랜 집착이 현대에는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등등 모두 흥미로워요. 그리고 금박을 입힌 자갈을 진짜 황금덩어리 사진과 함께 배치한다면 진짜와 가짜, 진실과 환영 등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시도하고 있어요.”

아날로그 역시 유학 시절에 찍은 사진. 담뱃갑에서 벗겨낸 투명한 셀로판 공간 안에 담배 한 개비가 부유하고 있다. 미세하게 풀로 고정하여 살짝 휘어버린 수직선이 아날로그 사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날로그의 뉘앙스가 사물의 투명함과 사진의 입체감을 배가한다

이번 여행길에서 작가는 우연히 오토바이를 타던 어떤 남자의 사진을 찍어주었고, 페이스북을 통해 그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인도 특유의 문양과 색감이 돋보이는 천, 꽃 시장에서 목격한 색의 향연 등도 담았다. 구본창의 호기심은 실로 대단하다. 그는 예로부터 섬유산업이 발달한 곳이자 칼리코라는 아름다운 섬유박물관을 가진 도시, 간디가 활동한 곳이자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한 다양한 운동이 태동한 곳, 한편 르 코르뷔지에와 루이스 칸이 지은 근대적 건축물이 남아 있는 도시를 이번에 새로 알게 되었다. 이곳의 다양한 표정, 식민지 시절의 아픈 역사와 빈부 격차의 현실, 지독하게 나쁜 공기가 빚어내는 모호한 느낌, 그럼에도 생기 있는 에너지 등은 그의 시선에 포착되었고, 폴더에 저장되어, 언젠가 또 다른 연작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구본창의 사진이 품은 시대성이란 곧 존재와 부재의 상관관계가 만들어내는 우연과 필연, 채움과 비움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공간과 여백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가 빠져나간 후 비워진 공간은 애초에 의도된 여백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물리적으로 빈 공간은 원래 있던 물건을 예측하게 하고, 부재를 통해 존재를 상기시키는 등 감성적 여백을 제공한다.

“청초한 백자를 찍다가 왜 황금이냐고 많이들 물으시는데, 황금도 결국엔 욕망한 사람도, 시대도 사라진 상태에서 오롯이 남은 유물이에요. 시간성이 담겨 있죠. 그런 덧없음이 내 모든 것이에요. 어빙 펜만큼이나 프랑스 사진작가 외젠 아제(Eugène Atget)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19세기 말에 파리의 텅 빈 길, 빈 쇼윈도, 빈방, 석상만 있는 공원 풍경 등 빈 공간을 많이 찍은 작가인데, 사후에야 그를 좋아한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어요. 화가들이 참고해 그릴 수 있는 흔한 엽서 사진 같은 걸 찍어 팔았지만, 그의 사진에는 묘한 기운이 느껴져요. 독일 사진작가 오토 슈타이네르트도 어떻게 선택해서 무엇을 찍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주관주의적 사진을 통해 객관성을 내보이려 했어요. 토마스 루프도 인물을 증명사진처럼 객관적으로 찍었지만 주관적인 의도가 전제되어 있고, 안드레아 거스키도 증권거래소나 공장 같은 장소를 자기 감수성으로 발명한 아름다운 프레임 안에 조형적으로 배치했어요. 결국 모든 게 나 자신에게서 출발하는 우연과 필연의 조합이죠.”

채움과 비움 구본창의 스튜디오는 거대한 그릇이다. 사진작가로서 구본창의 작업실이자, 아끼는 모든 물건이 자리한 여백으로서 공간이다. 르네상스 시대 작은 서재에서 시작하여 왕의 수집실을 거쳐 중국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호기심의 방’에 버금가는 곳이니, 작가 바람대로 언젠가 박물관으로 거듭날 수도 있겠다. 그가 스튜디오를 채우는 작고 사소한 것들은 언젠가 숨은 힘을 발휘해 사진이 되기도 한다. 실제 구본창은 마틴 파처럼, 본인 컬렉션으로 구성된 개인전을 2011년에 개최한 적 있다. 구본창에게 컬렉션은 사‘ 물의 숨결을 수집하여 감춰진 혼을 드러내는 작품 세계와 삶의 태도’를 일컬으며, 개인 구본창과 사진작가 구본창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이다. 입구로 들어와 현재 작업 중인 다양한 인화지, 새로 시도했다는 청화백자 병풍, 좀체 공개되지 않은 작업들, 적재적소에 배치된 컬렉션까지 둘러보다 보면, 인터뷰 테이블까지 당도하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의자에 앉으니, 그가 늘 메고 다니는 다 해진 가방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절대 버리지 않아요. 십수 년 전에 모로코 여행을 갔는데, 길거리에서 천막 같은 걸 꿰매 이런 가방을 만들고 있더라고. 프라이탁이 여기서 영감을 얻은 게 아닌가 몰라. 블루 셔츠는 목 부분만 낡았길래 아예 스탠딩 칼라 셔츠로 만들어버렸어요. <태초에> 연작 때도 사진 인화한 천을 바느질로 일일이 이었으니, 셔츠 리폼하고 코트 단추 다는 정도는 일도 아니죠.이 컵은 일본 카페에 갔다가 발견한 거예요. 빨간 색연필을 몇 년 동안 꽂아둔 바람에 아랫부분이 토마토 주스처럼 물든 컵을 ‘고멘나사이’ 하면서 뺏다시피 가져왔는데, 너무 예쁘지 않나요? 이건 호텔이나 비행기에서 가져온 소금과 후추인데, 나라별로 각양각색인 포장지가 재미있어 언젠가 작업해보려고 보관 중이고요. 독일 유학 시절엔 츠바이타우젠다인스 2001(Zweitausendeins 2001)이라는 책방에 아티스틱한 종이 쇼핑백을 가져오기 위해서 허구한 날 들렀어요. 저기 걸린 인형은 로체스터에 전시 때문에 갔다가, 동네 벼룩시장에서 300달러 넘게 주고 산 거예요. 섬세함과 완성도가 정말 기가 막혀요. 하지만 당시엔 왠지 창피한 마음에 30달러라 거짓말한 기억이 나네요.(웃음)”

모르긴 해도 조만간 그는 인도 여행길에서 얻어온 귀한 물건들을 내게 보여줄 것이다. 사진으로 남길 황금 금박 한 조각도 그렇지만, 장인들이 사용하던 종이, 즉 금박을 두들길 때 아래에 받치는 종이가 더 큰 성과인 양했다. 무수한 망치질이 만들어낸 흔적과 무늬를 두고, 그는 “마크 로스코 작품같다”고 표현했다. 당사자들조차 “도저히 팔 수 없다”고 저어한 물건을, 구본창은 기어이 얻어와 이렇게 애지중지한다. 이를테면 액자로 걸어둔 꽃과 나비 그림은 철거 직전의 한 마카오 여인숙에서 떼어온 벽지이고, 하늘색의 낡은 선반은 대만의 벼룩시장에서 지난한 흥정 끝에 데려온 물건인데, 심지어둘 다 귀국 후에도 도저히 잊지 못해 다시 비행기로 날아가 가져왔다. 구본창은 보잘것없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물건만큼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기필코 가진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념, 그가 애착을 가지는 사물의 가치는 세속 혹은 범인의 그것으로는 측정 불가하다. “내가 아니면 어쩌면 버려질 대상”에 대한 애정, 누군가 정성으로 사용한 물건의 힘을 보존하여 되살리고 싶다는 의지는 사진작가 구본창에게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된다.

구본창의 작품 속에도 완벽한 상태의 백자가 별로 없다. 뭐가 잔뜩 묻어 있거나, 한쪽이 깨져 찌그러져 있거나, 깨어진 걸 이어 붙인 흔적이 선연하다. 백자는 한 번도 귀하게 다뤄진 적 없는 일상의 용기였다. 뭔가를 채워 사용되던 백자는 당대 선인들의 일상을 생생히 증언하는데, 그것이 구본창이 청자가 아닌 백자에 매료된 이유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제 역사와 존재감을 가진 대상”에 마음이 간다는 그의 성향은 패션 잡지에서조차 큰 화제가 되었던 <가산오광대> <강릉 관노 가면극> 연작 등을 떠올려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유명한 안동 하회나 봉산탈춤의 주역들과는 달리 이들의 가면 이면에는 시골의 노인들이 있었다. 탈을 쓰고 마음껏 제 이야기를 하지만 탈을 벗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매한가지인 촌부들이었다. 이들은 구본창의 카메라 앞에 기꺼이 서면서 “우리도 해외 공연 한번 갈 수 없겠느냐”고 애틋하게 부탁했다. 그리고 구본창의 사진이 유명해지면서, 가산오광대와 강릉관노 가면극도 해외 무대에 설 기회를 함께 얻게 되었다.

“사물에 대한 애정은 내 감성의 원형이에요. 어린 시절, 나는 좀 힘들었어요. 원래 성격은 뛰어놀거나 섞이는 걸 좋아하지 않음에도, 억지로 그런 척해야 했으니까. 소외되었다고나 할까. 엄청 애처로운 시절이었지.(웃음) 외톨이였던 나는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말벗 삼았어요. 식물에 말을 걸거나, 강아지를 데리고 놀거나. 지금도 눈에 선해요. 우리 집이 신당동 뒷골목에 있었는데, 비만 오면 비포장도로에 골이 파였어요. 돌이나 깨진 유리 같은 게 끼어 빗물에 반짝 거리곤 했죠. 매번 쓸데없는 걸 주워오고, 부모님께 야단맞고, 다시 주워오고, 이것의 반복이었어요. 지금 내가 채워지지 않는 수집의 욕망에 무언가를 모으고, 백자처럼 뭔가를 담는 그릇을 좋아하는 것도, 상자처럼 본래 무언가가 들어 있던 빈 자리에 애착을 갖는 것도, 아마 이 시절의 기억 때문일 거예요. 그때부터 물건에 말을 걸고 숨은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법을 연습한 셈이죠.”

구본창이 처음 백자를 발견한 1980년대 말, 본격적으로 백자 작업을 시작하기까지 15년이라는 시간, 말하자면 작가 스스로 “사진작가로서 먹고 살기 바빴다”는 그 시절은 구본창의 사진을 최고의 패션 잡지나 영화 포스터 등 대중적 통로로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기였다. 사진 매체가 현대미술의 성지인 모마에 입성한 지는 50년 남짓,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 사진전을 한다고 작가들끼리 “오, 하느님!”을 외친 건 불과 1996년의 일이다. 그러므로 이 척박한 예술 세상에서 그가 사진작가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황현산 교수의 말처럼 구본창이 “새롭고 용감한 시선”으로 고군분투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예컨대 1988년 루이즈 부르주아, 프랭크 스텔라 등의 대형 전시로 미술계에서도 꽤 영향력 있었던 워커힐 미술관에서 그가 사진전을 기획한 후 사진과 학생들의 작품 경향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같은 해 길거리에서 알렉시오라는 브랜드의 화보 촬영 중 진땀을 흘리다 맞은편 허름한 당구장에서 패션 역사에 남을 획기적인 화보를 찍었다는 이야기도, 다름 아닌 구본창이기에 무용담이 아니라 역사가 된다. 변한 게 있다면 시대와 트렌드를 초월한 모던하고 서정적인 화보를 찍던 구본창은 이제 전쟁을 겪은 어머니들이나 탈북자들의 뒷모습을 촬영한다는 사실이다.

금과 욕망 왼쪽 칼은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스페인의 유물,

“내 사진 속 물건들처럼, 탈북자들도 우리 사회에서 거의 잊힌 존재예요. 세상은 이들이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는지, 제대로 적응하는지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여요. 보도사진으로 보여주기에 이들의 사연은 너무 애틋하기에 인물 사진을 물건과 함께 보여주고 싶었어요. 고향의 흙을 담아온 사람도, 북한 생수병을 간직한 사람도, 노트에 ‘인생 성공’이라고 쓴 사람도, 러시아를 거쳐올 때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를 내놓는 사람도 있고, 그마저도 없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들과 만나다 보면, 내가 왜 사진을 계속 찍고 있는지 그 이유가 명확해집니다. 얼굴을 드러내지 못할 만큼 곡절을 겪은 이들의 삶에도 온기가 있어요. 어떤 물건이 빠져나간 빈 상자에도 특유의 온기가 느껴지듯 말이죠. 촬영중 알게 된 어느 학생이 전시회를 여는데, 거기에는 꼭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중요하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대상들의 존재감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식하지 못했던 삶의 작은 이유를 찾는 건 나와 관객들, 카메라 속 대상들에게 공히 적용되는 진실일 거예요. 숭고함이라는 단어를 감히 사용할 수 있을까요? 어쨌든 그보다 더 나은 단어가 필요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