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구독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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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구독 시대

2019-02-21T14:27:48+00:00 2019.02.22|

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취향이 아니라 정확한 분석과 남다른 통찰에 지갑을 연다.

‘애플뮤직’ ‘넷플릭스’ ‘퍼블리’ ‘유튜브 프리미엄’ ‘리디셀렉트’ ‘아웃스탠딩’ ‘바이브(네이버 뮤직)’ ‘여성 생활 미디어 핀치’… 그리고 올레TV 월정액 상품 등. 내가 정기 구독하는 서비스는 대략 이 정도다. 미디어 쪽에서 일하다 보니 겹치는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라도 함께 구독한다. 게다가 아이클라우드나 구글 G 스위트, 어도비 등의 업무용 유틸리티까지 확장하면 구독 서비스의 종류는 더 많아질 것이다. 남들과 비교해서 조금 많을 수 있지만, 전체 지출 규모는 대략 한 달에 10만원대니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최근에야 구독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지만 애초에 정기 구독은 오래된 수익 모델이다. 매일 아침 현관에 배달되던 신문이나(하다못해 우유도) 매달 발송되던 잡지 같은 인쇄 매체가 대표적이다. 이런 구독 모델은 발행처의 안정적 수익을 보장한다. 사실 뉴스를 포함해 트렌드나 정보를 다루는 사업은 당장의 비용을 예측하기 어렵다. 매번 불특정 다수, 대중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데 정작 얼마나 팔릴지 예측하기 어렵고, 몇 부를 찍어야 할지 결정하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정기 구독은 시장 수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기본적 조치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맥락에서 20세기와 21세기의 산업구조 변화를 살펴보자. 기준은 디지털이다. 일단 ‘콘텐츠’의 사전 정의를 알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영어 ‘Content’는 원래 서적이나 논문의 목차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2019디지털 네트워크 시대 이후에는 ‘유무선 통신망을 통해 매매 또는 교환되는 디지털화된 정보’를 가리키기도 한다.(영어로는 단수 ‘Content’, 한국어로는 복수인 ‘콘텐츠’로 쓰인다는 차이도 있지만 그것까지 정리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각자 찾아보기로 하자)

아무튼 콘텐츠는 기존 개념이 재정의된 경우다. 이때의 핵심은 실체 없는 디지털 정보가 재화로 정의된다는 데 있다. 20세기에는 물성과 가치가 사실상 분리되지 않았다. 음악을 예로 들면 20세기 음악 산업의 주 수익원은 음악이 아닌 음반이었다. 음악의 가치는 음반 가격으로 치환되었고, LP, EP, 카세트테이프, CD로 변화한 미디어가 수익을 좌우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였다. 비디오가 등장했을 때 영화사는 비디오 제조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었지만, 비디오가 보편화되자 극장 수입에만 의존하던 시절보다 더 높은 부가 수익을 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종종 잊어버리지만, 애초에 지식·정보도 책이라는 상품을 통해 수익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21세기에 이르러 이런 구조가 깨지면서, 역설적으로 20세기 ‘콘텐츠’ 산업의 본질이 제조업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런데 왜 하필 유료 구독 모델이 새삼 화제일까? ‘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 플랫폼’을 지향하는 퍼블리는 월 구독료가 2만1,900원이다. 나는 2018년 초 ‘퍼블리’에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음악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리포트를 발행했다. 독자 후기는 대체로 “격변하는 음악 산업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나는 ‘파악’과 ‘도움’ 에 밑줄을 그었다.

‘지식 콘텐츠 플랫폼’이라 명명한 ‘폴인’과 ‘책처럼 깊이 있게, 뉴스처럼 빠르게 지적 콘텐츠를 전달’하는 ‘북저널리즘’ , ‘넷플릭스’처럼 대량의 전자책을 제공하는 ‘밀리의 서재’와 ‘리디셀렉트’ 같은 서비스는 모두 ‘퍼블리’처럼 지적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가로 월 구독료를 받는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서비스의 회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에 더 주목한다. 로컬과 출판을 바탕으로 현장 목소리와 통찰력을 제공하는 ‘브로드컬리’(로컬숍 연구 잡지 시리즈)와 ‘트래블코드’(퇴사준비생의 런던/퇴사준비생의 도쿄)의 성장도 마찬가지다.

이제 위기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경험과 취향이 아니라 정확한 분석과 남다른 통찰에 지갑을 연다. 다시 말해, 지적 콘텐츠의 사용자에게 중요한 건 체험보다 신뢰다.

이렇게 형성된 신뢰도가 곧 브랜드 가치를 만든다. 거의 모든 콘텐츠 사업자들이 브랜딩을 고민하는 이유기도 한데, 신뢰야말로 거의 유일한 상품이라서 그렇다. 신뢰를 얻기 위해 개인화 시스템(맞춤형 추천 같은)을 향상시키고, 신뢰를 얻기 위해 콘텐츠와 서비스의 품질을 높인다.

이렇게 구독 모델 활성화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런 콘텐츠 수익 모델의 변화가 단지 ‘소비 방식’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는 방식’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시대에 우리는 소비자로서, 동시에 생산자로서 좀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도록 요구받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해답이 아니라 더 많은 질문을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