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이 죽일 놈의 휴대폰

2019.03.10

by VOGUE

    이 죽일 놈의 휴대폰

    소설가 최정화는 냉장고와 세탁기, 침대, 비슷한 코트 등 그간 사들인 것을 내보냈다. 특히 휴대폰 없는 삶을 시작했다.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하루는 버그도프 백화점 앞을 지나는데 쇼윈도에 맘에 드는 초록색 코트가 걸려 있었어요. 그래서 들어가서 그 코트를 샀어요. 그런데 며칠 지나서 다른 곳에서 처음 코트보다 더 좋은 걸 본 거예요. 그래서 그것도 샀어요. 나중에 옷장 안엔 초록색 코트가 네 벌이나 걸려 있게 됐죠.” -제임스 설터, ‘혜성’

    나는 이 이야기가 내 삶을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비유적 의미에서다. 실제로 같은 색의 코트를 네 벌이나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고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들로 나를 채워가고 있다는 소설 속의 발견은 내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나는 내가 갖고 싶지 않은 것들이 이미 내 집에 붙박이로 설치되어 있는 것을 봤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을, 내가 몸에 두르고 있는 것을 봤다.

    그것은 소음을 내는 냉장고와 세탁기, 가스레인지 후드, 커다란 거울이 붙어 있는 선반이었다. 또 내 몸을 조이는 옷과 무겁고 갑갑한 액세서리였다. 풀 옵션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고, 화려해 보이고 싶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역세권에서 떨어진 빌라로 이사하면서부터 필요하지 않은 것, 그러나 필수품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검토해보았다. 전기요를 깐 침대보다 따뜻한 바닥에서 잠드는 게 더 좋고,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소음을 내는 전자 기기 대신 몸을 더 움직이고 공간을 여유롭게 사용하는 게 더 편안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손에서 놓을 수 없고 몇 분마다 확인하고 있는 휴대폰이 실은 만족스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휴대폰. 그것이야말로 내 삶의 초록색 코트였다. 네 벌이 아니라 4,000벌, 4만 벌의 코트였다. 항상 곁에 두고, 시도 때도 없이 화면을 확인하고 있었다.

    만일 어떤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면 실은 그 일이 그에게 불만족스러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리는 곧잘 반대로 생각한다. 자기가 자주 하는 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진짜 만족스러웠다면 다시 그것을 하지 않아도, 적어도 바로 또 하지 않아도 된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에, 그 효력이 떨어졌을 때 다시 그것을 찾게 된다. 진짜 엄청난 만족감을 느꼈다면 어쩌면 인생에 한 번으로도 충분했다고 느낄지 모른다.

    이제 슬슬 휴대폰과 거리 두는 팁을 소개할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휴대폰은 다른 전자 기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냉장고가 없거나 세탁기가 없다는 것은 당신의 삶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당신이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당신은 좀더 고요해지고 그 대신 그만큼 더 수고스러워질 뿐이다.

    하지만 당신이 휴대폰을 포기하거나 혹은 그것과 거리를 조절하려고 한다면 분명 외부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당신은 세상에 관심이 없거나 게으른 사람이라고 오해받게 될 것이고 당신이 속한 어떤 그룹에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때로는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정보를 놓칠 수도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준 장점을 누려라. 당신 주변의 공기가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흐르고 있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숨 쉬고 있다는 걸 발견해라.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평가에 전처럼 안달하지 않고 좀더 중심을 잘 잡게 되었다는 사실을, 내 삶을 내가 조절한다는 이 감각을 즐기면 된다!

    나는 휴대폰과 멀리하게 되면서 많은 것을 (기꺼이) 잃었다. 때로 내 일과 관련한 부분을 포기해야 했고 친구들과의 그룹에서 더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거나, 훨씬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몇 시간을 더 들여야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여전히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것은 내 친구들의 삶보다 더 낫거나 모자란 삶이 아니라 ‘다른 삶’이다. 나는 도시 한복판에 끼어든 작은 숲을 얻게 되었다.

    그 숲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도 당장 이걸 시도해볼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좋다. 그것도 내키지 않으면 한 달에 한 번부터 시작해도 된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외출할 때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가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주변의 풍경이 죄다 다시 보일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섬세하고 가슴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갖고 있는 인간인지 확인하라.

    그리고 그다음에는 휴대폰을 두고 나가는 횟수를 점차 늘린다.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꺼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처럼 도전 정신이 강하고 일단 지르고 보는 성격이라면 과감히 요금제를 바꾸어 인터넷 연결을 끊고 통화와 문자 서비스만 이용해도 좋다.

    ‘글 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마라.’ <유혹하는 글쓰기>의 스티븐 킹이 얇은 두께로 한 권에 걸쳐 글쓰기의 방법을 흥미롭게 알려줬다면, 또 의 로버트 맥키가 성경책 두께로 세세히 규칙을 고백했다면, 레이먼드 챈들러는 이 단 한 문장으로 그렇게 했다. 20년 가까이 소설을 쓰면서 나는 이보다 더 훌륭한 글쓰기의 지침을 배우지 못했다. 글쓰기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게 내가 집에서 사용하는 작업용 데스크톱에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은 이유다.

    ‘숨 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마라.’

    챈들러의 글쓰기 규칙과 비슷한, 최정화식 명상의 규칙이다. 지금 내게는 카톡 대신 휴식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코트를 네 벌이나 장롱에 간직하는 대신, 휴대폰과 거리를 두면서 되찾은 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깊은 숨을 쉬는 기쁨이었다.

    당신 삶의 초록색 코트는 무언가?

    무언가를 사고 싶어진다면, 슬슬 무얼 버려야 할 때가 온 건지도 모른다. 채워도 채워도 다시 또 채워야 한다고 느낀다면 이제 비워야 할 때가 온 것인지도.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글쓴이
      최정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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