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SLEEPLESS BEAUTY

2019.03.04

by VOGUE

    SLEEPLESS BEAUTY

    잠 못 드는 밤 에픽하이는 내리고.

    타블로가 입은 블랙 셔츠 재킷은 헤론 프레스톤(Heron Preston at matchesfashion.com), 라이닝 지퍼 터틀넥은 캘빈 클라인 205W39NYC(Calvin Klein 205W39NYC), 레드 트레이닝 팬츠와 스니커즈는 리복(Reebok), 검은색 니트 비니는 오베이(Obey).

    투컷이 입은 화이트 스웨트셔츠는 셔윈 윌리엄즈(Sherwin-Williams), 페인터스 팬츠는 셔윈 윌리엄즈×디키즈(Sherwin-Williams×Dickies). 미쓰라가 입은 갈색 코트는 프라다(Prada), 하늘색 빈티지 로브는 미쏘니(Missoni), 화이트 오픈칼라 셔츠는 이즈(Eeasee), 화이트 스트링 팬츠는 키트(Kiit).

    VOGUE 특정 소속사 없이 에픽하이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죠. 이전의 레이블 하이그라운드, 맵더소울처럼 새로운 이름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타블로 어떤 이름을 언급한 적 없을 거예요. 오는 10월이면 활동한 지 16년이니, 에픽하이 자체가 브랜드가 됐다고 생각해요. 다른 이름의 레이블을 굳이 만들어서 또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생성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져요. 그래도 외부 거래는 해야 하니까 법인명은 따로 만들었죠.

    VOGUE 법인명이 ‘아워즈’인데 에픽하이로 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요?

    타블로 에픽하이를 비즈니스에 갖다붙이기 싫었어요. 에픽하이 컴퍼니, ㈜에픽하이로 도장 찍는 문서에 올리고 싶지 않아요. 에픽하이란 네 글자가 가진 상징을 벗어나는 것 같아요. 명함에도 ‘Epik High’만 크게 박았어요.

    VOGUE 팀원 외에 소속 직원이 한 명이더군요.

    투컷 스타일리스트도 있는데 자유로운 영혼이라 거의 해외에 머물러요. 어차피 컨트롤도 안 되니 회사에 없어도 된다고 했죠(웃음). 일 있을 때만 함께 해요.

    VOGUE 에픽하이란 이름만으로 운영한다는 건, 다른 뮤지션을 영입하는 등 레이블 자체를 키우진 않겠다는 의미인가요?

    미쓰라 미래는 예측할 수 없음을 잘 아는 나이라서, 함부로 단정 짓지 않아요. 뭘 하겠다, 안 하겠다란 말조차 하지 않죠. 문을 닫지도 열지도 않고, 그저 이 순간에 충실하자고 얘기했어요. 지금 우리는 더 자주 음악을 들려주고 싶을 뿐이에요.

    VOGUE 데뷔 초부터 중반까진 1년에 두세 장씩 음반을 내는 등 다작했죠.

    타블로 솔로 앨범을 내며 음악을 다시 한 뒤로는 2~3년에 한 번씩 낸 거 같아요. 이번 앨범도 1년 반 만에 나와요. 앞으로 더 자주 앨범을 내고 공연도 많이 하고 싶어요. 에픽하이는 오래된 팬이 많아요. 띄엄띄엄 하는 공연에도 항상 와주시는데, 그분들께 사이사이 빈 시간을 채워드려야 할 것 같아요. 늘 미안해요. 그러려면 에픽하이에 집중해야죠. 만약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친구가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하면 도울 수 있겠지만요.

    VOGUE 3월 11일에 새 앨범을 공개하죠.

    타블로 지금 앨범명을 적어드릴께요. 말로 할 수 없거든요. ‘Sleepless in __________’. 언더 바가 열 개예요. 언더 바가 끊어지지 않고 음원 사이트에 올라가야 예쁠 텐데… 원래 ‘Sleepless in 서울’로 하려고 했는데, 하나에 얽매이기 싫었어요. 세계 곳곳에서 우리 음악을 듣기에 Sleepless in Berlin, Sleepless in Mexico, 이렇게 듣는 이가 채울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어요.

    미쓰라 앨범 작업도 서울, LA, 양양 등 여러 군데서 했어요. 서울이란 도시가 복잡하게 느껴질 때쯤 머리 식힐 겸 양양에 가서 음악을 했죠. 원래 서핑이나 캠핑하러 양양에 자주 가거든요.

    VOGUE 앞서 이런 얘기했죠. “불면은 세계 어디든, 현대인의 공통된 고민이다. 누군가를 진정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잠 못 드는 이유를 알면 된다.” 공감합니다. 처음에 불면이란 컨셉은 어떻게 도출했나요? 평소 불면에 시달려서 자연스럽게?

    타블로 에픽하이의 앨범은 수록곡이 각자의 얘기를 할지라도 아우르는 주제를 가져요. 이번에는 어떤 테마를 할까, 사랑을? 절망을? 고민 많았죠. 멤버 모두 앨범을 만드는 시기가 되면 불면증이 찾아와요. 작업을 빨리 끝낸 날일지라도 생각이 많아서 잠을 못 자죠. 우리 말고도 잠 못 드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 이유는 다양하죠. 꿈이 있고 열정이 넘쳐서일 수 있고, 사랑하는 것 혹은 두려운 것, 악몽 같은 일 때문일 수 있죠. 사람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면 숨 쉬는지 보잖아요. 사람이 어떤 이유로 살아가는지, 무엇 때문에 힘든지 보려면 잠 못 드는 이유를 보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앨범의 수록곡은 잠 못 드는 각기 다른 이유죠.

    VOGUE 에픽하이가 잠 못 드는 이유는 음악인가요?

    투컷 그렇게 멋지게 말하고 싶지만 절대 아닙니다.

    VOGUE 그럼 불면의 이유는 뭔가요?

    미쓰라 앨범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인터넷, TV, 넷플릭스 때문이죠. 눈이 아픈데도 계속 그것만 쳐다봐요. 일만 하는 나에 대한 보상 심리인가 봐요. 와이프나 친구와 보낼 시간을 뺏기면서까지 말이죠. 양날의 검 같아요.

    타블로 우리 단체 카톡방은 딱 반으로 나뉘어요. 앨범 얘기, <SKY캐슬> 얘기.

    VOGUE 에픽하이가 카톡으로 드라마 얘기한다니까 재미있네요.

    미쓰라 다들 보는 관점이 달라요. 저는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드라마의 카메라 촬영법을 보게 되더라고요.

    투컷이 입은 롤업 셔츠와 와이드 팬츠는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피어싱 모티브 체인 목걸이는 랜덤 아이덴티티즈(Random Identities). 타블로가 입은 비스포크 재킷은 에드워드 섹스턴(Edward Sexton), 나일론 후드 점퍼는 오프화이트(Off-White), 라이닝 아노락은 벌랩 아웃피터(Burlap Outfitter), 라이닝 집업 터틀넥은 캘빈 클라인 205W39NYC(Calvin Klein 205W39NYC), 화이트 스트링 팬츠는 키트(Kiit), 검은색 니트 비니는 오베이(Obey). 미쓰라가 입은 프렌치 풀오버는 모니탈리(Monitaly at San Francisco Market), 워크 팬츠는 엔지니어드 가먼츠(Engineered Garments at San Francisco Market), 스니커즈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타블로 개인적으로 공감이 많이 갔어요. 어린 시절 공부 압박에 시달려서인지 드라마가 너무 슬프더라고요. 남들은 그냥 넘기는 장면에도 눈물을 흘렸어요.

    투컷 저는 그저 스릴러, 흥미로운 추리물로 봤죠.

    VOGUE 투컷이 불면하는 이유는 뭔가요?

    투컷 저는 일과 사생활을 확실히 분리해요. 집에서 일 고민은 아예 접죠. 그러고 보니 잠들기 전 공상을 많이 하긴 해요. 주로 멋진 계획, 긍정적인 생각을 하죠.

    타블로 투컷은 그때 말고는 생각할 시간이 부족할 거예요. 평소에 진짜 바빠요.

    투컷 그렇긴 해요. 주말에는 애들과 놀아주고, 주중에는 계속 작업하니까 생각할 시간은 새벽뿐이더라고요.

    VOGUE 가정적인가 봐요.

    타블로 셋 중에서 투컷이 가장 아내에게 잘할 거예요. 가정적이라기보다 책임감이 굉장히 강해요. 때론 위태로워 보여요. 많은 것을 저글링하느라 무리하는 것 같고, 피곤해하고. 투컷의 그런 모습이 의외이기도 하고, 걱정도 돼요.

    VOGUE 타블로의 인스타그램에서 “새로운 앨범 작업에 낮밤이 바뀐 정도가 아니라 경계를 잃었어요”라는 멘션을 봤습니다.

    타블로 이번뿐 아니라 거의 그렇게 살았어요. 잘못됐죠. 어릴 때 ‘잠을 안 자고 무언가를 하는 것’을 미덕처럼 말하는 어른이 많았어요. 공부하다가 코피가 나면 영광이고, 차가운 물이 담긴 대야에 발을 담그고 잠을 쫓았죠. 참 비효율적이잖아요. 사람이 푹 자고 푹 쉬어야 뇌가 돌아가는데… 잠을 많이 자면 나태하다는 생각을 주입받으며 자라서 성인이 된 지금도 버릇이 남았어요.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너는 도대체 언제 자냐, 밤새 작업하더니 또 뭘 하고 있네” 이런 식이에요. 요즘에는 많이 자려고 하는데도 잘 안 돼요. 괴롭고 다리가 저려도 잠을 잘 수 없어요.

    VOGUE 원래 잠이 없는 체질이 아니라, 유년의 잘못된 습관이 이어지는 거네요.

    타블로 몸은 계속 외치고 있어요. 좀 자라고! 그런데 일종의 ‘정서’가 돼버린 것 같아요. 혜정이와 하루는 되게 잘 자요. 옆에서 소리가 나도 거의 깨지 않아요. 그런 ‘분’들이랑 살고 있으니까 저의 이런 면이 새삼 더 느껴지는 것 같아요.

    VOGUE 뮤지션이라 하면, 불면하며 작업하는 이미지가 멋진 것처럼 그려지기도 합니다. 불규칙하고 안일한 생활이 자유로운 것처럼 미화되기도 하고요.

    타블로 그렇죠. 밤새워서 작업해야 할 것 같고, 밤에는 뭔가 더 음악에 취할 수 있을 것 같고 작업이 잘 될 것 같은. 말도 안 돼요.

    VOGUE 타블로 씨도 소설을 썼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영하 작가만 해도 규칙적으로 글을 쓰죠. 일정한 기상 시간, 고정된 작업 스케줄, 꾸준한 운동을 병행해야 오래도록 활동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타블로 우리도 꾸준히 아침 10시에 집에 나와서 11시쯤 작업실에 모여요. 일찍 귀가하지 못해서 문제죠. 좀더, 좀더 하다 보면 밤이 훌쩍 넘어요.

    VOGUE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희열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타블로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저뿐 아니라 멤버들도, 우리랑 오랫동안 작업해온 사람들이 다 그래요. 에픽하이 하면서 이 정도로 지치는 앨범 작업이 있었나… 이상할 정도죠.

    VOGUE 힘들다는 게, 창작이 어려웠거나 체력이 부쳤거나, 어떤 상황이었나요?

    투컷 수월하게 풀린 게 없어요. 예를 들어서 기계 오류가 발생하고, 한 번에 직진할 수 있는 노래도 몇 바퀴를 돌아 결국 빠지고, 처음 만들었을 때랑 너무 다른 형태로 노래가 완성되고… 여러모로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요.

    미쓰라 정말 평범한 날이 없었어요. 어떻게 해결할지 늘 머리를 싸맸죠. 오늘 처리하면 내일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VOGUE 우리 왜 이럴까, 서로 얘기해봤어요?

    투컷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연초에 좋지 않은 일 있으면 액땜이라고. 잘되려고 그런가 봐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타블로 직원도 거의 없이 우리끼리 하는 게 오랜만이잖아요. 음악 외적인 것을 직접 하면서 음반을 만들려니까 여러 일이 발생하는 거 같아요. 수면 부족으로 머리가 혼란스럽기도 하고요. 그냥 에픽하이는 순탄치 않은 운명이란 걸 알아요. 제가 지분율이 좀 높죠. 투컷이 이런 말 한 적 있어요. 어떻게 형한테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냐고.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이랑 작업실만 오가는데… 그만큼 제가 황당한 일을 많이 겪는 편이에요. 다행히 그런 일에 좀 익숙하고 능숙해졌죠. 그럼에도 이번 앨범은 쉽지 않더라고요. 대부분 음반을 빨리 내고 싶은 이유가 빨리 들려주고 싶고, 빨리 성과를 내고 싶어서잖아요. 그런 면이 없진 않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손에서 벗어나야 이 앨범이 덜 고생할 것 같아요.

    미쓰라 그때 돼야 우리도 다른 생각을 좀 할 수 있겠죠.

    타블로 음악을 만들 때는 행복하지만 앨범이 나오고 알리기 위해 애쓰는 순간은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TV 활동을 안 한 지 3년 정도 됐어요.

    VOGUE 미쓰라 씨는 부인과 예능 프로그램 <공복자들>에 출연하지 않나요?

    미쓰라 앨범을 위한 홍보 활동을 하지 않은 지는 꽤 오래됐죠.

    타블로 방송사의 요구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테고,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게 뭐야, 실망할 테니까 하지 않아요. 노래를 만드는 것 말고, 앨범을 알리는 과정이 참 힘들고 안 맞아요. 변할 줄 알았는데 갈수록 더 심해지네요.

    VOGUE 제게 에픽하이는 양면을 가진 몇 안 되는 그룹이에요. 음악에선 날 서 있는데, 예능 출연 때문인지 그 외 활동은 친근한 이미지예요.

    타블로 다들 양면이 있잖아요. 그 와중에 예술적인 모습만 보이려는 사람이 있고, 내 모습이지만 인정하지 않고 감추려는 사람도 있고. 에픽하이는 연습생도, 기획사에서 만들어준 팀도 아니고 ‘가요계’ ‘연예계’라는 것을 이해 못하는 언더그라운드 출신이잖아요. 우린 처음부터 어떤 모습도 감추지 않고 다 드러냈어요. 그게 때론 진지하고, 때론 캐주얼했겠죠.

    투컷이 입은 베이지색 슬리브리스 메시 톱, 롤업 셔츠는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피어싱 모티브 체인 목걸이는 랜덤 아이덴티티즈(Random Identities). 타블로가 입은 비스포크 재킷은 에드워드 섹스턴(Edward Sexton), 나일론 후드 점퍼는 오프화이트(Off-White), 라이닝 아노락은 벌랩 아웃피터(Burlap Outfitter), 라이닝 집업 터틀넥은 캘빈 클라인 205W39NYC(Calvin Klein 205W39NYC). 미쓰라가 입은 프렌치 풀오버는 모니탈리(Monitaly at San Francisco Market).

    VOGUE 에픽하이의 공식 유튜브 채널의 ‘블로투쓰(Blotuth) TV’에서 “2009년 독립 레이블 맵더소울 이후, 10년 만에 독립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에 의미가 깊다”고 말했어요. ‘새 출발’ 하는 느낌인가요?

    타블로 정말 그래요. 사실 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해요. 모르는 것투성이니까요. 진짜 사소한 일부터 큰일까지 하나하나 배우면서 하는 상황이거든요. 내가 이렇게 모르는 일이 많구나 싶어요. 지금 우리 나이에는 ‘익숙하지 않음’이 필요해요. 자신에 대한 불안감과 의문이 있어야 자극을 받고 다잡을 수 있죠. 20대에서 30대가 되고, 한 살 한 살 넘어가면서 어떻게든 위험을 피하려 하잖아요. 우리도 똑같았어요. 그간 해온 방식으로 편하게 하고, 위험 부담을 줄여서 사랑하는 가족에게 행여나 피해가 가지 않게 하고. ‘의로운 게으름’이죠. 하지만 발전하려면 자신을 지속적으로 꼬집어야 해요. 다행히 에픽하이는 스스로를 밖으로 쫓았죠.

    VOGUE 말이 쉽지 용기가 필요하죠. 우스갯소리로 젊음도 한 밑천이라는데, 그게 떨어져가는 와중이니까요.

    타블로 저는 만으로 38세입니다. 나이를 쓰신다면 꼭 만 나이로 해주세요(웃음).

    투컷 이전의 시행착오가 떠올라서 두렵기도 했어요. 10년 전엔 20대라 우리끼리 해보지 뭐, 무모함이 있었어요. 지금은 이런 상황을 이겨 내기 위해 자기최면을 해야 하죠. 그때의 내가 절대 아니다, 이 생활을 하면서 성장했고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버티는 중이에요.

    VOGUE 자신감이 생긴 거죠?

    투컷 음… 자신감이라기보단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죠.

    VOGUE 10년 전 독립 레이블을 할 때는 주문 들어온 음반 택배도 본인들이 부쳤죠. 그때 작업부터 출고까지 가내 수공업을 겪어냈으니 이제 좀 수월하지 않아요? 미쓰라 팀의 규모도, 우리를 바라보는 팬덤의 크기도 달라졌어요. 특히 보여주는 방식, 들려주는 방식도 그때랑 완전히 변했어요.

    VOGUE 음악 산업이 많이 변했죠.

    미쓰라 변화에 적응해야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힘들어요.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의지가 불타올라요. 없는 데서 만들기를 좋아하지, 누리면 게을러진다고 생각해요. 이상하게도 고통을 이겨내며 즐거워하죠.

    타블로 어떤 팬이 “형,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힘들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수록 음악이 좋더라고요” 하더군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세요? 나 충분히 힘들어. 그러니까 더 힘들 필요는 없을 거 같아(웃음). 미쓰라 말이 맞아요. 우리는 안타깝게도 힘든 상황에서 원동력을 받고 표현하고 싶은 게 많아져요. 행복할수록 음악이 나오는 팀이면 너무 좋겠죠. 우리 재료는 그렇지 않으니… 솔직히 싫지만 어떡하겠어요.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의 범위가 그건데.

    VOGUE 간지러운 말처럼 들리겠지만 음악을 사랑하니까 업으로 받아들인 거죠.

    타블로 아니에요. 음악으로 조금씩 풀어내는 거지, 음악을 한다고 괜찮아지지 않아요. 전혀. 에픽하이에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는 수식어가 붙곤 하는데, 제3자가 말하긴 쉽지만 우리로선 음악을 만들었다고 전혀 치유되지 않아요.

    VOGUE 음악으로 자신을 치유하는 뮤지션이 많은데요.

    타블로 솔직히 옛날 인터뷰에선 그런 말 한 적 있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음악을 통해 치유받은 적은 있지만, 우리가 음악을 하는 건 순간을 잠깐잠깐 넘어가는 거죠. 그래서 16년째 계속 만들고 있지 않나 싶어요.

    VOGUE 넘어가도록 뒤에서 한번 밀어주는 거군요.

    타블로 잠깐 바다 보러 가는 거랑 비슷해요.

    VOGUE 힘들 때 가볼 바다가 있다는 게 어디예요.

    타블로 누구나 뭔가가 있어요. 그걸 바다로 삼으면 돼요. 말처럼 쉽지 않지만요.

    VOGUE 멤버 모두 틈날 때마다 휴대폰으로 영상을 엄청 찍던데요. 2019년 에픽하이의 큰 과제 중 하나가 유튜브처럼 보여요.

    투컷 그렇진 않아요. 사실 에픽하이는 10년 전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 몇 없는 그룹이에요. 당시 영상을 올릴 서버가 필요한데 너무 비싸서 유튜브를 찾아냈죠. 지금도 놀라운데, 당시에 우리끼리 앨범 쇼케이스를 촬영하고 토크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올리고, 다양한 걸 했더라고요.

    타블로 지금 유튜브의 여러 영상 형태, 패러디, 코미디, B급, ‘병맛’ 등이 그 시절 우리가 했던 것들이죠. 그때 운영한 채널이 아직도 있어요. 구독자가 많이 빠졌지만요. 10년이 지나 우리가 또 한 번 독립했으니까 더 자유롭고 재미있는 컨텐츠를 만들 예정입니다.

    VOGUE ‘블로투쓰 TV‘가 그중 하나네요.

    타블로 한때 제가 웃을 생각도 없고, 재미있는 걸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공식 유튜브 채널에 뮤직비디오를 올리는 정도로만 운영했죠. 이제는 즐겁게 소통하고 싶어요.

    VOGUE “한 주에 하나씩 영상을 올리자”고 하다가 “어떤 약속도 하지 말자”고 말하는 에피소드가 웃겼어요. 인터넷에서 어느 팬이 “에픽하이는 약속을 많이 하지만 좀 안 지키는 편이다”라면서 2013년에 약속한 데뷔 10주년 앨범이 없어서 아쉽다더군요. 팬으로서 애정이 담긴 글이었어요.

    미쓰라 저희가 약속을 안 지키진 않아요. 시간이나 날짜가 옮겨질 순 있어도.

    투컷 오래 그린 그림이 완성됐네요. 약속을 안 지켜도 욕을 안 먹는 거(웃음).

    VOGUE 3월에는 유럽(베를린, 헬싱키, 암스테르담, 브뤼셀, 파리, 바르샤바, 런던), 4월에는 미주 투어를 준비 중이죠. 타블로 미주 투어는 거짓말처럼 만우절에 시작해요. 비행기가 아닌 투어 버스를 타고 동부에서 서부, 밴쿠버, 토론토까지 17개 도시를 가요. 공연을 하나 끝내면 버스에서 자면서 다음 도시로 넘어가고 휴게소에서 밥 먹고, 그런 식으로 한 달 조금 넘게 다녀옵니다.

    VOGUE 뮤지션 전기 영화에서 1970~80년대 투어 버스를 타고 다니는 낭만적인 장면이 그려지네요. 비행기가 아니라 버스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타블로 4년 전쯤 비행기로 미주 투어를 다녔는데 너무 피곤했어요. 비행기 한번 타려면 온 스태프들이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미쓰라는 공항에서 잡혀가기도 하고. 이번 투어 버스는 캡슐처럼 침대도 마련되고, 부엌, 샤워실도 있어요. 단 화장실 은 쓰면 안 된대요. (웃음) 고생스럽지만 재밌을 거예요.

    VOGUE 앨범을 내는 3월 11일, 바로 다음 날 출국이네요. 앨범에 대한 비평이나 반응을 피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스케줄을 잡았나요?

    타블로 세상과 떨어져서 디톡스할 시간이 필요해요. 유럽, 미주 투어 후엔 아시아 투어를 가고, 마지막 대미는 여름 콘서트가 될 거예요.

    VOGUE 상반기 계획이 꽉 차 있군요. 가족과의 시간이 줄어서 미안하겠어요.

    미쓰라 이해해야 한다고 ‘자기’에게 이해시키고 있죠.

    타블로 당연히 가족이 힘들겠죠. 나가 있어도 마음이 마냥 편하진 않아요. 옛날에 세일러들이 배를 타고 떠나는 기분이 이랬지 싶어요. 그래도 우리 일이고 원하던 바니까 열심히 공연해야죠.

    VOGUE 2019년에 많은 걸 보여드리겠다고 유튜브에서 얘기했어요.

    타블로 믿는 사람 없을 거예요(웃음). 무엇보다 이 앨범말고 다른 게 필요한가요? 굉장히 많은 것을 담은 앨범이에요. 잠이 오지 않을 때, 그래서 괴로울 때 음반의 흐름을 따라 들으면 좋을 거 같아요. 그 이야기들에 점점 공감하다가 마지막 트랙으로 갈수록 편히 잠들 수 있도록 구성했거든요. 잠 못 드는 밤에 일종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앨범이죠.

    타블로가 입은 트렌치 코트는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카디건은 미쏘니(Missoni), 청록색 트레이닝 팬츠와 스니커즈는 리복(Reebok), 피어싱 모티브 체인 목걸이는 랜덤 아이덴티티즈(Random Identities), 검은색 니트 비니는 오베이(Obey). (오른쪽)라이더 재킷, 슬리브리스 톱, 블랙 팬츠, 첼시 부츠는 지방시(Givenchy).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김참
      스타일리스트
      오충환
      헤어 & 메이크업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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