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달콤 씁쓸한 엠마

2019.03.11

by VOGUE

    달콤 씁쓸한 엠마

    엠마 스톤은〈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생애 가장 대담한 역할을 맡았다. 일상에서는 서른을 맞아 조금 불안해했다. 그런 문자를 계속 보내왔다.

    트렌치 코트, 블루종, 팬츠, 벨트는 지방시(Givenchy).

    엠마 스톤, 지난 10년간 스크린 안팎에서 20대 여성이 누릴 법한 가장 야망 넘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서른에 들어섰다. “일주일 정도 우울했어요.” 어느 날 그녀가 문자를 보내왔다. (그녀는 장문의 문자를 종종 보낸다.) “어른이 되는 데 있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대부분이 달콤 씁쓸하다’는 것을 깨닫는 거죠.”

    이 문자를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스톤이 그동안 문자로 보낸 초조하게 웃는 이모티콘과 많은 키스가 떠올랐다. <롤링 스톤>지가 언젠가 “말도 안 되게 상냥하다”고 평했던 여성에게 어울릴 수 있으나 조금은 과해 보인다. 두 번째로, 18세부터 배우로 활동하고, 오스카상을 탔으며, 2017년 세계 최고 개런티를 받는 여배우로 등극한 사람이 30대에 들어서도 자신을 완전한 성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니 굉장히 별났다. 영화 <라라랜드>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 <헬프> 덕분에 스톤은 출연 자체로 뜨거운 이슈를 낳는 캐스팅 1순위 배우가 되었다. 그런데도 늦은 밤 그녀가 문자를 보내왔다. “저는 아직도 제 목소리를 찾고 있어요.”

    사실 그녀는 스크린에서 엄청난 친근감을 보여주지만 종종 알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커리어를 쌓을수록 신비감을 더한다. 이번 시상식 시즌에, 그녀는 어느 때보다 가장 성인다운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그리스 출신인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시대극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가 그것이다. 앤 여왕의 궁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올리비아 콜맨, 레이첼 와이즈, 엠마 스톤이 주연을 맡았으며, 상당히 기괴하고 성적으로 모호하며 유쾌하면서도 끔찍하다. 스콜세지 감독의 작품 뺨칠 정도로 충격적이다. 그래서 영화 속 엠마 스톤은 지금까지 봐온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보그> 인터뷰를 위해 우리는 런던 북부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녀는 햄프스테드에 있는 근사한 펍 ‘홀리 부시(Holly Bush)’를 만남의 장소로 골랐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영화 장면을 갖다놓은 듯 햇살이 부서지고 적갈색 빛이 감도는(스톤의 머리 색과 잘 어울렸다!) 날이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장난스러운 얼굴로 도착했다. 크림색 캐시미어 롱 코트로 몸을 감싼 그녀가 길을 누비자 코트 자락이 반짝이는 자갈 위에서 휙휙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유명세 때문에 어디든 쓰고 다니는 회색 펠트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 영화 속 부유한 주인공의 분위기가 어쩔 수 없이 풍겼다.

    90초 뒤. 그녀가 모자를 벗으며 펍 안쪽 구석진 곳의 룸에서 내 손을 움켜잡았다. “너무 떨려요.” 그녀는 장난스레 허둥거렸지만, 진심 어린 고충이 군데군데 묻어났다. 그녀의 아름다운 초록색 눈동자가 테이블 위의 녹음기를 향했다. 그녀는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는다. 거의 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번 인터뷰를 수락하기 전, 친구 제니퍼 로렌스를 인터뷰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물론, 우리는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니까… 우아!” 그녀가 말했다. “우선 얘기를 다 수집해놓고, 그다음에 감성에 맞게, 물리적으로 작성하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해요?” 잠시 후 그녀가 테이블을 쿵 치면서 말했다. “제가 영화배우라서,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이래 봬도, 저 여배우예요! 이런저런 다양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요.” 영화 <조강지처 클럽> 속 골디 혼의 대사를 완벽하게 읊었다. 그 장면은 정말 재미있었다! 하지만 농담에 뼈가 있다. 매 순간, 그녀는 자신이 말한 내용 또는 하지 않은 이야기에 신경을 썼다. 그러면서 긴장한 탓에 ‘쉬익’ 소리를 냈다. (그녀는 여전히 가끔 공황발작을 일으킨다. 어린 시절 겪은 불안장애의 잔해다.)

    그 강렬한 감정이 스톤으로 하여금 스크린에서 눈부시게 빛나도록 만들기도 한다. 애리조나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그녀는 15세부터 할리우드로 가고 싶다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파워포인트로 깜짝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기도 했다. 10대 시절 천부적인 코미디 전문 배우에서 지금의 엄청난 배우로 발전하는 동안 그녀는 마약중독자가 약을 찾듯 스타덤을 좇아왔고, 주로 배우들과 연애를 했다. (20대에 꽤 오랫동안 앤드류 가필드를 사귀었다.) 근사한 영화배우가 된 다음에도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어제 새벽 4시에 잤어요.” 바에서 음료를 들고 돌아오니 그녀가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털어놓았다. “굉장히 늦게까지 콜리(올리비아 콜맨)랑 노래방에서 놀았죠. ‘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을 불렀어요.” 그러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노래방용으로는 굉장히 지루한 노래죠. 참고로, 오늘 인터뷰만 없었어도 나탈리 임브룰리아의 ‘Torn’을 불렀을 거예요… 세상에, 제 신발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루이 비통 거예요. 근사하죠.” 그녀가 무표정하게 말하더니, 그 브랜드의 홍보 모델을 맡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혹시 여기 감자튀김 있을까요? 영국식 튀김 같은 거? 빈속에 홍차를 마시면 가끔 속이 울렁거려서…”

    그녀와 수다 삼매경에 마냥 빠져 있는 것도 즐거울 테지만 우리는 최근 개봉한 멋진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를 얘기해야 했다. 그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주인공 모두 굉장히 매혹적이다. 특히 스톤은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앙큼함(뿐만 아니라 영국식 영어)으로 작품에 크게 기여했다. “그 영화는 마치 <이브의 모든 것> 같아요.” 그녀가 영화 줄거리의 실제 사건에 대해 들려주었다. 영화는 사라 처칠(레이첼 와이즈) 부인이 1704년 햄프턴 궁전으로 가난한 사촌 아비게일 마샴(엠마 스톤)을 맞아들이는 과정을 주로 다룬다. 둘은 여왕의 절친이 되기 위해 싸움을 벌인다. 오리 경주, 파인애플 샘플링, 가발, 군사훈련, 수 세기에 걸쳐 회자된 강간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영화에 담긴다.

    “정말 엿같아요!” 그녀가 그 영화 대본을 얘기하며 신나게 외쳤다. 그녀는 4년여 전 그 영화에 출연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당시 한창 <라라랜드>를 준비 중이었죠.” 그녀가 과거를 회상했다. “요르고스 감독(<더 랍스터>, <킬링 디어> 등으로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이 이렇게 말했죠. ‘배역 때문에 미국인을 만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래서 간곡하게 부탁드렸죠. 어떻게 여주인공 세 명이 한 이야기에 등장할 수 있을까요? 뭔가 비정상적이면서도 재미있고 어두운 영화죠.” 무자비할 정도로 단순 명료한 앤 여왕을 연기한 콜맨은 공동 주연을 맡은 배우들이 지닌 매력을 재빨리 파악했다. “저는 엠마와 평생 친구로 지내고 싶어요.”

    두 사람은 영화에서 놀랄 만한 장면을 함께 찍었다. 그중 하나가 아비게일이 여왕의 다리 통풍을 치료하려고 다리에 생고깃덩어리를 올려놓는 장면이다. “진짜 생고깃덩어리였어요. 저희 뒤쪽에 불을 피워놓았는데 고깃덩어리가 점차 실온 상태로 바뀌어갔죠.” 스톤이 말했다. 색정적인 분위기로 바뀌어갈 때는 유머가 도움이 되었다. “그런 장면을 찍을 때마다 굉장히 긴장됐죠.” 콜맨은 이렇게 말하며, 많은 기록이 남아 있는 여왕의 양성애에 대해 스톤과 함께 철저하게 조사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 나름의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저는 다리 사이에 축축한 스펀지를 놓아두었죠. 엠마가 그것을 보면 재미있어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녀 얼굴이 순식간에 공포에 질리고 말았죠.”

    실크 셔츠는 조셉(Joseph), 리넨 팬츠는 알라이아(Alaïa), 신발은 지미 추(Jimmy Choo).

    “이런, 콜리!” 스톤이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런 복잡한 영화에 그녀의 미국식 재기 발랄이 더해지는 것을 보니 정말 흥분된다고 말해주었다. 아비게일이 물불 가리지 않고 부엌데기에서 황제의 여자로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니, 스톤이 셰익스피어 작품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셰익스피어 의 <리어왕>에 등장하는 리건 또는 <뜻대로 하세요>의 로잘린드가 떠올랐다. 그리고 단테가 사랑한 여인 베아트리체도 분명 잘 어울릴 거다.) “제가 셰익스피어 작품에도 잘 어울릴 것 같으세요?” 그녀가 기대감에 들떠 물었다. 그녀는디즈니 실사 악당 영화인 <크루엘라 드 빌(Cruella de Vil)> 촬영에 들어가기 전, 조만간 <좀비랜드 2>에서 과거 코미디 영화를 함께 찍었던 친구들과 상봉할 예정이다.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온갖 극적인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성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우울해요.”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서적으로, 아동기가 길게 늘어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죠.”

    그녀는 이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다. 이는 20대의 끄트머리와 상충할 수 있는 독특한, 중간적인 감정이다. “나중에 긴 시간 치료를 받고…” 그녀가 웃었다. 스톤은 일곱 살 때 친구네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던 중 처음 공황발작을 일으켰다. 그래서 자기 치유를 아주 일찍부터 시작했다. 연기, 특히 즉흥연기가 그때 이후 공황장애를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외에 추천할 만한 치료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 “매니큐어요.” 그녀가 슬그머니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농담이에요. 저는 명상을 해요.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요. 그리고 치료도 받는답니다.”

    실제로, 그녀는 배우로서 커리어의 정점에 도달했을 때, 1년 정도 재충전 시간을 가졌다. “재작년 12월부터 쉬었죠.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보니, 14개월이나 쉬었더군요.” 무엇을 하면서 지냈는지 물었다. “제기랄, 저도 모르겠어요.”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외국어나 요리 같은 것을 배우지는 않았어요. 그냥… 빈둥거렸어요.” 그러면서 피식 웃었다. 그녀는 넷플릭스 시리즈 <매니악>(호평을 받고 있다)을 촬영했고, 로라 해리어, 저스틴 서룩스와 함께 요트를 타고 프랑스 동남부 앙티브로 떠났다. 이 일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을 보면 스웨덴 출신 미국 배우였던 그레타 가르보와 닮은 듯하다.

    그녀의 시간은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으로 나뉘어 있다. 그녀는 때때로 큰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재미난 패션으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제니퍼 로렌스와 마사 맥아이작 등 오디션을 보던 10대 시절부터 친한 영화계 친구들과 몰려다닌다. 또한 루이 비통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와도 친하다. 시상식 시즌 의상은 준비했나요? “미리 아이디어를 모아야 해요.” 그녀가 가운, 정장, 칵테일 드레스까지 의상 20벌 이상을 준비해놓았다고 말했다. 페트라 플래너리가 이끄는 스타일링 팀이 수개월간 작업해왔다고 했다.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죠.” 그래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경우에 대비해, 벌써 시상식 의상을 준비해놓았다는 말인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재미있죠.”

    싱글인가요? 내가 물었다. “저는 단지… 그러니까,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미안해요.” 그녀는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하지만 항상 그녀는 그런 식으로 응했다. 몇 년 동안 앤드류 가필드와 사귀었으면서도 어떤 확인도 해주지 않았다. 스톤의 실제 성격은 그다지 스타에 적합하지 않다. 긴장을 잘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통제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최근 열린 한 파티에서 술에 취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포옹을 요구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이것 보세요. 저는 뭐죠?”

    마찬가지로, 그녀는 중요한 현안에 관해서도 굉장히 긴장한다. 시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행동하는 것이 유명인의 임무로 여겨지는 시대지만, 스톤은 그런 식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그녀는 두 번이나 같이 작업한 우디 앨런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루이스 C.K.와 함께 영화 작업을 하던 시절을 묻자, 굉장히 겁먹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 역시 자신의 선택과 세상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또한 그것을 바로잡는 것에도 관심이 있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시대에, 그녀는 아직도 자기 목소리를 찾지 못했다. “저는 사람들이 뭔가 중요한 질문을 해주는 게 정말 감사해요. 심지어 제가 적절한 답을 생각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말이죠.” 그녀가 나중에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그렇지만 언젠가 적절한 말이 생각날 날이 오겠죠. OK.” 이전에 그녀가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저는 굉장히 민감하고 예민하죠.” 그녀가 <라라랜드>에서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이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스톤에게 이 질문은 꼭 하고 싶었다. 어른으로서의 삶과 관련해 어떤 걸 배웠나요?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어요. 자신이 왜 호감 가는 사람인지 납득시키려고 애쓰는 것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해요. 제 ‘매력’ 혹은 이런저런 대외적 이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굉장히 흥미로워요. 그로 인해 제가 피해를 입기도 하고, 어떤 것은 원래 제 흠이기도 하죠.” 그녀가 잠시 침묵하더니 그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없는 것을 얻어보겠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는 것이 제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이죠.” 다른 교훈도 얻었나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예요.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불과하죠.”

    술집 문간에서 훈훈하게 작별의 허그를 하고 손을 흔들며 헤어지고 나서 몇 주 뒤,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스톤의 서른 번째 생일(커다란 달 모양의 맞춤 케이크와 피자가 있던 날)이 지난 뒤였다. “20대의 마지막에 작별을 고하니, 조금 슬프면서도 굉장히 흥분되고 희망적이네요.” 휴대폰 화면에 작은 마침표 세 개가 보였다. 그녀가 조용히 타이핑을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같이 지켜봅시다.”

      포토그래퍼
      CRAIG McDEAN
      글쓴이
      GILES HATTERS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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