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샤를로트와 엘로이즈

2019.03.14

by VOGUE

    샤를로트와 엘로이즈

    내면을 표현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엘로이즈 레티시에. 나이, 성장 배경 모두 다른 두 아티스트가 예술을 둘러싼 두려움과 불안, 수줍음에 대해 나눈 대화.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가 디자인한 생로랑(Saint Laurent) 가죽 재킷에 부츠를 신은 샤를로트 갱스부르.

    파리 남부 14구의 포르트 도를레앙(Porte d’Orléans) 근처에 위치한 대형 포토 스튜디오. 샤를로트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와 엘로이즈 레티시에(Héloïse Letissier)가 소수의 사람들만 동반한 채 도착했다. 샤를로트는 일곱 살 난 딸 조(Joe)를 데려왔다. 조는 인터뷰하는 내내 책을 보면서 놀았다.

    샤를로트와 엘로이즈는 프랑스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명한 대스타다. 샤를로트는 부모 제인 버킨(Jane Birkin)과 세르주 갱스부르(Serge Gainsbourg) 덕분에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 문화계의 유명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음악과 영화를 통해, 특히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 감독이 연출한 영화에서 과감한 연기를 선보이면서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 샤를로트는 2017년에 발매한 앨범 에서 처음으로 모든 곡의 가사를 프랑스어와 영어로 썼다. 과거에는 이러한 작업을 하지 않았는데 아버지와 끊임없이 비교당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댄서인 엘로이즈 레티시에는 현재 프랑스의 대중 스타다. 그녀는 4년 전 크리스틴 앤 더 퀸스(Christine and the Queens)라는 가명으로 앨범을 발표해 프랑스 음악 차트를 점령했다. <타임>은 “차세대 리더”라는 제목으로 그녀의 사진을 커버로 장식했다. 그녀는 새 앨범에서 짧은 머리 스타일을 한 자신을 ‘크리스(Chris)’라고 소개하며, 데뷔 때부터 강조해온 남성과 여성의 상반된 공존을 더욱 분명하게 강조했다. 그녀는 자신을 팬섹슈얼(Pansexual, 범성애자)로 규정한다.

    샤를로트와 엘로이즈의 만남은 오늘이 처음은 아니다. 두 사람은 몇 년 전 뉴욕에서 만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당시에 샤를로트가 신인인 엘로이즈에게 예술적인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이미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다. 자의식이 매우 강한 두 여자가 재회했지만 이들은 일기, 수줍음, 두려움, 불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Charlotte Gainsbourg 우리가 처음 프랑스 라디오 방송에서 만난 일이 생각나네요. 당시 당신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당신이 하는 행동은 제게 매우 새로웠어요.
    Héloïse Letissier 그게 벌써 4년 전이군요. 제가 첫 번째 앨범을 막 발매했을 때였어요.

    Charlotte Gainsbourg 그 후 뉴욕에서 다시 만났죠.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어요. 그 당시 저는 첫 앨범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미 라이브 공연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무대 위에서 서툰 편이어서 당신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했어요.
    Héloïse Letissier 그때 점심 약속을 하고 춤에 대한 이야기도 했죠.

    Charlotte Gainsbourg 무대에서 춤을 추면서 새로운 공연을 선보이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해낸 적이 없어요.
    Héloïse Letissier 최근 당신이 라이브 쇼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았는데, 춤을 추지 않더라도 무대에서 당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정말 흥미로웠어요. 이를테면 반주가 흐르는 동안 마이크를 떠나 그냥 무대로 향할 때가 있었어요. 정말 멋지더군요. 당신의 움직임은 매우 단순하지만 우아함이 느껴져요. 이렇게 당신의 존재감이 부각되니, 누구나 분명히 알아볼 수 있어요. 당신이 춤을 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청중에게 다가가기만 해도 사람들이 미친 듯이 반응할 거예요.

    Charlotte Gainsbourg 그렇다면 당신은 공연을 위해서 움직임 하나하나를 연습하나요?
    Héloïse Letissier 그렇지 않아요. 정해진 동작은 댄서들과 연습하지만 혼자서 노래를 부를 때는 거의 연습하지 않아요. 연주를 하며 춤동작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댄서로 혼자 공연을 하는 것은 별로예요.

    Charlotte Gainsbourg 혹시 공연 중에 당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를 때가 있나요?
    Héloïse Letissier 그런 적은 없어요.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무대 밖의 삶은 의심으로 가득 찬 것 같은데, 무대 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심지어 별 감흥이 없으면 그냥 그 자리에 서 있기도 해요. 무대에서는 매 순간 제대로 느끼지만, 실제 삶에서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무대가 필요한 것 같아요. 무대에서는 모든 것이 저를 위해 준비되어 있잖아요. 최근 콘서트를 한 적이 있나요?

    Charlotte Gainsbourg 네, 요즘은 무대에 서는 게 너무 좋아요. 어느 순간부터 제가 무대에서 완벽한지조차도 상관하지 않아요. 이런 게 바로 제가 정말 원하던 바였어요.
    Héloïse Letissier 그럼 그전에는 무대에서 완벽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했나요?
    Charlotte Gainsbourg 예전에는 정말 경직되어 있었어요. 음이 잘못되기만 하면 무대에서 주저했어요. 전 대단한 가수도 댄서도 아니지만, 최소한 제대로 된 음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이제는 다 괜찮아졌어요.
    Héloïse Letissier 참 다행이네요. 그런데 상당히 오랫동안 음악을 하고 있지 않나요?

    Charlotte Gainsbourg 열세 살 때 ‘Lemon Incest’를 녹음했는데, 그때는 라이브 공연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요. 이 노래를 발표했을 때 기숙사에 있었거든요. 아버지가 저를 위해 앨범 전 곡을 써주셨는데, 그때 전 고작 열다섯 살이었어요. 그 당시 TV에 출연하거나 앨범 홍보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버지는 제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어요. 다 괜찮다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마흔이 되어서야 공연을 하셨어요.
    Héloïse Letissier 요즘은 모든 곡을 당신이 직접 쓰고 있잖아요. 직접 만든 곡을 노래하면 기분이 어때요?

    Charlotte Gainsbourg 완전히 다른 기분이 들어요. 특별히 그 곡을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도 없고요. 그전에는 늘 아버지의 표현이나 지난 앨범 작사를 담당한 벡(Beck)의 표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사의 표현을 언제나 제대로 정리해두어야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무언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아요. 새로운 여유로움이 곡을 쓰면서도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크게 상관없어요. 저는 프랑스어로 곡을 쓰고 싶었어요. 누군가 아버지와 저를 비교하더라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예전에는 그렇지 못해서 곡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저는 새 앨범에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당신은 처음부터 직접 곡을 썼나요?
    Héloïse Letissier 네, 그런데 제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런저런 실수를 하는 건 아닌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냥 아주 자유롭게 했거든요. 제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수도 있고, 매일 밤 공연할 때면 그 이야기가 정말 제 것이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작업이 제게 힘을 주었고, 저를 자유롭게 해주었어요.

    Charlotte Gainsbourg 작곡과 작사 중 어떤 것을 먼저 하나요?
    Héloïse Letissier 일반적으로 작곡을 먼저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10대였을 때는 늘 글을 쓰곤 했어요. 당시에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근사하지 않나요? 저는 언제나 일기나 시를 쓰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만큼 가사는 이미 제 삶의 중심에 있었다고 봐요. 음악은 글쓰기의 형태만 바꾸었다고 생각해요. 보통 곡을 먼저 만들고, 가사는 나중에 완성해요. 당신은 어떤가요?
    Charlotte Gainsbourg 아주 오랫동안 작사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저도 예전에 일기를 쓰면서 제 곡에 사용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 어려운 과정이더군요. 먼저 작곡을 하는 게 더 간단했어요. 작곡을 하면서 멜로디를 만들기 시작하다가, 거기에 맞는 내용을 넣는 거예요.
    Héloïse Letissier 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런데 당신이 저와 다른 점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한다는 거예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러면 제 작업의 성격이 크게 달라질 거예요. 제가 지금 작업하는 앨범에는 매우 개인적인 내용이 많아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당신은 여러 사람과 작업을 잘하고 있고, 매우 멋지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당신의 앨범은 당신의 작품이 되니까요. 당신처럼 저도 다른 사람들과 멋지게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어요.

    Charlotte Gainsbourg 저는 모든 것을 혼자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냥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봐요. 아마도 제 자신과 대화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자신과의 대화는 지루하게 느껴져요. 제 자신을 누군가에게 열어야 이야기가 흥미로워지거든요. 어느 순간 일기 쓰기도 그만뒀어요.
    Héloïse Letissier 무슨 이유라도?
    Charlotte Gainsbourg 좀 특별한 이유가 있기는 한데… 여하튼 요즘은 메모를 하며 지내요. 일기와는 조금 다르긴 해요. 예전에는 매일매일 무언가를 적었어요. 당신은 어때요?
    Héloïse Letissier 저는 하루 중 글을 쓰는 여유가 없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그러면 다음 날 두 배로 기록해야 한다고 느껴요. 아주 오래전부터 일기를 쓰고 있는데 제게 숨 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에요. 일기는 제게 밀려드는 모든 정보를 가공하는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Charlotte Gainsbourg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매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돌이켜보면 그 사람을 위해 일기를 쓴 것 같아요. 그런데 일기를 쓸 때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그 일기를 매주 그 사람에게 보여주기도 했어요.
    Héloïse Letissier 솔직하지 못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Charlotte Gainsbourg 현실을 왜곡했다는 의미예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한 5년간 그렇게 시간을 보냈고 그 후로 비로소 저 자신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일기 속 제 말투가 완전히 우울하게 변하더군요.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일기 내용이 노래 가사가 되었는데, 수년간 그랬던 거 같아요.
    Héloïse Letissier 그런 일로 사람이 정화되고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고통은 스스로 감내해야만 할까요?
    Charlotte Gainsbourg 저는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안에서 위안을 찾았어요. 하지만 그것이 아픔을 극복해내고 자신으로부터 무언가를 몰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끔씩 그만큼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었는데, 그러면 분노를 진정시킬 수도 있었어요. 나중에 제가 쓴 글을 읽어보았는데, 정말 지겨웠어요! 항상 같은 문장만 사용했더군요. 마치 노래 가사처럼 말이에요. 일기 쓸 때 당신은 다른 스타일로 쓰나요?
    Héloïse Letissier 결국 저만 제 일기를 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끔은 매우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일기를 쓰기도 해요. 때로는 글을 쓰면서 무언가를 분명하게 인식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제 자신을 위해 확실하게 생각을 다듬어 표현하기 때문이에요. 기억나는 게 있다면, 예전에는 글을 쓰면서 제가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때가 있었어요. 이렇게 깨닫는 것은 잔인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가끔 그 사람에 대해 일기를 쓰기도 해요. 그러면 일기가 편지처럼 써지기도 해요. 당신처럼 저도 현실을 변형하거나 미화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가사를 쓸 때에는 매우 직설적이고 솔직한 편이에요. 매일 밤 무대에서 부르기가 어려운 노래가 몇 곡 있는데, 그 이유는 그 노래가 저의 약한 면을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마치 상처를 매번 손가락으로 깊이 건드리는 것과 같아요. 그래도 무대는 저에게 안전한 곳이라 생각해요. 저를 뒷받침해주는 곳. 무대에서는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어요. 인생은 이와는 다르죠. 사회적인 제약이나 불확실한 것이 존재하잖아요. 무대와 인생은 너무나 다른 세계인 것 같아요. 우선은 예술 활동에 제 에너지를 다 쓰고 싶어요. 그렇게 해야 제 삶을 위한 에너지도 생기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배우로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Charlotte Gainsbourg 배우로 일하면서 수줍은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제게 모순은 아니었어요.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어서 알을 깨고 나오려면 무대에 서야만 했어요. 라스 폰 트리에를 만나기 전까지는 큰 배역을 맡아보지 못했어요. 그는 제가 배우로서 높은 경지에 오르도록 이끌어주었는데, 그전까지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어요. 갑자기 제대로 된 배역을 연기할 수 있어서 정말 흥분되었어요. 이러한 역할 속에서는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배우로서 이러한 상황에 노출되는 것은 자신만의 곡을 가지고 무대에 서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비교하기 어려워요. 무대에 서면 청중이 있고, 당신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 없어요. 심지어 이런 게 즐거움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어요. 이와 달리 연기할 때 카메라 앞에 서면, 아무도 당신을 쳐다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어요.
    Héloïse Letissier 아까 얘기한 ‘Lemon Incest’는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에요. 이 곡은 당신의 아버지가 1984년에 발표한 앨범에 수록되어 있죠. 제 신규 앨범에 영감을 준 곡이기도 해요. 저는 미국식 뉴욕 사운드에 시를 합친 게 마음에 들어요. 특히 가사가 좋은데, 소설가 장 주네(Jean Genet)의 작품을 떠올리게 해요. 매우 감각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면서 때로는 매우 강한 느낌이 있는데 그만큼 상처가 느껴져요. 그 당시에 이미 당신의 아버지는 음악적인 하이브리드를 창조해냈어요. 저 스스로도 그러한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좋아해요. 제 신규 앨범의 일부 곡은 지 펑크(G-Funk)나 지미 잼 앤 테리 루이스(Jimmy Jam and Terry Lewis)로부터 영감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이것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어떻게 이런 곡에 프랑스 리듬을 넣어 팝 음악처럼 만들지 고민을 했어요. 명곡에 프랑스 요소를 가미하는 작업은 늘 흥미로운 것 같아요. 이렇게 하면 저절로 새로운 것이 연출되거든요.

    Charlotte Gainsbourg 기본적으로 무엇이 프랑스 팝을 만드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오래된 호러 영화로부터 새 앨범에 대한 첫 영감을 받았어요. 가령 <죠스(Jaws)> <캐리(Carrie)> <샤이닝(The Shining)>과 같은 영화예요. 아버지가 이런 영화를 좋아하셔서 저도 이 영화 음악을 일찍부터 알게 되었어요. 이런 영화의 분위기는 매우 강렬해요. 앨범 제작자인 세바스티앙(Sebastian)에게 이 영화에 대해 얘기했더니, 그는 70년대 프랑스 영화에 더 주목했어요. 그런데 아버지의 존재가 늘 모든 일에 따라다니는 건 아니에요. 의도적으로 아버지가 끼친 영향을 제 음악에 가져오려고 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아버지를 피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아버지는 늘 그 자리에 계시거든요.
    Héloïse Letissier 당신은 신곡 ‘Lying with You’의 뮤직비디오를 아버지 집에서 찍지 않았나요?
    Charlotte Gainsbourg 네, 맞아요. 이 앨범을 통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어요. 프랑스어로 곡을 쓰기도 했어요. 아버지의 집이 이 앨범에 부분적으로 영감을 주었어요. 아버지는 거기서 태어나셨고 돌아가셨어요. 제가 어린 소녀였을 때, 그 당시 가지고 있던 환상을 표현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딸인 조와 소규모 제작 팀과 함께 그 집에서 촬영했어요. 그런데 쉬운 작업은 아니었어요. 마치 제집처럼 행동했는데, 모든 물건이 제게 매우 소중했어요. 이 점을 모든 스태프들이 의식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으려고 정말 조심했어요.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모든 것을 그대로 두려고 했어요. 다른 형제들이 가구나 물건 몇 가지를 원해서 일부가 사라지긴 했지만요. 하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원래 상태로 놓여 있어요. 저는 냉장고조차 손대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포토그래퍼
      Jean-Baptiste Mondino /
      글쓴이
      MICHAEL TSCHERNEK
      스타일리스트
      Maximilian Aufschnaiter
      헤어
      Chiao Chenet(@Atomo)
      메이크업
      Adrien Pinault(@Management Art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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