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재

Living

우원재

2019-03-14T20:35:22+00:00 2019.03.13|

흔한 랩 네임 대신 ‘우원재’라는 이름으로 한국 힙합 ‘씬’의 중심에 뛰어든 스물네 살. 모든 매체로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우원재는 지금껏 볼 수 없던 하나의 장르다.

1996년은 어떤 해였나?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를 선언하고, H.O.T.가 데뷔한 그해, TV에서는 ‘잘 터지는 휴대폰’이라는 휴대폰 광고가 등장했고, 인터넷 시대의 기원이 된 PC 통신 하이텔의 가입자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군사정권의 상징이었던 두 전직 대통령에겐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고, 복제양 돌리 탄생과 함께 생명공학 새 시대가 열렸던,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미래적인 과거.

1996년은 우원재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새천년’의 요란한 카운트다운 속에 언어를 배운 래퍼들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노래한다. 서바이벌쇼 우승 후보에 불과했던 우원재가 <쇼미더머니> 시리즈의 어느 역대 우승자보다 화제가 되었던 건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가 로꼬 이후 5년 만에 나온 일반인 결승 진출자라는 사실보다 우원재가 뱉어내는 염세적이면서도 일상적인 문장과 의미를 증폭시키는 어둡고 세련된 플로우에 열광했다. 욕설이나 야유가 아닌 평범한 낱말로 완성시킨 분노와 슬픔 같은 것. 그는 한국어로 진짜 랩을 할 줄 아는 래퍼다.

우원재에게 1년 반의 시간은 변화의 연속이었다. <쇼미더머니 6> 이후, 그는 갑자기 이 신의 무대 한가운데로 편입되었다. AOMG라는 초특급 소속사가 생겼고, 첫 앨범을 냈으며,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휩쓸었다. 최근 인스타그램엔 그의 첫 번째 미주 투어 공연 소식이 올라온다. “엄청 재미있었어요. 저랑 사이먼 도미닉 형, 로꼬 형, 그레이 형, DJ 웨건 형 이렇게 다섯 명이 뉴욕, LA, 토론토와 밴쿠버를 돌았는데, 생각한 것보다 관객이 훨씬 많았어요. 서툰 한국어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가까이 보려는 관객의 안전이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회사 진짜 인기 많구나’ 싶어 저도 좀 놀랐어요.” 오는 3월 16일엔 첫 단독 콘서트도 열린다. 예스24 라이브홀이다. 자기만의 무대를 갖는다는 건 모든 뮤지션의 꿈이다. 우원재 역시 그렇다. “너무 설레요. 제일 하고 싶었던 활동이 단독 콘서트거든요. 뭐든 좀 특이하게 하는 걸 좋아해서 영상과 조명 구성을 신경 쓰고 있어요. 되게 신나요. 오신 분들은 ‘이게 내가 알던 힙합 공연이 맞나’ 싶을 거예요.” 유튜브에 10분이 넘는 긴 뮤직비디오를 올리고, 500장 한정 카세트테이프를 발매하는 우원재의 취향은 뉴트로(Newtro)적이면서 흔한 유행과 다른 독특한 색깔이 있다. 케이블 방송이라는 주류 매체를 통해 등장했지만 여전히 SNS와 언더그라운드 베뉴를 자유롭게 활보하며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활동을 통해 서브컬처로서 힙합의 매력을 전한다. 최근 그는 LP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1년쯤 됐는데, 레코드 숍에서 디깅하면서 재미를 찾고 있어요. 힙합 음반뿐 아니라 모든 장르를 수집해요. 평소 힙합은 30%밖에 안들어요. 듣지 않던 장르를 일부러 찾아 듣죠. 제 입장에선 그런 음악이 신선하거든요. 이걸 힙합이라는 장르에 대입할 때 저뿐 아니라 듣는 사람들도 신선할 테고요.” 얼마 전 보았던 판소리 공연에 대해 얘기하자 그는 눈을 반짝였다. 오렌지색 점프수트를 입은 90년대생 국악인이 사이렌과 라디오 소음을 북 삼아 파블로 네루다의 시로 창을 하는 공연이었다. “맞아요. 그런 게 재밌죠!”

작업 방식도 결과물만큼 창의적이다. 첫 단독 콘서트와 신곡 발표를 앞두고 요즘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밥 먹고, 자고, 담배 피우고, 그리고 계속 작업해요.” 심지어 미주 투어 기간에도 호텔로 장비를 몽땅 들고 가 두 곡을 만들었다. 작업방이 있는 집은 음악 프로듀서와 영상 감독,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등 여러 창작자들이 모인 아지트다. “노트북 들고 거실에 모여서 각자 자기 일 해요. 저는 작업방에서 프로듀서랑 곡을 만들고요. 가끔 거실로 나와 친구들에게 곡을 들려주고 어떤 가사가 좋을지 물어보면 다양한 의견이 나와요. 제가 작업하면 영상 하는 친구가 갑자기 그 모습을 촬영하거나 사진을 찍기도하고요. 이렇게 아카이빙이 되면 어떤 용도로든 쓸 수 있잖아요. 서로의 작업에 대해 평가도 해주고. 우린 활동 분야가 달라서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상대의 작업을 무시하지도 않고요. 각자 감각을 인정하고, 취향이 통한다는 걸 알기에 시너지가 있죠.” 먼저 공개될 신곡은 기리보이, 그레이와 함께한 ‘호불호’라는 트랙이다. 여덟 마디 정도만 남은 상태다. “원래 곡을 쓸 때 고민을 너무 많이 하는데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끌리는 대로 작업하는 중이라 금방 끝날 것 같아요.” 단독 콘서트에서 또 어떤 새 곡이 등장할지 그도 아직 모른다. 머릿속 그림은 시시각각 움직이며 형태를 잡아가고 있다. 모든 게 착착 진행 중이다. 공연을 앞두고 유일한 걱정거리가 있다면 부모님의 반응이다. “물론 제 공연을 보면 좋아하시죠. 그런데 가사가 좀 슬픈 게 많잖아요. 저를 제일 잘 아는 분들이니 공연 때마다 그렇게 울고 가세요. 그걸 보는 게 싫어서 또 울 거면 오지 말라고 해요(웃음). 관객 앞에선 그런 가사가 부끄럽지 않은데 가족 앞에선 조금 소극적으로 변해요. 너무 몰입하면 슬퍼하실 테니까. 그게 겁나서 못하죠.”

검은색 비니를 푹 눌러쓴 채 지옥 같은 마음속의 화기를 뿜어내던 그때로부터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꽤 많은 일이 일어난 현재, 그가 들려줄 얘기는 지금까지와 또 다를 것이다. “이제야 ‘아, 진짜 적응했구나’ 하는 걸 느껴요. 한동안은 눈치만 보고 살았죠. 사회생활은 처음이다 보니 하루가 처음부터 끝까지 눈치만보다 끝나요(웃음). 저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실수도 많이 했을 거라고 추측해요. 제가 참 착하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어떻게 보이느냐의 차이더라고요.” 단 AOMG만큼은 예외다. 편견 없이 우원재를 받아들이는, 내 편이라 말할 수 있는 동료다. “비등비등하게 친해졌어요. 다만 친하다는 것의 종류만 다를 뿐이죠. 그레이 형은 선생님 같은 큰형, 로꼬 형은 작은형, 사이먼 도미닉 형은 동네 형처럼 오래 알고 지낸 듯한형, 코드 쿤스트는 동갑내기 친구, 재범이 형은 그냥 외국인 형. 흐흐흐. 그렇게 포지션이 있죠.”

<보그> 인터뷰가 있던 날은 입대 전 로꼬의 마지막 공연이 열리는 날이었다. 우원재의 단독 콘서트가 공식화된 후 처음 맞는 공연이기도 했다. “오늘 꼭 잘하고싶어요. 열심히 해야죠. 그래야 제 공연 때 더 많이들 오실 테니까요.” 공연장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우원재는 한 번 더 일정표를 체크했다. “3월 16일, 토요일입니다. 꼭 보러 오세요!” 콘서트 제목은 다음과 같다. ‘Woo: What Day is it Today?’. 정신없는 생활 속에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어도 이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우원재의 모습이 바로 오늘, 이곳의 현재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