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로 멘디니를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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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멘디니를 추억하다

2019-04-15T15:10:09+00:00 2019.03.25|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가 영면에 들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색칠하던 영원한 소년과 그의 작품을 추억하다.

2017년 5월, <보그>는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그의 아틀리에에서 만났다. 그는 매 순간 상대를 배려했고 아이처럼 웃었다.

PROUST CHAIR

2003년 밀라노 유학 시절이니 벌써 16년 전이다. 당시 인테리어 전문지 기자와 유 학을병행하던내게밀라노는물반고기반의풍요로운디자인분야의장이면서 무시무시한 디자인의 ‘끝판왕’이 즐비한 지뢰밭이기도 했다. 특히 4월에 열리는 밀 라노 가구 박람회(Salone del Mobile) 기간에는 두 발이 모자랄 정도로 전시 부스와 시내 쇼룸을 오가며 인터뷰를 하고 두손이 모자랄정도의 프레스 키트와 기사를 정리했다. 그 유명한 에드라(Edra)의 스시 체어(Sushi Chair)를 디자인한 페르난도 & 움베르토 캄파나(Fernando & Humberto Campana)와 인터뷰를 허겁지겁 마치고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만났다. 비가 엄청 오던 날이었는데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멀리서도 영락없는 멘디니였다.

“안녕하세요? 멘디니 씨”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비도 오는데 왜 밖에서 이렇게 서계세요?” “비오는날 길에 펼쳐진 우산 좀 보세요. 예쁘잖아요. 자, 그러지말고 근처 바로 갑시다. 자주 가는 곳이 있어요(웃음).” “네? 아… 네.”
영락없는 소년이었다. 긴장감은 순식간에 사리지고 오히려 유쾌해지기 시작했다. “이 집의 마키아토는 맛보는 순간 반할 겁니다.” 그가 윙크를 건네자 주인은 포르타 필터에 커피 분말을 담기 시작했다. 엉겁결에 나도 그를 따라 마키아토 커피를 주문했다. “기자 일은 어떤가요? 재미있나요?” “음… 당신과 같은 디자이너를 만날 땐 즐겁습니다(웃음).” “저도 원래는 기자 생활을 먼저 했죠. <도무스(Domus)>에 몸담았을 때 정말 바빴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에 대한 관심은 1999년 유럽 배낭여행을 다니던 도중 네덜란드 흐로닝언 기차 역 바로 옆 운하에 둥둥 떠 있던 흐로닝어르 미술관(Groninger Museum)을 본 뒤부터다. 팝콘이 터진 것 같은 뒤죽박죽 형태가 유쾌한 건축물을 만든 건축가의 재치와 사상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멘디니는 패션 업계에 드리스 반 노튼이나 마르탱 마르지엘라처럼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들이 있듯, 디자인 업계에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나 미켈레 데 루키 (Michele De Lucchi)와 함께 스튜디오 알키미아(Studio Alchimia)에서 활동 하는 멤버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를 만나면 꼭 묻고 싶었다. 그가 외치던 리디자인(Redesign)에 대한 생각, 그 리디자인의 걸작이라 불리는 1978년 작 프루스트 체어(Proust Chair)에 관한 것 말이다. “모든 것이 사람에서 비롯되어요. ‘인간’이라는 단어죠. 1976년 가구 브랜 드 까시나(Cassina)와 함께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를 주제로 패브릭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프루스트의 실제 삶과 그의 작품 <잃어버 린 시간을 찾아서>가 일치하는 것이 흥미롭더군요. 희로애락과 생로병사 등 인간 군상이 담겨 있어요. 프루스트 체어는 그를 오마주한 것이죠.”

멘디니는 인간의 본성을 깊이 성찰했다. 그것을 우울하거나 비관적인 관점으로 보 지 않고 디자인이란 도구로 리드미컬하게 풀었다. 프루스트 체어의 디자인은 모든 인간 요소를 모은 결과물이다. 그 형태는 부유한 집안 출신의 마르셀 프루스트와 소설 속 인물 같은 부르주아가 썼을 법한 18세기 네오바로크 스타일을 차용했다. 프루스트 체어에 사용한 다양한 색채 또한 프루스트와 동시대에 활동하던 신인상 주의 화가 폴 시냐크(Paul Signac)의 점묘법에서 착안한 것이다. 물감을 팔레트 나 캔버스에서 혼합하지 않고 망막(網膜)의 시각혼합으로 색채를 얻는 방법을 회 화로 표현한 것이 신인상주의 화법이다. 자연이 주는 빛에만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시신경을 통해 이론과 과학으로 색채를 혼합하고자 했던 인간 중심적인 방법이다. 이 또한 신인상주의 화가 폴 시냐크에 대한 멘디니의 오마주였다.

가만히 살펴보면 멘디니는 기존 인물을 탐구하고 관찰해 오마주했다. 자신이 몸 담았던 건축 전문지 <도무스> 창립자 지오 폰티(Gio Ponti)의 슈퍼레제라(Super leggera) 체어를 비롯해 바우하우스 멤버인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의 바실리(Wassily) 체어, 마이클 토넷(Michael Thonet)의 No.14 체어 등 다양한 디자인을 재해석했다. 결과적으로 프루스트 체어는 인간의 계급인 귀족적 형태의 의자가 원색의 점묘 색채와 만나고 부딪치면서 색다른 이미지로 거듭났다. 알레산드로 멘디니라는 인간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사물인셈이다. 왜 그는 이러한 사물을 탄생하게 했을까? 이 질문에 답은 더욱 단순하다. 그의 내면에는 항상 ‘인간’이,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거야!’라고 꺼내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오히려 기존의 것에서 비롯된 반전, 변화, 다른 생각이나 관점을 얘기하고 싶어요. 거기서 각자 다르게 느끼고 웃고 따분해하기도 하죠. 우린 모두 같지만 다른 인간이니까요.” 이 답변을 듣고 리디자인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왜 그가 포스트 모더니즘의 선구자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유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획일적인 시대와 사회를 벗어던지고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간 중심적 가치로 바꾸려는 사람이 알레산드로 멘디니다. 인터뷰를 마치고도 한참을 바의 난간에 기대어 오랜 친구처럼 얘기를 나누었다.“ 그냥 나의 디자인은 당신이 쥐고있는 마키아토 한 잔 같았으면 좋겠어요. 커피는 제가 만든 게 아니고 저만 만들 수 있는것도 아니죠. 그냥 당신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에요. 그래서 노력하죠. 비록 이렇게 늙었지만요(웃음). 실은 늘 어려워요.”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겸손하지만 명확했고 유쾌함 속에 깊은 고뇌가 있는 사람이 었다. 빨간 우산을 들고 빗속으로 사라지던 소년의 뒷모습을 뚜렷이 기억한다. 더 이상 그를 이 세상에서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가 만든 것들로 인해 나의 삶은 즐거울것이다. —이현승(가구 디자이너, 공간 디자인 디렉터)

 

RAMUN AMULETO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가장 사랑받은 외국 디자이너기 도했다. 그는 SPC, 롯데카드, 한샘같은 한국기업과의 협업으로우리가매일사 용하는 카드나 머그잔에 멘디니 스타일을 새기기도 했다. 여전히 놀라운 인기를 자랑하며 몇 분에 한 개씩 팔린다는 알레시의 안나 G오프너 (그는 이 작품의 로열티로 평생하고 싶은 일만 해도되는 창작의 자유를 얻었다)를 비롯해 프루스트 체어 등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을 알고있지만, 우리에게도 친숙한 최근 작은 아마라문의 아물레또 조명일것이다. 내가 매일매일 잠자기 전까지 책을 읽을때 애용하면서 침대 옆에두고 사용하는게 바로 이 조명이다. 첫 눈에는 멘디니 특유의 화려한 조형이 눈에 띄지만 사용할 수록 잘 만든 제품이란 생각이든다. 라문은 멘디니가 창립자로서 디자인부터 기구설계, 회사 로고 등 모든 부분을 세세하게 관여해 만든 브랜드로 스스로 자신의 3대 걸작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연결 부위가 보이지않는관절구조메커니즘은한국기업이맡은것으로알려졌다. 아물레또는 특히 뛰어난 시력 보호기능과 눈에 해롭지 않은 조도 덕분에 일명 ‘대치동스탠드’ 라 불리며 오늘도 입시생들의 책상 위를 밝히는 중이다. 이런 특별한 유명세에 대해 그는 분명히 특유의 소년 같은 표정으로 아주 재미있다고 웃었을 것 같다.

월간 <디자인>과의 인연도 특별해 오랫동안 보내드렸는데, 매달 잡지가 오면 꼬박 꼬박 ‘보고’ 있다며 <도무스> 편집장을 지낸 저널리스트의 안목으로 코멘트를 해주 셔서 정말 기뻤다. 그리고 지난 2016년 월간 <디자인> 40주년을 기념해 축하 인 사를 부탁드렸을 때 다정하게 써주신 글에서도 여유와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당신에게 40세란 나이는 어떤 의미였냐는 질문에 “40세가 되었을 때 내가 아직도 무척 젊다고 느꼈다. 나는 이제 85세다”라고 했는데,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50 대 중반이 넘어서야 본격적인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시작한 멘디니다운 자신감 넘 치는대답이었다. 영화<인생후르츠>는“오래살수록 인생은 더욱 아름다워진다”라고 한 프랭크로 이드 라이트의 말을 인용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70세 이후에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 등을 디자인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면 그런 말 할만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멘디니에게도 참 어울리는 말이었다. 매년 4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이면 약속하지 않아도 시내 곳곳의 전시장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 있었던 그를 올해부터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 안타까울뿐이다. —전은경(월간 <디자인> 편집장)

ANNA G.

이탈리아에서 ‘벨라 피구라(Bella Figura)’는 삶의 불문율이다. 내가 밀라노를 뻔 질나게 드나드는 이유이기도 한데,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아름다운 모습’쯤 될까? 집앞슈퍼에갈때조차몸단장에신경쓰는이곳사람들에겐멋지고좋은인상을 남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면 주차장 문을 편리한 기계식으로 바꾸 는대신주차장문열쇠꾸러미에돈을쓰는식이다.아무짝에도쓸모없는짓이라 고?글쎄,이작은열쇠하나도얼마나예쁜지나는우리집디지털도어록키옆에 열쇠구멍이라도만들고싶을정도다.이런문화속에서나고자란알레산드로멘 디니가 제2차 세계대전 후 확산된 독일식 기능주의 디자인에 얼마나 염증을 느꼈 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가장 기능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굿(Good) 디자인에 대한 저항으로 멘디니가 지향해온 벨(Bel) 디자인은 이후 우리의 일상을 보다 유머러스하고 특별한 무엇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와인을 따는 아주 사소한 찰나의 순간조차 말이다.

여기, ‘안나 G’ 양을 소개한다. 1994년생인 그녀는 이탈리아 태생의 와인 오프너 다.컬러풀한퍼프소매원피스차림으로단발머리가트레이드마크인안나G는지 금도전세계리빙숍어디에서나만날수있는멘디니의대표적작품이다.다채로 운 헤어스타일을 선보이는 안나 에투알(2009)과는 자매지간이며, 가까운 친척으 로얼굴부분을열면세개의접시로변신하는안나공이있다.사실안나G는알 레시와 필립스가 공동 프로젝트로 제품을 개발했을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기념품 으로나눠준500개한정생산품이었다고한다.폭발적반응덕분에오늘날에이 르렀다고하니,사람만큼이나제품의운명도알수없는일이다.알레시와지속적 으로 협업해온 멘디니는 2003년에는 안나 G의 파트너 알레산드로 M을 디자인 하기도했다.와인의코르크마개를딸때면날개를펴듯두팔을한껏벌리고닫는 안나G는마치주방에찾아온작은요정같다.금속성의반짝임과플라스틱몸통 이주는질감의대비는세련된인상을주고,목칼라부분에컬러포인트를준매끈 한실루엣의의상은보기에좋을뿐만아니라손에쥐었을때도편안하다.비교적 저렴한가격의안나G는멘디니가만든많은디자인제품과가구,건물중에서가 장 만만하게 구입할 수 있는 품목이기도 하다.

또한그녀는늘변함없이기분좋은술친구이기도하다.머나먼타국에서안나G 와함께술잔을기울이며곧오픈을앞둔디자인쇼룸에대한고민과하소연을늘 어놓는나를보면멘디니할아버지는어떤말을해주실까?생활속에서예술의가 치를 실현해온 멘디니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건축과 디자인을 오가며 여든이 넘어서까지 예술가이자 편집자, 전시 기획자로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온 멘디니와 나를비교할바는물론아니다.다만한가지공통점이라면모든선택에서돈에대 한고려는항상가장마지막이라는것.조금은위로가된다.안나G와함께이용 감한 예술가를 위해 건배를! —이미혜(칼럼니스트, 문화 기획자)

BYBLOS ART HOTEL

사람들은 나를 <알레산드로 멘디니-일 벨 디자인(IL Bel Design)>의 저자로만 알 지만,3년여간함께나눈인간적인교류는한권의책으로는도저히표현될수없 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그가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않음을 절감하며 글을 쓴다니 참으로 고통스럽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일은 그가 남긴 유산을 애도하며 추스르는 것이다. 익히 유명한 멘디니나 그의 디자인을 반복해 말하는 것은 크게 의미없지만, 그의 추천으로 들렀던이탈리아베로나근교의 ‘비블로스아트호텔’은 잘 알려지지 않아 꼭 소개하고싶다. 사방이 구별되지 않는 한밤 중에, 지친 몸과 짐을 이끌고 시골구석의 이 호텔을 찾아간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택시에서 왜 이리 변두리까지 가야 하는지, 지친 몸의 근육사이로 불만이 삐져나오기도했다. 그런데 어두운 계단을 올라 밝은호텔 로비에 들어선 순간 피로, 불만, 의심 등 마음과 몸의 찌꺼기가 사라져버렸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순전히 합창과 연주로 심신에 궁극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듯 이, 이 호텔의 로비는 시각적인 장치만으로 그러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때까지 배웠던 디자인에 대한 모든 관념적인 가치가 무너졌고, 이 앞에서 어떤 디자인도 명함을 내밀 수 없을 것 같았다.

로비는 데미언 허스트, 장 미셸 바스키아 같은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으로 채워졌는데, 자기가 잘났다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멘디니의 큐레이팅에 의해 우아한 모 습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있었다. 이 로비에서 멘디니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마에스트로였다. 최고 디자이너의 격조 높은 솜씨란 이런 것임을 디자인을 전공한 이후 처음 느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숙박료가 비싼 관계로 가장 싼 방을, 그것도 멘디니 선생의 배려로 할인을 받아들어간 방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극치였다. 소박함을 유지하면서도, 램프, 가구, 심 지어 천장의 장식까지 멘디니의 손길로 완벽하게 태어났다. 다음 날 아침에 관계자의 배려로 다른 방도 살펴보았는데 똑같은 방이 하나도 없었다. 각각이 완벽한 작품이었다. 객실에 있는 가구 역시 전부 멘디니가 이 호텔을 위해 디자인한 것으로, 다른 곳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고전적이면서도 ‘멘디니스러움’을 보여주고있었다. 심지어 호텔 건물의 구석에 있는 타일 한 조각까지도 놀랍도록 예술적이고 아름다웠다.

비블로스 아트 호텔에서 멘디니는 특정 디자인에 머물지 않고, 공간과 가구, 소품, 텍스타일, 색채 등에 이르기까지 놀랍게 표현하고 조화를 이뤄냈다. 건물의 모든 것이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손에 의해 투숙객을 오감의 극한으로 이끌어냈다. 멘디 니만이 해낼 수 있는 고난도의 융합적인 디자인이어서 한 번쯤은 직접 체험해보길 바란다. —최경원(성균관대학교 디자인학과 겸임교수, 홋 컬렉션 대표)

SPC×A.MENDINI

인연이 있는 일본의 목공가 요시카와 가즈토(吉川和人)의 오브제 작업을 좋아한다. 가구나기 물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목재를 이용해 밸런스좋게 조합한 다음 눈과입을 쓱쓱 그려넣은 일종의 인형이다. 그것은 아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기린이 나새같은 동물을 닮기도했다. 심지어 한 스웨그너가 디자인한(비싼) 라운드 체어의 등받이를 반으로 잘라 커다란뿔처럼 연출해서 누가봐도 순록이다 싶은것도 있다. 동갑내기지만 훨씬 노안인 그가 만드는 장난감 같은 오브제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의 ‘아소비고코로’가 부럽다. ‘아소비고코로(遊び心)’는 장난기 혹 은 여유나 재치가 있는 마음을 뜻하는 일본 말이다. 가끔은 동심(童心)으로 번역 된다. 흥미롭게도 일본의 디자이너나 크리에이터들은 이 장난기를 꽤나 강조한다. 아소비고코로가 담긴 아웃풋을 더 가치 있다고 평가한다.

가즈토의 작업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SPC 그룹 과 진행한 디자인 협업 프로젝트다. 빵집 프랜차이즈로 잘 알려진 SPC 그룹의 각 브랜드 BI를 멘디니가 캐릭터로 재해석한 작업이다. 오각형의 얼굴에 각 브랜드의 심벌을 얹은 캐릭터는 머그잔이나 우산, 노트 같은 노벨티(Novelty)로 만들어 팔 기도 했는데, 동대문 DDP에서 열린 <알레산드로 멘디니>전에서는 나무 인형으로 제작해 전시하기도 했다. 이때의 협업 주제 역시 동심과 희망, 즉 아소비고코로였 던 셈이다. 마흔을 넘기면서 인생의 모토가 흔들렸다. 철들지 말자고 생각하며 살 았는데철없는어른이된것같았다. 괜히 부끄러워서 모으고 선물받아 수를 늘려가던 안나 G를 크리스마스 모임에서 마니토 선물로 떠나보낸 것도 그즈음이다. 그리고 끝내 철들지 않았던 거장 디자이너의 부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의 인생에는 뭘해도 즐겁고 호기심으로 충만한 때가 존재한다. 그 시간을 끝내고 어른이 되는 시기는 각자의 선택이다. 그런데 선택지 가운데 ‘그대로’라는 항목도 있다는것은 미처 깨닫지못했다. 어쩌면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디자인은 바로 나같은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평생 아이처럼 살아도 돼요.” —이은석(라이프스타일 상점 ‘학과 꽃’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