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업사이클링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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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업사이클링을 아느냐

2019-04-23T17:04:08+00:00 2019.04.23|

부끄러운 디자인과 잘못된 소비를 행한 적이 있다면 참회하라. 업사이클링의 신, 프라이탁(Freitag)이 너의 죄를 사하노니!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19에서 화제가 된 프라이탁의 <Unfluencer – De-Sinning The Designer>는 21세기 디자인에 관한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선언문이다. 모두가 최고의 디자인을 자랑하기 바쁜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축제에서 프라이탁은 ‘좋은 디자인 대신 나쁜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한다. 화물 방수포를 재활용한 가방으로 전 세계 힙스터들을 열광시킨 프라이탁다운 전시다.

어두운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한쪽 앞발을 든 고양이 인형 ‘마네키네코’가 관객을 반긴다. 관람객은 입구에서 번호표를 뽑은 후 고해성사실에 자신의 번호가 뜨면 그 안으로 들어가 그간의 죄를 고백한다. 이 성스러운 사각 박스는 두 명의 죄 많은 소비자가 서로의 죄를 듣고 말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눈물의 참회가 끝나면 그 내용을 초록색 종이에 그림과 글로 옮겨 판사의 승인 도장을 받는다. 프라이탁이 죄를 사하며 선사하는 선물은 잉크젯 프린터 건을 활용해 즉석에서 글씨를 새기는 에코백이다. 이 환한 빛의 공간에는 전시장을 다녀간 관람객의 무수한 죄의 목록과 프라이탁이 제안하는 몇 가지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혀 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관람객은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다. 스위스 아티스트 게오르크 렌도르프(Georg Lendorff)는 천장에 매달린 수천 개의 실을 스크린 삼아 영상을 투사했다. 비, 바람, 구름 등 자연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데, 관람객은 이 겹겹의 실기둥 사이를 걸으며 작품의 일부가 된다.

‘좋은 디자인은 무엇인가?’ 프라이탁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열린 6일간(4월 9-14일) 수집된 이 모든 고백이 오늘날의 디자이너와 소비자에게 새로운 담론의 장을 열어줄 것이다. 누구나 죄는 충분하다. 오늘도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소비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진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도 프라이탁을 만나야 한다. 프라이탁의 설립자 중 한 명인 그래픽 디자이너 다니엘 프라이탁이 21세기 디자인에 관해 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Q 고해성사실에서 당신은 무엇을 참회했나?

사실 난 아직도 매일 아침 캡슐 커피를 마신다. 다 쓴 캡슐은 재활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지만 왠지 죄책감이 든다. 좋은 커피 머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Q 모두가 멋진 디자인을 자랑하는 디자인 축제에서 실패한 디자인과 나쁜 소비에 대해 말한다는 건 엄청난 자신감이다. 왜 이런 전시를 기획했나?

디자인은 늘 형태와 기능을 갖추고 윤리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디자인의 윤리에 대해 얘기할 때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좀더 시적인 방식으로 무엇이 좋고 나쁜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 공간을 마련했다. 자원의 순환을 위한 아이디어나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상품을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게 정말 필요한지, 혹은 물건을 수리할 수 있는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아니면 사지 않고 빌려서 사용하는 게 나은지…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을 생산하고 소유할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좋은 기회다.

Q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는 않겠다는 얘긴가?

우리는 의견을 반영할 뿐이고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Q 밀라노 트리엔날레의 주제 역시 ‘Broken Nature’다. 요즘은 모두 디자인의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맞다. 프라이탁은 업사이클링에 대해 25년 동안 얘기해왔다. 우리가 개척자인 셈이다. 이와 같은 논의가 주류가 된 것이 기쁘다. 패션을 비롯한 모든 제품 디자인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Q 관람객의 고해성사를 프라이탁의 디자인에도 반영할 생각인가?  

아마도 그럴 것 같다. 이미 매일 저녁 내용을 확인하고, 기발한 생각은 트위터 계정에 올리고 있다. 물론 이 내용은 매우 개인적이라 우리가 1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뭔가를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Q 오프라인 공간에서 디자이너가 실제 사용자의 의견을 들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게 의미 있게 느껴진다.

이건 일종의 대화다. 요즘은 SNS를 통해 사용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지만, 브랜드가 이런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는 건 생소할 수 있다. 우리는 소비자와 소통하길 원한다. 나쁜 의견이라도 상관없다. 누구든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디자이너도 인간이다(웃음).

Q 아티스트 게오르크 렌도르프와 협업은 어떻게 기획된 것인가?

게오르크 렌도르프는 나와 비슷한 세대로 취리히에서 함께 성장했는데,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작품은 자연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관객이 작품의 일부가 된다는 점에서 프라이탁의 철학과 맞아떨어진다. 관람객은 일몰 무렵의 환상적인 풍경의 일부가 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Q 실을 스크린 삼은 작품이기도 하다. 천을 소재로 한 프라이탁처럼 말이다.

그런 연관성도 있다. 하지만 작품에 사용된 특수 실은 실제 우리가 제품을 만들 때 쓰는 실은 아니다.

Q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디자인,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디자인’이 정말 가능하다고 믿는가?

물론이다. 우리의 디자인 철학은 ‘요람에서 요람으로’다. 생태건축학자 윌리엄 맥도너와 화학자 미하엘 브라운가르트가 공동 저술한 <요람에서 요람으로>에 그 원리가 자세히 나와 있다. 다만 이러한 제품의 선순환 메커니즘은 팀플레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디자이너와 기술자, 생산자, 소비자가 모두 함께 노력해야만 한다.

Q 당신이 생각하는 21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은 무엇인가? 단, 프라이탁은 제외하고!

좋은 질문이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 제품보다 서비스 디자인을 꼽겠다.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제품이 있다면 이웃과 나눠 쓸 수 있는 시스템(품피품페)인데, 스티커를 붙여 우편함에 넣으면 그 물건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된다. 제품 디자인 중에서는 일본에 여행 갔을 때 작은 회사가 만든 우유병을 담는 가방을 보았는데 매우 심플하지만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기능적으로 훌륭하면서도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