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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고립

2019.07.09

by VOGUE

    즐거운 고립

    이동휘는 영화에 고립되길 자처한다. 좋아하는 패션도 미술도 영화 안에서 논다. 〈어린 의뢰인〉을 선택한 이유도 영화의 선한 영향력을 믿기 때문이다.

    와인색 숄 칼라 재킷은 언더커버(Undercover), 스마일 프린트 티셔츠는 캐피탈(Kapital at Sculp), 풍성한 실루엣의 검정 팬츠는 사스콰치패브릭스(Sasquatchfabrix. at matchesfashion.com), 세 가지 색깔의 페니 로퍼는 처치스(Church’s).

    영화 <어린 의뢰인>에 함께 출연한 배우 유선은 제작 보고회에서 이동휘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유쾌하고 젊은 느낌일 줄 알았는데 굉장히 진지해요. 애드리브도 순간적으로 치는 줄 알았는데 사전에 고심해서 준비한 것이고요.” 이동휘를 만난 기자 대부분은 “생각보다 진지하다”고 평한다. 내가 만난 이동휘도 저음으로 자기 기준을 명확히 얘기하는 사람이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하지만 누구나 다양한 모습이 있잖아요. 인터뷰할 때는 예의를 갖추고 진지해야 하고, 일상에서 동네 친구를 만날 때는 생각 없어 보이는 행동도 하겠죠. 배우 혹은 누군가를 볼 때 자신이 본 모습을 떠올리고, 그걸로 규정짓죠.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다 입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도 특정 상황을 대하는 등장인물의 태도는 여러 가지일 수 있죠.”

    흰색 데님 재킷은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셔츠는 드레익스(Drake’s), 흰색 카펜터 팬츠는 칼하트(Carhartt).

    <어린 의뢰인>은 일곱 살 친동생을 죽였다는 열 살 소녀의 자백 앞에서, 진실을 감추는 엄마와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2013년 충격을 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감독은 <선생 김봉두>, <이장과 군수>, <나는 왕이로소이다> 등을 연출한 장규성 감독이다. 변호사 정엽에는 이동휘, 엄마 지숙에는 유선, 남매 역에는 최명빈, 이주원이 열연했다.

    제작 보고회에서는 배우와 감독, 영화 홍보사까지 꽤 신중한 태도로 단어 하나도 조심스럽게 골랐다. “영화가 아동 학대 근절이라는 메시지를 다루고 있기에 더 신중해야죠.” 이동휘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에게 필요하고 해야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기에 주변에서 흥행 걱정도 하지만, 영화를 찍고 만드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자문했을 때,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않고 당연히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작품 선택의 첫 번째 기준이 사회적 메시지는 아닙니다. 배우로서 성취하고자 하는 다양한 목표가 있죠. 하지만 이런 작품이 왔을 때 모르는 척하지 않고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검정 수트는 디올(Dior), 흰색 러닝 슈즈는 뉴발란스(New Balance).

    배우라면 캐릭터가 부각되는 영화를 선호하기 마련이지만, 이번 영화는 사회적 메시지가 우선이며 배우는 그것의 파장을 위한 동력으로 움직인다. “이 영화는 캐릭터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유선 선배의 역할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영화를 더 많은 관객이 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지금도 사회면 기사를 보면 정말이지 안타까워요.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잘됐으면 해요. 사회적인 무언가를 일으키고 싶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동휘는 영화의 여러 기능 가운데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 “영화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 중 하나잖아요. 공포 영화를 보며 오감을 만족시키고, 스릴러를 보면서 답답했던 무언가를 해소하는 기쁨을 느낄 수도 있죠. 어떤 영화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작품 중 하나가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영화 <천국의 아이들>이죠. 어떻게 하면 그런 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요? 오빠는 여동생의 잃어버린 신발을 누군가가 신고 있는 것을 보죠. 하지만 신발을 포기하고 돌아와요. 그 신발을 신고 있는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죠. 우리 같은 어른은 일단 가서 돌려달라고 말할 텐데, 아이들은 어른보다 어른스럽죠. 이 영화를 처음 보고 굉장히 반가웠고 영향도 받았어요. 이런 영화가 계속 만들어졌으면 해요.”

    오픈 칼라 셔츠는 티에스에스(Ts(s) at Sculp).

    그는 <어린 의뢰인> 역시 자신을 바꿨다고 말한다. “흔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믿어요. 영화에서 정엽이 변했듯, 이동휘라는 사람도 바뀌었어요. 영화에서 정엽이 아이들에게 약속해요. 그때 약속의 무게를 생각하게 됐죠. 사실 예전부터 고민해온 주제예요. 약속에도 지키기 어려운 것, 쉬운 것 여러 형태가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1분, 1초 단위로 어기고 있어요. 특히 어른이 아이에게 한 약속을 쉽게 어기는 것이 심각한 문제죠.” 이동휘가 정엽 역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도 이것이다.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한 질문은 ‘가족이 아닌 타인이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자기 일을 다 내려놓고 발 벗고 도울 사람이 있을까. 내가 정엽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정엽의 선택을 관객은 얼마만큼 공감할 수 있을까’였어요. 정엽을 보며 관객이 ‘저 정도로 약속을 지키는 어른은 없지’가 아니라 ‘저렇다면 나 같아도 약속을 지켰을 거야’로 느끼도록 하는 게 배우로서 저의 중요한 임무였어요.”

    가죽을 덧댄 흰색 스웨터, 검정 레더 팬츠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이동휘를 비롯한 배우, 감독은 연기일지라도 아동 학대라는 극한의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아역 배우의 상태가 가장 중요했다. 현장에 심리 선생님이 동석해 아역 배우의 상태를 살폈고, 유선 배우는 힘든 연기가 끝날 때마다 친구들을 안아줬다. “제겐 그 친구들이 어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지가 가장 중요했어요. ‘애들은 이런 거 좀 해도 돼, 애니까 괜찮아’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 그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면 ‘스톱’을 외쳤죠. 아이들은 웬만하면 괜찮다고 하거든요. 한국의 아이들은 어른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프레임에 씌워져 있잖아요. 아이들이 의사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돕고, 성인 배우와 동등한 입장에서 연기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검정 재킷은 디올(Dior).

    이동휘는 올가을 명필름랩의 다섯 번째 작품 <국도극장>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명필름랩은 명필름이 신인 영화인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영화 제작 시스템으로 1기 조재민 감독의 <눈발>, 이동은 감독의 <환절기>, 2기 이환 감독의 <박화영>을 선보였고, 3기 전지희 감독이 <국도극장>을 만들었다. 이동휘에게 시작하는 영화인들에게 힘을 싣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단번에 “감독님이 직접 쓰신 책이 좋아서”라고 답했다. 그에게 좋은 시나리오는 한 권의 책처럼 읽힌다고 했다. “신호등을 건너다 마주치는, 차를 타고 가다 지나치는 가족들은 그 스토리를 알 수 없잖아요. <국도극장>은 언뜻 평범해 보이는 가족이 삶을 마주하는 방식을 그려내서 좋았어요. 큰 사건이라곤 없지만 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투영하면서 나오는 슬픔도 다가왔고요.”

    흰색 데님 재킷은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흰색 카펜터 팬츠는 칼하트(Carhartt), 검정 스니커즈는 피그벨(Phigvel).

    이동휘의 필모그래피에는 배우 남궁민이 감독을 맡은 18분 단편영화<라이트 마이 파이어>가 있다. 그 영화는 정말이지 뻔뻔하면서도 미스터리한 이동휘의 연기가 빛을 발한 작품이다. 이동휘에겐 제작 배급사나 감독의 인지도 등 규모나 플랫폼은 중요하지 않다. “정말 시나리오가 최우선이에요. 플랫폼이나 규모를 아예 신경 안 쓸 순 없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주의입니다. 어쨌든 좋은 배우가 되려면 좋은 시나리오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5월에는 배우 이기혁이 감독하고 이동휘가 주연을 맡은 18분 단편영화 <출국심사>도 공개된다. “배우 기혁이가 시나리오를 한번 봐달라고 연락을 했어요. 정말 흥미롭고 괜찮은 이야기라 촬영했죠. 지금 여러 영화제에 출품을 앞둔 상태입니다.”

    이동휘 역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배우라서 직접 시나리오를 쓰거나 감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 “이야깃거리는 늘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풀어내기 두려워요.
    최근 김윤석 선배가 감독한 영화 <미성년>을 봤는데, 그 대단한 연출력에 감탄했어요. 나는 아직 멀었구나, 더 공부해야겠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상상해본다면, 이동휘의 영화는 스토리만큼 미장센도 돋보이는 영화일 것 같다. 알다시피 그는 패션을 사랑하고, 예술에도 관심이 많다. “누가 취미를 물어보면 영화 보기, 옷 구경하기, 미술관 가기 정도예요. 하지만 결국 영화에 포함된 것들이에요. 영화에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등장하면 영화 분위기랑 참 잘 맞는구나 감탄하는 식이죠. 그림도 영화와 연관 지어볼 때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오스카에도 의상상, 미술상, 시각효과상 등이 있듯, 패션, 미술, 영화가 다 하나의 예술이라 생각해요.”

    이동휘의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어떤 그림이 걸렸는지 물었다. 그는 비싼 작품 같은 건 없다고 답을 피하다가, 이렇게 얘기했다. “빨간 지붕 위에 누운 스누피와 친구 우드스탁 그림이 제게 안정감을 줍니다.”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곽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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