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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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배려석 논란

2019-05-09T17:13:54+00:00 2019.05.09|

임산부 배려석이 또 한 번 도마에 올랐습니다. 휴가 복귀를 위해 지하철에 탄 군인이 비어 있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고 누군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국방부에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죠. 불법은 아니지만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에 해당 군인은 절차상 조사를 받아야 했고, 이 사실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온라인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비록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지만 매우 노곤해 보이긴 합니다. 페이스북 ‘군대나무숲’.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논란은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해외에서도 교통약자석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역차별이나 이용자의 불편 등을 이유로 자리를 지정하는 대신 임산부 표시 배지를 달도록 했으니까요. 어쨌든 우리나라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논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임산부가 아닌데도 그 자리에 앉은 사람입니다.

임산부 배려석의 가장 큰 적으로 간주되는 그룹은 ‘남성’. 임산부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일단 남자가 앉아 있으면 예외 없이 표적이 되죠. 여덟 개 정거장을 지날 때까지 임산부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앉은 한 남성은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사진이 자신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게 에어드롭으로 뿌려지는 불쾌한 경험을 관련 기사에 댓글로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서울 지하철 통합 신고 번호로 임산부 배려석에 남자가 앉아 있다는 신고 폭탄이 쏟아져서 기관사가 제발 자리에서 일어나달라는 기내 방송을 했다는 일화가 도시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하고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공익광고협의회에서 진행한 공익광고제 동상 수상작. 다소 공격적인 문구로 논란에 불을 지폈습니다.

임산부 배려석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키는, 전설처럼 구전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아주 지쳐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요. 임산부라고 주장하는 한 여자가 나타나서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냐며 시비를 걸고 그 남자에게 폭행까지 가했다고 합니다. 경찰이 여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조사 결과 그 여자는 임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남자들이 주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사실 임산부가 아닌 여자들이 그 자리를 이용하는 경우 또한 상당하다는 의견이 등장하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분위기입니다.

선생님, 저 이제 임산부 배려석에 당당히 앉을 수 있는 거죠?

실제로 1년 전 한 매체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사람들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실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임산부를 제외하고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대부분의 사람은 임신하지 않은 여자였고 수로 따지면 남자의 세 배가 넘었죠. 하지만 모두에게 일일이 임산부인지 아닌지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신하지 않은 여성’ 중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지 않은 임산부가 몇 명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정확한 조사라고 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겉모습만으로는 임신 여부를 가리기 쉽지 않죠.

두 번째 논란은 그 자리가 비어 있고 주위에 임산부가 없는데도 굳이 비워놔야 하냐는 것입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임산부가 아니어도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하는 게 위법 사항은 아니지만 다만 비워두는 걸 권장하는 쪽이라고 밝힌 바 있어요. 하지만 붐비는 시간대에도 굳이 비워놓는 건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목소리도 못지않게 높습니다. 사진 찍힌 군인처럼 정신없이 졸 정도로 피곤하거나 바닥에라도 앉고 싶을 정도로 하루가 힘든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나 좀 봐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고요. 그런데도 임산부 배려석을 꼭 비어놔야겠어요?

지난해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출산 경험이 있는 20~40대 임산부 400여 명을 대상으로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경험을 조사했습니다. 임산부 배려석 이용에 불편함을 겪었다는 응답이 90%에 육박했는데요. 불편을 겪은 이유로는 ‘비임산부가 착석한 후 비켜주지 않아서’와 ‘임산부 배려석이 모자라서’라는 두 가지 이유가 70%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임산부 배려석을 양보하는 비율은 12명 중 한 명꼴이었죠. 청와대 국민청원에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청원을 등록한 한 남성은 자신의 아내가 임산부인데 붐비는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서 정말 힘들어한다고 청원 이유를 밝히기도 했어요.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많은 청원 글이 올라와 있는데요. 대부분이 실제 임산부들이 그 좌석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개선해달라는 내용입니다. 임산부 배려석을 영화관 의자처럼 접히는 형태로 만들어서 임산부 카드를 대면 펼쳐지도록 해달라는 아이디어도 있었죠. 동의 인원 수가 여덟 명에 그치긴 했지만요.

세상에, 임신이란 너무나 힘든 일이군…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된 불만 사항과 신고가 계속 늘어가는 가운데, 유일하게 민원이 감소한 곳이 있으니 바로 부산 지하철입니다. 부산 지하철은 2017년부터 핑크라이트 제도를 도입했는데요. 지하철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 임산부용 발신기 비콘을 소지한 임산부가 지하철에 타면 해당 칸의 임산부 배려석 옆에 붙은 분홍색 라이트가 반짝입니다. 비어 있다면 앉아도 문제 될 게 없고 임산부가 타면 자리를 양보하도록 유도하는 거죠. 억울할 일도, 서운할 일도 없고 민망한 상황에 놓이지 않고도 배려하고 혜택 받을 수 있으니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타 지역에서는 노선도가 복잡하고 수송 인원이 많은 상황, 설치 비용 등 부수적인 문제로 당장 도입하기는 조금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모든 골칫거리를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니 빠른 시일 내에 도입하면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