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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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없는 세상

2019-05-24T10:16:09+00:00 2019.05.24|

생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난 생리통이 엄청 심했어요. 온열팩을 등에 대고 소파에 누워 있어야 할 정도였죠. 그런데 생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부터 다시는 생리를 하지 않아요. 임신하려고 노력하는 중이 아니라면 생리할 필요가 없어요. 임신이 끝나고도 생리를 꼭 할 필요는 없죠. (중략) 피를 볼 필요가 없어요. 전혀 그럴 의무가 없어요.’ 뉴욕의 부인과 외과의 멜라니 마린(Melanie Marin) 박사가 말했다.” 지난 4월 출간된 단행본 <엄청나게 시끄럽고 지독하게 위태로운 나의 자궁>을 읽던 중 발견한 문장이다. 여성 단체 활동가도, 유튜버도 아닌, 부인과 외과의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생리가 선택권임을 말하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어 눈을 비볐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선고라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2019년에 살고 있음이 절로 실감이 났다.

지난 2년은 ‘생리의 격변기’였다. 생리대 유해 물질 파동 이후 생리에 대해 알게 된 지식이 평생 알고 있던 지식보다 많다. 생리를 주제로 삼은 다큐멘터리를 개봉했고, 생리컵, 면생리대, 생리팬티 등 생리대를 대체하는 선택지가 늘었다(물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프리미엄 생리대 시장도 열렸다). ‘깔창 생리대’ 보도 후 여러 시군구에서 무상 생리대 지급을 논의 중이고, 마케팅 비용이 덕지덕지 붙어 턱없이 비싼 생리대를 비판하며 ‘반값 생리대’도 등장했다. 파란 액체를 부으며 흡수력을 자랑하거나 하얀 원피스를 입고 하늘을 향해 점프하는 생리대 광고도 사라졌다. ‘그날’ 대신 ‘생리’라고 또렷이 발음하고 생리대에 비로소 붉은 액체를 붓는다.

멜라니 박사가 말한 ‘생리를 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들은 건 동료 에디터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였다. 선배가 말했다. “미레나 시술을 받았더니 생리를 안 한다? 진짜 신세계야.” 동기가 덧붙였다. “저도 받았잖아요. 진짜 확실히 생리량이 줄었어요. 원래 한번 시작하면 2시간도 되지 않아 오버나이트 생리대가 흠뻑 젖을 정도로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면생리대로 버틸 수 있을 정도?” 동기는 수년째 자궁선근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자궁선근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빈혈을 동반한 생리량의 증가다. 1년 내내 생리가 멈추지 않는다. 동기는 불평할 에너지도 아껴서 생리대를 갈아야 한다고 자조 섞인 농담을 했다.

‘미레나’는 브랜드명이고 ‘IUD(intrauterine Device)’는 자궁 안에 장착하는 피임 기구를 통칭한다. 자궁의 형태를 도형화한 듯 ‘T’ 자형으로 생긴 미레나의 원리는 배란을 막아 임신을 방지하는 것이다. 손가락 마디 두 개만 한 장치는 극소량의 호르몬을 방출해 자궁내막의 성장을 막는다. 따라서 생리량이 줄거나 아예 생리가 멈추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 원리를 생리를 조절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접착제를 개발하다가 포스트잇을 발견한 것처럼 의도하지 않았으나 얻은 수확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피임약을 먹어도 유사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보통 3주간 복용하고 1주간 휴지기를 갖는데 휴지기 없이 매일 약을 먹으면 무월경 상태가 유지된다. 원리는 그렇지만 사실 나는 매일 피임약을 복용해서 생리를 끊는다는 생각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여행 스케줄과 생리 예정일이 겹칠 때 피임약으로 생리를 미루는 정도였다. 그때도 호르몬 덩어리를 먹어도 될지 찝찝해서 띄엄띄엄 약을 먹었다(당연히 효과는 떨어졌다). 경구피임약은 1950년대부터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복용한 가장 안전한 약이라는 자료를 읽어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도, 약의 원리와 효과도 몰라서 그랬다.

‘부인과 질병 혹은 피임 목적으로 미레나를 시술했는데 생리가 멈췄다.’ ‘생리를 멈추기 위해 미레나를 시술했다.’ 동일한 결과를 도출하지만 두 문장의 거리는 한라산과 백두산 사이보다 멀다. (보험 적용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고, 산부인과에서 의사들이 흔쾌히 시술을 하는가 아닌가를 구분 짓는 기준이기도 하다.) 천재지변처럼 일어나면 그저 받아들여야 했던 생리를 조절하는 방법이 생겼다는 건 고단한 생리사에 일어난 혁신이다. 나는 미레나 시술이 생리 중단에 효과적이라는 얘길 듣고 꼬박 이틀 동안 인터넷과 단행본 서적을 뒤져본 결과 충분한 정보와 담론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번 시술 받으면 5년 동안 그 효과가 유지된다는 것. 약 20%는 생리가 사라지지만 절반은 부정 출혈이 있고 5~10%는 아예 효과가 없다는 것. 하복부 통증, 골반통이나 체중 증가, 피부 트러블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 간혹 장치가 빠질 수도 있다는 것. 정착까지 1년은 두고 봐야 한다는 것. 시술 시간은 짧지만 엄청나게 아프다는 것. 그러니까 모두에게 정답은 아니라는 점까지. 생리량을 줄이는 대가로 입 주위 여드름을 얻은 동기는 생리를 하기 싫다는 이유로 받을 시술은 아니라고 조언했지만 ‘생리냐, 여드름이냐’ 선택지 앞에서 여자들은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시술의 부작용을 따지기 앞서 생리 중단에 대해 떠오르는 본질적 의문이 있었다. 생리는 자연스러운 증상인데 억지로 막으면 몸에 해롭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노르웨이에서 활동하는 의사 니나 브로크만과 엘렌 스퇴켄 달은 저서 <질의 응답>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매달 생리를 하는 게 몸에 좋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점막이 매달 성장하지 못하도록 미리 막는다면 생리도 의미가 없다. 생리는 결과일 뿐 생리 자체가 몸에 좋은 건 아니다. 생리는 그저 다달이 피를 좀 잃는 일일 뿐이다. (중략) 오늘날 우리는 아이를 낳을지 말지부터 선택하고 낳는다면 얼마나 많이 낳을지도 통제한다. 현대 여성에게는 생리가 본질적인 생물학적 가치를 가진 일은 아니다.”

우리가 생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자격 요건으로서 신성시함과 동시에 감춰야 할 부끄럽고 불결한 것으로 여긴다. (역사는 생리를 혐오했다. 성경에는 출혈하는 여성을 만지면 그날은 온종일 불결한 상태가 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생리 중인 여성을 강제로 움막에 격리하고 있다.) 물론 매달 미끄덩한 붉은 피를 마주하는 일은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하지만 생리혈은 생명수도 불결한 피도 아닌 자궁에서 나온 피와 점막일 뿐이다. 생리로부터 감정을 걷어내고 생물학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의사들이 생리에 대해 쓴 책을 읽으면서 생리에 대한 감정이 대단히 정돈되는 경험을 했는데 한 번쯤 해보길 추천하고 싶다. 실제로 자궁에서 일어나는 일을 들여다보고 나니 생리는 극복하고 개선해야 하는 증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해졌다. 생리가 동반하는 극심한 생리통, PMS까지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어떻게 통증과 고통이 자연스러울 수 있단 말인가. 의학은 생리를 해야 하는 우리 몸이 아프거나 불편하지 않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았어야 했다. 여자라면 모두 겪으니까,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니까 고통을 참으라는 안일한 태도 대신 말이다.

생리를 선택하겠다는 움직임을 두고 세상은 많은 걱정을 내비친다. 하지만 이 칼럼을 읽고 미레나 시술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새벽 6시부터 산부인과에 긴 줄이 늘어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완경까지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생리를 견딜지 고민을 시작한 나처럼 당신도 그 선상에 서 있으리라 생각한다. 몸에 기구를 넣는 일을 가볍게 생각할 당사자는 많지 않다. 녹색병원 산부인과 윤정원 과장은 생리는 자신의 몸 주기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라고 조언한다. “현대인들은 생리 공결제를 쓰기 힘들고 수면 시간은 불규칙하고 신체를 컨트롤하기 힘들어요. 차선책으로 피임약이나 피임 시술을 찾는 선택에 대해 비난할 수 없어요. 필요하다면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동안 성교육도, 생리에 관한 정보도 부족했어요. 생리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자신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알아야 해요. 선택지와 그에 따른 득과 실을 알아야 정말 주체적으로 살 수 있어요. 본인의 생리 주리를 관찰하고 가임기를 계산하고 피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 자신의 몸을 사랑할 수 있는 힘 아닐까요.” 우리는 전보다 생리를 똑똑히 바라볼 것이다.

생리컵이라는 선택지로 질의 길이를 처음 재봤고, 낙태죄 폐지를 위해 외쳤던 구호 “My Body, My Choice!”에 대한 세상의 답변을 들었다. 미레나라는 신세계는 내 몸에 생기는 일에 대해 주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했다. “모든 것은 바뀌고, 모든 것은 움직이고, 모든 것은 회전하고, 모든 것은 떠오르고 사라진다”고 했던 프리다 칼로의 말이 떠오른다. 먼 길을 돌아 생리 선택권이 주인에게 돌아왔다.

SORRY! I’M ON VACATION
그래픽 디자이너 우유니게가 피가 연상되는 빨간 도형으로 채워진 큰 네모기둥으로 ‘일시 정지’ 기호를 표현했다. 여성의 몸과 생활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제목은 부재중 자동 메시지처럼 휴업 중인 자궁을 의미한다. “안녕하세요? 자궁입니다. 개인 사정으로 임시 휴업하게 됐습니다. 잊을 만하면 찾아가는 서비스, 월간 피바다는 구독 해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