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뜨거운 중동의 맛

2019.06.21

by VOGUE

    뜨거운 중동의 맛

    모로코를 포함한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음식이 우리 식탁의 중앙에 놓였다.

    7가지 향신료로 구운 양고기 요리, 레바논 갈릭 소스인 툼(Toum)을 곁들인 닭꼬치, 홍고추 디핑 소스 무하마라로 차린 레바논 테이블.

    최근 한 파티의 초대장을 받고 깜짝 놀랐다. 바카라, 벤츠, 로얄살루트 등의 국내외 프리미엄 브랜드가 모여 뜻깊은 시간을 만들거나 자선 행사를 여는 부정기적 모임 ‘The Club’의 파티 주제가 ‘모로코’였기 때문이다. 주한 모로코 대사관과 진행하는 행사는 ‘모로칸 나잇’이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아직 참석 전이지만 초대장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흔한 주제도 아니거니와, 지금 이 시점에서 프리미엄 브랜드의 모임이 ‘모로코’를 향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에게 그리고 아마 음식을 좋아하는 미식가들에게 지금 모로코는 가장 ‘뜨거운’ 나라다. 모로코를 포함한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음식이 새로운 트렌드로 감지되는 중이라서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음식을 한마디로 묶는 일은 쉽지 않다. 모로코, 알제리, 리비아, 레바논, 터키, 이스라엘 그리고 그리스가 트렌드 안으로 뭉쳐져 들어온다. (그리스의 식문화는 유럽에 더 가깝지만 사용하는 식재료나 조리 방식은 중동에 더 많이 겹쳐 있다.) 최근 뉴욕이나 런던에서 새로 관심을 받으며 오픈하는 레스토랑도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음식을 주력으로 하는 곳이 많다. ‘모던 중동 요리’를 표방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요즘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구할 수 없다. 위에서 나열한 나라를 세계지도상에 위치를 찍어보면 지중해를 중심으로 좌우로 퍼져 있는데, 대륙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나라지만 음식에선 공통된 특징이 있다. 지중해에서 구할 수 있는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를 최대한 간단하게 조리한다는 것. 통곡물, 채소, 과일, 올리브 오일, 생선과 같은 지중해식 다이어트에 포함되는 몇 가지 요소로 이 지역 음식 문화의 공통점을 가늠해볼 수도 있다. 지중해에서 얻을 수 있는 같은 식재료를 나라마다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살펴보면 이 지역 요리 특징이 조금 더 손에 잡힌다. <지중해 나라의 음식 문화(Food Culture in the Mediterranean)>를 보면 병아리콩이라는 하나의 식재료가 어떻게 다르게 해석되는지 제시돼 있다. 모로코에선 각종 향신료, 양고기, 채소를 넣고 스튜를 끓인다. 레바논에선 병아리콩에 타히니라고 부르는 참깨 페이스트, 레몬, 마늘을 넣고 후무스를 만들어 먹고, 시리아에선 병아리콩을 익혀서 매콤한 토마토 소스, 가지, 주키니를 더해 찜 요리처럼 끓여 먹는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는 사실 정서상으로 우리와 아주 먼 나라여서, 음식 역시 감당하기 힘든 ‘이국적인 맛’일 것 같지만, 의외로 맛에서는 우리 입맛에 착 맞아떨어진다는 반전의 마력이 있다. 이름도 다 외기 어려운 향신료를 다채롭게 사용하지만, 그것을 모두 합쳐 완성된 한 그릇의 음식에선 의외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레바논 음식점이나 이스라엘 음식점에 들어가서 고향의 맛을 느꼈다는 사람들도 꽤 많다. 지난해 방문한 암스테르담에서 입에 착 붙는 맛으로 나를 놀라게 한 식당 역시 ‘Raïnaraï’라는 이름의 북아프리카 요리 전문점이었다. 호주 멜버른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음식 역시, 그 많은 로컬 푸드를 제치고, 향신료를 듬뿍 바른 그릴 치킨과 함께 나온 후무스였다. 요리를 좀 즐기는 이들이라면 의외로 입맛에 딱 맞는 이 지역 요리에 더 크게 공감할 테다.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보고 처음에는 생소한 향신료, 처음 보는 허브, 갖가지 콩으로 하나씩 더듬더듬 요리를 시작하지만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거부할 수 없는 익숙한 향에 매료되고 만다. 처음 쿠민을 주방에 들여놓고 요리에 사용했던 때가 생각난다. 향신료 뚜껑을 뚫고 나오는 요상한 ‘암내’ 때문에 손사래를 치며 저 멀리 치워두었는데, 하루는 쿠민, 파프리카 가루, 코리앤더 시드를 적절하게 섞어서 셰르물라 소스를 만들었더니 뭐라도 당장 구워서 이 소스를 올려 먹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의 향이 완성됐다. 개별의 향신료는 이역만리 떨어진 나라에서 온 유물처럼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이를 섞어 하나의 맛을 완성했을 때는 갑자기 옆집 밥상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게 북아프리카와 중동 요리의 특징이기도 하다.

    쿠민, 펜넬 시드, 터메릭과 같은 향신료를 대담하게 활용해 선명한 차별화를 만든다는 것 외에도 토마토와 가지 같은 태양의 채소(Sun-Kissed Vegetable)를 많이 쓰고 허브를 거의 주재료처럼 잔뜩 넣는다는 특징도 있다. 소고기보단 양고기가, 고기보단 생선이 더 많이 등장한다. 또 신선한 재료를 올리브 오일만으로 양념해 바로 쓰거나, 다양한 재료를 비빔밥처럼 투박하게 훌훌 섞어서 샐러드로 내기때문에 섬세하거나 예쁘지 않아도 푸짐하고 간편하다. 넷플릭스의 <소금, 산, 지방, 불>은 이란 이민자 출신의 셰프 사민 노스랫이 등장하는 음식 다큐멘터리다. ‘셰 파니스’와 같은 내로라하는 파인다이닝에서도 일한 경력의 그녀가 세계를 돌며 요리의 기본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에 대해 탐구하고 탐미하는 내용이다. 중간 중간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배운 요리법을 다른 요리에 적용하거나 중동 음식의 특징이 듬뿍 들어간 즉석 샐러드를 만드는데, 다른 요리와 유연하게 잘 섞이는 것은 물론이고 파인다이닝에서부터 홈 쿠킹까지 활용도도 아주 높다. 그녀의 이런 활약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요리가 미식업계의 스타로 떠오르는 전주곡처럼 느껴진다. 지중해식 채식 요리로 유명한 이스라엘 출신 셰프 요탐 오토렝기는 사민 노스랫보다 더 일찍 서구 미식 문화 한복판에 중동 요리를 끌어들인 요리사다. 지난해 10월 오토렝기와 노스랫이 만나 대담하면서 중동 요리의 간결함이 앞으로 어떻게 미식시대를 이끌어나갈지에 대해 논의한 적도 있다.

    요즘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북아프리카와 중동 요리에 익숙해져 있다. 얼마 전 악마의 비주얼로 인스타그래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샥슈카도 중동 지역의 요리다. 피타 브레드와 후무스도 마켓컬리와 같은 온라인 배송 마켓에서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고, 쿠스쿠스도 레스토랑에서 자주 발견된다. 샌드위치부터 닭 요리까지 두루 사용할 수 있는 하리사 소스는 독특한 요리를 즐겨 하는 ‘홈쿡’들에게 활용도가 높아 인기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는 지난 4월, 약 2주간 그랜드 하얏트 두바이 셰프를 초청해 ‘중동 미식’ 행사를 개최했다. 북아프리카식 그릴 치킨 요리부터 사프란을 넣고 끓인 음료까지, 나라를 넘나드는 중동 요리를 선보였다. 호텔에서 다른 나라의 음식 문화를 팝업 형태로 소개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이번 행사에서는 중동 요리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단순히 색달라서 흥미로운, 한번 경험하고 마는 이국의 요리라고 받아들인다기보다 새로운 형태의 미식 문화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주변을 둘러보면 새로 생긴 북아프리카와 중동 요리점도 꽤 많다. 이태원을 중심으로, 한국으로 이민 온 현지인이 고향의 맛을 표현하는 레스토랑만 한두 군데였지만 이제 외식 트렌드라고 불러도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 가게가 늘어났다. 논현동 ‘칠아웃’은 선명한 그릇으로 비주얼까지 북아프리카를 재현한 캐주얼 레스토랑이다. 청담동 ‘스피티코’는 후무스와 샥슈카, 지중해식 브런치를 선보이는 깔끔한 카페 스타일이다. 이태원의 ‘그릴도하’와 서울 시내 몇 개의 분점을 가진 ‘허머스키친’도 후무스를 전문으로 다룬다. 이태원 ‘모로코코’는 모로코 전통 스튜인 타진을 메뉴에 올렸다. 다른 어떤 지역의 요리와도 특징이 겹치지 않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요리는 그 자체로도 특색이 확실하고 맛에서는 포용력이 높으며 사진으로 찍기에 비주얼까지 완벽한 ‘요즘 시대의 음식’으로 꼽기 충분하다. 이제 쌀국수 먹으러 가듯 피타 브레드에 후무스를 곁들이러 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Alex Lau
      글쓴이
      손기은(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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