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된 이탈리아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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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된 이탈리아 빵집

2019-06-12T04:20:52+00:00 2019.06.11|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 있나요? 600여 년 전 조선은 건국 초기인 서기 1419년 기해년(己亥年)이었습니다. 조선의 4대 왕으로 세종이 즉위한 이듬해이자 두 번째 대마도 정벌이 있었던 해죠.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가 태동하기 시작했고 제노바의 콜럼버스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아주아주 먼 옛날이라는 말입니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중에는 재미있는 곳이 많은데요. 오늘 소개하고 싶은 곳은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주(La Puglia)의 알타무라(Altamura)라는 도시입니다. 알타무라는 ‘높은 벽’이라는 뜻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이탈리아어로는 페데리코 2세)가 약 1000년 전, 높다란 언덕 위에 크림색 석회석으로 높은 성벽을 둘러 세운 성채 도시입니다.

사실 이곳이 사시사철 여행객으로 북적이는 유명 여행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알타무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 있으니 바로 ‘빵’입니다. ‘빵의 도시’라는 애칭을 가진 알타무라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드넓은 밀밭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알타무르자(Alta Murgia)라고 불리는 넓디넓은 구릉지대의 밀밭 언덕은 이탈리아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장대한 스케일과 독특한 풍경을 선사하죠. 무르자 평원은 수백만 년 전 바다 아래에 있던 땅이 지질 활동으로 솟아오른 지형입니다. 덕분에 토질이 미네랄과 양분을 가득 머금어 천연 영양분이 풍부한 최고급 밀가루가 생산되는 겁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알타무르자.

이곳 무르자의 대표 품종이 바로 듀럼밀입니다. 많이 들어보셨죠? 파스타 만들 때 주로 사용하는 밀의 종류로, 듀럼밀을 굵게 갈아 만든 밀가루를 세몰리나(Semolina)라고 하죠. 글루텐이 적고 소화가 잘된답니다. 질 좋은 밀가루로 만든 파스타뿐 아니라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올리브 오일 또한 풀리아주의 특산품인데요. 풀리아주에서 제조하는 올리브 오일은 맛과 향이 강해 이탈리아 전체에서 생산되는 올리브 오일의 40% 이상을 이 지역에서 만듭니다.

이렇듯 몸에 좋은 세몰리나와 올리브 오일로 반죽한 빵이 알타무라에 빵의 도시라는 명성을 가져온 거죠. 인구 7만 명의 작은 도시 곳곳에는 오래된 오븐이라는 뜻의 ‘안티코 포르노(Antico forno)’ 또는 빵집이라는 뜻의 ‘파니피치오(Panificio)’라고 불리는 3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크고 작은 빵 가게가 즐비합니다.

그중에서도 산타 키아라 빵집(Antico Forno Santa Chiara)은 600년 역사를 자랑합니다. 알타무라 성벽 근처 골목길 모퉁이를 돌다 보면 낡고 작은 가게 입구를 발견하는데요. 나무 현판에 갈겨쓴 듯한 ‘산타 키아라 1423’을 발견하지 못하면 600년 동안 빵을 구워온 역사 깊은 빵집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는 사실!

산타 키아라의 주인이자 제빵사인 비토 마첼라는 600년 된 화덕을 지키는 유머가 넘치는 남부 이탈리아인입니다.

산타 키아라의 주인은 제빵사 비토 마첼라(Vito Macella)입니다. 그는 가게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소박하지만 역사 깊은 화덕 앞에서 매일 일하는데요. 이 화덕은 1423년에 만든 것입니다. 매일 아침, 화덕 옆에 쌓아둔 참나무 장작을 태워 이 거대한 화덕을 예열하죠. 빵이 구워지는 온도를 유지하는 데에는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알타무라의 빵은 고품질의 현지 재료를 사용해 전통 방식에 따라 만들죠. 제빵사 비토는 좋은 빵을 위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재료로 물과 세몰리나 밀가루를 꼽습니다.

산타 키아라 빵집에서 구운 600년 전통 레시피의 빵.

값비싼 정제수와 세몰리나 밀가루만 있으면 어디서든 품질 좋은 빵을 구울 것 같죠? 알타무라의 빵은 오직 알타무라에서만 만들 수 있습니다. 원산지 명칭 보호(D.O.P.)에 따라 엄격한 제조 및 품질 기준에 의해 제조한 빵만 ‘알타무라 빵’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알타무라 빵은 중세 시대부터 거의 변함없이 이어 내려온 재료와 기술로 만듭니다. 빵집 산타 키아라의 600년 된 오븐에서 구운 알타무라 빵은 약 1/4인치 두께의 진한 갈색 껍질과 촉촉하고 쫄깃한 식감이 일품. 이런 독특한 특징 때문에 한 달이 지나도 빵이 변질되지 않고 맛과 풍미를 유지합니다.

비토가 화덕에서 구워 던져놓은 먹음직스러운 포카치아.

산타 키아라에선 포카치아, 타랄리 등 다양한 빵을 굽지만 제철 재료와 향신료의 사용 여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빵을 먹을지 결정장애에 시달릴 때면 주인장 비토에게 그날 가장 맛있는 빵을 추천받는 것이 좋습니다. 이 오래된 빵집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한 식사는 이탈리아에서 맛본 식사 중 최고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빵순이, 빵돌이 여러분, 알타무라로 떠날 준비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