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크리스틴 스튜어트’라는 우주

2023.02.26

by 송보라

    ‘크리스틴 스튜어트’라는 우주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세상이라는 우주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성찰을 멈추지 않는다. 변신이 아닌, 새로운 발견을 위해 배우와 감독으로 살고자 한다.

    자수, 금세공 코스튬 주얼리 제작자, 구두 장인, 플리츠 장인, 모자 장인… 이들의 전문성이 패션 크리에이티브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메티에 다르 컬렉션(The Métiers d’Art Collection)’은 샤넬 하우스의 명예로운 파트너인 이들 작업에 바치는 컬렉션이다. 레터링과 상형문자를 프린트한 슬리브리스 톱과 정교하게 제작된 크리스털 주얼리를 착용한 샤넬 앰배서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쿨한 매력을 발산한다.

    나는 통의동에 자리한 아름지기 재단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Kristen Stewart)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집트 보석 원석을 이어 만든 듯한 샤넬 드레스는 초여름 햇살보다 반짝거렸고 크리스틴의 금빛 머리는 높은 파도처럼 치솟아 있었다. 아름지기 재단은 겉에서 볼 때는 고운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내부로 들어와 한 층만 올라가면 기왓장까지 온전히 갖춘 한옥이 등장하는, 전통과 현대가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곳이다. 테라스에 기댄 그녀 뒤로 경복궁 담벼락이 보였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관광객들이 왈츠를 추듯 경쾌한 걸음으로 등장했다 사라졌다.

    한옥에서 선보이는 샤넬의 스팽글 드레스. 골드와 검정 스팽글이 그래픽적으로 빛을 발하면서 파워풀한 실루엣을 연출한다. 스팽글 공방과 캉봉가의 레디 투 웨어 아틀리에의 절묘한 디테일이 풍부하게 섞였다.

    변화가 배우의 숙명이라면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누구보다 그 숙명을 창의적으로 수용하며 성장한 배우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 <패닉 룸>에서 조디 포스터와 함께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던 짧은 머리 소녀가 크리스틴이라는 사실은 그녀가 이야기에 스며드는 재주를 타고났다는 작은 단서였다. 크리스틴의 행보가 흥미로워지기 시작한 시점은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슈퍼스타가 된 이후부터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나 배우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슈퍼스타가 되기라도 한 듯주체적 행보를 이어갔다. <런어웨이즈>에서 70년대 전설적 여성 로커 조앤 제트를 연기하더니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에서는 왕자를 기다리는 대신 칼을 들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했다. 크리스틴이 배우로서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확실히 보여준 작품은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였다. 감독은 할리우드 셀러브리티 역할을 제안했지만 크리스틴은 매니저 역할을 원했다. 작품에서 내면의 욕망과 치사함에 대하여, 삶에서 추구해야 하는 태도에 관하여 끊임없이 질문했던 크리스틴은 그 질문의 크기만큼 훌쩍 성장했다. 한 인물에게 비로소 완벽하게 밀착한 배우에게 세자르상을 비롯, 유수의 영화제는 최우수 조연상을 안겼다.

    다양한 톤으로 완성된 골드 컬러는 강렬한 태양이 이글거리는 이집트 사막 한가운데도,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한옥에서도 은은하게 잘 어울린다. 그래피티 프린트의 램스킨 블루종과 저지 소재 톱에 메탈릭한 골드 램스킨 팬츠를 스타일링했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영화를 찍는다는 그녀는 <이퀄스> <카페 소사이어티> <빌리 린의 롱 하프타임 워크> <퍼스널 쇼퍼> 등을 거치며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과 타자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는 중이다. 2017년에는 단편 <컴 스윔>을 연출하기도 했다. 예술이란 현실에서 인간의 관심을 끄는 것의 미학적 재현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작품은 예술이었다. 차기 연출작은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한 <물의 연대기>가 될 것이다. 최근작 <어떤 여자들>과 <리지>에서 여자들의 삶에 골몰한 그녀는 하반기에 <미녀 삼총사>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를 소개하며 “여자들이 모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크리스틴은 확신에 차 보였고 강인해 보였다. 삶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라는 동력.

    오방색 혹은 보자기를 닮은 삼각 패턴의 캐시미어 소재 풀오버와 화이트 악어가죽 무늬의 가죽 팬츠.

    성수동에서 열린 샤넬 2018/19 파리-뉴욕 공방 컬렉션을 감상했다. 어떤 인상을 받았나.

    칼 라거펠트의 마지막 쇼를 본 것만으로도 너무 큰 영광이었다. 온라인에서 본 적 있는데도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심지어 컬렉션 의상 몇 벌을 입어보기도 했지만 쇼를 보며 시간이 얼마나 상대적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 위로가 되었다. 누가 그리우면 그가 남긴 물건과 사람들을 통해서 지나간 인연을 다시 잡으려고 하지 않나. 누군가가 떠나도 시간은 늘 상대적이고 계속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젯밤에는 모든 것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고대 이집트를 현대에서 다시 발견하고 또 뒤집어 상형문자를 다시 쓰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칼의 마지막 공방 컬렉션이라 의미가 있었다. 칼은 귀족적이라 그 앞에서는 살짝 주눅도 들었지만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몸을 앞으로 빼고 더 열심히 쇼를 보았다. 정말 좋았다. 샤넬과 함께한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래픽적인 캐시미어 소재 풀오버와 빛에 따라 오묘한 빛을 발하는 핑크 그러데이션 양가죽 팬츠를 스타일링했다.

    샤넬은 20세기 여성을 가장 자유롭게 해준 브랜드다. 2013년부터 샤넬의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는데 샤넬의 어떤 정신을 가장 사랑하나.

    나를 럭셔리 브랜드의 뮤즈로 볼 사람들은 별로 없을 거다. 어릴 때 나는 지금 이 상황을 꿈조차 꿔본 적 없다. 솔직히 패션계와 함께 작업하기 전에는 패션은 피상적이고 가볍다고 여겼다. 그런데 칼 라거펠트나 비르지니 비아르와 작업하면서 단 한 번도 내가 무엇인가를 팔고 있다거나 다른 사람인 척해야 하는 부담을 가져본 적 없다. 샤넬이 지정한 아티스트와 작업할 때도 그랬다. 샤넬과 교류할 때면 영화를 찍을 때와 똑같이 내 안에 있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어 참 기쁘고 충격이었다. 쿨하고 진정성 있는 즉흥적 프로젝트는 신성하다. 나에게 예술은 종교이고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정말이지 놀랍고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샤넬에게 반한 또 다른 이유는 소중한 것을 지키면서 일하는 그들의 태도다.

    12월에 전통적으로 선보이는 공방 컬렉션은 샤넬의 역사 혹은 현재의 순간으로 이어지는 목적지를 중심으로 한다. 이집트가 영감의 원천이었던 이번 컬렉션은 세계 여행 중 서울의 한여름 밤을 장식했다. 특히 가브리엘 샤넬이 무한한 애정을 쏟았던 골드가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빛을 발한다. 블랙 & 골드 스트라이프 패턴의 시퀸 소재 코트는 빅 숄더가 특징으로 전사의 갑옷 같은 이미지다. 매니시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입자 그 매력이 배가됐다.

    하반기에 <미녀 삼총사>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00년에 카메론 디아즈, 드류 배리모어, 루시 리우가 출연했던 맥지 감독의 <미녀 삼총사> 리부트작이다.
    〈미녀삼총사>는 당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서던 대표적인 영화였다. 독립적이고 능력 있는 여성들을 조명한 귀한 작품이기도 했다. 당신에게도 이 영화에 대한 추억이 있나. TV 시리즈를 본 적은 없지만 원작 영화를 정말 좋아했다. 둘 다 내가 성장할 때 나왔다.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는 여자들이 함께 호흡하면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는지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 여자들은 힘이 세진 않지만, 괜찮다. 힘쓰지 않고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기 때문이 다. 여자들이 뭉치면 뭐든 할 수 있다. 쿨한 남자도 있기 때문에 너무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흔들리지 않는 부드러운 강인함이 육체적 힘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자 형제들밖에 없는데 오빠들이 모두 나에게 꼼짝 못한다. 물론 오빠들도 나를 지키기 위해 싸워주겠지만 내가 오빠들을 챙겨준다고  여긴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참 멋있다. 주인공들은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남자처럼 보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많은 액션 영화를 보면 대체적으로 밥(Bob)이라는 주인공을 수(Sue)로 바꿀 수 있는데(남자든 여자든 다 같은 캐릭터라는 뜻) 우리는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쿨한 또 다른 이유는 ‘미녀 삼총사’만 절대 강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 세계 여성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서로 도와주고 협력해 악과 싸운다. 정말이지 재미있고 따뜻한 영화다. 촬영하면서 다른 두 여자 주인공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더 커졌다. 원작 영화를 보면 미녀 삼총사와 친구가 되고 싶지 않나. 완성된 영화를 보며 나도 같이 나온 두 명의 여자 주인공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영화를 보면 진짜 우리 셋이 친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녀들이 보면 ‘우리가 힘을 합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할 것 같다. 절친과 함께 있을 때 드는 기분 말이다. 요즘 이런 메시지가 필요했는데 시의적절하게 잘 나온 것 같다.

    뉴욕, 몬테카를로, 런던, 모스크바, 상하이, 비잔틴, 에든버러, 로마, 파리, 함부르크 등을 순회한 공방 컬렉션. 잠시 불시착한 서울에서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영감으로 가득한 전통 한옥에 어울리자 매력적인 ‘서울 씬’이 연출됐다.

    최근 몇 년간 출연작을 보면 캐릭터 자체가 당신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내면의 강인한 힘을 지닌 인물들이 기억난다. 어떤 특징을 가진 캐릭터를 좋아하나.

    항상 어려운 질문이다. 모든 캐릭터에 내가 들어가 있다. 자기 몸과 영혼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뛰어난 배우들은 자신과 정말 다른 캐릭터를 맡아도 공감하면서 연기한다. 캐릭터가 왜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해도. 그러면서 배우와 캐릭터는 가까워진다.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라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은 없다. 모두 착하게 살고 싶어 한다. 내가 끌리는 캐릭터들은 항상 답을 찾고 있다. 사실 내가 선택한 캐릭터를 보호해주고 싶어 강한 모습을 보여줬는지 모른다.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들은 문제가 많았다. 약하고 겁도 많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버텼다는 점이 강인해 보일 수 있겠다. 나는 작품이 좋아야 한다. 다들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서로 모방하기도 하는데 때로는 황당하기도 하다. 어떤 대본은 영화 광고 같다. 그러다가 간혹 꼭 영화로 만들어야 하는 대본을 읽게 된다. 내가 연기할 만한 캐릭터가 없어도 이 영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대본이 있다. 뭐가 진짜이고 아닌지를 확실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작품 선택이 어렵지는 않지만 항상 잘되지는 않는다.

    “이집트 문명은 항상 저를 매료시켰죠. 거기서 비롯된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어 구체화했습니다.” 칼 라거펠트는 이집트의 정신과 샤넬 공방의 특별한 노하우를 결합시켜 이번 컬렉션을 완성했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골드 스트라이프의 검정 드레스는 건축미마저 느껴진다.

    배우로서 지금 어느 위치에 와 있나.

    연기할 때 나 자신이 통제가 안 된다. 어쩌면 나를 찾기 위해 완전히 몰입하고 있는지 모른다. 연기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정말 감독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연출을 하면서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데 연기를 안 했다면 감독이 되고 싶은 마음도 몰랐을 것이다. 잘났기 때문에, 자기도취에 빠져 감독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나의 신념으로 배우와 스태프를 인도해서 한 여정을 같이 걷고 싶다. 우리가 왜 지구에 태어났는지에 대한 명상이 될 것이다. 연기와 연출의 차이는 통제다. 물론 나는 둘 다 좋아한다. 힘을 교류하고 완전히 몰입하는 느낌이 좋다. 배우로서 어디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카메라 뒤로 자리를 옮겨 감독이 될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연기하면서 좋은 경험을 했다. 딴 사람인 척하는 게 조금 이상하기도 하지만 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봐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연기는 옛날부터 존재했다. 연기를 통해 배운 것은 어떤 것에 꽂혀 집착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어떤 책을 읽었는데 좋았다면 또 읽고 싶고 친구에게 주고 싶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다 주인공이 된 듯 그의 옷을 입고 그 사람의 말을 하고 싶다. 영화는 문학과 아이디어와 어떤 주제를 묶을 수 있는 가장 관대한 끈이다. 영화를 만드는 건 학교에 다니는 것 같다. 이 일을 안 했다면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데뤼 공방의 스카라브 모티브 단추를 장식한 실크 트위드 재킷은 금색 가죽이 어울렸다. 샤넬 클래식과 고대 이집트의 초월적 조우!

    단편 <컴 스윔>를 선보였고 장편 <물의 연대기> 연출을 앞두고 있다. 감독일 때 당신은 배우로서 연기할 때와 어떻게 다른가.

    결과는 다르지 않지만 결과로 가는 길은 다르다. 배우와 감독이 다르지 않다. 최고의 감독들이 이미 그 길을 거쳐 나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다. 큰 차이는 없다.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가 되고 싶었고 새로운 발견을 원해서 감독이 되고 싶다. 어떤 교훈이나 아이디어를 포장해서 전달하기 싫다. 남들보다 내가 뭘 더 알겠나. 일련의 배우는 과정이고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자기 성찰을 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살 수 있지만 나는 생각하면서 일하고 싶다. <미녀 삼총사>는 재미있는 오락 영화니까 깊은 내용은 없지만 끈끈한 정이 있고 영화에 대한 믿음이 있다. 내가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도 경험할 수 있게 돕고 싶다. 일하다 보면 타성에 빠질 수 있고 정체될 수 있다. 감독이 되면 조금 더 좋은 배우가 되지 않을까. 같은 일을 계속하다 보면 벽에 부딪히고 굳은살도 박이는데 그걸 확 떼고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시작하고 싶다. 감독과 배우는 서로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캐주얼하게 스타일링한 데님과 샤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코스튬 주얼리의 조합. 저지 톱에는 이집트 상형문자와 브랜드 로고가 그래피컬하게 새겨져 있다. 자수 장식 데님과 함께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분방한 매력이 어울려 그야말로 ‘Cool & Young’.

    <물의 연대기>는 어떤 마음으로 연출을 결심했나.

    어떤 책이 마음에 들어오면 내 얘기처럼 느껴진다. 예술을 할 때 창작자와 같은 경험을 할 순 없지만 그것이 투사되면 내 것이 된다.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자서전 <물의 연대기>는 오랜만에 읽은 책이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겨 있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새 언어를 배우는 것 같았다. 우리는 글을 쓰는 방법이 너무 비슷한데 각색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사람마다 예술을 경험하는 방식이 다르다. 정답도 없고 책을 각색하는 데 정도도 없다. 나는 내 방식으로 이 작품을 너무 좋아했기에 본 그대로 디자인하고 싶었다. 리디아와 함께 책과 대본을 읽으면서 왜 여기 이것이 들어가야 하나 혹은 빠져야 하나 끊임없이 대화했다. 작품의 승수효과를 위해 우리 모두 이 일을 한다. 살다 보면 하나의 만남으로 갑자기 연쇄적으로 여러 일이 벌어진다. 한 프로젝트 덕분에 다른 프로젝트가 생긴다. 너무 설레는 일이다. 나는 이렇게 봤는데 배우에게 넘기면 배우는 자기 시선으로 연기한다. 촬영감독은 자기 시선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여러 시각이 곱해지면 우리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고 외로움이 조금 덜어진다.

    공방 컬렉션의 핵심이기도 한 르사주 공방이 완성한 스팽글 드레스! 다양한 금빛 메탈, 레진, 글래스, 스팽글 등으로 완성된 드레스엔 검정 오간자를 장식했다.

    지난해 칸 영화제 레드 카펫에서 하이힐을 벗은 일은 여전히 회자된다.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의 숫자가 현저히 적은 상황을 알리기 위해 침묵 행진도 했다. 어떤 이슈에 대해 목소리 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편인가. 배우로서 영향력을 어떻게 활용하고자 하나.

    나는 열심히 일하고 싶다. 평소 동년배 친구들과 존경하는 멘토들과 친하게 지내는데 이들을 존경하고 전적으로 지지한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운 좋게도 작품을 통해서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열심히 일할 것이다. 내 소신은 작품 속에서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목소리를 낼 때마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싶어 용기를 많이 얻었다. 소신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뭔가.

    나는 지금 모든 사람이 누리지는 못하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도전적 사람들,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이 자유는 거저 얻은 것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한 번도 나 자신을 배신했다는 생각을 한 적 없다. 물론 실수는 했다. 개인적인 실수, 일과 관련된 실수,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사실 공과 사가 구분이 안 된다. 나에게는 일 자체가 지극히 사적인 것이니까. 직감을 믿고 움직이는 편인데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최근에 가장 영감을 받은 것에 대해 공유해줄 수 있나.

    조금 전에 친한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친구가 어젯밤에 들은 내용을 보내줬다.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간단한 말인데 위로가 된다. “Everything is Nothing.” 많이 들어본 말인데 ‘Nothing is Everything’으로 바꿀 수도 있다. 인생은 내가 하기 나름이고 내 스토리도 내가 쓸 수 있다. 내 몸도 하나의 스토리고 내 것이니까 내가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를 발견했을 때 펜을 잡고 있으면 뭐든 쓸 수 있고 그것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것이다.

      에디터
      손은영, 조소현
      포토그래퍼
      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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