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바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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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바운스

2019-07-05T22:34:41+00:00 2019.07.10|

‘로컬’ 시대다. 서울이 아니라 동네, 골목 단위로 문화가 형성되고 팬이 몰린다. 지역성을 반영한 음식, 상점, 문화 콘텐츠에 관심을 보인다. 만국 공통 유행이 선점하는 클럽도 마찬가지다. 샌프란시스코, 뉴욕, 발리, 베를린에서 만난 클럽 신은 지역색과 현지인의 개성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뜨겁다. 그곳에 진짜 클럽 문화가 있다.

SAN FRANCISCO | 클럽계 협동조합

샌프란시스코에서 뜨거운 클럽 퍼블릭 웍스는 스테이지별로 다른 스타일의 디제잉과 쇼가 펼쳐진다.

샌프란시스코 클럽을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주제는 커뮤니티다. 가장 뜨거운 클럽 퍼블릭 웍스(Public Works)의 대표 제프 휘트모어(Jeff Whitmore)는 이곳을 시청 혹은 교회에 비유한다. “퍼블릭 웍스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의 디제이, 예술가, 팬들이 함께 만든 공간입니다. 한마디로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그 자체죠.”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오래된 게이 클럽이기도 한 더 스터드(The Stud)의 매니저 테라 헤이우드(Terra Haywood)는 이것이 샌프란시스코의 특별함이라고 말한다. “클럽에 오는 사람들은 서로를 다 알죠. 늘 같이 어울리고 춤추고 음악을 즐겨요.” 더 스터드는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이 모여 만든, 샌프란시스코 최초의 협동조합 클럽이다. CEO는 없고 세 명의 조합원이자 매니저가 회의를 구성하고 운영한다. “이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지역사회의 구성원에게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고용을 제공하도록 클럽이 유지될 정도면 되죠. 물론 그렇게 되려면 세계적인 디제이가 먼저 연락할 만큼 멋진 음악과 파티를 아우르는 클럽이 되어야죠.” 매주 금요일마다 지역에서 알아주는 드래그 쇼를 열고, 대담하지만 자극적이기보다 예술적인 퀴어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샌프란시스코를 논할 때 비트 세대, 저항 정신, 퀴어 문화, 자유, 개성 등의 키워드가 빠지지 않는다. 그 특성이 나이트라이프에도 드러난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는 60년대부터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음악, 저항 정신이 깃든 음악을 선보인 곳입니다. 그 역사가 아직도 건재합니다. 이곳만의 이상하면서도 특이한 무언가가 있어요.” 샌프란시스코의 프로듀서이자 디제이 마크 슬리(Mark Slee)가 말한다. 클럽장 제프 휘트모어는 음식을 맛보려고 장거리 여행을 할 가치가 있다는 뜻인 미슐랭 3스타에 샌프란시스코 클럽을 비유한다. “샌프란시스코는 어느 곳보다 다양하고 활동적이며 독창적인 클럽 신이 있습니다. 당장 날아와 경험할 가치가 있는 곳이죠.”
이곳에선 뭘 입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더 스터드의 운영자 중 한 명인 비비안(VivvyAnne)은 기다란 가짜 코를 붙이고, 시퀸 장식을 겹겹이 레이어링한 드레스에 커다란 스니커즈를 신고 나타났다. “당신이 편안하고 자신감이 뿜어 나오는 스타일이라면 뭐든 상관없어요. 마음대로 입는다면 더 최고죠.” 그녀가 웃으면서 얘기하는 샌프란시스코 클럽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새벽 2시에 문을 닫아야 한다니까요. 오, 이건 샌프란시스코의 나이트라이프에 치명적이에요. 전 세계에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니까요. 미국의 다른 도시처럼 새벽 4시까지 주류 판매를 허용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진짜 자유를 맛보고 싶다면 당장 여기로 와야 해요.”

Mark Slee 마크 슬리

네바다주 블랙록 사막에서 열리는 최고의 축제, 버닝맨(Burning Man)에 10년째 참가한 아티스트이자 뮤지션.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주민과 아티스트의 활동을 지원하는 갤러리 헤론아츠(Heron Arts)를 운영한다. 페이스북에서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한 경험을 살려 3D 사운드 시스템을 개발하는 중이다.

시카고에서 나고 자라, 2005년 스탠퍼드를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2006년부터 2012년까지 페이스북에서 일했다. 그곳을 퇴사한 이유는 뭔가? 페이스북에서 굉장한 경험을 많이 했기에 운이 좋았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음악과 예술을 병행했지만 늘 아쉬웠다. 종일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 스트레스를 받고 에너지가 소진되던 2012년, 갤러리 헤론아츠 건물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전시와 이벤트를 열고 아티스트에게 작업할 공간을 내주고 싶어 퇴사를 결심했다. 몇 년 후에는 시카고에서 고등학교를 함께 졸업한 친구, 아티시(Atish)와 함께 레코드 레이블 ‘만주 마시(Manju Masi)’도 설립했다.
만주 마시의 뜻은 뭔가? 인도계 친구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는데, 그때 이모님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줬다. ‘Manju’는 그녀의 이름, ‘Masi’는 인도어로 이모를 뜻한다. 발음이 흥미로웠다. 친구 아티시와 내가 듀오로 디제잉할 때면 사람들이 이름을 묻곤 했는데, 그때마다 농담처럼 만주 마시라고 소개했다. 팀 이름은 약간 바보 같고 재미있길 바랐기에 이걸로 정해버렸다.
2013년에 헤론아츠를 설립한 이유는?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파티 열 공간을 원했다. 단순히 댄스 음악이 나오는 파티가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음악과 예술 작품이 조화를 이룬 파티를 원했다. 헤론아츠는 크게 두 분야를 지향한다. 전통 방식의 전시 공간으로서 프로 아티스트가 작품을 선보이고, 프로는 아니지만 자신의 작업을 내보이고 싶어 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헤론아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좋은 기억이 많지만 ‘The New Orleanian’이라는 뉴올리언스를 주제로 한 파티다. 갤러리 앞 작은 골목에서 뉴올리언스에서 온 브라스밴드가 연주를 하고 탭댄스를 췄다. 커다란 인조 나무를 세우고 나뭇가지에 작품과 새장을 걸어, 새들이 날아들어 한동안 이곳에서 지냈다. 핀치라는 새였기에, 그 후로 아내와 나는 서로를 핀치라고 부른다.
버닝맨에 지속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그 얘기를 하자면 책 한 권도 나온다(웃음). 지난해가 버닝맨에 참여하기 시작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버닝맨이 없었다면 인생이 어떨지 상상이 안 갈 만큼 의미가 깊다. 버닝맨은 예술과 음악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로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창의력과 기괴함을 모두 지닌, 불편하면서도 독특하지만 흥미로운 이벤트다. 첫해는 단순히 참가자의 입장이었고 두 번째 해에는 작은 LED 작품을 만들었다. 그다음 해에는 친구들과 함께 캠프를 만들어 참가했고, 이후에 다양한 캠프가 속한 ‘빌리지’를 만들며 대형 조형물을 만들어 선보였다. 아내와 연애 중이었는데, 양가 부모님을 버닝맨에 초대해 함께 논 적도 있다. 버닝맨을 매우 이기적인 이벤트라고도 한다. 설치 작품을 만들어놓고, 일주일 뒤 사막 한가운데서 완전히 불태워버리니까. 하지만 ‘낭비’가 아니라 ‘제멋대로’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어디를 가도 이런 경험은 할 수 없기에 언제까지고 함께하고 싶다.
현재 개발 중인 ‘3D 사운드 시스템’은 뭔가? 일반적 사운드 시스템은 양쪽에 스피커 두 개가 설치되어 듣는 사람이 소리를 한 방향에서만 듣는 개념이라면 개발 중인 ‘Envelope’라는 사운드 시스템은 듣는 사람을 둘러싸고 28개 스피커가 바닥, 중간, 천장 쪽에 설치된다. 그래서 디제이가 음원을 내보낼 때 여러 소리를 세세히 나눠 원하는 스피커에 전송할 수 있다. 뮤지션이 원하는 음악을 섬세하게 구현하도록 돕는 거다.
디제이로서 빠져 있는 음악 스타일은? 매우 곤란한 질문이다(웃음). 그동안 매우 많은 음악을 접해왔기 때문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하우스와 테크노의 중간. 딥 하우스라는 단어가 남용되어서 그렇게 설명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지만, 딥 하우스 멜로딕 뮤직이라 해도 좋겠다. 정확한 멜로디나 음성은 중요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한 소리에 관심이 많다. 그런 다양한 요소를 결합해 청자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다.
샌프란시스코 방문자에게 어떤 클럽을 추천하겠나? 퍼블릭 웍스, 몬아크 (Monarch), 그레잇 노던(The Great Northern), 앤드업(The Endup), 오디오(Audio) 등 많은 클럽이 있다. 특히 포노바(Phonobar)는 클럽이라기보다 바에 가깝지만 좋은 음악이 나오는 아늑한 공간이다. 사실 샌프란시스코의 임대료가 너무 비싸 많은 클럽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클럽 운영 자체는 수익이 큰 사업이 아니다. 그래서 추천하려고 떠올린 클럽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앞으로 5년, 10년 사이에 어떤 클럽이 생겨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 매우 궁금하다.

Jacob Sperber of Honey Soundsystem  허니 사운드시스템의 제이콥 스퍼버

허니 사운드시스템은 퀴어 언더그라운드 문화, 역사, 파티에 영향을 받은 디제이, 퍼포머 및 아티스트 집단이다. 2008년에 결성되어 현재는 제이콥 스퍼버(Jacob Sperber), 제이슨 켄디그(Jason Kendig), 로버트 양(Robert Yang)이 활동 중이다.

허니 사운드시스템은 10년 넘게 클럽 신과 파티를 이끌어왔다. 어떤 형태의 파티인가? 2008년에 시작해 5년 반 동안 크든 작든 매주 파티를 열었다. 임대료가 싸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지금도 지속적으로 파티를 열고자 한다. 특히 이전 세대의 퀴어 문화, 클럽 문화를 꺼내 현세대와 잇는 파티를 기획한다. 그래서 우리 파티는 연령대가 다양하고, 그들이 뿜는 다양한 감정과 에너지가 폭발한다. 60년와 70년대 더 스터드라는 유명한 게이 클럽이 있었다. 그 당시 클럽에서 활동한 나이 지긋한 디제이들이 우리 파티에 오신 적 있다. 때론 우리가 트는 음악에 “이거 35년 전에 내가 들은 음악과 비슷한데?” 라고 말씀하신다. 그럴 때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이 음악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혼란스러워진다. 현재 많은 뮤지션이 미래지향적 사운드에 집중하는 것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만큼 우리의 파티는 정말이지 놀라운 일로 가득하다. 한 가지 슬픈 이야기를 하자면, 한때 에이즈가 도시 전체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그 사건이 있기 전 활동한 뮤지션, 디자이너, 예술가가 죽거나 사랑하던 사람을 잃으며 상처를 입었고, 우리 문화에 공백이 생겼다. 이 이야기를 밖으로 꺼낸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들의 상처가 치유되고, 퀴어 문화가 부활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 셈이다. 우리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전 세대와 지금 세대를 잇고 싶다. 사실 예전 문화를 10%만이라도 불러와 현세대에게 알릴 수 있다면 무척 기쁠 거다.
샌프란시스코의 퀴어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 더 의미 깊은 작업은 우리 레이블에서 뮤지션 패트릭 카울리(Patrick Cowley)의 앨범을 재발매한 것이다. 70~80년대에 발매한 앨범인데 어느 차고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차고 주인은 80년대 레코드 레이블을 운영했던 노인이셨다. 그분이 방대한 LP 컬렉션을 정리할 때 나이 든 디제이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나중에 생각났다며 허니 사운드시스템을 부르신 거다. 우리가 흔히 게이 문화라고 할 때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영웅들이 있다. 키스 해링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멋진 작품을 선보였고, 앤디 워홀 역시 유명하다. 하지만 이들만이 우리 문화를 대표한다는 건 너무 단편적이다. 그런 점에서 패트릭 카울리는 우리가 찾아내고 싶던 영웅이다. 그는 매우 쿨한 뮤지션이면서도 관중과 어울렸고, 클럽 조명 작업도 했다. 우리의 다음 프로젝트가 클럽 조명과 관련돼 있다. 80년대 클럽 조명을 다루는 전문가는 흥미롭게도 거의 게이다. 숨겨진 영웅들이다. 지금은 디제이가 스타가 되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디제이의 위상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 거다. 이 클럽 조명 예술가들도 찾아내 알리고 싶다.
조명 프로젝트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트로카데로 트랜스퍼(Trocadero Transfer)라는 전설의 클럽이 있는데, 80년대 이 클럽에서 조명을 담당한 카를라(Carla)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트로카데로는 디스코 볼 샹들리에 250개가 돌아가는 매우 멋진 곳이었다. 각각의 디스코 볼은 담당자가 수작업으로 다른 조명을 쏘아 빛나게 했다. 매뉴얼도 있었다. 빨강은 사랑, 초록은 부와 우주 등등 각기 의미가 있어 디스코의 가사에 맞춰 비추기도 했다. 당시 파티는 아침까지 쭉 이어졌다. 생각해보라. 수작업으로 디스코 볼 작업을 했으니 12시간 내내 일한 셈이다. 당시 조명 담당자는 큰돈을 벌지 못했으니, 온전히 클럽 문화에 일조하기 위해 애쓴 것이다. 그녀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그 시대 기술을 잇고 싶다. 요즘 클럽이 쓰는 LED보다 옛날 조명이 클럽을 풍성하게 하고 클러버를 더 뜨겁게 데운다고 생각한다.
현재 준비 중인 파티는 뭔가? 앤드업이라는 클럽이 있다. 예전만큼 잘되진 않지만 여전히 사진전도 하고 예술 퍼포먼스도 열린다. 새벽 2시면 문을 닫는 다른 클럽과 달리 24시간 문을 열 수 있도록 허가받은, 특별한 곳이다. 앞으로도 이 클럽에서 샌프란시스코의 밤 문화를 이어가는 여러 이벤트를 열고자 한다. 언급한 트로카데로 트랜스퍼에서도 파티를 준비하는 중이다. 옛날 이 클럽의 멋진 파티를 기억하는 50~60대 사람들을 불러 아침까지 음악을 틀어 놀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단순히 댄스 음악을 트는 클럽, 예측 가능한 파티는 의미가 없다. 상상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파티, 클럽이 되어야 한다.
다른 도시가 아닌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나? 허니 사운드시스템을 결성하고 처음 5년 동안은 샌프란시스코가 죽지 않았음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만큼 샌프란시스코는 알아주는 클럽의 도시가 됐다.) 다른 지역으로 투어를 떠나도 그곳의 아티스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쇼를 할 수 있도록 연결했다. 팟캐스트를 통해 이 도시에서 쿨한 작업을 하는 새로운 뮤지션을 세계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 모든 커넥션이 샌프란시스코에선 신기하리만치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지난해 예지(Yaeji)를 초대해 파티를 열었고, 멤버 중로버트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돌며 우리와 문화적 코드가 맞는 다양한 아티스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NEW YORK | 긍정 에너지로 넘치는 밤과 낮

나워데이즈의 연기로 가득 찬 파티 현장. 브루클린 클럽 신은 창의력 넘치는 파티가 열린다.

“오늘 여기서 무슨 행사가 있나 보죠?” 클럽 나워데이즈(Nowadays) 앞에 도착한 우버 택시 기사가 건물 앞 긴 줄에 놀라며 물었다. “아, 여기 클럽이에요.”
벽화가 그려진 물결 모양 시멘트 벽만 보고는 이곳의 정체를 단번에 맞히기 힘들다. 막상 안으로 들어가서도 잔디밭, 피크닉 테이블, 나무 사이에 매달린 해먹을 보게 되면 정말 클럽이 맞는지 스태프에게 물어보고 싶다. 현재 시간 오후 4시. 나워데이즈 대표 파티인 ‘미스터 선데이’가 막 시작됐다. 드링크 바에 몰린 사람들은 취향에 맞는 맥주를 주문하느라 바쁘고, 디제이를 바라보며 춤출 수 있는 댄스 플로어는 만석이다. 남미의 흥겨움과 레트로 분위기가 배어 있는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공간에선 가만히 서 있는 건 불가능하다. 젊은 친구들, 중년들, 노인들, 어린이들, 헤드폰을 쓰고 엄마의 품에 안긴 유아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웃으며 춤에 빠져 있다. 지금 브루클린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에서 목격할 수 있는 훈훈한 풍경이다.

클럽 부흥의 전초전이었던 2008년 ‘미스터 선데이’ 파티를 열었던 저스틴 카터.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오랫동안 뉴욕에서 디제잉 클럽이란 금기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가까웠다. 30년대부터 시작된 악법 ‘카바레 법’으로 인해 무허가 공간에서 춤추는 것이 금지되었고, 지정된 클럽에서 디제잉을 할 수 없는 디제이들은 비밀리에 클러빙 장소를 공유했다. 대개는 누군가의 아파트나 버려진 창고에서 예술적 흥이 넘치는 댄스 파티가 벌어졌다. 80년대 디스코 붐을 타고 허가받은 클럽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대중적 클럽 밖에서 자유롭게 디제잉하며 춤추는 것은 여전히 힘겨웠다. 따라서 뉴요커에게 춤이란 일종의 저항 문화였다. 춤출 자유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오랜 투쟁 끝에 뉴욕은 지난해 드디어 이 법을 폐지했다. 바야흐로 뉴욕 클럽의 춘추전국시대다. 그 부흥의 중심엔 2008년 ‘미스터 선데이’ 파티를 론칭한 두 디제이 저스틴 카터와 에이먼 하킨이 있다.

두 남자는 무허가 창고 클럽이라는 전통을 벗어나 야외 디제잉을 시도한 현재 뉴욕 클럽 신의 선구자들이다. 브루클린 강변의 공터에서 시작된 파티는 몇 년 새 뉴욕에서 가장 힙한 파티로 자리 잡았지만 그 장소가 힙해지는 바람에 젠트리피케이션의 역풍에 밀려 쫓겨나는 운명을 맞았다. 이들은 법의 제재를 피하면서 안정적으로 디제잉을 하기 위해 비어 가든 느낌의 야외 공간을 몇 년간 찾아다녔다. 거주지와 떨어져 젠트리피케이션도 쉽지 않을 듯한 브루클린 부시윅의 북쪽 공장 지대에 ‘나워데이즈’ 간판을 세웠다.

공간 구획은 작은 공원 규모의 야외 구역과 우아한 레스토랑 느낌의 실내로 나뉜다. 금ㆍ토ㆍ일요일에만 문을 여는데 따뜻한 주말이면 야외 디제잉 파티가 진행된다. 사흘 내내 건물 밖으론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선다. 줄을 선 이들은 20세기 스타일의 하드코어 클러빙을 지양하고, 수제 맥주와 칵테일을 마시며 여유로운 레트로 사운드를 즐기는 동시대 클러버들이다. 공동대표 저스틴 카터에 따르면 이런 긍정적 관중이야말로 “브루클린 클럽 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주인공.

그는 현재 클럽 문화가 제법 단단하게 무르익었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클럽 하면 과거를 떠올리지만 지금 이 시기가 훨씬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름을 ‘나워데이즈’로 정했죠. 90년대 전설적 클럽 ‘파라다이스 개라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스스로 지금 우리에게 좋은 걸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나중에 길을 걷다가 ‘예전에 여기서 엄청나게 멋진 파티가 열렸다’고 지금을 회상하게 될지도 모르죠.” 그가 올해 새로 론칭하는 파티는 토요일 저녁에 시작해 일요일 저녁까지 이어지는 댄스 파티다. “아이를 키우느라 저녁에 오기 힘든 부모들도 아침에 일어나 춤추러 올 수 있어요. 나워데이즈 안에서 아침을 맞는 건 끝내주는 경험이거든요.”


브루클린 클럽 신이 융성하고 있다는 증거는 이렇게 창의력 넘치는 다양한 파티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보사노바 시빅 클럽, 하우스 오브 예스, 마켓 호텔, 엘스웨어 등 어느덧 지역 대표로 자리 잡은 클럽에서 지역 디제이들의 공연을 큐레이팅하고 트렌드를 형성한다. 나워데이즈는 오픈한 후 1년 동안 뉴욕의 눈에 띄는 디제이들에게 연락해 파티를 맡겼다. 그중 뛰어난 이들을 골라 레지던시 디제이의 자격을 부여했다. 이들은 적어도 두 달에 한 번 나워데이즈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디제잉 파티를 진행한다. 금요일 밤 내부의 댄스 플로어에서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기계에서 뿜어대는 스모크가 사방으로 퍼지고 천장을 장식한 조명은 쉴 틈 없이 색을 바꾸며 리드미컬하게 깜빡인다. 디제이뿐 아니라 주변 사람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스모크는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동시에 춤추는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 외부와 내부 댄스 플로어에선 모두 휴대폰 사용이 금지되기에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며 음악을 즐길 수 있다. 타인의 몰입을 방해하는 흡연과 촬영도 금지. 이는 운영자가 디제이라서 가능한 규칙인지 모른다. 공동대표 저스틴 카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늘 음악이기 때문이다.

“관중이 음악을 듣고 각자 초월적 경험을 하길 바랍니다. 춤추거나, 위안을 받거나, 감정적 교감을 하거나 각자의 방식이 있죠. 모든 사람이 특정 경험에 동참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로서는 관중이 경험할 음악의 잠재력을 막고 싶지 않아요.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 휴대폰 사용을 규제합니다.” 농담이 아니다. 휴대폰을 꺼내 불빛이 반사되는 순간 어디에선가 직원이 나타나 예의 바르게 행동을 제지한다. 규칙을 깨닫고 음악에 온전히 내 몸을 맡기는 순간 비로소 나워데이즈의 회원이 된 것 같은 소속감이 생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 장면 같은 스모크 속에서 사이키델릭한 디제잉에 몸을 맡기다 보면 시간을 잊는다. “나만큼 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거든요.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이 공간을 운영하는 게 가능하지 않죠.” 이토록 예의 바른 클럽 파티라니, 과거에 좀 놀아본 어르신들이 들으면 통탄할 건전함이지만 뭐 어떤가. 음악이 나인지 내가 음악인지 모를 정도로 놀아보자는 클럽 정신은 이곳에서 여전히 새로운 세대에게 이식되고 있다.

Aurora Halal 오로라 할랄

비주얼 아티스트였던 오로라 할랄은 2010년대 뉴욕 클럽 뉴웨이브의 산증인이다. 클럽 문화를 흡수하며 디제이로 성장한 그는 이제 대안적 디제잉 파티를 기획하며 뉴욕 디제잉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여느 도시와 다른 뉴욕만의 특별한 점이 있나? 나라마다 개성이 다르기에 외지인으로서는 모든 것이 예측 불허다. 고향 뉴욕에 오면 나를 아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기에 막연한 기분이 덜하다. 하지만 어떤 곳이든 디제잉 접근 방법은 동일하다. 관중이 내 음악을 좋아하지 않을까 봐 걱정하며 초조해하는 편은 아니다. 새로운 관중을 만나는 건 늘 즐겁다. 몇 년 전 서울 클럽 ‘파우스트’에서 디제잉한 적이 있다. 정말 쿨한 장소였고 관중도 모두 쿨했다.
어떻게 디제잉을 시작하게 됐나? 2012년부터다. 2010년에 로프트 디제잉 파티인 ‘뮤추얼 드리밍(Mutual Dreaming)’을 만들었다. 당시는 뉴욕 댄스 뮤직의 르네상스 시기로 새로운 DIY 디제이들이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이는 데 열심이었다. 새 음악과 파티를 경험하며 이 폭발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반영한 파티를 만들고 싶었다. 그 당시 나는 라이브 영상 작업으로 파티 신에 참여하다 2012년부터 솔로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처음엔 디제잉 기술을 라이브 프로젝트에 접목한 형태였다. 한 번도 디제이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 경험 이후 계속하고 있다. 너무나 매력적이니까.
음악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얻나? 파티에 초청하는 디제이들에게 가장 큰 영감을 받는다. 현재는 뮤추얼 드리밍보다 ‘서스테인 릴리스(Sustain-Release)’ 페스티벌에 더 집중한다. 뮤추얼 드리밍은 당시의 창의적인 뉴욕 신을 반영한 로프트 파티였고 서스테인 릴리스 페스티벌은 뉴욕주 북부 캠핑장에서 열리는 좀더 큰디제잉 파티다. 뉴욕 언더그라운드 클럽 신을 대표하는 파워풀한 헤드라이너 퍼포머들이 무대에 선다. 페스티벌 프로모터여서 늘 많은 음악을 듣고 있다. 음악 앨범뿐 아니라 관련 팟캐스트도 챙겨 들으며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아 나만의 분위기로 변환한다.
뉴욕만의 고유한 클럽 문화가 존재하나? 현재 뉴욕 클럽 신은 매우 독특하다.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 공연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도 매우 다양하다. 나이트 파티에 대해 수많은 아이디어가 오가고 다양한 파티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다. 파티마다 개성이 제각각이라 뉴욕 신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분명한 건 뉴요커는 호기심이 많아 트렌드와 아이디어에 굉장히 열려 있고 빠르게 움직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매우 작은 신이다. 뉴욕은 큰 도시지만 파티에 갈 때마다 아는 사람을 만나 몹시 가족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들이 지속적으로 파티를 만들면서 매우 능동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BALI | 야자수 아래 춤을

발리에서는 매일이 휴일이고 축제다. 매년 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작은 섬을 방문하고, 도시 경제가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스카이 가든(Sky Garden), 엔진룸(Engine Room) 등 대형 클럽이 밀집한 쿠타 레기안 거리는 ‘잠들지 않는 발리’의 심장이다. “여행 가면 클럽에 꼭 들르는데 발리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클럽이 많아 좋아요. 플립플랍에 티셔츠 입고 맨 얼굴로 춤춰도 상관없죠. 모두 여행 기분에 들떠 쉽게 친구가 되고요. 대학생부터 중ㆍ노년까지 일가족이 함께 오기도 해요.” 엔진룸에서 만난 한국인 손님이 말했다. 층마다 다른 장르의 디제잉이 펼쳐져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는데, 이건 발리 대형 클럽의 특징이다. 물론 이게 발리 클러빙의 전부는 아니다. 젠자(Jenja)나 LXXY, 미러(Mirror)의 화려함과 모던함 혹은 정글(Jungle)과 라 파벨라(La Favela)의 이그조틱함이 당신 취향일 수 있다. 어느 쪽이건 당신만의 무대를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여기는 발리니까. 여행자들이 뭔가를 원하면 그건 반드시 여기 있다.

비치 클럽, 캘리포니아 스타일의 스케이트 맥주 클럽, 재즈 바, 살사 바, 현지인과 여행자가 뒤엉켜 알코올 샤워를 하는 언더그라운드 클럽까지, 발리에는 모든 종류의 밤 문화가 있다.

발리는 월드클래스 디제이들이 수시로 공연하는 최고의 파티 섬이지만 이비자와 다르다. 플립플랍과 비치웨어를 제한하고 VIP 테이블에 사활을 거는 고급 클럽도 물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에게 열려 있다. “발리 클럽 신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들의 순수한 다양성 그리고 그들이 가져오는 문화입니다.” 일본계 호주인 디제이면서 프로듀서, 프로모터인 카이저 월던(Kaiser Waldon)의 말이다. 그는 파티 브랜드 ‘이스케이프 프레즌트(Escape Presents)’의 설립자이며 럭셔리 비치 클럽 핀스(Finns)부터 발리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나이트클럽인 젠자, 레드 루비(Red Ruby)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해왔다. 싱가포르, 일본 등 아시아 전역의 인터내셔널 파티에도 자주 참가한다. “독특한 점은 발리 자체가 가진 에너지예요. 야외 댄스 플로어가 주는 특별한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요. 굳이 표현하면 ‘긍정의 기운’. 이것도 정확하진 않아요. 단순히 긍정의 기운을 받는다기보다 훨씬 깊고 신성한 느낌, 이를테면 지구와 그 힘에 연결된 느낌이죠. 일종의 ‘어싱 (Earthing)’이랄까요. 이 에너지 그리고 역동적 사람들이 이 섬의 진정한 마법이고, 독특한 점이에요.”

발리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한다. 이곳 클럽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지역민보다 방문자들이고, 그래서 분위기 예측이 힘들다. 같은 클럽이라도 비수기와 성수기의 상태가 다르다. 최신 정보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역 웹진 더 비트 발리(thebeatbali.com), 발리 클러빙(www.baliclubbing.net), 인도 클러빙(indoclubbing.com) 등에서 이벤트와 디제이 리스트를 비교하는 거다. 발리의 밤 문화는 동남아 작은 섬에 대한 당신의 선입견을 깨뜨릴 만큼 꽤 체계적이고, 풍부한 콘텐츠를 갖췄다. 만약 당신이 “여행지에선 클럽 정도는 들러줘야지”가 아닌, 음악과 춤을 따라 여행할 만큼 흥 넘치는 영혼이고, 발리에서의 ‘어싱’을 제대로 체험해보고 싶다면 뮤직 페스티벌도 좋은 선택이다. 발리에선 영성 충만한 보헤미안 페스티벌부터 월드 뮤직, 재즈, 합창 등 여러 장르의 음악 축제가 늘 벌어지는데, 그중 클러버들이 열광하는 건 매년 12월 열리는 DWPX(Djakarta Warehouse Project X)다. 주최 측이 자신만만하게 ‘동남아 최대 댄스 뮤직 페스티벌’이라고 주장하는데 데이비드 게타, 캘빈 해리스, 아민 반뷰렌 등이 참가했다. 지난해 라인업엔 위켄드, 알레소, 디제이 스네이크, 포터 로빈슨이 있었다. 이제 발리를 당신 머릿속 음악과 파티 월드의 지도에 올려둘 기분이 좀 드나? 그렇다면 하나만 더 기억하자. 여기엔 여전히 풍요로운 열대 자연이 있다. 춤추다 지치면 언제든 아름다운 해변으로 뛰어들 수 있다. 언젠가 발리를 찾는다면 도시 클럽에서 경험하지 못한 이특별한 바이브를 꼭 느껴보시라.

Kaiser Waldon 카이저 월던

그는 발리에서 가장 바쁜 사람일 거다. 자신의 파티 브랜드를 운영하며 럭셔리 비치 클럽과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트랙을 쏟아낸다. 그에게 음악은 단순한 즐거움이나 직업 이상이다.

당신은 시드니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발리에서 활동한 계기는? 시드니에서 통과된 새로운 법 때문에 많은 클럽과 공연장이 문을 닫고 나도 일이 줄었다. 곡을 쓰거나 여행차 발리를 자주 방문했다. 결정적으로 호주보다 이곳에서 공연할 때 관객 호응이 훨씬 뜨거웠다. 나는 프로듀서 겸 디제이로서 퍼포먼스와 음악성을 동시에 발전시켜야 하는데 발리에서는 다른 데 신경 안 쓰고 두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 유럽 진출의 발판으로서, 내가 운영하는 이스케이프 프레즌트 이벤트로 지역 신에 기여하고자 발리를 택했다.
스물일곱 살에 디제잉을 시작해 서른 살까지 280곡을 만들었다. 많은 트랙을 만들지만 다작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작이란 우리 모두 달성하려 애쓰지만 불가능한, 계속 배우고 실험하게 만드는 목표다. 영감은 ‘느낌’에서 온다.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첫째는 댄스 플로어에서 디제이가 트는 음악을 듣다가 뭔가 느낌이 오면 그 느낌을 기억해 스튜디오에 가서 나만의 해석으로 재창조한다. 아니면 단순히 나만의 어떤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 곡을 쓰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이 받기 원하는 느낌을 곡으로 표현한다. 예컨대 사람들이 5분 동안 모든 시름을 잊은 채 눈 감고 그루브를 타길 바라며 자신감과 신뢰감, 섹시함을 비트 안에 녹여낸다.
당신의 음악적 배경은? 음악계에서 우러러본 인물은? 요즘도 춤추러 클럽에 가나? 초등학교 때 드럼을 쳤고, 지난 4년간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곡을 쓰거나 프로듀싱할 때는 신시사이저로 베이스 라인을 만드는 데 집중하며 즉흥연주에 시간을 들인다. 나는 디제잉할 때가 아니면 춤출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아름다운 프랑스 여인을 만난 뒤 종종 클럽에 간다. 스튜디오에 혼자 틀어박혀 음악만 만들던 사람이 놀러 나온 걸 보며 친구들이 엄청 놀랐다. 고립감은 음악을 만드는 데는 좋지만 정신 건강과 삶의 균형에는 해롭다. 그러니 긍정적 변화다. 그리고 ‘누구를 우러러보는가’는 중요한 질문이다. 남의 성공은 쉬워 보인다. 창작은 닫힌 문 안에서 이뤄지고, 무대 에서는 그들의 노력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예술가, 밴드를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 도전, 대처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내가 가장 존경한 인물은 퀸시 존스. 그의 태도, 직업윤리, 늘 배우려는 자세, 역사와 유산은 대단히 비범하고 진정으로 영감을 준다. 내 분야로 국한해도 여러 존경스러운 디제이, 프로듀서가 있다. 그들의 철학, 가치, 타인을 대하는 방식, 자기 분야에 꾸준히 헌신하는 능력, 앞서가면서도 너무 쿨한 척하지 않는 태도를 존경한다. 일종의 균형감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모든 것을 성취한 사람들이 있다. 유세프(Yousef), 두어리(Doorly), 제이미 존스(Jamie Jones), 이츠 에브리싱(Eats Everything) 등등.
당신이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핫한 트랙은? 대답이 불가능하다! 나는 일주일에 30시간씩 디제잉하고 대략 300곡을 튼단 말이다! 그래도 꼽는다면, 해리슨 BDP의 ‘디컴프레션(Decompression)’. 세련되고 펑키한 그루브가 마법 같다.
직접 만든 트랙 중에선? 한 곡 한 곡 심사숙고해봐야겠다. 일단 맥주부터 한 잔 마셔야겠다! 하하. 나는 하우스와 테크노를 바탕으로 일부 하위 장르를 다룬다. 내 스타일을 가장 잘 반영한다고 할 순 없지만 최근 만족스러운 건 모티브(Motive) 레코드에서 발매한 ‘하우 유 두 잇(How You Do It)’이다. 내가 100% 프로듀싱하고 모든 아이디어를 냈다. 어딘가에서 따온 목소리를 부분 부분 샘플링했는데, 내 목소리는 아니지만 거기 나온 단어가 인간으로서 나의 핵심 가치와 일치한다. 스포티파이 등에서 들을 수 있다.

 

 

BERLIN | 분단 역사가 만든 선물

베를린을 소개하는 책자나 웹사이트, 유튜브 채널에 빠지지 않는 이름이 하나 있다. 베를린의 전설적 클럽인 베르크하인(Berghain)이다. 클러빙에 크게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호기심이 솟아날 만한 곳이다. 베르크하인을 소개하는 자극적 타이틀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베르크하인에 입성하는 법’이라는 기사를 실을 정도로 까다로운 입장 방침이 화제다. 사실 방침이랄 것도 없다. 문지기의 마음에 달려 있으니까. 내 맘도 잘 모르는데 남의 맘을 어찌 알 수 있나. 누구도 정확한 기준을 몰라 ‘카더라 통신’만 난무한다. 그래도 입장 경력이 출중한 지인들의 조언에 따르면 화려한 복장은 금물, 차라리 ‘덜’ 입는 게 낫다. 게이 클럽으로 시작한 탓에 LGBT나 남자가 유리하고 관광객처럼 보이면 안 되며 여럿이 전우애를 다지기보단 나 홀로 클러버가 환영받는다. 혹자는 밤중에 몇 시간씩 기다리지 말고 일요일 아침 식사나 브런치를 즐긴 후 찾길 권한다. “뭐? 아침부터 클럽에 간다고?” 다들 놀라곤 하는데, 좋은 음악을 즐기는데 밤낮을 가릴 이유가 있나? 통과율을 좀더 높이고 싶다면 베르크하인의 악명 높은 문지기이자 사진가인 스벤 마르크바르트(Sven Marquardt)의 작품을 찾아 그의 취향을 저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사실 베르크하인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히 나뉜다. 언급했듯, 베르크하인의 전신은 90년대 게이 페티시 클럽으로 유명했던 스낙스(Snax)다. 스낙스는 파티 형식으로 베를린의 여러 곳에서 열렸는데 98년 구 동독 지역의 기차 정비소였던 공장에 자리를 잡고 이름을 오스트구트(Ostgut) 클럽으로 변경, 게이뿐 아니라 일반 클러버에게도 문을 열었다. 오스트구트는 베를린에서 가장 잘나가는 클럽중 하나가 됐지만 베를린시의 재개발 정책 때문에 2004년 다시 이사했다. 베를린 남쪽의 크로이츠‘베르크’와 동쪽의 프리드리히스‘하인’ 지역 사이의 대형 발전소 건물로, 두 지역명을 딴 이름 ‘베르크하인’이란 간판을 새로 달았다. 15년 후세계 1위 클럽이란 명성을 얻고 모두에게 열려 있으나, 여전히 게이 클럽의 성향이 강하다. 가터벨트, 가죽이나 라텍스 소재의 도발적 소품이나 의상으로 연출한 사람들, 한쪽에서 포르노 컨셉슈얼 파티가 열리는 것이 불편하다면 베르크하인을 찾지 않는 게 좋다.
“베르크하인은 베를린이라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베르크하인 앞에서 만난 한 베를리너가 말했다. “클럽 안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라게 되죠. 모든 관념과 편견, 경계가 허물어지고 자유, 다양성, 개방성, 창조성 등 베를린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맞닥뜨리게 돼요.”
베르크하인 외에 무려 280여 개 클럽이 산재해 있다. 베를린 클럽 신의 발달엔 80~90년대 베를린 혼돈의 역사가 큰 몫을 했다. 당시 역사적 상황을 살짝 설명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수도였던 베를린은 동서로 분단됐다. 그러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0년 통일을 맞았다. 통독 후 베를린엔 주인 없이 버려진 건물이 넘쳐났다. 장벽 근처 동독 정부나 군사 기관, 벙커가 들어선 곳이 그랬다. 이 빈 공간에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베를린 중심이자 구 동독 지역이었던 미테에는 불법 점거 콘서트, 테크노 파티가 성행했다. 또 장벽이 늘어선 빌헬름 거리와 포츠다머 플라츠에는 에베르크(E-Werk), 데어 붕커(Der Bunker), 트레조(Tresor) 같은 전설적 클럽이 생겼다. 흥미로운 것은 테크노 음악이 통일 후에도 보이지 않는 장벽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통합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테크노 음악의 역사는 독일에서 시작됐어요. 70년대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를 통해 알려졌고 80년대 영국과 함께 테크노 음악의 중심지로 거듭났죠.” 베를린 클럽 신의 발전을 위해 설립된 클럽 커미션의 대표 마르크 볼라베가 설명했다. “분단 후 통일까지 40여 년이었지만, 동서독의 젊은이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간극은 꽤 컸어요. 이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이 예술과 테크노 음악이었죠. 테크노 음악을 통해 한자리에 모이고 순수한 감정을 나누며 가까워질 수 있었으니까요.”

베를리너에게 클럽은 그저 하룻밤 유흥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음악, 건축, 미술, 그래픽, 조명 디자인, 테크놀로지가 어우러진 공간이다. 특히 여름이면 슈프레 강변에 자리한 슈트란트 바와 클럽이 인기다.

테크노를 포함한 일렉트로닉 음악은 베를리너에게 일상의 음악이다. 레스토랑과 카페는 물론 택시, 수영장, 유람선, 벼룩시장, 미술관 전시 오프닝, 온 가족이 참여하는 거리 축제 등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부터 노인까지 듣고 즐긴다. 이런 베를리너에게 클럽은 그저 하룻밤 유흥을 위한 장소만은 아니다. 노르웨이 출신 아티스트 얀 크리스텐센은 이렇게 말한다. “클럽은 음악, 건축, 미술, 그래픽, 조명 디자인, 테크놀로지 등이 어우러진 공간이잖아요. 이곳에서 다양한 예술적 아이디어를 얻게 되죠. 베를린엔 실험적인 클럽이 많거든요.” 미술이나 영화, 패션등 문화 예술 행사 후 디제잉 파티를 늘 준비하는 이유다.
클럽 형태 또한 다양하다. 특히 여름이면 슈프레 강변에 자리한 슈트란트 바와 클럽이 인기다. 이런 클럽은 주말 내내 쉬지 않고 열어 금요일 밤에 입장해 일요일 밤에 나온다는 클러버들이 있을 정도다. 예술 전시, 벼룩시장을 운영하고 맛있는 스트리트 푸드를 맛볼 수 있는 클럽도 있다. 테크노 음악뿐 아니라 스윙, 살사, 탱고, 왈츠 등 다양한 음악과 춤을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당연하다. ‘베를린 퓌어 알레(Berlin für Alle, 모두를 위한 베를린)!’ 도시가 지향하는 개방성과 다양성만큼, 베를린의 클럽은 모두를 위한다. 당신에게 맞는 클럽만 찾으면 된다.

Patrick Mason 패트릭 메이슨

디제이, 보컬리스트, 패션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인플루언서… 패트릭의 인스타그램(@iampatrickmason)에서볼 수 있듯, 그를 수식하는 타이틀은 화려하다. 자신의 패션 라벨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만큼 주목받던 디자이너가 현재 베를린 클럽 신에서 돌풍을 일으킨다.

디제잉을 시작한 계기는? 8년 전 베를린에 왔다. 그래픽 디자인과 패션 아트 디렉션을 공부하기 위해. 학업과 동시에 일을 병행했는데, 남다른 감각을 인정받아 여러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타일리스트와 일하게 됐고 패션계에 인맥을 쌓았다. 여섯 번째 학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 후 1 년간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았다. 2015년, 나의 패션 라벨인 ‘메종 메이슨’을 성공적으로 론칭했으며 클럽 ‘베르크하인’에서 새 길을 찾았다.
베르크하인이 당신을 어떻게 매료시켰나? 음악은 늘 삶의 일부였다. 마이클과 자넷 잭슨, 프린스, 다이애나 로스를 들으며 자랐다. 걷기도 전부터 춤을 췄다고 했다. 음악은 예술적 영감을 얻고 또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다. 당시 시카고풍 하우스와 디스코 음악에 빠졌고, 주말이면 성지순례를 하듯 베르크하인을 찾아 음악을 탐닉하고 춤을 췄다. 베르크하인엔 어떤 경계도 없이 순수한 열정과 에너지,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든 것을 창조하는 디제잉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당장 노트북 컴퓨터에 디제잉 프로그램을 깔았고, 곧 크로이츠베르크에 있는 게이 바 ‘로제스(Roses)’에서 첫 번째 공연을 치렀다. 그리고 1년 전, ‘SRVD(SERVED)’라는 프로젝트로 베르크하인 무대에 섰다.
화제의 ‘SRVD’에 대해 설명해달라. 좋은 친구이자 멘토인 라디오 슬레이브와 함께 시작한 프로젝트다. 하우스 & 테크노 음악을 선보이며 강한 라이브 보컬과 보깅댄스 같은 퍼포먼스를 곁들인다. 베르크하인의 첫 무대 후 열광적 호응에 힘입어 도쿄 ‘콘택트(Contact)’, 런던 ‘프린트웍스(Printworks)’, 이비자 ‘파차(Pacha)’ 등 세계적인 클럽에서 공연했다.
베를린은 전 세계의 디제이, 아티스트, 클러버들이 사랑하는 도시다. 베를린의 클럽 신은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이 너무도 다채롭고 무한한 에너지로 꿈틀댄다. 특히 테크노 음악의 명성이 대단하다. 매일 클럽을 찾거나 클럽 음악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여름이면 지구 최고의 도시가 된다. 활기 넘치고 도시 구석구석 크고 작은 오픈에어 페스티벌이 열린다. 주말 내내 40시간 동안 오픈하는 클럽은 베를린밖에 없다. 세계적 디제이들이 모이는 만큼 최고의 기술과 시설을 갖춘 클럽도 많고, 전 세계 아티스트가 모이는 ‘멜팅 포트’인 만큼 문화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고 공유하는 훌륭한 파티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