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퀸 루폴

2019.07.30

by 송보라

    퀸 루폴

    루폴은 비주류의 최고봉에서 주류라는 최고 명성을 얻기까지, 30년간 그 길을 걷고 있다.

    이슬이 맺힌 아침이었다. 나는 워너 브라더스의 사운드 스테이지 밖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루폴(RuPaul)이 완벽하게 여장한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그 사운드 스테이지에서 루폴의 <보그> 화보 촬영이 있을 예정이었다.
    주디 갈랜드가 영화 <스타 이즈 본>을 촬영한 그곳에서 지금 루폴이 <AJ와 여왕(AJ and the Queen)>을 촬영하고 있다. 그가 <섹스 앤 더 시티> 수석 작가이자 책임 프로듀서 마이클 패트릭 킹(Michael Patrick King)과 공동으로 제작하는 이 시리즈물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다(루폴이 맡은 ‘루비(Ruby)’라는 가난한 드래그 퀸이 열한 살짜리 고아 AJ(이지 G(Izzy G)가 맡았다)와 함께 전국을 돌며 여행하는 내용의 드라마). 나는 루폴이 사진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변신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누가 그것을 원치 않겠나? 하지만 원자력 코드라도 요구한 것처럼, 점잖으면서도 단호한 ‘루폴의 수행 팀’이 거부 의사를 전해왔다. “루가 활동하면서 변신 과정을 공개한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최종 변신 모습을 얼핏 보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
    루가 어떤 모습일지 당최 가늠이 되지 않았다. 루폴의 <Drag Race>(여장 남자들 중 슈퍼스타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한 지구로 온 특대형 바비 인형 스타일의 슈퍼히어로 모습일까? 아니면 19세기 여걸 미인의 화신으로 변신했을까? 스태프로 꽉 찬 골프 카트가 지나갔고, 나는 한껏 부풀린 금발 머리 비슷한 것이라도 보이는지 그들 사이사이를 열심히 훑어보았다. 그때 예고도 없이 갑자기, 달콤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단호한 목소리가 사운드 스테이지 안에서 크게 울렸다. “찌찌를 이것보다 더 봉긋하게 만들진 않겠죠!”

    나는 가로질러 안으로 뛰어들었다. 스튜디오는 주로 나이트클럽 배경으로 꾸며져 있고, 지속적으로 새 단장을 하고 있었다. <AJ와 더 퀸>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 드래그 장면이 미국 전역의 각기 다른 클럽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보그> 촬영을 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사람이 하나의 작은 옷감으로 만든 배경 주변에 모여 있었다. 애니 레보비츠는 사과 상자 위에 서서 자신의 카메라 렌즈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옆에서 마더 루(Mother Ru, 드래그 레이스 쇼 참가자들은 루폴을 ‘Mama Ru’나 ‘Mother Ru’라 불렀다)에게 가까이 다가가니, 맨 먼저 속눈썹부터 눈에 들어왔다. 머리 크기와 속눈썹의 비율이 생리학상으로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후에야 루폴이 지금까지 선보인 낯익은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모던하게 복사한 모습이었다. 한껏 부푼 황금빛 브로케이드 치마에 코르셋을 입고 붉은 머리를 후광처럼 땋아 올린 헤어스타일로 단장하고 있었다.

    LONG LIVE THE QUEEN

    “지금까지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특정 관점을 보여줄 수 있었죠.

    제 얼굴에 색과 그림을 입히고 제가 무엇을 보여줄지 편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멋진 부분이 어딘지 잘 알고 있었다. 조명이 어떻게 비추는지도 꿰고 있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 속눈썹이 눈의 중간 정도에 오도록 하는 데 능숙했다. 그리고 잠시 후 레보비츠가 머리 장식을 떼자고 제안했을 때 그는 반대할 줄도 알았다. “그게 없으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고요.” 그가 입고 있던 소매가 봉긋한 의상의 다른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장신구가 나머지 다른 것을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거죠.” 그러자 레보비츠가 점잖게 말했다. “헤어 자체가 왕관이 된답니다.” 두 사람은 2분쯤 실랑이를 이어갔다. 루폴은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머리 장식을 없애면 스타일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과장되어 있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모습과 주변 환경을 향해 모션을 취하면서 말했다. “자연적인 것은 오로지 빛뿐이에요.”
    루폴이 ‘캠프’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레보비츠의 동성 연인이었던 수전 손택이 <캠프에 대한 단상(Notes on ‘Camp’)>에서 “캠프의 본질은 부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그것의 애정, 즉 기교와 과장을 향한 사랑에 있다” 고 썼다.) 더 놀랍게도, 그와 레보비츠는 단지 가장 기억될 만한 사진작가의 사진 중 한 장을 부지불식간에 다시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12년 전 애니 레보비츠가 버킹엄 궁전에서 제대로 휘장을 갖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공식 초상 사진을 촬영할 당시, 미국의 가장 유명한 초상 사진작가 중 한 사람이었던 그녀는 영국의 최장기 집권 군주에게 ‘왕관’을 벗어달라고 요구했다(그것은 작은 티아라였다). 그리고 BBC 촬영감독이 그 의견 교환 장면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았다.
    레보비츠: “더 아름다워 보일 거예요. 덜 꾸미시면 말이죠. 가터 가운이 너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덜 꾸미시면’이라고 했나요? 이 복장을 무엇으로 생각하는 거죠?”
    영국 여왕은 자신의 왕관을 벗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아름다운 버뱅크 도심에 있는 드래그의 여왕도 마찬가지로 왕관을 벗고 싶어 하지 않았다.
    루폴이 자신의 싱글 앨범 ‘Supermodel(You Better Work)’을 발매하면서 처음 전국적으로 주목을 끌었던 1992년, 주류 문화계에는 그와 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데이비드 보위, 프린스, 셰어 같은 양성애적 팝 스타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으로 남녀 구분 없이 행동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 <투씨(Tootsie)> 같은 일부 메이저 영화에 드래그 캐릭터들이 등장한 적은 있었다. 그렇지만 루폴은 드래그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활용했다. “드래그가 목적이 아니었어요. 뭔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었죠.”
    드래그 아티스트 레이디 버니(Lady Bunny)가 설명했다. 그는 또 1985년부터 2001년까지 매년 뉴욕 톰킨스 스퀘어 파크에서 개최된 드래그 페스티벌 윅스톡(Wickstock)을 처음 조직하기도 했다. 루는 드래그를 하면서 “나는 예뻐”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다 해도 루폴이 히트 쳤을 때 나처럼 교외 지역에 거주하는 13세 소녀였다면, 나처럼 그의 스웩 넘치는 모습에 완전히 넋이 나갔던 사람이라면, 그가 팝 스타 반열에 오른 것에 대한 정치 논리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달 ‘슈퍼모델’ 뮤직비디오를 다시 보면서 그 속에 담긴 풍자, 여가수의 익살스러운 행동과 패션 세계의 판타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방식만 봐도 그가 왜 스타가 되었는지 바로 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에서 루폴은 택시 보닛에 거꾸로 누워 카메라를 향해 잔망스럽게 굴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보디수트를 입고 깃털 목도리를 두른 채 플라자 호텔 옆 분수대에서 즐겁게 뛰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슈퍼모델의 이름(‘린다’ ‘나오미’ ‘크리스티’)을 줄줄이 불러댄 것이 마돈나가 ‘Vogue’에서 “그레타 가르보 그리고 먼로, 디트리히 그리고 디마지오”를 부르는 장면을 패러디한 것임을 이제야 깨닫고 말았다. 그 장면에서는 ‘Swish’ ‘Ms Thing’ ‘Drague’처럼 실제 잡지를 패러디한 잡지 표지도 화면에 스쳐 지나갔다.
    루폴의 <보그> 촬영이 있은 지 이틀 후, 우리는 웨스트 할리우드의 어느 호텔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그는 영국 여왕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그곳에 들어섰다. 블랙 진, 블랙 터틀넥, 블랙 앵클 부츠, 옅은 컬러의 트렌치 코트, 빈티지 구찌 벨트에 블랙 바이커 모자로 한껏 멋을 부린 195cm의 깡마른 사람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SERVING UP REALNESS

    맞춤 정장을 입은 루폴이 공동으로 제작에 참여하며 넷플릭스에서 올 하반기 방영 예정인 <AJ와 더 퀸> 시리즈를 촬영하고 있다.

    쉰여덟 살의 그였지만 전혀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다. 메이크업을 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했더라도 얼굴을 뒤덮은 주근깨를 가릴 만큼 진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웨이터가 오자, 루폴은 과장된 뉴욕 악센트로 ‘레귤라아 카우피(레귤러 커피)’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커피를 뜨겁게 준비해주시겠죠”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것은 물어보는 표현이 아니었다. 그러자 웨이터가 대답했다. “아메리카노를 원하시는 것은 아니죠?” 루폴은 그 말을 일축하더니 다른 방식으로 말했다. “아메리카노로 합시다. 저기, 이 우주가 그 단서를 알려줍니다. 그것을 듣고 있다면, ‘네, 그게 바로 제가 원하는 거예요’라고 그냥 따라 말하면 되죠.” 일반인 루폴의 아우라를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와 가까운 친구이자 드래그 레이스 심사위원이며 루폴의 팟캐스트 코호스트 미셸 비세이지(Michelle Visage)는 ‘4차원스러운’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화장품 업계의 거물 맬리 론칼 (Mally Roncal)도 마찬가지로 그런 말을 사용하면서, “그는 맹수 같은 천사”라는 표현을 덧붙였다. 패션 디자이너 아이작 미즈라히는 그를 두고 거의 ‘선지자’ 수준이라면서, 다른 사람보다 늘 조금 더 높이 날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감독 마이클 패트릭 킹은 그를 ‘이집트 고양이’뿐 아니라 ‘백과사전’과도 비유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뜻하려는 바를 정확히 간파했다. 루와 오전 내내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가 미국인의 변종을 분석하는 임무를 띠고 파견된 외계인 인류학자일 수도 있다고 믿게 될 것이다. 그는 자기 인생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 <Bewitched>, 코티 코스메틱, 야들리 코스메틱, 밀가루 풀로 붙인 콘서트 포스터의 역사, 돌리 파튼, 영화 <타이탄>, 영화감독 존 워터스(John Waters)의 작품, 초창기 캠코더 기술, <오즈의 마법사>, 잇사 레이(Issa Rae)가 출연하는 드라마 <인시큐어(Insecure)>,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Maureen Dowd)가 쓴 <Are Men Necessary?> 그리고 만화영화 <증기선 윌리>를 인용했다. 그나마 굉장히 압축해서 열거한 것이 이 정도이다.

    실제로 루폴과 대화하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끌어낸 지혜가 무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속적 고뇌를 없애고 카테고리를 붕괴함으로써 멋진 자유를 누리는 데 통달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제야 ‘Do you have any Grey Poupon?’이라는 광고 문구(1992년 프랑스 디종 지방의 마유(Maille)사가 생산해 유명세를 떨친 머스터드 제품 ‘그레이 푸폰’은 고소득의 지표가 되었다)가 특정 코드 스위칭을 함축해놓은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90년대 슈퍼모델이 등장한 시기가 60년대와 70년대 페미니스트 운동의 영향이었으며 팝 스타들이 단순한 팝 스타들이 아닌 소비자들의 비밀스러운 자아를 반영한다는 것 등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저는 캠프를 이해하고, 매트릭스 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드래그 퀸이죠.” 루폴이 내게 말했다. 그는 대체적인 문화를,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을 의미한다. “저 같은 드래그 퀸은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그 옷의 상표가 단지 표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상기시켜왔죠. 드래그 퀸은 진정한 실제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그런 영매나 무당, 심지어 궁정 광대나 다를 게 없어요.”
    루폴 안드레 찰스(RuPaul Andre Charles)는 1960년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났 다. 그의 어머니 어니스틴 폰티넷(Ernestine Fontinette)은 토니(Toni)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샌디에이고 시티 칼리지 입학 등록처에서 근무했다. 아버지 어빙 찰스(Irving Charles)는 전기 기사였다. 토니는 아들이 스타가 되리라 확신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 어느 점쟁이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점쟁이가 ‘아들을 낳을 거예요. 그리고 그 애는 굉장히 유명해지겠네요’라고 말했대요.”
    루폴이 말했다. “그래서 저는 그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성장했죠.”
    토니와 어빙은 흑인 대이동기에 남부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그리고 ‘루’는 ‘루(Roux, 지방과 밀가루를 섞은 것으로 소스를 만들 때 사용한다)’의 언어유희였다. 부모님의 결혼 생활은 심란했다. 그래서 부부는 루가 다섯 살이 되자 별거했고 일곱 살이 되자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토니는 우울증에 빠졌고, 루보다 일곱 살 위였던 쌍둥이 누나 리네타(Renetta)와 리내(Renae)가 가장이 되어 ‘루-루’와 그의 여동생 로지(Rozy)를 돌봤다.
    불같은 성질에다 염세적이었던 토니는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 루폴이 엄마에게 자녀 네 명의 이름을 왜 똑같은 이니셜(R.A.C)로 지었느냐고 묻자, 그녀는 아이들 모두 ‘진짜-멍청한-미친 녀석들(Real-Ass Crazies)’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토니는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제가 놀면서 화장하고, 누나들 옷을 입고, 제가 원하는 대로 무엇을 하든 엄마는 전혀 나무라지 않았죠.” 그가 말했다. “저는 사람들 몰래 숨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겉으로 드러내 공표하는 커밍아웃을 할 필요가 없었죠. ‘루’ 그 자체로 이해해준 거죠.”
    쌍둥이 누나들이 루-루에게 다이애나 로스와 셰어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리네타가 바르비종 모델 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에게 런웨이 워킹법을 알려주었다. BBC에서 방영한 <Monty Python’s Flying Circus>가 중심축이 되었다. 그는 그 쇼가 무대와 관객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했던 불손한 언행과 ‘섹시를 시사하며 은근슬쩍 밀당하며 눈짓을 주고받는’ 방식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루는 ‘나 같은 부류들이 있었네!’라고 생각했다.
    열세 살이 된 루폴은 늘 마커 펜을 지니고 다녔다.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에 ‘Bowie’라고 쓰기 위해서였다. “저희 같은 사람들은 그 나이 때에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어요.” 그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말했다. “그렇지만 ‘바로 저기, 저게 나야’라고 가리킬 수는 있었던 거죠. 데이비드 보위가 자신을 대신해 창조해낸 가상 인물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가 루폴에게 자유의 표본이었다. “그는 사회적 순응에 얽매이지 않고, 머리를 염색하고, 화장할 수 있는 사람이었죠. 정말, 굉장히 많은 자유를 누렸죠.”
    1976년 여름 루폴은 리네타와 그녀의 새로운 남편 로렌스(Laurence)와 함께 애틀랜타로 이사했다. 루는 노스사이드 퍼포밍 아트 스쿨에 입학했고, <록키 호러 픽쳐 쇼>를 봤으며, 드래그 퀸이자 ‘Donna Summer’를 부른 크리스탈 라베이자 (Crystal Labeija)가 공연하는 <Bad Girls>를 관람했다. 난생처음 보는 드래그 쇼였다(속단하지 마라. 그는 그것이 ‘Donna Summer’였다고 생각했다).
    그의 음악 커리어는 80년대 초 아트 밴드인 루폴 & 유-하울스(RuPaul and the U-hauls)를 결성하면서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얼마 후 그는 애틀랜타 TV 쇼 <Now Explosion>에 출연해 ‘The B-52’s’ 스타일의 뉴웨이브/펑크 밴드인 위 위 폴(Wee Wee Pole)을 이끌기도 했다. 그는 샅바같이 생긴 로인 클로스, 모호크식 헤어스타일,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웨이더 부츠, 미식축구용 어깨 패드로 꾸미고 등장했고, 스스로 그것을 ‘젠더 퍽(Gender Fuck) 스타일’이라 불렀다.
    그는 페르소나를 좀더 많이 만들어냈다. 70년대에 제작된 비상식적인 흑인 정형화(Blaxploitation)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스타부티(StarBooty)>를 탄생시켰고, ‘거리 창녀 소울 트레인 댄서’라 부르던 또 다른 페르소나를 만들었다. 80년대 후반에 루폴은 가끔 뉴욕에서 지낼 때면 피라미드 비롯한 여러 나이트클럽에서 고고 댄스를 췄다. 그렇게 89년 8월 그는 비주류계에서 맨해튼 여왕 자리에 올랐다.
    2년 후 그는 한때 육류 도매시장이었던 뉴욕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에 살면서 뉴욕 영화관 ‘필름 포럼’에서 공짜로 얻은 팝콘과 탄산수로 연명하며, 첫 데모 테이프를 녹음했다. 92년 서른두 번째 생일날 그는 ‘슈퍼모델’을 발매했다. 그것은 친구 래리 티(Larry Tee)와 함께 만든 곡이었다. 이 싱글 앨범은 빌보드 댄스곡 차트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아이작 미즈라히와 토드 올드햄 같은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패션쇼 무대에 그것을 접목시켰다. “슈퍼모델이라는 말이 통용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것을 이용하다니 정말 스마트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 상상을 초월하는 노래를 불렀죠. 정말 황당한 면을 보여주다가 또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말이죠.” 커트 코베인이 그해 가장 마음에 드는 노래 중 한 곡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94년 루폴은 “저는 맥(M·A·C) 걸이에요”라고 말하는 광고에 등장함으로써 맥 코스메틱 모델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대형 화장품 회사와 일하는 최초의 드래그 퀸이 되었다. (“195cm의 장신 흑인 남자가 슈퍼모델처럼 보일 수 있게 만드는 것만큼 메이크업의 힘을 더 잘 보여주는 방법이 또 어디 있겠어요?”라고 그가 말했 다.) 그다음 VH1에서 <더 루폴 쇼(The RuPaul Show)>가 방영됐다. 에피소드를 100편까지 촬영한 이 쇼를 통해 그는 주류의 정점에 올랐다. 그는 지금 그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제가 ‘나는 루폴이고, 이 세상의 슈퍼모델이야’라고 말했다면 세상이 ‘맞아, 너는 그래!’라고 말했죠.”
    루폴의 두 번째 전성기는 이미 첫 번째보다 두 배 정도 지속된 상태이다. 그리고 약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그 전성기는 2009년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가 첫 방송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TV 리얼리티 시대에 풍자의 미를 살려 완벽하게 만든 그의 또 다른 작품이다. 시즌 11까지 제작되어 VH1에 방송된 이 시리즈는 하위문화였던 것을 선택해 세상을 놀라게 했고, 드래그 퀸 스타들을 탄생시켰으며, 수많은 고유의 표현 문구를 주류 문화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루를 자기 계발의 거물로 우뚝 세워주었으며, 그 과정에서 그에게 에미상을 아홉 개나 안겨주었다.
    지금은 2019년이다. 루폴은 역시 시류에 맞춰 팟캐스트를 제작하고 있다. 그의 팟캐스트 ‘What’s the Tee?’는 루월드(RuWorld)의 선택받은 사람들, 즉 선민들에게 ‘우주의 무대 지시문을 듣는 법’을 가르치며 ‘루이즘(Ru-ism)’을 널리 알림으로써 성공적으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5월에는 제5회 루폴의 드래그콘(RuPaul’s DragCon)을 LA에서 주재했다. 이것은 만화 같은 대중문화의 컨벤션인 코믹-콘(Comic-Con, 1년에 두 번 동부와 서부에서 열린다. 따라서 매년 9 월이면 뉴욕에서 그해 두 번째 컨벤션이 개최된다)을 그대로 따서 루폴이 만든 대규모 드래그 문화 컨벤션이다. 게다가 루폴은 그 자신이 직접 효과를 장담하는 페이스 디펜더(Face Defender)를 만든 론칼과 함께 디자인한 메이크업 컬렉션에도 데뷔한다.
    루폴은 LA와 와이오밍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남편 조지 르바(Georges LeBar)가 와이오밍에 24만3,000㎡에 달하는 농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르바는 호주 퍼스 출신으로, 미국인 할머니로부터 그 농장을 물려받았다. 심지어 그는 루폴보다 키가 더 크다(204cm에 이른다!). 루는 “농장에서 지낼 때, 기가 막히게 멋진 서부 시대 의상을 주로 입어요. 데님과 어우러진 의상에 터키석 장신구, 멋진 모자, 이탤리언 카우보이 부츠로 멋을 내죠”라고 내게 말했다. 이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다. 그리고 앞으로 가질 계획도 없다. “저는 평온하고 조용한 것이 아주 좋아요.”
    루폴이 말했다. 루가 쉴 때면, 두 사람은 여행을 즐긴다. 종종 라스베이거스로 간다. 중심가인 더 스트립에 최근 생긴 큰 무대에서 제니퍼 로페즈와 셰어의 공연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뉴욕이나 파리로도 여행을 떠난다(루는 호주 출신인 시어머니가 샹젤리제를 ‘촘스 엘시’라고 발음한다며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인터뷰를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여기서도 한 번 거절한 조지는 94년 라임라이트 댄스 클럽에서 루를 만났다. 이후 두 사람은 ‘오픈 릴레이션십’을 한다는 사실에 도움을 받으며, 거의 늘 함께하고 있다. “저는 그 사람을 몹시 사랑해요. 그래서 그를 속박할 수가 없어요.” 루폴은 이렇게 말하며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사랑은 자유로운 거예요. 그것은 우리 모두가 믿었던 표면적으로 로맨틱해 보이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저는 제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그를 좋아하죠.” 그러면서 그가 덧붙였다. “고어 비달(Gore Vidal)은 ‘성관계를 할 수 있는 기회나 TV에 나올 수 있는 기회만큼은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AJ와 더 퀸>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 영화는 프레스턴 스터지스(Preston Sturges) 감독의 41년 코미디 작품 <설리반의 여행(Sullivan’s Travels)>을 바탕으로 한다. 루폴과 킹, 두 사람 모두 이 작품을 좋아한다. 한쪽 벽에 영화 포스터가 걸린 킹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그 사실이 밝혀졌다(바로 우주의 무대 지시문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패션 디자이너이자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의상을 담당하는 잘디(Zaldy)가 그 쇼의 스크립트를 보여주었을 때 “제 턱이 떡 벌어졌죠”라고 그가 내게 말했다. 러브 신도 있었지만 마구를 타고 허공을 나는 것과 같은 ‘특수 의상’이 필요한 드래그 신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킹은 루폴의 오랜 팬들이 충격받았을지도 모르는 놀랄 만한 요소가 또 있었다고 내게 말했다. 이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루는 드래그를 한 모습과 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당신은 루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마 루도 보았습니다. 애매모호한 모습의 그를 보았던 거죠.” 킹이 말했다.
    루폴과 내가 티타임을 가지기 전날, 킹이 그에게 처음 마무리된 <AJ와 더 퀸> 에피소드 1편을 보여줬다. 루폴은 그 시리즈가 무엇을 보여줄지 굉장히 초조해했다.
    “저는 지금까지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특정 관점을 보여줄 수 있었죠. 얼굴에 색과 그림을 입힐 수 있었고 제가 무엇을 보여줄지 편집할 수 있었어요.” 그가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연기 프로젝트를 통해, ‘필터링되지 않은 그대로의 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낼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어제 마무리된 에피소드 1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인정하거나 인지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던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세상을 향해 발가벗을 거야’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 저는 자신을 향해 발가벗었던 겁니다.”

      에디터
      Abby Aguirre
      포토그래퍼
      Annie Leibov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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