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파리 로마의 엄마

Living

엄마의 파리 로마의 엄마

2019-07-25T15:19:08+00:00 2019.08.08|

엄마는 여든, 충청도 논산에 산다. 날이면 날마다 돌보는 작은 밭에서는철 따라 별별 채소가 알뜰살뜰 자라난다. 일주일에 네 번은 미사도 드리고 봉사도 하고 수업도 들으러 성당에 간다. 그리고 집과 밭 사이에 있는 노인회당에는 월·화 한글 공부, 수·목 체조 시간에 맞춰 들른다. 엄마가 서른다섯에 자식 중 다섯째로 낳은 아들은 서울에 산다. 둘이서 파리에 갔다.

21시 샤를드골. 파리엔 아직 해가 남아 있다.

“여기는 해가 한국보다 길으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데 엄마는 잠자코 창밖을 보고 계셨다. “그러네.” 나는 엄마의 리듬에 낮게 목소리를 맞춘다. 그러다 모퉁이를 돌듯 톤을 바꿨다. “김경임 씨, 파리에 있는 큰 궁전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1번 경복궁, 2번 덩더꿍, 3번 루브르, 4번 부르르.” 엄마는 또 시작이군 하는 표정을 짓는다. “3번! 지 엄마 팔순이라고 완전 바보로 아는구만.” 나는 냉큼 되묻는다. “3번이 뭔데? 1번 루바르, 2번 보바르, 3번 루아르.” 엄마는 웃는다. 웃기만 한다. 그리고 갑자기 딴소리. “파리는 모기가 아니라서 파리예요.” 이건 너무 엄마 말법이지. 모르거나 궁하거나 몰린다 싶으면 영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 이름은 김경임, 고향은 청양 운곡 들괭이, 40년 넘게 장우철의 엄마.

아들과 엄마의 유럽 여행이라.

여기에 댓글처럼 따라붙는 말은 효도와 효자가 70%, 얼마나 좋으세요가 20%, 기타 행복과 건강 시리즈가 10%쯤 되었다. 한편으론 이런 말. “고생 제대로 하겠네.” 글쎄, 나는 듣기에 그저 어색했다. 효도는 무슨, 어디까지나 남 얘기는 남 얘기라서일까? 부모님과의 여행을 다룬 어떤 책 제목은 ‘걸어서 환장 속으로’라던데… 평소 논산에서 놀듯이, 파리에서 엄마랑 노는 거, 나는 그러면 됐지 하고 있었다. 무슨 의미씩이나, 의미가 생기려거든 지가 알아서 생기겠지. 엄마의 생각은 모른다. 모르는 걸 받아들이면 간결해진다. 엄마를 아는 만큼 엄마를 모르니, 엄마도 나를 모르시겠지. 그러니 묻고 답한다. 여행은 그러기에 어울리는 시간을 선뜻 내주니까. 웃으면 웃고, 덩달아 드는 생각을 더하면서 엄마는 이렇구나, 나는 이렇구나, 새삼스러워도 좋을 시간으로 채워지니까. 오늘 엄마가 이런 표정을 지으셨지, 잠들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접어서 간직하는 거야.

 

파리에서 잡은 호텔은 루브르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곳.

아침에 눈을 뜨니 기도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한국은 지금 몇 시나 됐냐?” 엄마가 돌아보며 묻는다. 벌써 세수를 마치고 원피스까지 입으신 후였다. 언젠가 생신 때 사드린 옅은 베이지색 긴팔 원피스. 저 옷을 입고 엄마와 금강산에 갔던 게 생각난다. 등산을 하든 안 하든 백이면 백 아웃도어 일색인 인파 속에서 엄마는 혼자 원피스에 낮은 구두를 신고 계셨고, 그건 다름 아닌 내 생각이었다. 이번에도 엄마의 트렁크엔 내가 오케이한 것들만 들어올 수 있었다. 바지는 일단 다 안 된다고 보면 돼. 치마도 이런 건 빼. 그 원피스는 예쁘긴 해도 유럽이랑 안 어울려, 햇빛이랑 컬러가 안 맞아. 엄마는 “아이구 귀찮아” 하셨지만, 어디까지나 아들의 말을 따랐다. 혹시 그게 딸이랑 다른 점일까? 엄마가 아들인 나를 따르거나 의지하는 방식은 사뭇 ‘순종적인’ 데가 있다. 귀찮아할망정 결코 거부하지 않으니, “니가 싫대도 그 치마 꼭 가져갈 거야” 하신 치마를 어느새 슬그머니 빼놓는 것이다. 요컨대 딸과는 어떻게든 다툴 일을 아들에겐 참거나 건너뛰거나 기어이 이해한달까. 대한민국에서 타고나길 나는 아들이라는 이름의 권력자였으니 알게 모르게 힘을 휘두르고 있을 터, 그러니 삼가고 정중할 것, 말 한마디 불쑥할 때도 각별할 것, 나는 새겨둔다. 나오는 말은 그저 맹랑할 뿐이라 해도. “김경임 씨, 오늘 그 옷을 입으셨군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패션의 본고장 파리를 한바탕 들었다 놓으시겠군요.” 엄마는 기도문을 중얼거리다 말고 괴상한 멜로디를 붙여 답하신다. “파리는 긴팔이라서 파리예요.” 내가 못 산다.

 

계절이 무색하게 쌀쌀한 아침, 엄마는 짙은 오렌지색 숄을 두르셨다.

루브르를 가로질러 카루셀 다리를 건너는 엄마에게 아이폰을 들이댔다. “김경임 씨, 여기가 지금 어디예요?” 평소 이런 상황에 엄마가 뭐라고 대꾸해주는 경우는 열 번에 한 번이나 될까.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이쪽을 보지도 않고 술술 답을 풀어내신다. “파리에 왔어요, 프랑스요. 아들이랑 왔더니 더 좋으네요.” 엄마는 우아한 여배우, 나는 따라붙은 기자, 여기는 엄마 말대로 프랑스 파리로군. 영상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더니 반응이 쇄도한다. 방송인 김나영 씨도 하트 얼굴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으앙 저도 나중에 아들이랑 이렇게.” 나영 씨는 아들이 둘이니까 아주 그냥 쌍끌이 효도 대박. (얼결에 답하고 보니 나도 아들과 효도를 이어 썼군.) 나는 엄마를 불러 세운다. “김경임 씨, 지금부터 이 시대의 효자 장우철이 오늘의 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침 센강 산책 후 휴식, 마레 셰 네네스에서 점심,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에서 도널드 저드 전시 관람, 시테섬 베르티용까지 아이스크림 먹으러 걷기, 중간에 피카소 미술관에 들를 수 있음, 그리고 드리스 반 노튼에서 원피스 한 벌 살 건데 안 산다고 버티지 않기, 4시쯤 호텔로 돌아가 낮잠 한판, 저녁은 된장고추장쌈장청국장 대폭풍, 밤에는 마들렌 성당에서 합창 공연 관람 후 에펠탑 불 켜진 거 보고 센강 뱃놀이. 질문 있으십니까?” 엄마가 답한다. “오라이, 옷은 절대 안 삼. 드럽게 비쌀 거 아녀?”

엄마가 걷는다. 나는 이만치 앞서 걷는다. 혹시 계단이 있는지 봐야 하니까.

엄마의 다리는 이 산으로 저 산으로 번쩍번쩍하던 예전 같지 않아서 계단을, 특히 내려가는 계단을 힘들어하셨다. “엄마, 계단 아니야. 엘리베이터 있어, 이리 오세요.” 내가 뒤돌아 손짓하면 엄마가 온다. 나는 혼자 걷는 엄마를 계속 촬영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 영상들이 재미있게 쌓였다. 엄마가 낯선 도시를 혼자 걷는 장면들. “이번에는 나를 쳐다보지 말고 그냥 지나가.” 엄마는 숫제 보이지 않을 만큼까지 가시기도 했다. “엄마 같이 가!” 놀란 내가 외치면 그제야 겁 없는 엄마가 이쪽을 뒤돌아보며 웃는다.

우리는 다정하지만,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진 않는다.

어쩌다 무심결에 손을 잡아도 엄마는 금세 놓는 쪽, 행여 일어나고 앉을 때 부축하는 동작이라도 되면 지레 손사래를 치셨다. 그렇게 엄마는 이 시대 나 홀로 씩씩한 여성의 계보에 속했으니, 심지어 꿈에서는 날아가신다고 했다. “누가 막 쫓아와서 도망을 치다가도 낭떠러지에서 날개를 활따닥 펼치면 아주 훨훨 잘 날아가. 38선도 그냥 넘어가.” 느려터진 꿈속의 나와는 이렇게나 다른 엄마. 나는 엄마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하루에 몇 번이고 보시는 걸 안다. “저런 걸 왜 봐?” 그랬던 적도 있지만, 언젠가부턴 오히려 좋아하고 있다. 엄마가 “소나무 많은 숲에서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 하셨을 때부터였나. 안 무섭겠어? “무섭기야 무섭겠지.” 어쩐지 나는 그 순간 엄마를 이해했던 것 같다. 말로는 괜한 소리나 했지만. “세상에 참 이상한 사람들 많아.” 엄마가 답한다. “너는 안 이상하냐?”

파리를 떠나는 새벽, 엄마는 리옹 역을 벗어나는 기차에서 창밖으로 손을 흔드셨다.

어린애가 처음 배운 ‘빠이빠이’처럼. “빠리야 안녕, 잘 있다 간다.” 엄마는 아침저녁 밭을 오가며 채소들에게도 똑같은 인사를 하시는데, 나는 갑자기 뭔가 곤두서고 말았다. “엄마, 다음에 또 만나자는 말은 왜 안 해?” 나는 화를 내는 것처럼 되었다. “언제 또 오겠어? 이제 다시 못 오지.” 지금 나는 화를 내는 걸까? “아니, 왜 못 와? 마지막이라도 돼?” 나는 엄마를 안다. 그리고 엄마를 모른다. 엄마는 말이 없다. 창밖으로 파리가 멀어진다. 다른 곳은 그만큼 다가오겠지. 조금 지나 내가 말했다. “엄마, 우리는 지금 스위스로 가고 있어요.” 엄마와 나는 잠이 들었다.

흘러간다. 풍경이, 시간이.

스위스 알프스에서 부른 만세 삼창과, 밀라노 전차에서 본 초록색 조명과 베니스 비엔날레 캄캄한 전시장의 행렬과 피렌체 두오모의 저 둥그런 꼭대기가 흘러간다. 엄마의 말과 아들의 말이, 물결과 바람이, 무수한 감촉이, 밤과 불빛이… “엄마, 어디가 제일 좋았어?” 가장 흔하고 자연스러울 이 질문을 피하고 싶다고 나는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순간순간 엄마의 눈으로 보고, 엄마의 생각으로 생각하면서 몰려들듯 떠오르는 온갖 것들을 마주하실 텐데, 거기다 대고 어디가 제일 좋았냐 물어버리면 모든 걸 한 덩어리로 퉁치게 되잖아. 그건 좋지 않지, 멋이 안 나, 나쁜 질문은 삭제할 것. 대신 엄마 무슨 생각해? 나는 자주 그렇게 묻는 쪽을 택했다. 엄마는 대개 “아무 생각도 안 해” 하셨지만, 어쩌면 대답과 동시에 어떤 생각으로 들어가시지 않을까, 혼자 걷는 거리처럼 엄마에게 그런 시간을 만들어드릴 수 있다면… 이번 여행의 종착역 로마 테르미니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허공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로마에 왔네요.”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엄마, 마침내 로마에 오니까 어때?” 엄마는 말없이 앞서 걸으셨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았다.

로마에 머무는 사흘 내내 비가 내렸다.

그러다 반짝 해가 날 때면 다른 세상이 생겨나듯 아름다웠다. “로마는 뭔 놈의 날씨가 이런댜. 비는 논산에 쏟아져야 하는데, 참깨 심어놓은 거 다 말라 안 비틀어졌나 모르겄네.” 엄마는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질 때 이런 소원을 비셨다고 했다. “논산에 비 홈빡 쏟아지게 해주요.” 귀여운 엄마, 오늘은 점심도 저녁도 모두 한식당에 가요. “맛은 밀라노에서 갔던, 거기 이름이 뭐지 가얀가? 가야 맞지? 거기가 맛있었어. 된장찌개가 꼭 집에서 엄마가 끓인 것 같았잖아.” 엄마는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으로 그 된장찌개를 얘기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빽 소릴 지르겠지. 지금은 웃음이 난다만.

일요일 아침, 바티칸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날.

엄마는 어젯밤 떨린다고 하셨는데 잘 주무셨는지, 창가에 의자를 놓고 기도하는 엄마를 조용히 부른다. “김경임 씨.” 엄마가 돌아보며 웃는다. 웃음이 맑다. 엄마가 괜찮으신가 보다. 아니 웃음이 너무 맑다. 엄마는 여전히 떨리시는 걸까? 그 얼굴은 성 베드로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실 때도 똑같았다. “엄마, 계속 떨려?” 엄마가 먼저 내 손을 잡으셨다. 엄마는 아침에 호텔에서 담아온 미지근한 보리차를 조금 드셨다.

여행 마지막 날, 가는 비가 부슬부슬, 엄마와 나는 팡테온으로 갔다.

“내가 로마에서 참 좋아하는 곳이야. 나 대학생 때 처음 유럽에 왔잖아? 그때부터 여기가 좋았어. 이유는 들어가보면 알아.” 엄마는 기도하시고, 나는 실내를 둥글게 걸어 다녔다. 팡테온은 둥그니까. 지구는 둥그니까, 시간은, 음악은, 여행은 둥그니까. 그럼 시작과 끝은 뭘까. 여기선 모든 게 부드럽고 부끄러운데, 마지막이란 뭘까. 그런 생각을 할 때 엄마가 뒤에서 톡톡 나를 친다. “여기는 천장에 구멍이 빵 뚫려서 빵떼온인가?” 엄마, 아무래도 엄마는 전생에 로마에 사는 천재 소녀였나 봐, 그걸 어떻게 알았어? 우리는 우산 하나로 빗속을 걸어 나보나 광장까지 갔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옷이 젖었는데, 엄마는 소파에 앉아 그만 잠이 드셨다. 로마를 떠나면서도 엄마는 인사를 하실까? 그 말은 행여 어떤 ‘마지막’이 되어 우리를 스쳐갈까. “푸우~ 푸우~” 그때 엄마가 깊이 잠드시면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물이 났는데, 얼굴은 웃고 있었다. 제목을 지어야 한다면 ‘생의 한가운데’가 어떨까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드랬다.

이제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쯤.

엄마는 감자를 캐고 성당에 가고 한글을 배우는 논산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언제든 서울의 아들과 통화하면 제때제때 밥은 먹었는지 그게 그렇게도 마음에 걸리는 날들을 살아가신다. 이번에 여행하면서 고작 열흘 남짓 엄마의 세끼를 챙겨놓고 효자에 효도에 고생에 별소릴 다 듣는 판인데, 엄마는 그러길 하루하루 둥글게 평생이시지. 누군가의 끼니를 챙기며 걱정하는 마음이야말로 애틋하구나. 그의 입에 음식을 들여보내는 일이야말로 기쁘고 숭고한 일이구나. 누가 누구에게 의지하고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지,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여행은 어렴풋이 결국엔 선명하게 일러준다. 논산 집 마당엔 백합이 지고 수국이 피었다고 했다. 여기서는 창밖으로 주렁주렁 능소화 가지가 흔들거리는데, 생각이 나서 엄마에게 다 저녁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지금 집에 갈까? 그냥 가고 싶으 네. 먹을 거 뭐 있어?” 엄마가 웃는다. 바람이 즐겁고 계절은 한창인가? 그렇게 우리의 좋은 시간이 우리를 지나고 있다. 또한 어떤 것들은 가만히 자리에 남아서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만나면 인사를 해야지. 파리의 엄마처럼, 엄마의 로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