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가 된 여자들: 아티스트 아니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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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가 된 여자들: 아티스트 아니카 이

2019-08-16T16:27:49+00:00 2019.08.14|

추구하는 삶의 가치로서 성공은 사어가 되었지만 고여 있길 사양하며 계속 전진하는 삶은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시대와 호흡하며 섬세하고 다정한 서사를 펼치는 소설가 김애란, 자신의 정체성을 음악으로 창작해 전 세계 클럽에서 한국어와 영어가 울려 퍼지게 한 DJ이자 싱어송라이터 예지, 감각의 재평가를 주장하며 예술을 실험하는 아니카 이, 아이들을 작품 세계의 화두로 삼으며 성장 영화를 부활시킨 윤가은 감독. 이들 앞에 따라붙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신선한’, ‘독특한’, ‘독창적인’ 같은 수식어는 고유성을 증명한다. 지치지 않는 질문과 세상에 대한 관찰로 스스로를 장르로 만든 여자들. 변화보다 내면에 파동을 일으키는 여자들의 오늘을 만났다.

‘공상과학예술가’의 예리한 감각

아니카 이는 과학기술을 동원해 예술을 실험한다. 아니카의 대담한 실험 예술은 당연한 줄 알았던 규율을 흔들고 사회에 기묘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아니카 이(Anicka Yi)는 개인이 소장하기에 가장 곤란한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일지 모른다. 가만히 하얀 벽에 걸려 있거나 광장 한복판에 전시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작품이다. 아시안, 아메리칸 여성들로부터 채취한 땀과 함께 개미들을 유리관에 넣어 모계사회 성향을 가진 개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주고, 여성 100명의 입, 질 등 신체로부터 추출한 냄새를 추출해 분사하고, 옥시토신을 주입한 달팽이를 박스에 넣어둔다. 투명 풍선 속에 만개한 튀긴 꽃을 넣고, 금속 핀을 잔뜩 꽃은 두꺼운 초음파 젤이 담긴 투명 박스를 늘어놓으며, 박테리아로 얼룩이 잔뜩 생긴 흰색 타일과 의자를 전시한다. 그러니까 아니카 이 작품은 대체로 좀 곤란한 방식으로 살아 있다! 어제 본 작품이 하룻밤 사이 폭삭 부패해 오늘 갤러리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고개가 끄덕여질 모습을 한 채 말이다.

Biologizing the Machine (tentacular trouble), 2019.
Dimensions Variable. Kelp, Acrylic, LEDs, Animatronic moths, Water, Pumps.
Courtesy of the Artist and 47 Canal, New York.
Photograph: Renato Ghiazza

아니카는 과학과 향기에 대한 관심으로 예술을 시작했다. 향수, 과학 모두 독학으로 전문성을 쌓았고 ‘실험’과도 같은 작업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그녀는 머릿속에 떠올린 가설을 실현시키기 위해 협업할 과학자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지난한 시간이 지나 MIT 레지던스에서 작업을 하면서 과학자들과 인연을 맺었고 지금은 매 작품마다 각기 다른 전문가와 함께 협업한다. 그래서 창의적인 피가 흐르는 예술가가 차가운 이성을 요하는 과학에 깊은 이해도가 있을 때 새로운 차원의 작품 탄생을 보여준다. 과학자가 홀로 할 수 없고 예술가가 단독으로 할 수 없는 교차점에 아니카 이의 고유한 자리가 있다. 화학과 생물학적 기술로 실험적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작품 세계를 구축한 지 10여 년이 지난 2016년,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에게 트로피를 안기는 휴고 보스상은 아니카 이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휴고 보스상 수상 기념 전시회를 연 건 그로부터 1년 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감각적 삶에 대한 사회 정치적 관심을 탐구한 첫 번째 개인전 ‘Life is Cheap’을 열었다.

<보그>는 아니카 이의 작업실을 방문하며 제대로 찾았는지 다시 한번 주소를 확인해야 했다. 몇 년 전 아니카의 작업실을 방문한 <뉴욕 타임스>는 벽면에 적힌 구매 리스트가 외계인의 쇼핑 리스트와 다르지 않았다고 기사에 적었는데, 아니카 이의 스튜디오는 적어도 외계인이 지구에 마련한 연구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향수가 가득했고, 책꽂이에는 조류 생물 반응 장치, 아크릴, 실리콘, 냄새, 인종 간의 공기 같은 키워드 라벨이 붙은 백색 파일이 꽂혀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해조류가 담긴 여러 개의 수조였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가 실험 대상으로 삼은 해조류는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배양되고 있었다. 특히 개구리밥으로 추정되는 식물이 떠 있는 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는데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개구리밥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는 생명력을 가진 그림 혹은 조각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런 얘기를 건넸을 때 아니카 이는 문자 그대로 살아 있는 예술이 그녀의 호기심과 작품의 핵심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니카 이의 작업에는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이 걸쳐 있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 중인 ‘Biologizing the Machine (tentacular trouble)’과 ‘Biologizing the Machine (terra incognita)’는 어떻게 시작된 작품인가요. 오랜 화두인 ‘Biopolitics of the Senses’와 연관성도 궁금합니다.

베니스에 출품한 작품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던 ‘기계의 감각중추’로부터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 카메라, 마이크 등 기계의 감각기관이 어떻게 세상을 인지하고 기계의 지성적 발달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궁금함이죠. 마찬가지로 기계가 냄새를 맡고 맛을 보게끔 가르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아직은 기계의 감각중추에 대해서 기계가 어떤 방식으로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지, 그와 연관된 과정이 디지털 범위 내에서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탐구가 부족합니다. 과연 기계의 발전이 고대의 복잡한 생물학적 감각의 종말을 암시하는 것일까요? 컴퓨터의 시각에 대한 엄청난 관심은 서양의 전통적인 시각적 감각에 영향을 주고 있고 다른 감각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서 계속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어떤 냄새를 맡진 못했습니다. 냄새는 작품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나요.

‘Biologizing the Machine (terra incognita)’는 기계가 박테리아와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지 그리고 박테리아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적 접근이었습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인간에 대한 집착 대신에 알고리즘과 박테리아 집단 사이에 펼쳐진 관계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역한 냄새를 풍길 수 있기 때문에 박테리아는 통 안에 넣고 완전히 밀봉했습니다. 그러나 기계는 냄새에 대해 호감도가 어땠을까요? 썩은 냄새를 싫어하지만 배터리의 시큼한 냄새는 좋아할까요?
물론 이런 질문은 매우 인간 중심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항상 느끼지만 기계는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맛의 미적 감각을 발전시키려는 갈망과 능력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베니스와 연결 고리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박테리아 배양균은 상당히 다양한 미세 생태계의 토양에서 가져왔습니다. 비엔날레에 출품하기 몇 주 전 베니스 외곽에서 자란 박테리아 배양균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유전적이고 박테리아적이며 지질학적인 유산 또는 테루아르(Terroir)의 미세한 복잡성을 나타냅니다. 테루아르는 와인을 설명하는 데 포도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환경과 기후의 독특한 관점을 설명하기 위해 발달된 프랑스의 개념입니다. 일단 박테리아 배양균이 밀봉되면, 위노그라드 스키 배양균(러시아 미생물학자 세르게이 위노그라드스키(Sergei Winogradsky)의 이름을 딴 배양균)은 시간이 지나면서 색상, 질감과 패턴이 매우 미세한 변화에도 반응하며 진화하고 결국 원래 베니스 테루아르에 독특한 변이를 일으키게 됩니다.

당신의 작품에서 곤충이 이토록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뭔가요. 박테리아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물론 저는 곤충과 박테리아에 대한 책을 쓸 수도 있습니다만 가장 즉각적인 대답은 이러한 유형의 생물 두 가지가 모두 지닌 지능, 개성 및 주관성에 대한 기존 개념에 쉽게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류의 범주에서 볼 때, 이러한 생물은 매우 단순하고 비지성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전체 집단이 조정되면 집단적 지능을 통해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복잡한 행동을 보입니다. 새로 생긴 지능은 즉시 수행된 수많은 순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지능에 대한 하향식 이해와 달리 상향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지능은 통제받는 상황을 중단시키고 각각의 단계보다 더 큰 체계로, 더 큰 세계의 일부가 되어 항해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Biologizing the Machine (terra incognita), 2019. Dimensions Variable. Acrylic, UV Prints, LEDs, Glass, Tubing. Courtesy of the Artist and 47 Canal, New York. Photograph: Renato Ghiazza

당신의 작품은 살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 있는 생물이 등장하거나 냄새를 피우기도 하지요. 작품의 영속성을 고려하진 않나요.

영속성과 비영속성 사이에서 계속되는 협상은 저만의 예술적 관습의 한 부분입니다. 변이, 성장과 죽음이라는 주제는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제 작품은 인간이 살고 있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야 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미생물학, 합성생물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및 인지과학의 근본적인 발전에 호응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큐레이터와 예술품 관리위원도 그들의 관행을 확장시키는 도전이 필요할 것입니다. 특히 ‘Biologizing the Machine (tentacular trouble)’과 관련해 전문 연구원 및 재료 연구실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해초를 개발했습니다. 비록 그 해초는 기술적으로는 살아 있지 않지만 그 물질은 매우 역동적이고 마치 환경 변화에 따라 확장하고 수축하면서 숨을 쉬는 것 같습니다.

작업실은 아트 스튜디오라기보다는 실험실 같은 인상을 줍니다. 과학자들과는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하고 있나요.

다양한 종류의 지능과 기존에 알고 있는 작업 방식을 깨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현재 직면한 역할은 외부 규율을 혼란스럽게 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대담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함께 작업하는 연구실과 저의 관계는 매우 열정적인 공생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가 과학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반면 과학자는 예술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처럼요. 저는 스튜디오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매우 침침하고 까다로운 스튜디오 생태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문적인 과학 연구, 엔지니어링, 철학과 제조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다양한 생각은 어떠한 압박 속에서도 우리 스튜디오가 빨리 적응하고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