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음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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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음악처럼

2019-09-12T16:26:41+00:00 2019.09.05|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존 케일을 만났다. 그는 국내 인디 밴드의 공연 영상을 보고 이렇게 외쳤다. “와우, 이런 K-팝도 있었어? 이거야말로 K-팝이구나!” 그때 이 지면을 기획했다. 지금 국위 선양하는 아이돌 K-팝 외에도, 우리에겐 이 세상 ‘힙’이 아닌 ‘뮤지션’이 가득하다! 음악 평론가와 작가들에게 지금 가장 눈에 띄는, 그러나 많은 이가 발견하지 못한 뮤지션을 추천받았다. 차세대 혁오, 새소년 같은 말은 쓰지 않았다. 이들은 자아가 몹시 뚜렷하다. 직접 음악을 만들며 아무도 흉내 내지 않는다. 물론 누구는 다소 거칠고, 누구는 현학적이며, 누구는 지나치게 세련됐다. 하나는 분명하다. 이들이야말로 또 다른 장르의 ‘K-팝’이다. 거창하다고? 이 정도는 예상한다. 친구들끼리 모여 이 플레이리스트를 튼다면 “(내 취향은 아닐지라도) 너 음악 좀 듣는구나, 그래 오늘은 네 느낌대로 가보자”라는 추종을 받을 거다.

김뜻돌

드레스와 슬리브리스 톱, 쇼츠는 미우미우(Miu Miu).

‘유튜브 음악 크리에이터’와 ‘뮤지션’의 경계는 어디일까? 김뜻돌은 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녀는 직접 가사를 쓰고 음악을 만들고 뮤직비디오까지 기획해 업로드하지만 상당수는 저예산 혹은 사운드와 편곡에 공을 들이지 않은 습작 같은 곡이다. 일부는 너무 아마추어 티가 나서 ‘약빤’ 뮤직비디오를 제외하면 즐길 거리가 별로 없기도 하다.
그러나 정식 싱글로 발표한 ‘사라져’의 경우 상반기의 싱글 중 하나로 꼽아도 손색없을 만큼 훌륭하다. 뚜렷한 개성은 물론이고 중간에 툭 전환되는 사이키델릭 시퀀스는 올해 인디 음악의 순간 중 하나라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이 곡을 상반기 최고의 가요로 꼽고 “올해 들은 가장 이상한 음악”이라고 썼다. 유튜브에 올라온 헐렁한 습작을 듣고 있으면 과연 이걸 알고 만든 건지 모르고 엄청 잘하는 건지 도통 구별이 안 되지만 그렇기에 오랜만에 사람과 캐릭터에 호기심이 간다. 아마 정식 싱글과 유튜브 공개곡 사이에 일정한 완성도의 차이를 두는 듯하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않는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다. ‘가위바위보’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난 내 길을 걸어갈 테니 넌 지켜봐. 가위질해봤자 아픈 건 너뿐이야. 배 아프면 지는 거야. 어쩌지 내가 이겼네. 키키키키 키키키키킥.”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공개한 바에 의하면, 그녀의 본명은 김지민이며, ‘뜻돌’은 세상에 뜻 하나 깃들지 않은 돌은 없다는 의미로 지은 가명이다. 좋아하는 뮤지션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이며 재즈를 즐겨 듣는다고 한다. 유튜브에 처음 등록한 곡은 2017년 ‘바람에게’로, 탄핵 집회 당시 촛불을 든 마음을 노래한 곡이다. 2018년 ‘삐뽀삐뽀’ 영상과 유튜버 허챠밍의 추천 이후 유명해져 아이다호, 에반스라운지, 벨로주 등에서 공연으로도 팬들과 만나고 있다.

이뷰즈

니트와 셔츠, 팬츠와 벨트는 생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아직은 이름부터 낯설 것 같은 이뷰즈(E.viewz)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사운드클라우드와 중국이다.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이미 5만 명의 팬을 거느린 싱어송라이터로 네오 소울 계열의 음악을 선보이는 그는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에드거의 시점’이라는 뜻으로 이뷰즈란 이름을 쓴다. 재즈, 블루스, 힙합을 아우르는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에서 섹시하고 안락한 음악을 선보인다.
2019년 2월, 메이저 데뷔 싱글 <On Me>를 발표한 이뷰즈는 이 곡을 한국과 중국에서 발매해 중국 음원 서비스 1위를 차지했다. 2017년부터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활동하던 이뷰즈는 2018년 10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아티스트 계약을 했다. 수년 전부터 사운드클라우드는 프로를 지향하는 음악가들의 발판으로 자리 잡았는 데, 이뷰즈와 같은 사례는 그런 현상이 보편화되는 사례다. 메이저 시장에서 그는 K-팝 아이돌의 싱글 프로듀서나 중국 아이돌의 작곡가로도 활약한다.
온리원오브(OnlyOneOf)의 데뷔 EP <Dot Point Jump>의 타이틀 ‘Savanna’ 등을 프로듀싱하거나, 발매와 동시에 중국 차트 3위와 50만 장 판매를 돌파한 중국의 아이돌 주정팅(朱正廷)의 싱글 프로듀서로 참여한 커리어가 예사롭지 않다. 주정팅의 경우 중국의 3대 기획사로 꼽히는 위에화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자 <프로듀스 101 시즌 2>와 ‘중국판 프듀 101’로 불리는 <우상연습생>의 참가자로 유명한데, 현재는 ‘나인 퍼센트’라는 중국 아이돌 그룹에서 활동 중이다.
이뷰즈는 2019년의 음악 생태계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운드클라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글로벌 마켓이라는 구도가 현재 서울의 음악 산업을 에워싼 지형도라는 뜻이다. 요컨대, 한국 음악이 주연을 맡은 흥미진진한 드라마는 막 시작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유라

니트 드레스와 벨트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세련된 비트 위로 고혹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느릿느릿 포복하는가 싶더니 비트의 질감과 속도에 맞춰 보컬의 컬러를 쓱 하고 바꿔버린다. 노래와 랩 사이를 오고 가면서 분위기를 늘렸다가 당긴다. 과연 ‘개성’이라는 측면에서 그를 당할 가수가 몇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곡이었다. 바로 공일오비와 함께 공개했던 ‘L’이다. 무엇보다 귀를 자극한다는 측면에서 유라는 목소리 자체로 ASMR인 뮤지션이다. 계속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매력이 대단하다.
결정타는 역시 <더 팬>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쇼를 통해 유라를 알게 되었다는 독후감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게 그 증거다. 솔직히 직관적인 스타일의 목소리는 아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전한다 해도 불리할 여지가 많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얘기다. 보아는 그가 노래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듣고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서 유라가 쓴 가사가 궁금하다고 첨언했다. 확언할 수는 없다. 하나, 만약 카더가든과 함께 작업하고 직접 노랫말을 쓴 ‘깜빡’이나 ‘세탁소’를 보아가 들었다면 꽤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유라는 자신의 바람처럼 ‘지속 가능한 싱어송라이터’가 될 수 있음을 이 두 곡이 포함된 EP <B Side>로 충분히 증명했다. 그가 꿈꾸는 지속 가능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내 응원 역시 지속 가능할 것임을 약속한다.

지젤

드레스와 뱅글, 브레이슬릿은 생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수란, 페노메코, 쿠기. R&B와 힙합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지젤은 이들이 소속된 밀리언마켓에서 야심 차게 선보이는 R&B 신인이다. 지난 2월 챈슬러가 피처링한 ‘받지마’로 데뷔해 지난 6월 ‘Better This Way’까지 반년 사이 두 개의 싱글을 발표했다. 데뷔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챈슬러가 데모를 들어보고 인정해 밀리언마켓을 소개했다. 올해 나이 서른으로 대학원 석사를 마친 뒤 음악을 시작해 출발은 늦었지만 뒤집어보면 그만큼 빨리 성장한 재능 있는 뮤지션이란 뜻 아닐까. 처음엔 작곡가를 꿈꿨지만 오롯이 내 색깔을 입히고 싶어 노래까지 부르게 됐다.
지금의 R&B 신예들보다 시작은 늦었지만 음악 스타일만큼은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다. 전자음 섞인 뿌연 R&B다. 이제 한국에도 이 계열이 대중화돼 많은 가수들이 시도하고 있지만 지젤은 한국형 발라드 색깔을 더 깊이 솎아내 마치 팝을 듣는 것 같다. 그녀의 음악이 대중성을 잃지 않은 것처럼 들리는 이유는 대중성을 접목했기 때문이 아니라 보편적 음악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창법도 애절하게 우는 쪽과는 거리가 멀고 R&B 특유의 관능적인 매력을 살렸다. 과하지 않게 덤덤하게 눌러 도도함도 잡았다.
수란처럼 개성 강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직접 작사 작곡도 하는 싱어송라이터 포지션이라 특별히 마이너스가 될 것 같진 않다.
음악의 미묘함만큼 가사도 일상의 단면을 현미경처럼 잡아낸다.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면 터놓기 힘든 깊은 속내는 물론이고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아이러니한 감정까지 솔직히 꺼내놓는다. ‘Better This Way’는 다시 사귀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보고는 싶은 마음을 이야기한다. 전 남친에게 문자를 받고 심란해진 복잡한 마음을 가사라는 한정된 빈 공간에 펼쳐내는 압축력이 좋다. 디테일의 완성도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욕심이 느껴져 아티스트로서 신뢰가 간다.

천용성

코트는 포츠 V(Ports V), 슈즈는 파라부트(Paraboot).

내 주변에는 음악왕들이 꽤 많다. 당연하다. 직업상 아직도 CD와 LP를 사고 있는, 2019년에도 정신 못 차린 인간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인간관계에 속하다 보면 큰 장점을 하나 보유할 수 있다. ‘누가 대세인지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거다. 때는 2019년 6월. 이름 하나가 주변에서 스멀스멀 들리기 시작했다. 빈도가 잦아지더니 음악 좀 듣는다는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명의 이름을 언급하는 게 아닌가. 천용성이다.
기본적으로 천용성은 뛰어난 싱어송라이터다. 일상의 소재를 길어 올려 그것을 담담하면서도 울림 있는 음악으로 전이하는 재능이 탁월하다. 뭐랄까, 색이 바랜 지난 시절을 자신의 음악으로 노래하면서 듣는 이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유의 뮤지션이라고 보면 된다. ‘김일성이 죽던 해’가 대표적이다. 이 곡의 주제는 김일성의 죽음이 아니다. 김일성이 세상을 떠난 1994년의 추억을 하나둘 소환하면서 “당신의 1994년은 어땠나요?”라고 묻고 있는 곡이다. ‘김일성이 죽던 해’와 함께 최소한 ‘대설주의보’는꼭 감상해보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포크인가 하면 재즈이고, 재즈인가 하면 록인데 이 경계를 오고 가는 전개가 꽤나 ‘힙’하다는 인상을 준다.
평론가 김학선은 그를 ‘인디왕’이라 부른다. 직접 물은 건 아니지만 ‘왕’이라는 표현은 인기를 기준 삼아 부여한 게 아닐 것이다. 천용성이 그만큼 인디적 자세에 부합하는 음악을 완성해 들려준다는 뜻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김학선은 아직도 카세트테이프를 수집하는 음악왕 중에 한 명이다. 어떤가. 음악왕이 인정하는 인디왕이라니, 주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녹두

데님 재킷과 톱, 팬츠는 우영미(Wooyoungmi).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리믹스 영상에서 녹두는 무그 신스로 베이스를 연주하고 그 위에 로맨틱한 R&B 노래를 부른다. 트렌디함으로 다가올 법한 모습이지만 인터뷰 영상을 보면 허름한 작업실을 배경으로 얼마 안 되는 팬들의 피드백에 너무도 감사해하는 순진한 청년이 발견된다. 그는 딘의 ‘인스타그램’처럼 힙한 노래를 커버하지만 카펜터스의 ‘Close to You’처럼 추억의 올드 팝을 리믹스한다. 지난해 싱글 ‘머물러줘’의 커버는 아다치 미쓰루 스타일의 순정 만화 주인공 같은 소녀가 첫사랑의 이상향처럼 풋풋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힙스터들이 좋아하는 R&B를 하면서 멜론 프로필 사진은 상갓집 검은 양복 차림인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신인은 이런 호기심을 자극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에선 80년대의 향기가 느껴진다. 예전 90년대 팝과 R&B에서 자주 들리던 고색창연한 EP(일렉트릭 피아노) 소리가 코드를 잡아주고 고전적 신시사이저 톤이 능숙한 솔로 프레이즈를 그려낸다. 요즘의 전자음 R&B 유행을 흡수하면서도 레트로의 멋에 초점을 둔 음악이다.
지난해까지는 대부분의 작사 작곡을 홀로 했지만 최근엔 협업을 통해 음악 스펙트럼을 넓히는 중이다. 6월 내놓은 쟈코비와의 콜라보레이션 ‘Coin Wash’는 그동안의 발라드 스타일 R&B를 잠시 미뤄둔 뉴 잭 스윙 스타일의 댄스다. 가사 측면에서도 순정남 같은 독백에서 벗어나 코인 빨래방에서 마주친 늘어난 나이키 티셔츠를 입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다. 4월에 발표한 첫 EP 타이틀곡 ‘그대와 둘이서’는 프로듀서 진보와의 협업이다. 둘 모두 신시사이저를 좋아하는 프로듀서형 R&B 보컬이라 환상의 케미를 선보였다. 개인적으로 ‘그대와 둘이서’는 올 상반기 최고의 R&B 중 하나였다.

보수동쿨러

(왼쪽부터)이상원이 입은 재킷과 셔츠, 팬츠는 유니버셜 웍스(Universal Works). 정주리가 입은 셔츠와 니트, 스커트는 프라다(Prada). 구슬한이 입은 울 재킷과 팬츠는 프라다. 최운규가 입은 재킷과 티셔츠, 팬츠는 유니버셜 웍스.

최근 몇 년간 부산은 한국 인디 신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 피아나 레이니썬 같은 1세대 밴드 이름을 굳이 소환할 것도 없다. 팝 스타 엘튼 존을 비롯해 피치포크, 스테레오검 등 ‘힙’한 취향의 해외 미디어에 연이어 호명되며 화제를 모은 서프 록 밴드 세이수미도, 매력 넘치는 음악으로 2018년을 대표하는 루키로 급부상한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도 부산 출신이었다.
부산 음악가들만 나눠 먹는 특별한 물약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비교적 합리적인 의심이 들려는 찰나, 보수동쿨러마저 등장했다. 낯선 이름이었다. 2017년 결성 이후 음반 발매보다 부산에 자리한 다양한 클럽을 통해 무대 경험을 쌓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다니 서울 촌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만했다. 그러나 음악은 익숙했다. 보수동쿨러의 음악에는 60~70년대 사이키델릭에서 80년대 컬리지 록, 90년대를 풍미한 눅눅한 홍대 밴드 사운드까지 다양한 시대의 청춘이 남기고 간 잔상이 어려 있었다. 여전히 시고 떫으며 달콤한 동시에 씁쓸했다.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인디펜던트 음악에 한 번이라도 마음을 빼앗겨본 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레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그런 종류였다.
듣는 순간 자욱이 퍼지는 밴드 특유의 스모키한 느낌은 밴드에서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프런트 우먼 정주리의 목소리와 매력에 큰 부분을 기대고 있다. 리드 기타와 서브보컬의 구슬한, 베이스 이상원, 초기 멤버 양갱의 빈자리를 채운 드럼의 최운규 등 멤버 한 명 한 명이 지닌 개성 넘치는 캐릭터도 눈을 사로잡는다. 자신들을 규정하는 것도, 영원도, 끝도 없다 외치는(‘0308’) 새로운 밴드의 도래. 이런 익숙함은 몇 번을 만나도 반갑기만 하다.

애리

레더 드레스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조금 조심스럽지만, 우선 애리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그 순간의 느낌 그대로를 늘어놓고 싶다. 우선 가장 도드라진 건 먼 고통의 늪에서 들려오는 듯한 주술 같은 목소리와 허무와 회한으로 가득 찬 공기였다. 모두 굳이 호구조사를 해보지 않아도 하나같이 어둡고 축축하며, 복잡하고 뒤틀린 나라 출신임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나는 애리와 그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흔히 붙곤 하는 몽환이나 환상이라는 단어에 느슨하게 반대하게 되었다. 그의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 수사가 필요하다. 깊은 꿈속 에서 들려오는 비명,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게 설계된 기나긴 미로, 고단한 삶에 지쳐 잠시 눈을 붙인 우리의 무의식 한가운데를 강렬하게 가로지르는 의뭉스러운 꿈.
2015년 오픈 마이크를 시작으로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애리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나 발표한 미니 앨범 <Seeds> 한 장으로 그해 가장 주목받는 신인이 되었다. 편의상 사이키델릭 포크(Psychedelic Folk) 또는 프릭 포크(Freak Folk)로 분류하지만 그의 음악은 그런 장르적 구분과 상관없이 노래 자체가 지닌 고유의 매력으로 수많은 이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라이브가 가진 매력은 또 어떤가. 노래를 통해 아스라이 짐작만 하던 모든 이미지와 에너지가 한 점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다 마침내 빅뱅을 일으킨다. 한 번쯤 꼭 볼만한 장관이다. 지난 2월 개최된 제1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함께 오른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생애 단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는 올해의 신인상을 거머쥔 애리는 자신의 가치나 꿈이 평가절하되거나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계속 용기 있게 음악을 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포자가 퍼져나간다. 용기라는 추진력을 얻은 애리의 비밀스러운 행진이다. 당분간 멈출 일 없는.

이권형

수트와 터틀넥은 토즈(Tod’s).

인천에 오래 살았다. 1985년부터 2003년까지였으니, 나로서는 10대와 20대를 보낸 셈이다. 물론 대학에도 군대에도 다녀오느라 다른 곳에서 수년을 보냈지만, 그래도 인천이라고 하면 고향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정작 내 고향은 다른 곳이지만, 인천에 대해 조금 남다르다. 애틋하고 그리운 것 말고, 어떤 혐오와 애틋함이 뒤섞인 복잡함. 나는 인천을 사랑한 적 없었다. 오직 떠나고 싶었다. 어디든 상관없었다. 1호선을 탈 때마다 맡던 소주 냄새와 돼지갈비 냄새가 싫었다. 화학약품과 비린내가 묘하게 섞인 공기가 싫었다. 그리고 마침내 30대에 완전히 인천을 떠나게 되자 웬걸, 인천이 그리워지고 애틋해졌다. 대체 이 ‘재수 없는 전 애인’ 같은 마음은 뭘까.
이권형은 인천에 대해 노래한다. 그 이름을 처음 본 것은 <인천: Sound of Incheon> 컴필레이션이었다. 90년대 가요에 어울릴 듯한 목소리로 쓸쓸하게 노래해서 기억에 남았다. <젠트리피케이션>과 <인천의 포크>라는 앨범에서도 그를 발견했다. ‘교회가 있는 풍경’이란 제목의 정규 1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2010년대 앨범 중 하나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가 인천을 사랑한 적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싫어하고 그리워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의 목소리는 그리움과 쓸쓸함을 담지만, 동시에 묘하게 냉정하고 싸늘한 기운을 뿜어낸다. 이게 뭘까 생각해보면, 그의 목소리는 자기 정체성을 응시하는 동안 나오는 것 같다. 누구든 자신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파악하게 되는데, 그 기준이 남(타자)인지 나(주체)인지에 따라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쉽게 말해 인천은 변두리인가 아닌가. 변두리가 아니라면 중심인가, 아니면 뭔가? 그러니까 서울과 비교할 수밖에 없어서, 나는 그토록 인천을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닌가. 그게 마치 내 처지 같아서.
내가 이권형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인천을 소재로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이라 설명할 것인지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복잡한 정서를 다루는 싱어송라이터 이권형을 추천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