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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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의 ‘초상’

2019-09-30T11:19:49+00:00 2019.09.30|

개봉

아버지는 지금도 말씀하시곤 합니다. “죽기 전에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을까.” 무성한 추측대로 유실된 필름은 북한에 있을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기억 창고에 가장 강렬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영화가 아버지에게 끼친 영향은 제게도 흘러왔을 테지요. 한국 영화가 끼친 영향을 어떻게 제 짧은 말로 다 할 수 있을까요.

영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영화를 배우면서 연기에 대한 모든 걸 배웠습니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영화와 영화를 통해 만난 사람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영화를 통해 배우자도 만났습니다. 한국 영화를 덜어내면 문소리가 구성될까 생각될 만큼 신체의 일부분처럼 느껴집니다. 제게 한국 영화를 빼앗아간다면 가장 중요한 장기인 심장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한국 영화로부터 받은 게 너무 많아 갚아야 할 것도 많겠지, 여기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사 100년 중 저는 이제 겨우 20년을 영화계와 함께했습니다. 정말 많은 것이 변했지요. 그러나 여전히 변치 않는 것 중 하나는 영화인들이 아닐까 합니다. 누구도 쉽게 지지해주지 않는 꿈을 좇아 영화판에 들어오고 그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나아가는 영화인들은 100년의 역사 속에 늘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아 뒤를 돌아봤습니다. 1999년에 영화를 시작했지만 부끄럽게도 이제야 한국 영화의 역사를 들여다봤습니다. 펄펄 끓는 피는 뜨겁고 폭발할 듯한 열정은 시야를 가리곤 하니까요. 한국 영화라는 강물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볼 새도 없이 저 역시 강물 속에서 펄떡펄떡 뛰고 있었습니다. 배우의 삶은 울타리가 없는 것 같고 혼자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배우의 삶은 겁이 나고 두려운 순간으로 가득 차 있어요. 가끔 속이 텅 빈 듯 고갈된 것 같고 무엇으로 연기해야 할까 막막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고전으로부터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양분이 될 만한 무언가, 빛이 되어줄 무언가. 그분들이 걸어온 쉽지 않은 길이 용기를 주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헤아려보며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년 역사 속에 있었던 분들과 앞으로 등장할 배우들은 모두 한 팀이자 든든한 동료입니다.

<보그 코리아>와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아 특별한 기획을 준비하며 ‘여자’에 집중해보고자 했습니다. 여배우의 삶을 한 명이라도 더 들여다보고자 했고 여성 감독에게 귀를 기울였고 여성 스태프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받아야 할 박수를 받지 못한 과거의 시간에 뜨거운 환호성을 질러 노고를 치하하고 싶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여성 영화인의 역사에 환한 조명을 켜고 싶었습니다. 지금 세상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는 그녀들이 쌓아 올린 결과물이니까요. 여성 영화인이 세상을 바라본 시각에 시대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보였습니다. 다행히 절망보다 희망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한국 영화가 진정한 다양성의 시대를 맞이한다면 생각도 생김새도 다른, 오늘도 분주하게 달리고 있는 여성 영화인들 덕분일 겁니다. 한국 영화 200주년을 상상해봅니다. 제 딸 연두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아도 충분한 시간… 한국 영화 200주년을 축하하며 여성 배우의 역사를 돌아볼 때 제 이름이 거론된다면 무한한 영광이겠지요. 그때도 <보그 코리아>에서 여성 캐릭터 화보를 기획한다면 <여배우는 오늘도> 패러디를 제안해보고 싶네요. 유령이 되어…, 바람이 되어…, 햇살이 되어…

글 문소리

초상

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한국 영화의 부흥을 향해 달려가던 순수의 시대. 사회에 도전하고 자기 욕망을 향했던 여자 배역을 다시 만난 문소리의 초상.

“70년대 이전 한국 영화에서 순종적이고 전통적인 어머니상, 남자들의 판타지인 어떤 대상으로서 여성상, 아니면 피해자이자 희생양인 여성상을 제외하면 자신을 우선시하는 여자들이 남는다. 주로 가부장제에 반기를 들거나 바람피우는 모습으로 그려져 아쉽지만 그 방식만큼은 매우 도전적이고 강렬하다. ‘너무 세지 않아?’ 여배우들이 캐릭터에 대해 고민하면서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인데, 그 옛날에 더 강한 여성 캐릭터가 많았다는 사실에 힘이 난다. 센가, 약한가 같은 패러다임을 벗어나 훨씬 더 다채롭게 스펙트럼을 넓혀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양성은 한국 영화에서 건강함을 확인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다. 장르 안에서도 밖에서도 주체적이고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더 많이 볼 수 있길.”

하녀–이은심
<하녀>, 1960

블랙 포인트로 어깨를 강조한 시스루 원피스와 이너로 입은 FF 레터링 패턴의 터틀넥 보디수트는 펜디(Fendi).

결국 아크로바틱한 포즈로 계단에서 죽음을 맞지만 하녀는 남자에게 욕망을 즐긴 대가를 치르라고 끊임없이 협박한다. 그 안에는 신분 상승 욕구와 복수 심리로 가득 차 있다. “난 애 아버지를 줬으면 좋겠어”, “여보!”, “내가 망했으니 집안도 다 망해야죠” 같은 대사는 하녀의 내면을 전면적으로 드러냈다. 불륜으로 임신한 상황을 홀로 짊어지거나 희생하는 대신 공포를 일으키는 수단으로 삼는 하녀는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여자였다.

소냐–최은희
<지옥화>, 1958

벨벳 소재 오프 숄더 원피스는 블루마린(Blumarine).

“소냐 언니한테 시동생이 어딨어?” 형의 애인이지만 동생과 즐기는 소냐를 두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뒷담화는 소냐의 캐릭터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기지촌에서 늘 껌을 씹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느긋한 태도는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품성을 보여준다. 동생이 더 좋아진 소냐는 형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큰 ‘껀’를 밀고해버리고는 어떤 죄책감도 없이 말한다. “한 사람이 없어야 우리 둘이 살 수 있잖아?” 끝이 모두의 파멸임을 알아도 기꺼이 유혹당할수밖에 없는 여자. 소냐는 총에 맞아 진흙탕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까지도 매혹적이었다.

선화 공주–윤정희
<마법선>, 1969

가죽 점프수트는 롱샴(Longchamp), 이너로 입은 에나멜 소재의 보디수트는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 워커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선화 공주는 마법에 걸려 병든 왕자를 구하고 위기에 빠진 왕실에 평화를 되찾아오는 히어로다. 역신과 마법사라는 악의 무리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강인한 전사이기도 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궁에서 쫓겨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해나간다. 남자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무공 실력을 갖춘 선화 공주는 젠더 역전의 쾌감을 안겨준다.

명순–강미애
<월하의 공동묘지>, 1967

망사 터틀넥과 시스루 샤 스커트는 펜디(Fendi).

아들을 해치려 하자 귀신으로 부활하여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는 명순이 인상적인 건 그녀가 살아생전 희생당하는 여동생, 순종적인 아내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무덤을 박차고 나올 수 있었을까. 억울한 누명을 쓴 자신의 운명을 바로잡고 아들을 보호하는 명순은 죽어서라도 저항을 감행한 여자였다.

은미–최지희
<아름다운 악녀>, 1958

소매치기 은미는 50년대 ‘아프레걸’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육체를 이용하고 여성에게 강요하던 도덕성과 역할을 거부했다. 은미는 반항아였다. 사랑을 믿지 않지만 남자를 유혹하고 거리를 방황했다.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습에 반하기 위해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 대리 만족 심리였을까. 청춘 관객들은 은미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애순–문예봉
<미몽(죽음의 자장가)>, 1936

호피 무늬 원 숄더 드레스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블랙 크리스털 장식의 반지는 디올(Dior).

애순은 결혼 생활을 새장 속에 갇힌 새의 처지로 여기며 답답해하는 여자다. 결국 집을 뛰쳐나가고 젊은 남자와 호텔에서 지낸다. 나중에 남자의 정체를 알고 신고하는 대범함을 보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남자를 쫓아가는, 욕망에 충실한 여성이다. 욕망을 불순한 것으로 여기던 그 시절 화장대에 앉아 자신을 꾸미며 뜨거운 속내를 가라앉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진숙–문정숙
<여판사>, 1962

흰색 팬츠 수트와 이너로 입은 화이트 셔츠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한국 영화 최초의 여판사 캐릭터다. 진숙은 판사가 되기 위해 쉼 없이 공부하고 판사가 된 후에도 일에 매진하며 시어머니의 누명을 벗길 때도 직업인으로서 소명을 다한다. 열등감을 느끼는 남편에게 “당신은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이고 나는 사회의 병을 고치는 법관인데 뭐가 문제인가요?”라고 묻는다. 또 여자에게 법관은 무거운 짐 같다는 후배에게 “개인의 일시적인 고통이나 난관보다는 많은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말한다. 진숙의 소명 의식이 빛난다. 한국 영화에서 여판사가 다시 등장한 건 2019년이다. <배심원들>에서 문소리가 담대하고 올곧은 재판장 역할을 맡았다.

마가렛 & 정애–윤인자
<운명의 손>, 1954

에나멜 소재의 트렌치 코트는 블루마린(Blumarine),블랙 싸이하이 부츠는 지안비토 로시(Gianvito Rossi).

마가렛은 한국 영화사에서 ‘사랑과 이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간첩’ 캐릭터의 시초가 된 인물이다.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옷과 구두를 사주고 “선생님은 오늘 완전 제 포로지요?”라고 물어보는 대담함을 지녔지만 마음이 깊어지면서 남자를 위해 결국 희생하고 만다. 영화 중반까지 어떤 상황에도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하고 날렵한 첩보원의 모습은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운명의 손>은 한국 영화 최초로 키스 신이 등장하니 마가렛은 공개적으로 키스한 여자 캐릭터인 셈이다.

이신자–이민자
<미망인>, 1955

러플 디테일 화이트 셔츠는 레하(Leha).

6·25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신자는 애인과 살기 위해 아이를 버리는 여자다. 죽은 남편 친구의 호감을 이용해 돈을 받아내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무엇보다 신자는 모성애가 본성이라는 세상의 믿음을 전복해버린다. 아이는 그녀에게 우선순위가 아니다. 게다가 신자를 비롯해 <미망인>에 나오는 모든 여성은 누구든 당당하다. 바람을 피우든, 본부인이든, 옆집 사는 여자든. 그녀들은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이 꿈꾸는 여성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