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아이섀도의 귀환

2023.02.20

by VOGUE

    아이섀도의 귀환

    서랍 속 깊숙이 처박혀 있던 형형색색의 아이섀도 팔레트. 다시 빛을 볼 수 있을까?

    몇 년 사이 코스메틱 시장의 최고 히트 상품은 립스틱이다. “말린 장미, 물든 장미, 으깬 장미까지, ‘장미’ 하나로 몇 년째 진한 사골을 푹 우리는지 몰라요. 그야말로 손 안 대도 저절로 굴러가는 효자죠.” 어느 뷰티 홍보 담당자가 농담처럼 흘린 ‘립스틱 효과’는 수치로 증명된다. SSG닷컴에서 지난 3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뷰티 아이템은 립스틱. 이른바 명품 화장품 카테고리에 속한 제품의 성적이 대단하다. 2016년부터 매해 15%씩 성장해 지난해 립스틱 판매량은 3년 전 대비 35%나 증가. 냉정한 수요 총량의 법칙에 따라 우리의 관심에서 조금 멀어진 비운의 주인공은? 아이섀도.

    ‘난 잘 모르겠는데? 여전히 눈 화장 러버인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있다면 90년대 ‘브라운관’을 강타하던 여배우 사진을 꺼내보길. 태초엔 라네즈의 김지호, 템테이션의 심은하, 라끄베르의 김남주가 있었다! 잡지 표지를 넘기자마자 경쟁하듯 등장하던 그 시절 뷰티 아이콘들은 눈두덩을 빈 공간 하나 없이 진하디진한 버건디 계열로 가득 채운 3D 그러데이션 아이, 펄 느낌 자글자글한 세기말 감성의 글리터 아이였다. 그 모습이 킴 카다시안 못지않게 과감하다. 더 스릴 넘치는 건 이 메이크업이 일상을 강타한 데일리 메이크업이란 사실. 당시 디올 ‘쁘와종’ 향 폴폴 풍기던, 멋 좀 부리는 여대생과 직장인 언니들의 위시 리스트는 단연 샤넬 4구와 디올 5구 아이섀도 팔레트. 해외 출장 떠난 아버지는 엄마가 주문한 랑콤 3단 변신 팔레트를 면세 찬스로 손에 넣던, ‘아, 옛날’이다.

    “그때는 화장하는 재미가 있었죠. 화장대에 브러시를 펼쳐놓고 팔레트 색깔을 빠짐없이 블렌딩했으니까요. 아이홀을 잡는 구조적 형태는 물론, 컬러 스펙트럼도 넓었으니 비포 & 애프터 효과가 더 드라마틱했죠. 지금은 컬러군도 단출해졌고 과정도 예전에 비해 간소화됐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은 90년대 메이크업을 회상한다. 요즘 길거리만 봐도 눈 화장 보는 재미는 덜하다. 거의 브라운 계열의 라이트한 음영 아니면,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 정도가 고작이니까. “그러고 보니 아이 팔레트를 안 들고 다닌 지 꽤 됐어요. 피부를 깨끗하게 표현하고 입술만 강조하는 원 포인트 메이크업의 매력에 몇 년째 빠져 있거든요. 최대한 힘을 뺀 ‘에포트리스 시크’ 트렌드도 한몫했고. 또 눈 화장은 정교한 스킬을 필요로 해서 실패 확률이 높은 반면, 립스틱은 쓱 한 번 바르기만 해도 단숨에 꾸민 티가 나니 가성비가 높죠.” 뷰티 콘텐츠 디렉터 김미구 역시 립 대세론에 힘을 보탠다.

    그리하여 문득 궁금해졌다. 철마다 주옥같은 컬러 차트를 뽑아내며 여자들의 지갑을 강탈한 디올 5색 팔레트의 요즘 성적표는 어떨까. “디올 시그니처로서 여전히 롱런 중이지만 사용이 더 간편한 제품이 강세인 게 사실이죠. 쓱 긋고 손가락으로 펴 바르기만 하면 되는 아이템이요. 리퀴드 섀도나 팝한 컬러의 아이라이너가 인기죠. 이제 아이 메이크업도 편리와 실용이라는 키워드를 간과할 수 없죠.” 디올 뷰티 홍보팀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형형색색의 아이섀도 팔레트는 맥을 못 추고 추억의 문물로 사라지는 걸까? 다행인 건 아이 메이크업의 반격을 이끌 이슈가 하나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팔레트 맛집 ‘세포라’ 한국 상륙이다. 대단한 심폐 소생술이라도 되느냐고? “한국에선 립이 대세인 반면, 외국 여성들은 립은 포기해도 아이 메이크업을 꼭 사수하죠. 글로벌 시장에서 늘 매출 상위에 오르는 톱 베스트셀러 중 상당수도 아이섀도 팔레트예요. 우리가 흔히 아는 브랜드 외에 타르트, 아나스타샤 베버리힐즈, 조이바, 후다 뷰티처럼 아이섀도로 소문난 3세대 브랜드를 발굴해 소개한 것이 세포라의 자랑이기도 하죠. 이런 색다른 브랜드의 라인업이 한국 색조 메이크업에 활력이 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세포라 코리아 홍보팀은 말한다.

    원조 아이돌의 옛 모습을 추억하기 위해 온라인 탑골공원에 모여들고 3,200만 화소 대신 구식 일회용 카메라에 열광하는, 90년대로 떠나는 역주행 문화 역시 아이섀도 팔레트의 부흥을 견인하는 사이렌이 될 듯하다. “그 시대를 겪은 우리나 요즘 세대나 모두 90년대를 추억하고 동경하고 있잖아요. 대중문화와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할 것 없이 90년대 코드가 만연하죠. 조금 불편하고 공수가 들지만 미술 시간처럼 이것저것 색깔을 덧입혀가는 아이 메이크업의 섬세한 공정도 점점 매력을 되찾아가고 있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은 덧붙인다.

    한동안 립스틱에 심취하거나 한 듯 안 한 듯한 ‘노 메이크업 메이크업’에 몰두하느라 우리 여자들은 눈에 힘을 많이 뺐다. 그러는 사이, 메이크업 스킬도 퇴보했을 테니 진입이 까다로울 수밖에. 하지만 개성을 뽐내기엔 유행하는 입술 색 하나만으로 부족하다. 눈매로 인한 드라마틱한 이미지 변신 효과를 떠올려보길. 눈을 깜빡일 때마다 뿜어 나오는 에너지와 우아함, 관능미. 이제 당신의 뷰티 쇼핑 목록에 아이섀도 팔레트를 추가해야 하는 이유다.

      프리랜스 뷰티 에디터
      박세미
      포토그래퍼
      김보성
      모델
      알비나(Albina)
      헤어
      윤성호
      메이크업
      공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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