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담비와 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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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담비와 향미

2019-10-25T17:25:59+00:00 2019.10.25|

‘옹산’이라는 시골에는 ‘까멜리아’라는 술집이 있습니다. 말만 술집이지 두루치기가 맛있는 밥집에 가깝습니다. 까멜리아의 주인은 동백이입니다. 동백이는 고아에 미혼모로 짠한 인물이죠.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까멜리아 알바생 ‘향미’가 있습니다. 향미는 술집 어머니 밑에서 자라 동백이 못지않은 구박과 생활고를 겪었죠.

향미의 말처럼 “너나 나나 도찐개찐인 인생” 속에서 두 사람은 우정을 나눕니다.

추운 겨울밤, 갈 곳 없는 향미는 까멜리아 알바 모집 글을 보고 들어와 “같이 밥 먹어요”라는 동백이의 한마디에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고, 그렇게 그들은 까멜리아를 지키게 됩니다.

‘옹산의 다이아’라는 동백이만큼이나 향미도 반짝입니다. 짠한 인생은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성격과 매력을 갖고 있죠. 향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듯 웬만한 일에는 무심한 듯 보입니다. “인생 다 그런 거지 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죠.

누구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지만, 정작 그녀는 옹산 사람들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솔직하지 못할 때면 마음을 쿡 찌르는 한마디로 상황을 정돈하는 것도 그녀의 역할입니다.

향미에게는 거친 과거가 있습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 화류계에서 일하다 도망쳐 나와 옹산에 숨게 된 것. 코펜하겐에 가기 위해 1억원을 모으려는 향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동네 유지 ‘노규태’를 이용해 한탕 크게 해보려고 계획도 세우고, 심지어는 동백이의 돈도 가져갈까 고민합니다. 향미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코펜하겐에는 그녀의 남동생이 있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향미가 깨금발로 떠받들며 금이야 옥이야 키운 동생이죠. 결국 자신을 내친 동생과 연을 끊게 되지만.

무심하고 세상을 따분하게 여기는 향미의 내면에는 어린 시절 받은 상처와 사랑을 갈구하는 여린 면이 있었습니다. 그런 향미를 살려낸 건 바로 손담비입니다. 따분한 말투, 무덤덤한 행동, 시큰둥한 표정부터 벗겨진 매니큐어, ‘뿌염’이 시급한 머리, 형형색색 트레이닝복까지 모든 것이 곧 향미였으니까요. 향미는 손담비를 만나 숨을 쉬고, 빛을 발했습니다.

가수에서 배우로 전향한 후 꾸준히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손담비는 <동백꽃 필 무렵>의 향미를 만나 진짜 배우로 인정받았습니다. 손담비의 인생작이자 인생 캐릭터가 탄생했죠.

“나 좀 기억해주라. 그래야 나도 세상에 살다 간 것 같지.”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 돌아오지 못한 가여운 향미. 손담비 덕분에 향미는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기억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