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와인이 온다

Living

오렌지 와인이 온다

2019-10-28T10:58:47+00:00 2019.10.26|

내추럴 와인이 주는 특별한 무드가 있다. 산화된 와인에서 오는 약간 묘한 색깔, 필터링을 하지 않아 뿌연 기운, 그리고 캐주얼하고 작은 잔에 마시는 가뿐한 기분까지.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내추럴 와인 바가 나오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올해도 여전히 내추럴 와인의 유행이 거세다는 데에는 이견을 내기가 힘들다.

내추럴 와인이 인기를 얻는 가운데 최근엔 오렌지 와인이 슬쩍 고개를 내밀며 국내 수입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색깔이나 이름 때문에 내추럴 와인의 비슷한 갈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렌지 와인은 내추럴 와인에 비하면 명확한 양조법과 범위가 정해진 와인이다. 서로 교차되는 영역에 있는 와인도 있지만, 오렌지 와인이라고 모두 내추럴 와인은 아니다. 화이트 품종으로 만드는 오렌지 와인은 발효와 숙성 과정에서 포도 줄기와 씨까지 오랜 기간 접촉시켜 타닌감과 진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만드는 와인이다. 자몽과 오렌지 색깔의 중간쯤 되는 진한 빛깔이 나는 이유는 이 양조법 때문이며, 피노 그리나 게뷔르츠트라미너처럼 껍질에서 약간 붉은빛이 도는 포도 품종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 덕에 화이트 와인이지만 보디감과 타닌감이 진하게 느껴지는 묘한 카테고리를 차지하게 됐다. 따라서 맛도 내추럴 와인과는 특징이 다르다. 암포라(Amfora)와 같은 토기 항아리에 숙성시키는 오렌지 와인의 경우 내추럴 와인처럼 산화 뉘앙스가 날 수는 있지만 내추럴 와인만큼 쿰쿰한 정도는 아니다.

“내추럴 와인과는 다른 개념의 와인이지만, 내추럴 와인의 열풍과 완전히 상관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독특한 와인 맛에 대한 거부감이 내추럴 와인 덕에 많이 사라졌고, 정형화된 와인 맛이 아니라 나만의 취향으로 와인을 찾는 사람들도 덕분에 늘어났으니까요. 와인 선택에서 열린 분위기가 형성되다 보니 오렌지 와인도 수입될 수 있는 것 같고 다시 붐이 일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와인업계에서도 뭔가 더 새로운 것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오렌지 와인이라는 괜찮은 답을 찾은 느낌입니다.” 양진원 와인 에듀케이터는 앞으로 오렌지 와인이 조금 더 꿈틀거리게 될 것 같다는 진단도 덧붙였다.

8000년 역사의 고대 조지아 와인을 재현해낸 프랑스인 와인메이커 장 미셸 모렐(Jean Michel Morel)과 그의 아내 카티아 카바이(Katja Kabaj). 슬로베니아 서쪽 브르다 언덕에 자리한 와이너리에서 카바이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오렌지 와인의 종주국을 꼽으라고 한다면 슬로베니아, 조지아와 같은 동유럽이다. 고대 와인 양조 방식으로 와인을 빚어온 이들 국가에서는 오렌지 와인이 일반적이었고 이 와인이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다른 국가와 산지의 와인 탐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화이트 와인이라면 죽고 못 사는 나에게 찬 바람이 불 때 마시는 오렌지 와인은 이맘때쯤 꺼내 입는 얇은 코트처럼 적절하게 느껴진다. 날씨 때문에 괜히 진하고 빡빡한 레드 와인을 마셨다가 치아고 입술이고 팥죽색으로 물들고, 기분마저 묵직하게 가라앉아버리는 화이트 와인 애호가들에게 이 오렌지 와인보다 더 기가 막힌 대안이 없을 것 같다. 더 추워지기 전에 더 많이 마실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