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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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2019-10-28T18:08:54+00:00 2019.10.28|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이자 엄마이기 이전에 ‘그냥 나’였던 순간은 저마다 품고 있을 겁니다. ‘김00’, ‘이00’, ‘최00’라는 이름 석 자가 곧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시기가 있죠. 현실에 맞게 각각 주어진 역할도 좋지만, 때로는 내 이름만으로도 괜찮던 때가 문득 마음을 어지럽히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나와 내 주변에 있는 그 모든 이름을 ‘82년생 김지영’이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82년생 김지영>이 지난 23일 개봉 후 첫 주에 누적 관객 수 112만 명을 돌파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개봉 전부터 원작 소설도 워낙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영화화되는 과정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는데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는 그저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습니다. 나의 이야기이자 내 아내의 이야기이자 내 자매의 이야기이자 내 딸의 이야기이기도 하죠. 그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스크린으로 적을 옮긴 <82년생 김지영>은 밝은 분위기의 가족의 등장으로 원작보다 부드럽게 다가옵니다. 소설에서는 무뚝뚝하고 무관심했던 남편 ‘정대현(공유)’의 역할도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족과 사회라는 장치를 넣어 인간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한 거죠. 남성 대 여성이 아닌, 상처받은 사람과 그것을 보듬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82년생 김지영>은 무례한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피해와 폭력만큼은 덜어내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먼저라는 가부장적인 분위기와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회사,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몰카 범죄’ 등은 여전히 어려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걱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의 가정사에 참견하는 오지랖도 마찬가지고요. 엄마를 무턱대고 ‘맘충’으로 바라보는 일부 이기적인 시선도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만 영화는 이런 가시로부터 입은 상처를 위로해주는 가족의 모습을 담아 아픔을 슬쩍 덜어내기도 합니다. 노을을 보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는 김지영도, 아내가 아픈 게 자신의 잘못 같아 괴로웠다는 정대현도 모두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어지죠.

인류 역사상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롭다는 이 시대를 사는 모든 ‘김지영’들, 이보다 어려운 시대를 겪어왔던 ‘김지영’들은 영화를 보며 쓰라림과 치유됨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히 사회는 변화하려 꿈틀대고 있지만, 아직은 곳곳에 지뢰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지요.

“가끔은 행복하기도 해요. 또 어떤 때는 어딘가 갇혀 있는 기분이 들어요.”

덤덤한 표정으로 말하는 영화 속 ‘김지영’을 보며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었던 이야기니까요.

당장 거창하게 많은 것을 변화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영화가 끝나면 “요즘 어때?”라고 서로가 안부를 물을 수 있을 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요즘, 괜찮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