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보들의 제철 해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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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보들의 제철 해산물

2019-10-25T16:44:48+00:00 2019.11.04|

“찬 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 해산물을 향한 펄떡거리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다.

‘STILL LIFE WITH SIEGBURG STONEWARE JUG’ 정물 묘사에 탁월했던 독일 화가 게오르크 플레겔(Georg Flegel)의 작품을 보면 17세기 식탁 문화를 알 수 있다. 당시 갑각류는 표리부동과 자유를 상징했다고 전해진다. 열을 가하면 색깔이 달라지기에 요리하는 즐거움이 있고, 겉과 속이 달라 먹기 수고스럽기에 인고의 쾌락을 안겨주는 갑각류. 먹보들은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더 많은 대하를 먹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영덕 출신 영덕 대게

나는 경북 영덕군 강구면 출신이다. 맞다, 영덕 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이 있는 곳. 달걀보다 생선이 싸고 흔한 동네. 어릴 땐 집에 앉아 있으면 부모님 친구들이 “이것 좀 먹어보라”며 남은 해산물을 갖다 주었다. 말이 ‘남은 것’이지, 어판장에서 공매 후 ‘남은 것’이므로 수족관에 들어갔다 나온 횟집 생선과는 비교할 수 없게 싱싱했다. 광어, 소라, 가자미, 도루묵 등등. 사람들이 오징어, 멍게, 홍합, 미역을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건 스무 살이 되어 서울살이를 시작하고야 알았다. 오징어는 어부들이 팔다 지쳐 이웃에 나눠주고, 그 이웃은 ‘아이참, 다른 친구한테 받은 것도 처치 곤란인데 또 받고 말았네’ 난처해하는 식재료가 아닌가. 멍게는 어판장에서 줍는 거고 홍합과 미역은 바다에서 거저 뜯는 건데 돈을 받고 팔다니. 역시 서울은 눈 뜨고 코 베어가는 동네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얻은 해산물을, 우리 가족은 주로 아침에 먹었다. 그래야 싱싱하니까. 저녁 회는 냉장고든 수족관이든 바다가 아닌 곳에 오래 머물러 생명력이 부족하지 않나. 내륙 사람들은 아침에 회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건 30대 중반이다. 서울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가 부모님이 차린 아침상에 기함을 한 거다. “저녁에 회를 먹는 건 좋아. 하지만 아침에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일부러 맛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먹을 이유는 없잖아”라고 나는 주장하지만, 저녁 회도 맛있다고 하는 내륙 지방 미맹들이 알아먹을 턱이 없다. 그 가여운 중생들이 더욱 가여워지는 때는 영덕 대게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내가 서울에 살 때는 영덕 대게 철이 되면 부모님이 한 번씩 택배로 보내주곤 했다. 영덕 대게는 거저 생기는 경우가 드물다. 다리가 몇 개 떨어졌거나 크기가 작거나 한 걸 할인받는 게 그나마 최선이다. 그렇더라도 영덕 대게가 가격 대비 생색나는 선물이란 걸 아는 부모님은 철이 되면 여기저기 게를 보냈다. 처음 아이스박스에 담긴 대게를 자취방에서 받았을 때, 나는 이틀 정도 고민했다. 워낙 소심하고 친구도 별로 없는 데다 ‘그깟 대게’ 따위가 사람을 초대할 핑계가 되는지 몰라서다. 혼자 먹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많았다. 결국 고민 끝에 회사 사람들을 초대했다. “저기…, 혹시…, 대게 같은 거 드세요? 집에 좀 있는데 너무 바쁘지 않으시다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그들은 있던 약속까지 취소하고 집으로 몰려왔다. 그리고 아비규환을 목격했다. ‘딴 동네 사람들’은 감탄과 감사를 연발하고 열 손가락을 쪽쪽 빨며 전투적으로 대게를 뜯어 먹었다. “대게를 이렇게 배불리 먹은 건 처음”이라고 방바닥을 구르면서 돼지처럼 행복해하던 그들은 급기야 박박 긁어 먹고 핥아 먹어 수분 한 점 안 남은 등딱지를 넣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키토산보다 아밀라아제가 많을 것 같은 냄비를 들고 “이렇게 럭셔리한 라면은 처음”이라면서 눈물을 글썽일 땐 조금 비위가 상하기도 했다. 나는 인기를 끌려고 미제 물건을 자랑하던 초등학교 시절 부자 친구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종종 집에서 영덕 대게 파티를 했다. 영덕 대게가 나의 ‘최애’ 해산물이어서라기보다 ‘딴 동네 사람들’의 게걸스러운 모습을 보는 게 재밌어서다.

아쉽게도 영덕 대게 포획량은 해마다 준다. 내가 영덕군청 문화관광과에서 공공 근로를 하며 영덕 대게 홍보 자료를 잔뜩 만든 20년 전만 해도 포획기가 11월 초에서 5월 말이었는데, 요즘은 12월 초부터 5월 말이다. 아, 울진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울진 대게가 진짜’처럼 뭔가 얼터너티브한 얘기라면 무조건 믿어버리는 인간들에게는 내가 영덕군청 문화관광과 공공 근로 출신으로서 할 말이 많은데, 다음 기회를 노려보겠다. 아무튼 포획량만 문제는 아니고,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를 바다에 버리네 마네 하는데도 세상이 이리 태평한 걸 보면 아무래도 지구 멸망이 머지않았고,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날은 더더욱 짧아서 몇 년이 안 남은 것 같다.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인터넷에서 영덕 대게를 검색해보시라. 온라인으로 주문받고, 쪄서 아이스박스에 담아 고속버스 택배로 당일 배송해주는 업체가 있다. 퇴근하고 집에서 포장만 열고 먹으면 된다. 단, 웬만하면 2월까지는 기다리길. 그쯤은 돼야 살이 차서 맛있다. 그리고 우리는 후쿠시마를 얘기하자. —이숙명(칼럼니스트)

굴의 명장면

“밤새 눈이 많이 내린 날 오래 찬찬히 내려 폭신하게 쌓인 눈을 밟으며 나는 시장에 꼬막을 사러 간다”고 소설가 권여선은 썼다. 그보다 조금 앞선 계절, 그러니까 집에 있어도 몸이 으슬으슬한 이맘때면 나는 시장에 생굴을 사러 간다. 값싼 봉지 굴을 흐르는 물에 살살 헹궈, 차갑게 칠링한 샤블리나 리슬링을 곁들여 먹는다.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레몬을 반으로 갈라 즙을 뿌린 뒤 포크로 뚝뚝 떠먹으며 겨울이 왔구나, 새삼 감동한다. 생굴은 여지없는 겨울 별미다. 맘만 먹으면 사계절 내내 맛볼 수 있는 홍합이나 대하와는 다르다. 그러니 겨울잠을 앞두고 두둑이 살을 찌우는 곰처럼 ‘이때다!’ 하는 마음으로 원 없이 먹어둬야 한다. 허겁지겁 굴을 삼키는 곰이라니 어쩐지 가엽지만 아무튼.

생굴 먹는 재미를 처음 가르쳐준 건 나보다 열두 살 많은 띠동갑 프리랜스 기자였다. 주택을 개조한 작업실 한쪽에 그랑크뤼급 와인을 박스째 쟁여두던, 집안이 유복한 덕에 제 맘대로 직업을 가지다 말다 하던 그 선배는 9년 전 초겨울 어느 날, 내 팔짱을 끼고 동네 빵집 들르듯 작업실 앞 재래시장에서 굴 한 봉지를 샀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손잡이가 덩굴무늬로 장식된 타원형 은쟁반을 꺼냈다.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앤티크 쟁반 위에 굴을 우르르 쏟아붓고 레몬즙을 훌훌 뿌리던 그 우아한 손놀림은 내게 음식과 관련해 평생 잊을 수 없는 몇 장면 중 하나다. 메인이 훌륭할수록 테이블은 단출해진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풍미를 지닌 굴은 별다른 조연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신선한 레몬즙 몇 방울과 굴의 다양한 운율을 이끌어낼 화이트 와인 한 잔이 양념처럼 곁들여질 뿐이었다. 넓디넓은 나무 탁자에 놓인 굴 한 접시와 샤블리 와인 한 병. 모란디의 정물화가 따로 없었다.

이후 겨울은 줄곧 굴의 계절이었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생굴도 버거워했던 나의 촌스러운 미각은 통영의 싱싱한 햇굴, 남해안의 거대한 바윗굴을 거치며 진화를 거듭했다. 부동의 1위에 오른 인생 최고의 굴은 지금은 사라진 이태원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4피스에 2만4,000원이라는 도도한 가격에 반해 주문했던 프렌치 오이스터. 프랑스 가스코뉴 지방의 굴 종자를 양식해 만들었다는 그 조그만 굴은 잘게 다진 샬롯과 와인식초를 섞은 미뇨네트라는 이름의 소스를 티스푼으로 얹어 먹는 게 포인트였는데 뭐랄까, 입안에 엄청나게 화려한 굴 꽃이 피었다가 호로록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사흘 굶었다 먹는 간장게장처럼 입꼬리가 덜덜 떨릴 정도로 맛있었다.

5년 전 남편과 방콕 차이나타운에서 먹은 초여름의 굴도 잊을 수 없다. 줄지어 늘어선 노천 식당 틈에서 가까스로 빈자리를 찾은 우리는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음을 뚫고 굴 한 접시와 맥주를 주문했다. “여름인데 괜찮을까?” “양식 굴인데 괜찮겠지, 뭐.” 하나 마나 한 대화를 나누던 우리 앞에 주먹만 한 생굴이 나타났을 때의 그 충격이란. 그저 바라만 봐도 흐뭇해지는 음식이 있는데 태국의 굴이 꼭 그랬다.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무시무시한 크기의 굴 한 쌍에 우리는 말을 잃었다. 손바닥만 한 껍데기에 우유처럼 하얀 생굴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우람한 속살은 탄력 있게 씹혔고, 혀끝을 치고 올라오는 감칠맛이 절로 술을 불렀다. 그리하여 더운 여름에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굴 생각에 침을 흘리게 되었다는, 참으로 줏대 없는 마무리. —강보라(칼럼니스트)

무조건 문어

최근 가장 황당하던 맞춤법 오류는 ‘무족권’이다. 10년쯤 지나면 사람들이 무족권으로 쓰게 되는 건 아닐지 염려가 될 만큼 강렬했다. 처음 무족권을 쓴 사람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게도 ‘무족권’과 같은 경우가 있었다. 문어숙회를 처음 들었을 때다. 문어수캐라니. 수컷 문어를 문어수캐라고 부른단 말인가. 변명하자면 문어도 수컷과 암컷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데 거기에는 평생 애견인으로 살아온 사고 회로가 자연스럽게 작용했다.

문어를 적극 섭취하게 된 것은 2008년부터다. 도쿄에서 유학하던 시절이다. 여행 왔으니 얼굴 한번 보자며 지금의 아내로부터 연락이 왔다. 도쿄 지유가오카의 로컬 식당에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뒤섞여 앉았다. 맥주 두 잔과 함께 미역과 오이, 양파를 넣은 일식 문어 카르파초가 나왔다. 온몸에 맥주 순환이 빨라지고 정신이 번쩍 드는 맛이었다.

카르파초는 얇게 슬라이스한 고기나 생선에 레몬즙과 올리브 오일을 뿌리고 양파나 케이퍼를 얹어 먹는 이탈리아 애피타이저다. 이탈리아와 지중해 연안을 공유하는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같은 남부 유럽에서도 문어는 친숙하다. 동방정교회가 있는 그리스에서는 예배 기간에 육류와 생선을 금했지만 문어는 문제 삼지 않았던 덕분에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대신했다.

문어를 먹지 않는 곳도 많다. 독일이나 스위스, 프랑스에서는 전통 요리로 문어를 보기 어렵다. 영국에서는 ‘악마의 생선(Devilfish)’으로 불리며 버려졌다. 문어를 먹게 된 것도 남유럽 요리나 아시아 요리가 알려진 근래의 일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연체동물을 먹는 것이 카샤룻(Kashrut)으로 금지돼 있다. 먹을 수 있는지 여부와 먹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정해놓은 율법이다. 카샤룻에 따르면 문어는 코셔(Kosher, 먹어도 되는 음식)가 아니다. 어류라면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어야 하는데 빨판밖에 없어서다.

문어가 가장 귀하게 대접받는 곳은 우리나라다. 강원도에서는 제사상에도 올라가고 문어를 선물하기도 한다. 우리만큼 문어를 많이 먹는 일본에서는 문어를 바보 캐릭터로 쓴다.

문어를 맛있게 삶으려면 기술이 필요하지만 마트에서 삶은 문어를 사면 간단하다.자주 해 먹는 카르파초는 얇게 슬라이스하는 대신 입안에서 오물거릴 수 있을 만큼 도톰한 크기로 썬다. 방울토마토와 파프리카를 1cm 크기로 썰고 샬롯(혹은 적양파나 양파)과 마늘은 잘게 다진다. 여기에 바질을 다져 넣고 올리브 오일과 레몬을 흠뻑 짜서 넣은 다음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가끔은 샐러드 채소와 슬라이스한 문어를 올리브 오일, 디종 머스터드, 다진 마늘과 레몬즙을 섞은 드레싱에 휘휘 뒤섞은 다음 얇게 벗긴 레몬 껍질을 채 썰어 얹고 파프리카 가루를 뿌려서 먹는다.

지난여름에는 아보카도 문어 샐러드를 자주 만들어 먹었다. 도쿄 요요기공원 옆에 있는 비스트로 아히루 스토어에서 만들어 유명해진 레시피다. 잘 후숙한 아보카도와 고추냉이가 들어간다. 아보카도를 2cm 크기로 자르고 문어도 한입 크기로 자른다. 올리브 오일에 다진 마늘, 레몬즙, 간장과 고추냉이를 넣어 드레싱을 만든 다음 섞기만 하면 된다.

문어는 한여름에 맛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가장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때는 10월 말부터 11월 사이다. 지금 먹어도 맛있다. 수컷보다는 암컷이 더 맛있는데 구분하는 법은 간단하다. 다리 여덟 개 가운데 끝부분에 빨판이 없이 매끈한 다리가 하나 섞여 있으면 수컷이다. ‘문어수캐’가 알려준 사실이다.
—이은석(라이프스타일 상점 ‘학과 꽃’ 에디터)

‘STILL LIFE WITH FISH’ 네덜란드 화가 아브라함 판 베이예런(Abraham van Beijeren)은 도덕적인 교훈을 전달하는 화풍으로 즐겨 그렸다. 그의 의도에 따르면 만찬 식재료를 올려둔 테이블을 보며 금욕을 느껴야 마땅하겠지만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게, 촘촘하게 칼집을 낸 생선이 어떻게 요리될지 상상하면 그저 침만 고인다.

풋풋한 풀치

어쩐지 갈치가 입맛 당기더라니, 가을이다. 8월부터 12월까지 주로 잡히는 갈치는 가을을 딱 제맛으로 친다. 여름 산란기를 지낸 후 남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먹이를 충분히 섭취해 지방이 꽉 축적돼 있을 때다.

갈치는 전 세계 온대 바다와 아열대 바다에 흔한 생선이다. 그래도 동네마다 몸집이나 살집이 다르니 요즘 지천인 세네갈 등 수입산 갈치는 한국 일대의 갈치와 마치 다른 생선인 것처럼 모양도 맛도 차이가 난다. 한반도 남해, 서해 일대에서 잡히는 갈치는 호리호리하고 길쭉하다. 길이 1m에서 1.5m 사이로 자란다. 도어(刀魚)라고 부를 정도로, 번뜩이는 칼처럼 생겼다. 비늘 없이 온몸에 은백색 가루가 입혀진 은갈치는 바다에 길쭉하게 서 있는 모습만 봐도 칼을 꽂아둔 것만 같다. 우리가 보는 갈치는 모두 누워만 있지만, 해저의 갈치는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막대기처럼 서서 유영한다.

아무튼 옛날부터 참 많이도 먹었다. 넉넉하게 잡히는 생선. 고등어, 꽁치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도미나 민어처럼 비싸지도 않아 이따금 상에 오르던 생선. 손바닥만 하게 토막 내어 기름에 바삭바삭하게 지지고, 양념을 듬뿍 풀어 시원하고 달콤한 무와 함께 조려 먹는 그 맛은 너무나 아는 맛이라 저항할 수 없이 군침이 고인다. 어린 시절부터 각인된 맛있는 맛.

엄마 밥상을 떠나 제주도 정도는 스스로 갈 수 있게 된 이후로는 눈이 번쩍 뜨이는 갈치 재발견을 겪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리라 생각하지만 제주도의 갈치회며 갈칫국이란 또 얼마나 각별한가 말이다. 잘 무르고 산패하는 생선인 갈치를 회로 먹기 위해서는 갓 잡아 바로 써는 정도의 신선도가 필요한데, 이렇게 먹기에 가장 맛 좋은 갈치는 새벽과 아침 녘에 낚시로 잡은 것이 최고라고 한다. 낮 동안 모랫바닥에 있다가 밤이나 되어야 어슬렁어슬렁 수면으로 올라오는 갈치를 낚아채기 때문이다. 제주도에는 해산한 산모에게 끓여줬다는 국이 유독 많은데, 그중 하나인 갈칫국은 산소에 비려지기 전에 끓여야 그 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기에 서울서는 도무지 그 맛이 나지를 않는다. 소금 간으로 맑게 끓여 갈치 고유의 단맛을 한껏 이끌어내는 그 고소한 맛은 온전히 갈치를 품은 바다의 것이다. 여름엔 배춧잎을, 가을엔 늙은 호박을 함께 넣고 끓이는데 나는 늙은 호박 또는 단호박이라도 들어간 갈칫국을 무척 좋아한다.

갈칫국 역시 늙은 호박이 단단히 맺히는 가을의 맛이다. 늙은 호박을 딸 때쯤엔 고구마 역시 수확기에 든다. 뿌리의 덩이줄기를 캐내고 밭에 남는 고구마 줄기 역시 갈치와 짝이 잘 맞는다. 구수한 향을 품은 달콤한 줄기의 억센 껍질을 모두 벗겨내 갈치조림에 슬쩍 깔고 조리면 무의 시원함과 어우러져 맛이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남쪽에서 즐겨 담는 갈치속젓도 빼놓을 수 없다. ‘순태젓’이라고 하는 이 젓갈은 시궁창 색을 띤 데다가 향까지 오묘해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데 그 독특한 감칠맛은 다른 생선 내장 젓이 흉내 낼 수 없는 개성의 영역이다. 두툼한 비계를 가진 돼지고기 부위를 굽거나 삶아 갈치속젓을 듬뿍 올려 먹으면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맴돌고 복잡 미묘한 향에 젓가락질이 재빨라지곤 한다.

갈치에게도 성장기가 있다. 어린 갈치는 풀치, 아니면 풋갈치라고 하는데 이 또한 애호의 대상이다. 어묵 재료로 사용할 정도로 허술한 값어치이다 보니 되레 흔하게 유통되지는 않지만 어쩌다 건어물상을 지나다 보면 쫀득하게 말려둔 풀치 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짭짤하게 염장해 반 정도 말린다. 30cm 남짓한데, 풀치는 별수 없이랄까, 오로지랄까, 아무튼 튀김이다. 사온 그대로 먼지만 씻어내고 전분을 살짝 털듯이 묻혀 넉넉하게 두른 기름에 바짝 튀긴다. 살집은 볼품없지만 여린뼈가 과자처럼 바삭바삭하게 튀겨져서 이게 또 별미다. 조리하기 편한 길이로 뚝뚝 토막 내 튀겨도 좋고, 길이 그대로 돌돌 말거나 활처럼 휜 모양을 내어 튀기면 제법 근사한 플레이팅이 나온다. 망원동의 제주 음식 전문점 오라방이 이 메뉴 덕택에 <수요미식회>에 소개되고 신사동에 분점을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푸드 콘텐츠 디렉터)

새조개의 감정 강탈

지방에서 공부만 하다 상경한, 외식이라면 1,000원짜리 한 장에도 동공이 흔들리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처음 먹어본 음식이 너무 많다. 감자탕, 곱창전골, 양꼬치, 심지어 콩국수와 팥칼국수도 대학생이 되어서야 처음 맛봤다. 외국인도 아닌데, 감자탕 첫술을 뜰 때의 주체 못할 콩닥거림이란! 그리고 서른을 훌렁 넘겨 처음 만나버린 새조개… 아, 새조개… 2017년 2월 25일이라고 날짜까지 기억하게 만드는 새조개와의 첫 만남은 아직도 쉽게 잊을 수가 없다. 그때의 난처함과 황홀감과 슬픔과 경외감이 하도 강렬해서 그 이후부터 겨울과 바다의 냄새가 교차하며 코끝을 스치면 새조개의 모양이 스르르 떠오르고 마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 하루짜리 휴가를 낸 날이었을 것이다. 날짜를 맞춰 휴가를 낸 애인과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뒹굴하다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충남 서산으로 꽃게를 먹으러 차를 몰고 내려갔다. 비가 고장 난 샤워기처럼 정처 없이 차창을 때려 도착하기도 전에 기분이 요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산 시내는 정전이 된 것처럼 스산하고 어둑어둑했다. 믿을 만한 블로거의 게시물 몇 개를 크로스 체크한 뒤에 어렵사리 고른 꽃게장집의 주인은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불을 끄며 말했다. “오늘은 다 떨어졌어요.” 왜 예약하지 않았냐, 꽃게가 떨어질 수도 있는 거냐, 냉동을 써서 예약하지 않으면 미처 해동을 못해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애인과 끝도 없는 핀잔 핑퐁을 격렬하게 이어가다가 반 포기하는 마음으로 근처 해물 실내 포차집에 들어갔다. 가게의 이름은 ‘맛있게 먹는 날’. 그 어떤 의지도, 고심도 보이지 않는 이름 때문인지 기대감은 빗소리와 함께 진작에 다 떠내려갔고, 종업원이 “오늘은 새조개지”라며 무 심하게 추천해준 메뉴도 “에”와 “예” 사이의 발음으로 답하며 대충 주문도 끝냈다.

샤부샤부 국물과 새조개, 몇 종류의 조개가 더 나왔고 육수가 끓기 시작했을 때 애인에게 전화가 한 통 왔다. 돈 문제, 친척 문제, 자존심 문제가 얽힌 꽤 심각한 전화였고 “지금 당장”, “그게 얼만데”, “아니 무슨”과 같은 표현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육수는 끓는데 새조개를 아니 넣을 수 없어서 두 점을 퐁당 넣었고, 얼른 꺼내 몰래 한입 맛봤다. 마리네이드한 것도 아닌데 감칠맛이 폭발하고, 조개에서 느끼기 힘들었던 훈제 닭고기 맛이 났으며 씹히는 맛도 좋은데 부드럽기까지 했다. 다른 조개를 윽박지르는 듯한 진한 맛 때문에 함께 들어간 다른 조개의 종류가 무엇이었는지는 지금 기억에도 없다. 전화 통화를 끝내고 돌아온 애인은 눈에 괴로움과 슬픔이 그렁그렁했는데 나는 그 감정에 도대체 공감할 수가 없었다. 이 새조개는 무엇이길래, 그가 말하는 이야기를 다 퉁겨내고, 괴로움을 호소하는 감정을 모조리 앗아가버리는지 난처했다. “진짜 너무 속.상.하.네.” 잠깐 정신이 들 때는 그의 사정이 딱했지만 나는 더 길게 호응해주기가 힘들었다. 아마 그도 내가 새조개에 정신이 반쯤 나갔다는 것을 알았을 테다. 올라오는 길에 대화는 상해버린 홍합처럼 시큼털털했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새조개만 보이면 먹었다. 마켓컬리에서 비싸게 팔아도, 신선도가 기대되지 않는 술집에서도 일단 먹었다. 그날만큼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날만큼 새 부리 모양이 선명하고 오동통한 새조개를 만나보지도 못했다. 겨울이 저 멀리서 달려오는 이맘때면 그날의 새조개를 기대하는 마음이 부풀대로 부푼다. 올겨울에는 혼자 갈 확률이 높겠지만, 남쪽으로 새조개를 먹으러 내려갈 것이다. 온전히 새조개와 나만의 시간을 향유해야지.
—손기은(프리랜스 에디터, ‘라꾸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