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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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페르소나

2019-11-22T17:28:11+00:00 2019.11.22|

전 세계가 인정한 성형수술 강국 한국. 성형외과 전문의 김유명은 단편소설 <내일의 페르소나>를 통해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풍자한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거울로 보는 내 얼굴. 클렌징 오일로 닦은 이 얼굴과 이렇게 병실에서 마지막으로 보게 되다니. 이제 이 얼굴 다시 보지 않으면, 점점 잊어버리겠지? 아냐. 미련 갖지 말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도 싹 다 지워버리고, 새 계정을 만들 거야. 그리고 새로운 나를 쌓아가야지. 내일만 생각하자. 내일이면 이 짧은 코와는 영원히 작별이야. 이 동글동글한 얼굴과도…

일찍 자야 하는데, 정말 잠이 안 오네. 내일이 수술인데 이렇게 안 자면 어떡해. 최고의 컨디션으로 수술받아야 할 텐데. 간호사에게 수면제라도 있는지 물어볼까? 아냐, 12시부터 금식이라고 했는데 안 될 거야.

그나저나 줄기세포로 만든 새 얼굴은 정말 잘 만들어졌을까? 잘 만들어졌다면 왜 오늘 안 보여주는 거지? 진짜 세균이라도 묻을까 봐 그러나? 배에서 주사기로 지방만 뽑았는데, 정말 피부도, 뼈도, 연골도 만들어졌을까? 설마 실리콘 보형물 같은 걸 심어서 만들어주는 건 아니겠지, 그 비싼 수술비를 받고?

세 명의 연예인은 잘 선택한 걸까? 컴퓨터로 합성을 해서 만든 얼굴을 3D 프린터로 조직을 만들어낸다니 보여준 그대로 나오겠지? AR(증강 현실)로 보여준 그대로만 된다면 너무 예쁠 것 같아. 짧은 이 코도 쭉 뻗은 코로 바뀌고, 둥글넓적한 이 얼굴도 갸름한 계란형으로 변하는 거니까. 가면을 쓴 것처럼 가장자리 따라 흉터가 남진 않겠지? 만약에 생기면 흉터 제거도 줄기세포로 AS 해준댔으니까 믿어봐야지.

그런데 혹시 그 배우들이 자기들의 얼굴을 합성한 걸 알게 되면 어쩌지? 뭐 초상권 같은 거로 소송을 걸진 않을까,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하면서? 아냐, 1억원이나 냈는데 그건 병원에서 알아서 해야지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변호사도 아닌데.

너무 비싸긴 해. 1억. ‘절대미’를 향한 티켓치고는 싼 건가? 새로운 얼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 얼굴을 가질 수만 있다면, 결코 비싼 건 아닐지 몰라. 원장님이 약속한 새 얼굴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가져올 거야. 수술을 받고 아예 고향에 내려가지 말까? 여기서 새로운 직업도 구하고? 아, 근데 엄마가 보고 싶진 않을까? 아냐, 어차피 엄마가 날 알아보지도 못할 텐데. 그리고 엄마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면 당분간 여기서 지내야 해.

그래도 두 달 동안 예전 얼굴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준다니 다행이야. 마음에 안 들면 원래 얼굴을 도로 붙여준다잖아. 근데 두 달은 너무 짧지 않나? 두 달 지나서 맘 바뀌면 또 어떡해? 아이참, 옵션을 좀 더 길게 할 걸 그랬어. 아냐. 지금만 해도 돈이 얼만데. 잊자. 아예 이 얼굴 수술 끝나면 바로 버려달라고 하자. 그래, 괜히 고민할 거야. 아예 버려야 해.

새 얼굴 아까 AR로 봐선 딱 마음에 들던데. 이제 그 얼굴이면 그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여자가 되는 걸까? 그 누굴 새로 만날 수 있을까? 오빠가 좋아한다던 배우 얼굴을 섞었으니 분명 다시 날 좋아할 거야. 그럼 빠져들고 말고. 부기만 빠져보라지. 그땐 오빠가 울고불고 매달리게 만들고 말 거야.

아냐, 오빠를 또다시 괴롭히진 말자.

사랑은 그런 게 아니잖아.

사랑이 그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

소설가 김유명 ㅣ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의학박사, 성형외과 전문의. 의사라는 직업 세계에서 건져 올린 독특한 소재로 삶과 죽음, 그 이면의 진실을 일깨우는 의학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소설 <마취>로 데뷔, <얼굴>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