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WANG & I

2019.12.03

by VOGUE

    WANG & I

    ‘불가리+알렉산더 왕+지코’.
    패션의 새로운 공식이 상하이에서 발표됐다.

    불가리 호텔 스위트룸에서 만난 알렉산더 왕과 지코. 폴라로이드에 본인의 서명과 이번 파티에 대한 코멘트 한 줄을 직접 남겼다. 

    플랩 부분에 뱀 머리가 두 개 달린 검정 ‘듀엣(Duette) 백’, 뱀피 무늬 ‘쇼퍼(Shopper) 백’은 알렉산더 왕×불가리 세르펜티 백 캡슐 컬렉션, 이어링과 링은 불가리(Bulgari), 성조기 프린트 스웨터와 가죽 바지, 벨트는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2020 S/S 컬렉션. 

    알렉산더 왕이 와이탄 야경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테이블에 놓인 가방은 알렉산더 왕×불가리 세르펜티 백 캡슐 컬렉션. 왼쪽 하단의 보석함을 닮은 ‘미노디에르(Minaudière)’에는 아이코닉한 불가리 투보가스(Tubogas) 스타일의 세르펜티 브레이슬릿을 더했다. 

    “백화점이 문을 닫은 후 일어날 수 있는 마법 같은 일을 재현하고 싶었어요.” 알렉산더 왕의 말처럼 상하이 불가리 호텔은 오늘 밤만큼은 더없이 은밀했고 호화로웠다. 파티 장소는 불가리 호텔 부지에 자리한 100년도 더 된 상공회의소 건물이다. 웅장한 건물의 파사드 정면에는 백화점 쇼윈도를 쏙 닮은 포토월을 세웠다. “파티 컨셉은 킴 캐트럴이 출연했던 영화 <Mannequin> 재방송을 보며 영감을 얻었어요. 지난번 뉴욕에서 열린 론칭 파티 역시 헨리 벤델 백화점에서 열었죠.”

    파티 참석자들이 체험할 수 있었던 인스턴트 타투 코너.

    내일이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판타지가 시작되기 바로 몇 시간 전, 왕과 지코를 불가리 호텔 45층 스위트룸에서 만났다. 왕과는 지난 4월 서울에서 CL과 촬영한 이후 6개월 만의 재회다. “서울에 다녀온 후 많은 일이 있었어요. 6월에 뉴욕에서 2020 S/S 쇼를 발표했고 9월에는 오래 준비한 불가리 협업 컬렉션이 세상에 나왔죠. 9개월 동안 임신했다가 이제 첫아이를 본 느낌? 오랜만에 상하이에서 아시아 기자들을 보니 반가워요.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딤섬부터 먹었어요.”

    불가리 협업은 왕이 직접 출연한 캠페인 영상으로 기대를 모았다. 먼지떨이를 들고 쇼윈도에 진열된 가방을 쓰다듬으며, 괴짜처럼 웃는 ‘병맛’ 코드에 패션 피플들은 웃고 또 웃었다. “일할 땐 진지한 편이에요. 하지만 제 캐릭터만큼은 예외죠. 그래서 저를 내세워 유머러스하게 영상을 제작했어요.”

    행사장 내부 전경.

    왕은 패션 홍보 방법으로 유머를 자주 구사했다. 6월에 열린 그의 쇼를 ‘인스타그램 테이킹 오버(특정 인물이 인스타그램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한 인물은 인스타그램 스타 리키 탐슨(Rickey Thompson). “그의 인스타그램을 한동안 팔로우했는데 진짜 웃기더라고요. 리키 탐슨이라면 알렉산더 왕이라는 브랜드를 대중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왕의 방수 제품을 유쾌한 미국 홈쇼핑 방식으로 연출한 영상 속의 리키는 이제 패션 행사에 초청받고 여러 브랜드의 캠페인 모델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이렇듯 왕은 늘 앞서고 있다. S/S, F/W로 나뉘는 전통적 패션 위크 일정에서 탈출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행사장 내부 전경.

    10년을 넘긴 이 브랜드와 달리, 로마에서 탄생한 불가리는 135년의 역사를 잇고 있는 보석 명문가다. “저는 오히려 불가리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여겼어요. 불가리 하면 떠오르는 첫 기억이 어릴 때 맡았던 향수였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며 브랜드 역사와 유산을 알게 되었지만 개인 브랜드를 운영하는 저로서는 불가리가 몹시 혁신적인 브랜드로 인식됩니다. 하이 주얼리, 가죽 제품, 향수에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호텔까지 손대지 않은 분야가 없죠. 이렇듯 고객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는 방식이 제게 영감을 줬습니다.”

    왕이 지금껏 만든 가방은 사실 뭐 하나 평범하지가 않았다. 자기 이름을 달고 처음 만든 화장품 파우치처럼 생긴 ‘브렌다 백’은 심지어 부엌에서 만들었다. 낡아 보이려고 오븐에 구워 2007년 첫 컬렉션에 내놓은 이 가방은 대히트. 이후로도 크리스털로 만든 비닐봉지 모양 가방이나 르 코르뷔지에의 소파를 떠올리게 하는 핸드백, 남들보다 빠르게 열풍을 일으킨 패니팩 등 늘 모두의 상상을 초월했다. 이번 불가리 협업도 마찬가지. 두 브랜드의 상징을 단순히 결합하는 게 아니라 관념적 측면에서 디자인한 것이다. “럭셔리 제품의 ‘포장’에 대해 숙고했어요. 매장에서 무엇을 사는 경험은 하나의 세리머니처럼 느껴집니다. 이 쇼핑의 순간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종이 쇼핑백과 더스트백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했죠. 무심코 지나치던 것을 전 세계 모든 연령대 고객들이 열망하는 것으로 탈바꿈시키고 싶었어요.”

    행사가 열린 상하이 불가리 호텔 내 상공회의소 별관.

    알렉산더 왕이 맨 먼저 스케치한 디자인은 가죽 소재 더스트백 안에 사첼 핸드백이 들어가는 디자인의 ‘투인원 사첼(Two-in-One Satchel)’ 백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가방이죠. 다음으로는 톱 핸들, 클러치, 패니팩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벨트백’을 소개할게요.” 지코 역시 이 벨트백을 제일 마음에 드는 제품으로 꼽았다. “실용성 있고 디자인도 멋지죠. 블랙과 화이트 등 다양한 색깔이 있는데, 착용 방법이 여러 가지라 흥미로워요.” 얼마 전 새 앨범 <Thinking Part. 1>과 <Thinking Part. 2>를 발표한 지코에게 오늘 파티에 어울릴 곡을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One-man Show’ 어떨까요. 힙한 분위기가 오늘 파티의 매력과 잘 어울릴 듯해요.”

    이제 파티장으로 갈 시간. 지코와 만나기 전, 왕에게 사진으로 미리 본 그의 첫인상이 어떤지 슬쩍 물었다. “와우, 쿨하군요! 이번 벨트백도 잘 어울리고.” 지코에게도 알렉산더 왕을 만나면 어떤 말을 건넬지 물었다. “6년 동안 잘 입고 있는 그의 가죽 재킷이 있는데, 그 얘길 전하고 싶어요.”

    백화점 쇼윈도를 연상케 하는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한 알렉산더 왕과 지코.

    멋지게 차려입은 지코가 호텔을 나섰다. 전 세계 기자들과 팬들이 포토월에 몰려들었고 말쑥한 정장에 미니 벨트백을 착용한 지코와 블랙 룩에 골드 체인 목걸이 차림의 알렉산더 왕이 그들 앞에 섰다. 왕이 파티 타이틀로 정한 문구는 “Enjoy Irresponsibly(무책임하게 즐겨라)”! 인산인해를 능숙하게 헤치며 지코는 파티장 곳곳에 들렀다. 중국 아티스트 존 유이(John Yuyi)가 직접 만든 인스턴트 타투 스티커를 붙여주는 코너, 백화점 매장 진열대처럼 꾸민 공간, 중국식 만두와 향수병 모양 잔에 담긴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푸드 코트, 디제이 페드루 카발리에리(Pedro Cavaliere)의 퍼포먼스에 이어 중국 여자 래퍼 바바(Vava)의 공연까지. 알렉산더 왕 역시 신나게 춤추며 호스트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이튿날 아침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알렉산더 왕이야말로 진정한 파티 고수였다. “10년을 돌이켜봤을 때, 저를 완성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도전과 호기심이었어요. 제가 마주하는 모든 것을 늘 배우고 진화하는 기회로 삼았죠.” 가까이서 지켜본 왕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혁신적 사고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번 불가리 협업에 최적의 파트너였다. 불가리 액세서리 매니징 디렉터 미라이아 로페즈 몬토야 역시 이번 작업이 도전적이지만 흥미로운 시도였다고 귀띔했다. 아울러 다른 누군가에 의해 또다시 세르펜티가 새로 탄생할 거라고 덧붙였다. “영원토록 화려한 세르펜티가 알렉산더 왕에 의해 재탄생한 것처럼, 세르펜티는 끝없이 재해석될 겁니다.”

    검정 쇼퍼 백은 알렉산더 왕×불가리 세르펜티 백 캡슐 컬렉션, 가죽 코트와 바지는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2020 S/S 컬렉션.

    세 개의 뱀 머리 클로저를 장식한 화이트 ‘트리플렛(Triplette) 백’은 알렉산더 왕×불가리 세르펜티 백 캡슐 컬렉션, 이어링은 불가리(Bulgari), 가죽 코트와 바지, 장갑은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2020 S/S 컬렉션.

      에디터
      남현지
      포토그래퍼
      윤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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