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찾아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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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찾아 삼만리

2019-12-03T20:05:24+00:00 2019.12.05|

인스타그램에 수없이 노출된 발맹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영화 <원더 보이>에서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생모를 찾기 위한 여정을 통해 삶의 이면을 들춰낸다. 카메라 뒤에서 ‘패션이라는 외면’을 걷어낸 그의 모습을 만났다.

7월이 시작될 때쯤, 우리는 파리의 영화관 그랑 렉스(Grand Rex) 앞에서 올리비에 루스테잉(Olivier Rousteing)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영화에 대해 많은 것을 듣지는 못했지만, 영화 자체만으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영화 총지휘자였던 배우, 프로듀서 겸 감독인 아니사 본느퐁(Anissa Bonnefont)은 2010·2011·2017년에 각각 세 편의 단편영화를 개봉한 후, <원더 보이>를 첫 장편영화로 내놓았다. 영화의 피사체이자 주인공인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그 유명한 발맹에서 고작 25세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차지했다. 이브 생 로랑 이후 가장 젊은 나이에 프랑스 패션 하우스의 수장이 된 것이다. 올리비에는 톱 셀러브리티로부터 찬사를 받는 패션계의 어린 왕자로 거듭났다. 출장, 파티, 패션쇼, #BalmainArmy 같은 해시태그로 가득 찬 일상은 500만여 명의 팔로워가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정성스럽게 기록되어 누구나 볼 수 있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게 진짜 저의 삶이죠!(Ceci est ma réalité!)” 이제 한층 더 개인적이면서도 새로운 측면의 현실이 <원더 보이>를 통해 드러날 때가 온 것이다.

아직 선공개 날짜인 10월 16일이 한참 멀게 느껴질 한여름 밤에 이 영화를 보기 위해 파리 그랑 렉스의 상영관이 채워졌다. 시사회는 아주 친근한 분위기로, 아니사 본느퐁이나 올리비에 루스테잉의 가까운 지인(특히 발맹 하우스 가족 위주)들만 초대받을 수 있었다. “발맹 아틀리에에 저를 위한 작은 사무실을 만들었어요. 아틀리에 바로 입구에요.” 몇 달 만에 카페 한 귀퉁이에서 다시 만난 아니사 감독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들의 바로 옆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정말 감사하게도요.” 대양같이 펼쳐진 푸른 벨벳 좌석에 젊은 직원들이 국회의원들처럼 착석했고, 명백히 긴장한 루스테잉의 실루엣이 비쳤다. 이 젊은 디렉터에게는 어떤 존재감이 있었다. 그는 편집실에서 가장 가까운 몇몇과 본 것 이외에 다른 이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본 적 없다. 이제 진정으로 그를 알지 못하면서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 대중 앞에 나가 내면을 전부 보일 준비가 되었다.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올리비에의 또 다른 단면을 발견하는 기회”이자 “그의 섬세함과 내면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아니사는 말했다. <원더 보이>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있었던 어느 파티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쉴 새 없이 플래시가 터지고 VIP들의 셀카가 줄지어 찍혀 올라오는 엄청난 규모의 행사였다. 중심에는 올리비에 루스테잉이 있었고, 그곳에서 태어난 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후 영화는 급작스레 핵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름도 얻지 못한 채 태어나 프랑스 보르도의 어느 가족에게 입양되었던 올리비에는 생모를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셀러브리티 그 자체 같은 올리비에 루스테잉의 사적인 일상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몇 가지 있기는 했다. 스마트폰 액정의 빛만 비치고 있는 화려한 주방에서 홀로 상자에 포장된 중국 음식을 먹는 그를 보며, 관음증을 가진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중 다소 과하게 느껴진 부분은 보르도의 보건사회국(DDASS)에서 올리비에가 그의 불분명한 출생에 관련된 정보가 담긴 서류를 찾아내 눈시울을 적시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는 어떤 가식도 없이, 정말 그 자신 자체였어요”라고 아니사가 얘기했다. “모두 눈물바다였어요. 저, 카메라 감독님도…” 카메라 앞에서 무방비 상태인 루스테잉의 모습을 보는 것은 혼란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그가 변해가는 모습은 다큐멘터리의 섬세한 내러티브 역할을 했다. “어떤 아이디어가 발전해나가면서 그를 보는 저의 관점과 그와 나 자신의 관계도 함께 변해간다는 느낌이었어요”라고 감독은 덧붙였다. 패션 크리에이터라는 일면 뒤의 인간의 초상을 가식 없이 드러내는 것, 그 자체가 아니사 본느퐁에게는 영화계에 데뷔할 때부터 지켜온 일종의 도박 같은 시도(하지만 성공한)였다.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요”라고 그녀는 올리비에 루스테잉에게 일종의 경고를 했다. “이 영화로 모두가 당신의 SNS에서 보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전혀 관심 없어요. 100% 진실한 당신의 모습이 아니면 영화를 찍지 않을 거예요.”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그 원칙에 따랐고, 그가 가졌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는 기회도 발견할 수 있었다. “제가 어디로 갈지 알기 위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먼저 알 필요가 있었죠.” 그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지 찾는 것은 자칫 의미를 잃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 속에서 찾는다고 찾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바탕에서 영화를 찍는 것은 정말 도박이에요”라고 아니사 본느퐁은 다시 한번 확신을 담아 얘기했다. “우리가 보건사회국에서 서류를 확인했을 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올리비에의 이야기를 떠나, <원더 보이>는 자신들의 근원을 알지 못하고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의 분투를 보여준다. 이는 “어디에도 융합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혜택받은 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한 젊은이들을 위한 영화”다. 영화는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원더 보이>에는 수많은 감정이 있으며, 느껴지는 것은 그 일부분일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연처럼 탄생했다. 아니사 본느퐁과 올리비에 루스테잉,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알게 된 지는 채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은 2017년 어느 아침, 올리비에가 구매하려던 한 주택에서 마주쳤다. 운명의 장난처럼, 영화감독이 마침 거기에 있었고 어느 틈에 두 주인공은 부엌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했다. 이들은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았고, 둘 다 태어났을 때 양친이 부재했다(아니사 역시 생부를 모르며, 22세에 그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우리 둘의 삶이 이곳에서 교차하게 된 것이 인생 그 자체인 것 같아요”라고 감독은 과거를 곱씹었다. “부모에게 버려진 이런 이야기를 굉장히 빠르게 털어놓게 되었고, 열등감을 내려놓고 금방 친해졌어요. 우리 사이에 뭔가 강력한 것이 생겨났죠.” 자신이 다큐멘터리를 만들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이 젊은 여성은 그 누구도 올리비에 루스테잉의 아메리칸드림 같은 성공 스토리와 자신의 근본에 대한 탐색이라는 양면적 삶의 모습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니사는 장편영화를 제안했고, 루스테잉은 이를 수락했다. 남은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1년 반의 촬영 끝에 다큐멘터리가 완성되었다. 제작을 시작한 2017년 7월부터 2018년 7월 사이 집중적으로 촬영을 했고, 이후 추가 장면을 촬영했다. 2018년에야 비로소 편집이 완성되었다. “정말 쉽지 않았죠.”
아니사는 그 시절을 잠시 회상했다. “올리비에의 스케줄은 정말 미쳤다고 할 정도인 데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때가 오기도 했죠.” 그녀가 자세히 덧붙인 말에 올리비에는 절대 아니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둘의 독특한 관계에 대해 “자주 싸우는 남매간처럼 굉장히 격한” 관계이지만 동시에 강한 신뢰감이 있다고도 얘기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책임감이 필요한 경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서로 친구가 되어가던 촬영 기간에 영화감독으로서는 다큐멘터리를 어디까지 찍고, 어떤 순간에 끝내야 할지 정해야 했다. 이를테면 “만약 가능하다면 생모와 아들 간의 관계 회복을 촬영해야만 할까?” 같은 문제 말이다. “물론 감독으로서 가능하다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라고 아니사는 말했다. “하지만 친구로서는 굉장히 책임감을 느꼈어요. 영화를 찍은 후에도 우리의 우정은 끝나지 않을 수 있고, 제 삶은 또 계속되고, 또 다른 작업을 하겠죠. 하지만 올리비에가 알게 되는 것은 그의 삶이에요. 이 생각을 하니, 단순히 감독으로서만 생각할 수는 없더군요.”

그렇게 영화는 어떠한 위로도 없이, 그리스 미코노스섬의 한 언덕에서 끝난다. 이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그의 질문에 대한 어떤 답변이 될 만한 것을 찾아낸 듯한 올리비에 루스테잉의 모습과 함께. 그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은 끝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 젊은이의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자 했던 아니사 본느퐁의 목적은 결국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