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10년의 진행형

2022.12.31

by VOGUE

    10년의 진행형

    박제되지 않은 과거는 현재로 순환된다. 2020년의 오늘을 만든 2010년부터 2019년 사이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정리했다.

    2010

    오디션의 시작, 슈스케
    <슈퍼스타K> 시즌 2는 당시 케이블방송 사상 최고 시청률(마지막 회 19%)을 기록했다. 시즌 4까지 서인국, 허각, 장재인, 존박, 버스커 버스커, 투개월, 울랄라 세션, 로이킴 등의 슈스케 스타들이 대중음악계에서도 성공했다. 오디션 외에도 인간극장식 스토리텔링, 배관공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희망 등을 갖춘 덕분이다. 하지만 그 장점은 억지 감동, 캐릭터 무리수로 변질됐고, 대중과 심사위원의 간극도 생기면서 시즌 8이 시청률 2%로 끝났다. 그러나 슈스케가 발화한 오디션 월드는 계속되고 있다. <기적의 오디션>, <위대한 탄생>, <보이스 코리아>, <K팝스타> 등이 줄을 이었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신입사원>, <코리아 갓 탤런트>, <댄싱 9> 등 종목만 바뀐 오디션 프로그램도 제작됐다. 문제는 갈 길을 잃어간다는 것. 자극을 필수로 여기는 <쇼미더머니>(스눕 독 앞에서 마이크를 두고 일어난 아비규환이 정점), 가혹한 설정의 <식스틴>(동료의 목걸이를 잡아 뜯는 방식의 탈락 확정)처럼 무리수가 짙어졌고, 급기야 <프로듀스×101>의 검은 거래마저 발생했다. 우리는 여전히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아니다.

    카톡 카톡
    3월 글로벌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 카카오톡이 태어났다. ‘콜포비아’까지 앓는 현대인에겐 전화보다 채팅이 편하다. 실제론 웃지 않을지라도 ‘ㅋㅋㅋ’를 치면서 유대 관계를 형성해간다. 친구끼리 쓰던 카톡은 이제 비즈니스 업무에서도 무리 없이 통용된다. 최근엔 채팅 창 상단에 배너 광고를 넣는 ‘카카오톡 비즈보드’가 매출 효자다. 카톡에서 쇼핑도 시작한 것이다. 가끔 범죄 현장의 증거로도 등장한다. 카톡 없는 세상이 있었던가?

    인스타그램 월드
    10월 인스타그램이 태어나면서 우리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세상을 맞이했다. 2019년 매일 5억 명의 사용자가 53분 동안 인스타그램을 한다. 그중 75%가 35세 이하다. 그만큼 밀레니얼 세대의 정신 일부는 인스타그램이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매일 40억 개의 하트를 누르고, 1억 개의 포스팅을 한다. 인플루언서라는 신인류가 나타나 문화뿐 아니라 비즈니스 업계의 왕좌에 올랐으며, 팔로우에 목매는 이를 위해 팔로우를 늘려주는 업체도 등장했다. 당분간 우린 정사각형으로 세상을 볼 것이다. 답답한 세대가 곧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겠지만.

    쇼핑은 소셜 커머스
    쇼핑 패턴을 얘기할 때 소셜 커머스를 빼놓을 수 없다.
    2005년 야후가 소개한 소셜 커머스란 용어는 2010년 쿠팡의 출범과 함께 본격화됐다. 쿠팡은 로켓 배송, 로켓페이 결제 시스템 등을 도입하면서 빠르고 쉬운 쇼핑을 제안하며 소셜 커머스를 넘어 이커머스 기업이 됐다. 지난해 국내 이커머스 업계 최대 규모인 4조원대의 매출을 달성했다. 그만큼 손실 비용도 많아 위기설도 대두되지만 전 나이키 부사장을 영입하는 등 큰 꿈을 꾸고 있다. 티몬과 위메프도 2014년에 비해 세 배 이상 성장하며 각각 5,000억원대로 몸집이 커졌다. 우리의 쇼핑 행차는 특별 스케줄이 되어버렸다.

    청춘에게 탄로 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시대가 있었다. 12월 24일에 세상에 나와 200만 부 가까이 팔렸다. 대한민국에 ‘청춘’ 담론 바람이 불었다. 경제학자 우석훈과 사회 비평가 박권일의 <88만원 세대>가 시작이었다면, 이 책은 하이라이트였다. 영광은 오로지 저자의 몫이었다. 1963년생, 남자, 서울대 교수. ‘청춘’을 도구 삼은 어른의 성공이었다. 대한민국에 ‘멘토’ 열풍이 불었다. 모두 어른이었다. 출판계는 당연히 그 영광이 오래가길 바랐다. 2012년 8월 28일 아류작이 나왔다. 쌤앤파커스에서 대형 출판사 문학동네(‘오우아’ 브랜드) 로 옮겨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가 나왔다. 같은 작가, 같은 컨셉, 같은 마케팅.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훌륭했다. ‘50만 부 돌파 특별판’까지 나왔으니까. 그러나 50만 부라는 숫자에 눈길이 가지 않았다. 사골 국물 우려먹는 것 같은 책, 길 잃은 청춘의 주머니 터는 책이라는 신랄한 평가가 이어졌다. 한 온라인 서점의 독자는 “사회적으로 세대의 틀을 정해두고 세대의 고난을 위로한답시고 과장되고 거짓된 고통을 위로하는 일종의 폭력”이라는 정교한 비판을 냈다. 저임금과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고용 조건을 견디는 청춘의 평가였다. 저자가 흔들렸다. 같은 해, 우석훈 교수는 <88만원 세대>의 절필을 선언했다. 김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멈춰야 했다. 한 해를 정리하며 대한민국 트렌드를 예고하는 데 집중해야 했다. 다행이다. 청춘을 타깃 삼은 이런저런 힐링 도서를 겪으며 독자들은 ‘꼰대’라는 단어를 찾아냈다. 일본의 만화가 야마다 레이지의 <어른의 의무>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불평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지 않는다,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 청춘의 차례를 지나 ‘어른의 차례’가 왔다.
    —윤동희(북노마드 대표)

    2011

    동일본대지진은 현재진행형
    마르크스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의 두 번째 황제가 된 나폴레옹 3세를 조롱하며 한 말이다. 룸펜 비슷한 신세로 ‘나폴레옹’이라는 이름밖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통해 정권 찬탈에 성공한 데는 프랑스 국민의 나폴레옹 향수가 있었다. 국가적 불행이 희극적 결과로 이어지는 일은 역사상 늘 존재했고, 그런 역사는 국민의 공포, 불안, 자기 위안을 자양분 삼아 가능했다. 우리는 9.11과 3.11 같은 사건에서 이런 역사를 목격한다. 2001년의 9.11 테러는 충격적 비극임에 틀림없으나 결과까지 그러지는 못했다. 9.11은 곧장 미국의 이라크전 명분으로 이용되었고 대량 살상용 화학무기가 있다는 날조까지 더해 후세인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딱 10년 후, 2011년의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참담한 피해에도 보수 우파 정권의 공포 마케팅과 은폐 등을 통해 일본 사회의 극우화 경향만 가속화시켰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대규모 재난이 일어나면 사회는 곧장 내셔널리즘으로 달려간다. 9.11의 미국이 그러했으며, 3.11의 일본 또한 그러했다. 일본의 미디어는 대지진 이후 “일어서라 일본” 같은 구호를 반복하면서 재해지의 미담을 전하고 일본의 부흥을 광고하는 데 열을 올렸다. 아베 정권이 요즘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후쿠시마 농수산물을 선수촌에 공급하고 후쿠시마 인근에서 경기를 열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일본인들에게 원자력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 때문이다. 이 비참한 ‘불의 기억’ 때문에 일본인들은 원폭 피해와 원전 사고를 ‘피해자 의식’으로 곧장 연결시키는 심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피해 의식에는 깊은 연원이 있다. 작고한 일본의 정치 사상가 후지타 쇼조는 생전에 현대 일본의 정신을 “자기비판 능력이 결여된, 자기애로서의 나르시시즘”이라고 명명한 적 있다. 아직도 아버지 천황을 정점으로 국민을 신민(臣民)이라 부르며 가족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일본에서는 어리고 착한 국민을 보살피는 국가라는 관념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뇌된 피해자 의식은 일본 사회 저변에 널리 퍼져 있는 기질이며, 나르시시즘의 원천이기도 하다.
    3.11 이후 일본 문화 예술계나 종교계가 “언제든 우리 삶은 끝장날 수 있다”며 가족주의와 작은 행복과 미니멀리즘에 더 천착하는 것도 이런 나르시시즘의 다른 표현이라는 점에서 곱게 보기 어렵다. 여기에는 늘 주어가 상실되어 있다. 원폭 피해처럼 3.11의 피해에도 정치적 가해자라는 주어는 빠져 있으며, 이런 논리는 일본 정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초청하면서 히로시마 방문을 1순위로 추진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동일본대지진은 결코 끝나지 않았고 현재진행 중인 것이다. —안희곤(사월의책 대표)

    욜로에서 소확행으로
    욜로(YOLO)는 드레이크의 노래 ‘The Motto’의 훅으로 등장했다. 2015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오바마 케어’를 독려하는 영상에 “Yolo, man”을 외쳤고, 2016년 옥스퍼드 사전에 욜로가 신조어로 등록됐다. ‘You Only Live Once’의 본뜻을 우리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으로 해석했다. 퇴사를 하고, 전세금을 빼서 세계 여행을 떠나는 책, 인스타그램, 꿈이 팔려나갔다. 이제 욜로는 워라밸, 소확행으로 규모를 줄여나갔다. 퇴사 대신 직장과 일의 균형을 찾고, 세계 여행 대신 맛있는 스페셜 티를 소비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니까. 욜로가 현실적으로 변화한 이유는 저질러보니 남는 공허함과, 무리수를 두기엔 더 엉성해진 사회 안전망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행복을 찾아야 할까.

    스티브 잡스 사망
    굳이 아이폰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애플은 개인용 컴퓨터 영역에서 언제나 힙함의 선두였다. 70년대의 ‘애플][’, 80~90년대의 ‘매킨토시’ 모두 21세기의 아이폰처럼 얼리 어답터를 이끌었다. 이런 애플은 스티브 잡스 그 자체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개인용 PC가 보편화된 순간도, 본격적으로 모바일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던 순간도 잡스가 있었다. 미래에 누군가가 모바일 시대의 인류를 설명하는 만화를 그린다면, 그 화자는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를 입고 뉴발란스 운동화에 금테 안경을 착용했을 것이다. 잡스는 세상을 떠났고, 그와 동일시되던 회사 애플은 남았다. 스마트폰 시대를 만들어낸 아이폰은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정식 넘버링을 잇고 있다. 그러나 잡스 사후부터 신규 아이폰 발표에는 “혁신은 없었다”고 미디어는 비판했다. 대중은 달랐다. 아이폰의 새 시리즈는 예약 대기자가 넘쳐나고 미디어가 바보 같다고 한 에어팟도 받아들였다. 첨단 기술이 아니라, ‘세련된 기술’이라는 잡스가 구축한 애플의 자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거대한 기계가 뽑아내는 생산력의 산업 시대를 넘어, 정보 시대의 기술 트렌드는 개인에게 착 달라붙는 친화력과 트렌드임을 잡스는 스스로와 제품을 통해 주장했고, 지금까지도 시장에서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이경혁(게임 칼럼니스트)

    2012

    강남스타일 쇼크
    2012년 7월 12일 유튜브 싸이 채널에 업로드된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는 2019년 11월 10일 현재 34억 뷰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최초의 ‘가요’이자 유튜브의 조회 수 계산 방식을 바꾼 최초의 ‘동영상’이라는 점에서 노래의 성공은 유튜브와 SNS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징후적이었다. 당시 상황을 리마인드해보면, 유튜브에 올라간 영상이 처음부터 화제였던 건 아니다. YG엔터테인먼트의 트위터 채널에 유튜브 링크가 올라갔고, 그 링크를 산다라박의 수많은 해외 팬들이 리트윗했다. 이 리트윗은 올케이팝 같은 K-팝 전문 미디어와 스눕 독 같은 미국 셀럽들의 트위터를 거치며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당시 유튜브는 32비트 방식으로 조회 수를 계산했고, 그 최댓값은 20억 뷰(2,147,483,647회)였다. 그런데 ‘강남스타일’이 한계를 깨뜨렸다. 유튜브 초기에 설마 20억 뷰를 넘기는 동영상이 있겠느냐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싸이 덕분에 유튜브는 계산 방식을 바꿨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찰리 푸스나 에드 시런, 테일러 스위프트가 20억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강남스타일’의 성공이 징후적인 이유는 유튜브+트위터(SNS) 연계 방식이 현재 음악 산업의 변화를 설명하는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이다. BTS와 조금 다르다. 2013년부터 칼리 레이 젭슨, 루이스 폰시, 찰리 푸스, 에드 시런,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SNS를 통해 유튜브 조회 수를 올리고, 그것이 빌보드 차트에 반영되는 순환 구조를 증명했다. BTS는 이런 뉴미디어 효과에 강력한 팬덤이 결합되면 대체 무슨 일이 가능한지 보여준 다른 사례다. 우리는 싸이 시대가 끝나고, 또 다른 세계가 시작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지 모른다. —차우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봄 캐럴, 벚꽃 엔딩
    겨울이면 캐럴이 울리듯 봄이면 ‘벚꽃 엔딩’이 차트에 등장한다. 라디오에서 ‘벚꽃 엔딩’이 나오면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버스커 버스커는 Mnet <슈퍼스타K> 시즌 3 출연 당시 반복되는 노래, 고음 불가 보컬로 혹평도 받았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무대의 혹평만큼 공허한 헛소리가 됐다. 쉬운 멜로디, 나의 일기 같은 노랫말, 청춘과 아날로그 감성은 잘빠진 프로 가수에 지친 대중에게 친구처럼 다가갔다. 특히 ‘여수 밤바다’와 ‘벚꽃 엔딩’은 버스커 버스커, 장범준과는 별도로 ‘스테디 송’이 되어가고 있다.

    관객 1억 명 한국 영화
    관객 수가 처음으로 1억 명을 돌파한 기념비적 해다. 이후 한국 영화 시장은 양적으로 팽창하며 몸집을 키웠고 현재까지 한 해 1억 명 이상의 관객 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2012년 1억 관객을 견인한 데는 두 편의 천만 영화 <도둑들>(2012)과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의 역할이 상당했다. 한국 영화에서 첫 번째 천만 관객 동원이라는 새 역사를 쓴 <실미도>(2003)와 또 한편의 천만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하던 2004년도 있었다. 2006년에도 <왕의 남자>(2005), <괴물 >(2006)이 연이어 천만 관객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실미도>가 2003년 말, <왕의 남자>가 2005년 말에 개봉해 이듬해 박스 오피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걸 기억한다면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모두 2012년에 개봉해 영화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는 데 놀라움이 있다. 게다가 이른바 극장가의 빅 시즌이라고 불리는 치열한 여름 시장에서 <도둑들>이 대박을 터트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추석 시즌에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홈런을 날렸다. 이로써 영화 시장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진다. 자칫 흥행에 따른 시장 양극화가 우려될 법도 한데 2012년 영화 시장은 중박 영화의 연이은 성공으로 안정적 성장세를 보였다. 2012년 초에는 <댄싱퀸>(2012),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건축학개론>(2012) 등 전혀 다른 장르와 개성을 갖춘 영화가 각각 4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고 천만 영화가 버티고 있던 여름 시장에서도 <연가시>(2012),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등이 고른 흥행 성적표를 받았다. 이런 흐름이 당시 한국 영화계에 얼마간의 청신호가 돼줬다. 2007년 이후 한국 영화계는 르네상스기를 지나며 거품론이 제기됐고 관객 점유율이 40%대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2011년 점유율 51.9%를 시작으로 2012년에 59%까지 오른다. 이후 현재까지 크고 작은 변동 속에서도 한국 영화 시장점유율 50% 선이 유지되는 상황이다. —정지혜(영화 평론가)

    2013

    스타 교황님
    3월, 교황 프란치스코가 제266대 교황이 되었다. 방탄차 대신 오픈카를 타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교황궁 대신 방 한 칸에 머문다. 가방을 직접 들고 오래된 플라스틱 시계를 찬다. 탱고와 유머를 즐기며 무엇보다 미소가 아름답다. 동성애자, 이혼한 사람, 임신 중절한 여성에게 자비를 촉구하는 등 논란과 개혁을 동시에 불러왔다. 이탈리아에서 교황은 아이돌급 인기다. 2014년 3월 이탈리아 미디어 그룹 몬다도리에서 <주간 교황>을 창간해 첫 달 300만 부가 팔렸을 정도다. ‘7일간의 밀착 취재’, ‘교황 어록’ 등 기사 제목부터 톱스타 같다. 2014년 8월에는 교황이 4박 5일 동안 방한했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선물 받은 노란색 리본을 옷에 달았고,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사랑’이었다. 그가 탄 소형 승용차 쏘울과 먹은 성심당의 빵이 화제였다. 최근 빔 벤더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를 개봉했다. 세계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나영석표 예능
    <1박 2일>에서 복불복으로 까나리 액젓을 마시게 하던 나영석이 7월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 그램으로 돌아왔다. 노년의 배우들이 “언제 또 오겠느냐”며 유럽의 소도시를 둘러볼 때 우리는 ‘죽음이 예정된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자문했다. 대배우 이순재가 동물에겐 한없이 약하고, 70대 막내 백일섭이 형들에게 보살핌을 받는 모습은 신선한 재미를 주었다. 나영석의 재주는 <삼시세끼>(2014)에서 폭발했다. 산촌 혹은 어촌에서 정말 세끼를 해 먹는 게 다지만 우리는 그러한 귀촌, 평온한 삶을 꿈꿨다. <윤식당>(2017)도 마찬가지.
    이국의 섬에서 조그만 식당이나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그들이 실현해 보여준다. 이들 프로그램의 기본은 ‘관찰 예능’. 나영석은 구석구석까지 찍을 수 있는 카메라와 엄청난 촬영 분량을 효율적으로 편집하는 기술의 발달 덕을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짜 힘은 ‘관찰+힐링’이다. 단순히 관음증적 관찰의 재미가 아닌, 소통의 힐링을 제공한다. 윤식당 배우들은 부엌에서 요리를 할 뿐이지만, 그 식당에는 다양한 사람이 오간다. 그들은 윤식당 배우들과 직접 혹은 음식으로 소통한다. 사실 주인공들보다 그들과 소통하는 손님들의 반응을 더 중히 담는다.
    이로써 시청자는 단순히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영석은 사람뿐 아니라, 고양이, 강아지와도 소통한다. 초밀착 사회면서 파편화된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정도 거리감의 소통이다. 그러나 그의 예능은 진부한 자기 복제라 비판받은 <스페인 하숙>(2019), 지나치게 힐링을 강요한다는 <숲속의 작은집>(2018)처럼 권태기에 온 듯하다. 물론 재능이 엄청나다. <알쓸신잡>(2017), <신서유기>(2015)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그에게, 우린 또 다른 힐링을 기대한다.

    2014

    땅콩보다 못한 갑질
    ‘땅콩 회항’ 사건을 떠올리면 우선 어떤 기분이 드는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가질 법한 분노와 더불어 어이없는 웃음 아닐까? 이 사건이 벌써 5년이나 지난 2014년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깜짝 놀랄 수 있다. 불과 1~2년 전에 벌어진 가까운 사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희극은 희극인데 분통이 터지는 희극이라는 점에서 땅콩 회항은 참으로 우스운 사건이다. 당시 조현아 부사장이 요구한 게 ‘땅콩’이 아니라 ‘마카다미아’였다는 게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그 알뜰한 관심에 또 한번 웃은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우스운 사건을 쉽게 잊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비슷한 사건이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일 것이다. 땅콩 회항은 ‘갑질’이라는 말이 이 사회의 일상용어로 쓰이게 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사건이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커피숍과 백화점에서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불공정은 반드시 권력관계를 통해 행사된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했다. ‘갑’과 ‘을’은 원래 계약서상의 쌍방을 표현하는 중립적 호칭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갑을 관계를 평등한 관계로 여기지 않는다. 돈과 지위를 가진 갑들이 그것을 권력으로 착각해 부당한 힘을 행사하는 것을 늘 보고 듣고 있기 때문이다.
    땅콩 회항 사건이 남긴 단어는 더 있다. ‘오너 리스크’라는 말이 대두되어 재벌 총수들의 갑질과 부도덕한 행태가 기업의 위기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각성이 일어났다.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 해도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이어진 사건의 결말이 가르쳐준 교훈이다. ‘내부자 고발’도 더 중요한 의미를 얻게 되었다. 땅콩 회항에서 원치 않게 을의 역할을 맡게 된 피해자 박창진 사무장은 의지를 굽히지 않고 사건의 전면에 나서 비리와 불공정을 폭로하는 기수가 되었다. 그는 지금도 노조의 상징적 인물로 분투하는 중이다.
    사회적 불공정, 갑질, 재벌의 지배 구조, 제왕적 기업 문화는 단순히 대한항공이라는 일개 회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 우리 사회 1% 대 99%의 불평등 구조는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다는 것, 그리하여 공정성의 요구를 사회 전면에 부각시킨 것이야말로 역설적이지만 땅콩 회항이 우리에게 안겨준 선물일 것이다. —안희곤(사월의책 대표)

    촛불 이전에 세월호
    날짜로 호명되는 사건은 대개 우리에게 슬픔과 비극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미국에 9.11이 있고 일본에 3.11이 있듯, 우리에게는 4.16이라는 날짜와 304명이라는 숫자가 깊은 슬픔과 함께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모든 사회적이고 자연적인 재난이 그렇듯이, 사고는 사실상 사고 이후가 훨씬 중요하며, 그것이 얼마나 우리 기억에 오래 남게 될지는 사고 이후에 달려 있다. 4.16은 ‘왜? 왜? 왜?’라는 숱한 질문만 남긴 채 오래도록 우리에게 남을 것이다.
    2016~17년의 겨울 내내 벌어진 촛불 집회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은 세월호의 아픈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고 발화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세월호로 인해 국가의 존재 이유와 정치의 역할을 끊임없이 되물을 수밖에 없었고, 이 질문은 참사를 무마하기에 급급하던 정권의 은밀한 내부를 캐묻는 데까지 이어졌다. 질문을 이어가던 이들은 누구보다 광화문 천막에서 단식을 불사하며 버티던 4.16 피해자 유족들이며, 이들이 지켜낸 불씨가 마침내 거대한 촛불로 점화했다.
    현대 국가는 그것의 존재 근거를 더 이상 합법성 주장에서 찾지 않고 정당성 주장에서 찾는다. 법과 선거로 확보되는 합법성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도덕적 정당성까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정당성이 집권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뿐 아니라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도모하는 데서 온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이런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서 결격 사유를 드러냈다.
    4.16 세월호 참사는 제도 권력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재 지형도를 남김없이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단식 중인 유가족 앞에서 벌인 일베들의 폭식 망동은 말할 것도 없고, 숱한 혐오 발언과 보상금을 운운하는 저열한 공격은 이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 보여주었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자리에 남은 것은 세련되게 치장된 이 사회의 위선이었는지 모른다.
    세월호가 던진 질문은 끝이 없고, 그것은 참사 이후에 나온 여러 권의 책에서 잘 나타난다. <국가의 배신>이나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는 국가가 국민에게 늘어놓는 거대한 거짓말의 구조를 폭로했고, <눈먼 자들의 국가>와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는 작가와 시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애도와 반성의 진정한 의미를 문학에 담은 책이었다. <사회적 영성: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는 공동체적 관계의 회복을 통해서만 우리들이 저버린 인간성의 사회적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 점에서 특기할 만한 책이었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정치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우리들 자신의 무지한 삶을 일깨우는 반성의 시간이었다.
    —안희곤(사월의책 대표)

    씁쓸한 먹방과 쿡방
    먹방과 쿡방의 인기는 공통분모가 있다. 1인 가구의 증가, 가족 해체로 고립된 현대인이 모니터와 함께 식사했다. 자신은 먹지 않더라도 식욕이라는 생리적 욕구를 해소하고, 그러기 위해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현 사회에선 자아실현의 욕구를 실현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우린 식욕이라는 1차원 욕구 해소에 집중했다. 먹방은 ‘Mukbang’이라는 고유명사까지 만들며 지금까지도 팔리는 콘텐츠고, 쿡방은 셰프테이너라 불리는 스타 셰프들을 배출해 외식 문화에 기여한 면도 있다. 하지만 우린 2차원적 욕구를 채울 날을 기다린다.

    킨포크 문화
    처음엔 푸른 정원에서 커다란 식탁을 놓고 음식을 나눠 먹는 이미지로 다가왔다. 이제 킨포크는 삶의 태도를 일컫는 대명사다. 우선 속도가 다르다. 빠른 성공보다 느리지만 여유 있는 현재를 원한다. 밀도가 다르다. 대량생산의 바다에 허우적대기보다 진정성 있는 하나를 갖고자 한다. 고립보단 소통을 원한다. 가깝고 친한 관계를 이르는 킨포크의 뜻처럼 사람들과 유연히 연대한다. 환경과 가치를 위해서라면 불편함과 비용도 감수한다. 즉 더 이상 대기업, 대량생산, 세계화가 자신을 결정하게 두지 않는다. 중심은 나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 가치에 따라 소비하고 움직인다. 사라지는 유행과 달리 킨포크 정신은 더 힘을 얻을 것이다.

    2015

    유일무이 지드래곤

    새삼스럽지만 문득, 참 과잉한 이름이다. ‘지-드래곤’. 사실 그의 모든 것이 과했다. 솔로 콘서트 무대에 수직으로 침대를 세워놓고 색정적 퍼포먼스를 하거나, 호랑이를 반려동물처럼 거느리고(뮤직비디오 속의 연출이며 이 과정에서 동물의 건강이 위협받지 않았으리라 믿어본다), 샤넬 로고가 찍힌 테니스공으로 쇼윈도를 박살 내는 것도, 한쪽으로 머리를 늘어뜨리고 권좌에 앉아 있는 모습도. 노래에는 ‘병맛’과 ‘간지’를 줄타기하는 당혹감을 쏟아붓는다. 와우, ‘판타스틱 베이비’나 ‘뱅뱅뱅’을 처음 듣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아이돌이지만 “그 새끼”, “쿠데타” 같은 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2006년 빅뱅으로 데뷔한 이래 뭐가 됐든 그가 하는 일은 어마어마했다. 무절제한 객기와 도발로 빈틈없이 압축된 존재 같았다.
    그런 과잉이 곧 K-팝의 미학으로 정의되며 세계 팬들을 빨아들였다. 무대에서는 난폭하지만 내려오면 90도 인사를 한다는 것이 클리셰가 되어 해외 팬들이 느끼는 K-팝의 매력 중 하나가 될 정도로. 어떤 이들은 어린 나이에 트레이닝 받기 시작해 억눌린 욕망이 부글대는 천재적 인물을 보았고, 그 역시 K-팝의 모순적 매력으로 소화되었다. 국내에서 그는 K-팝을 뒤흔든 인물이자, 아이돌을 우습게 보는 힙합 팬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린 아티스트였다. 해외에서 그는 K-팝의 현신이자 그중 가장 특별한 예외였다.
    그런 그가 2015년 샤넬 F/W 오뜨 꾸뛰르 쇼에 아시아인으로서 유일하게 초청받았다. 물론 다른 놀라운 순간도 많았다. 박명수, 정형돈에서 스크릴렉스, 아이유, 미시 엘리엇까지, 그와 협업한 아티스트의 목록은 끝없이 외연을 넓혀가는 K-팝임을 고려해도 여전히 감탄을 일으킨다. 그러나 지드래곤에게 이 해는 상징적 의미가 충분하다. K-팝이 세계 음악 시장의 기괴하고 새로운 총아로 대두되던 시점에서, 좋은 음악 콘텐츠를 공급하는 아티스트 이상의 존재가 된 것이 그이기 때문이다(물론 이것이 우열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콘텐츠가 성적으로 자신을 증명한다면 스타는 이를 존재로서 해낸다. 그는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뒤에 감각과 광기를 가지고 있는 라이프스타일로서의 ‘스타’로 발견된 것이다. K-팝 음반과 뮤직비디오가 세계 음악 산업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면, 지드래곤은 세계 팝 컬처의 일원으로 계단을 올라섰다. 당연히, 그런 존재는 더 많은 스타와 콘텐츠를 견인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K-팝 산업이 지금까지 낳은 몇 개의 꼭짓점 중 하나다. —미묘(대중음악 평론가, <아이돌로지> 편집장)

    카카오 택시의 등장
    카카오 T는 이전까지 전화를 걸어 예약한 택시 호출 시장의 혁명이었다. 사용이 편리함은 물론, ‘안심 메시지’를 카톡으로 보내고, 택시 기사에게 별점 평가를 하는 서비스도 호응을 받았다. 요즘 카카오 T 택시의 월간 이용자 수는 1,000만여 명이다. 스마트 호출, 블루, 블랙, 카카오 T 벤티, 준비 중인 여성 전용 택시까지 여러 버전으로 확장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나갈 때다. 승차 거부 없는 자동 배차, 승객에게 말을 걸지 않고 조용한 클래식을 트는 매뉴얼 등을 보여준 타다에 사람들이 열광했듯(인기가 많은 만큼 논란도 시끄럽다), 우리는 단순히 부르기 쉬운 콜택시를 원하지 않는다. 이제 산뜻한 승차 경험을 연구할 때다.

    칸 영화제의 힐게이트
    영화 <캐롤>의 갈라 스크리닝 당시 플랫 슈즈를 신은 여성이 드레스 코드를 어겼다는 이유로 입장을 금지당했다.
    건강상 이유로 플랫 슈즈를 신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힐게이트(Heelgate)’, ‘플랫게이트(Flatgate)’로 논란이 됐다.
    다음 해에 줄리아 로버츠는 칸 영화제의 드레스 코드에 대한 항의로 맨발로, 수잔 서랜든은 블랙 턱시도에 플랫 슈즈를 신고 레드 카펫에 섰다. 2018년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레드 카펫에서 보란 듯 하이힐을 벗고 맨발로 걸은 뒤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같은 해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을 필두로 크리스틴 스튜어트, 레아 세이두 등과 수십 명의 여성 영화인이 손을 잡고 레드 카펫에 섰다. ‘타임즈 업(직장 내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 해소를 위해 결성한 단체)’ 운동의 일환이었다. 황금종려상만큼 빛나는 순간이었다.

    클래식계 아이돌
    조성진은 10월 2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클래식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클래식화”를 꿈꾼다는 조성진의 말처럼, 우린 그에게 빠져들었다. 공연 매진뿐 아니라 ‘드뷔시 달빛을 연주하는 조성진. JPG’를 하드디스크에 소장하게 만들었다.

    2016

    뉴미디어 팟캐스트
    2007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고, 한국에서는 아이폰이 판매되기 시작한 2009년부터 알려졌다. 2011년 <나는 꼼수다>의 성공으로 대중화된 팟캐스트는 영상 기반의 유튜브와 달리 음성 기반의 콘텐츠로 진입 장벽이 낮은 뉴미디어로 자리 잡았다. 주로 시사 영역에서 두각을 보이다가 현재는 예능까지 아우르며 범위를 넓히는 중이다. 2015년 전후로 SNS와 결합되면서 영향력을 확보했고, AI 스피커가 등장한 이후에는 차기 미디어로 주목받고 있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역시 2015년에 시작되었다. 모 방송에 섭외된 김숙이 녹화 하루 전날 밤에 갑자기 잘린 것을 계기로, 직접 방송을 만들자는 의기투합으로 시작된 팟캐스트는 월 매출 100만원을 목표로 할 만큼 소박하게 시작했다. 형식적으로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구독자들의 일상에 밀착된 내용과 기획력으로 대세로 완전히 자리 잡으며 송은이가 ‘컨텐츠랩 비보’라는 회사를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아나운서, 개그맨 등 업계의 유리 천장 때문에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 여성이 대거 팟캐스트로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흥미로운 지점은 팟캐스트의 붐이 <82년생 김지영>, <며느라기> 등 여성주의에 기반한 대중적 콘텐츠가 화제가 된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유튜브나 팟캐스트 같은 개인 미디어를 단지 뉴미디어의 한 지류로서가 아니라, 매스미디어에 대한 대안 미디어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사실 여러 뉴미디어 중에서도 팟캐스트는 아직은 그 가능성을 검증받고 있는 미디어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다만 대중이 뉴스나 정보를 접할 때 기존 언론이나 포털 사이트, 유튜브보다 더 높은 신뢰를 보인다는 점은 팟캐스트의 미래를 진지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소수자를 위한 미디어 혹은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는 미디어로서 팟캐스트가 AI 스피커나 음성 인터페이스와 결합되는 미래가 또 어떤 미디어 지형도를 만들게 될까? —차우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알파고 VS 이세돌
    3월 9일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가 열렸다. 구글 딥마인드사에서 개발한 알파고와 한국의 프로 바둑 기사인 이세돌 9단이 다섯 차례 대결하는 이벤트였다. 바둑 채널뿐 아니라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이세돌은 다섯 판 중에 한 판만 따냈다. 알파고가 승리하자 세계는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알파고는 바둑에서 은퇴했다. 딥마인드는 스타크래프트 2를 위해 학습하는 알파스타를 제작 중이다). 알파고가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입증한 뒤로 인재와 자금이 연구에 몰려들었고, 우리 일상에도 결과물을 내놨다. 사진 합성, 글자 인식, 번역 등의 부분에서 쓸 만한 제품이 나오고 있다. 물론 문제점도 있다. 중국은 시민 감시에 얼굴 인식 시스템을 이용하는데, 백인 외 인종이나 여성에게 정확도가 떨어진다. 그간 수집한 이미지가 백인 남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간 행해진 성차별적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여성을 배제했다는 보고도 있다. 합성으로 가짜를 진짜로 오해할 여지도 존재한다. 이미 우린 휴대전화에 인공지능 비서를 두고 있으며, 가능성은 더 넓어질 것이다. 사용자인 우리의 책임을 돌아볼 때다. —오영욱(게임/IT 칼럼니스트)

    2017

    페미니즘 리부트
    미투운동이 일어나기 전과 지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같은 사람이 있을까.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 추문 전력이 드러나며 촉발된 미투운동이 일순간에 퍼져나갈 수 있었던 건, 우리 가슴속에 불쾌함과 부당함이 이미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고, 불평등함을 표현할 언어를 발견하거나 되찾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서지현 검사가 검찰 조직 내의 성추행을 고발하면서 미투운동이 확산되었고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일어나며 여성 혐오의 실체를 마주했다(‘나는 오늘도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메시지는 여자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사회를 상징한다). 여성에게만 가해지던 외모 강박에 저항하며 탈코르셋 운동이 퍼져나갔고, 홍대 몰카 유출 사건에 대한 경찰의 성차별적 편파 수사에 항의했으며, 낙태죄 폐지를 위해 수만 명의 목소리가 모였다. 페미니즘에는 오해가 많았다. 여자들에게조차 드센 여자들의 급진적 주장으로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불꽃처럼 일어난 일련의 사건과 용기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페미니즘이 보편타당한 가치임을 인식하게 했다. 개안하듯 페미니즘에 눈뜬 사회는 달라지는 중이다. 물론 남녀 갈등 구도로 이어지며 격렬한 성장통을 앓는 중이다. 그럼에도 요즘 세상에 성차별이 어딨냐고, 이 정도면 여자들도 살 만하지 않느냐고 묻는 자들에게 들려줄 얘기는 하나밖에 없다. 여자들이 살 만한 세상은 페미니즘이 사어가 되는 날 찾아올 것이라고.

    프로듀스 101
    투표 조작으로 안준영 피디가 포승줄에 묶여 구속되며(2019년 11월 5일 현재) 4년 만에 ‘프로듀스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이 프로그램이 아이돌 문화에 끼친 영향을 부정할 순 없다.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로 명명하며 “당신의 소녀(소년)에게 투표하세요”라고 독려하던 <프로듀스 101> 시리즈는 수용자였던 팬들을 능동적인 기획자로 변모시켰다. 곡 선정은 물론 그룹명까지 의견을 물었던 이 프로그램 덕분에 팬들은 지하철 전광판 광고, 디지털 콘텐츠 제작 등 기존 매니지먼트의 영역이었던 기획, 홍보, 마케팅 등을 직접 하기 시작했고 팬들이 아이돌을 직접 키워내는 문화를 만들어냈다(시즌 2 당시 탈락 멤버들을 JBJ로 데뷔시키기에 이르렀다). 10대 문화로 여겨지던 ‘팬질’이 40대까지 넓어졌음은 물론, 아이돌의 팬이 아니었던 계층까지 끌어들여 팬덤의 물리적 규모를 키웠다. ‘아이돌 덕질’이 국민 취미 생활로 떠오르며 K-팝 산업은 물론 우리 라이프스타일까지 바꿔놓았다. 조작의 손길이 어느 시즌까지 미쳤는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프로듀스 101> 시리즈가 낳은 최대 수혜자는 여전히 2019년 <보그> 9월호 표지의 강다니엘이다.

    2018

    넷플릭스는 진행 중
    1997년 리드 헤이스팅스가 설립한 비디오 대여 사업체가 온라인 스트리밍 기업으로 거듭난 스토리는 4차 산업혁명기의 신화가 될 만큼 ‘힙’하다. 스포티파이와 함께 콘텐츠 스트리밍 환경을 주도했고, 선구적 구독형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고, 데이터 기반의 기획과 운영으로도 유명하며, 수평적 조직 문화의 대표로도 불린다. 월트 디즈니의 OTT인 디즈니+가 등장한 이래, 애플TV와 유튜브 프리미엄, 아마존 프라임 등 전 세계 동영상 생태계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2019년 현재 전 세계 동영상 스트리밍의 30%를 책임지고 있는 넷플릭스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도 여러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드라마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2016년 한국에 진출한 당시에는 각종 이권이 얽힌 방송국과 포털 사이트 때문에 콘텐츠 수급이 어려웠지만, 2018년 즈음부터 한국 드라마를 자체 제작하며 드라마 생태계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봐도 좋을 만큼 영향력을 확보했다. <데어데블>, <제시카 존스>, <퍼니셔> 등 마블 드라마 시리즈를 필두로 <나르코스> 같은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한국의 드라마 팬을 공략한 뒤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시작으로 드라마 시리즈인 <킹덤>을 선보이며 한국형 장르 드라마 붐에 영향을 줬다. 여러 제약을 가진 지상파와 케이블방송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기회라는 점에서 국내 드라마 제작사와 작가들에게 대안으로 자리 잡은 결과다. 또 국내 OTT 서비스 생태계를 가속화시켰다. 한국형 넷플릭스로 여겨지는 왓챠플레이를 비롯해 지상파 방송국의 푹(POOQ)과 SKT 옥수수가 결합한 웨이브(wavve)와 조만간 새롭게 등장한 케이블방송사의 OTT, 그리고 CJ ENM과 JTBC가 손잡고 만드는 OTT 서비스가 2020년에는 등장한다. 어휴, 2020 년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더 벌어지려고 이러나?
    —차우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방탄소년단: 우리가 처음 본 것
    방탄소년단이라는 다섯 글자가 한반도에 떨어진 뒤, 한국은 폭탄이라도 맞은 듯 허둥댔다. 데뷔가 2013년, ‘I Need U’와 ‘쩔어’로 이들의 존재에 주목하는 이들이 서서히 늘어난 게 2015년,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20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게 2018년이니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오른 셈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껏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롭게 발견한 양 분주했다. 방탄소년단이 대체 누구냐는 기초적 질문에서 이들이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각종 배경, 향후 창출될 경제적 가치 추산까지. 사회, 문화, 정치, 경제 할 것 없이 말할 입과 쓸 손이 있으면 분야를 막론하고 누구나 말을 얹고 생각을 보탰다. 속보와 담론의 아비규환이었다.
    하기야 아주 이해 못할 광경도 아니었다. 실제로 방탄소년단이 한국에 선사한 처음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난공불락의 성으로 여겨지던 미국 빌보드 음반 차트 3연속 1위, 영국 UK 차트 첫 1위, 역대 최단 시간 유튜브 조회 수 1억 뷰 돌파(‘작은 것들을 위한 시’, 37 시간), 유엔 본부 연설, 한국 그룹 최초 빌보드 뮤직 어워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수상, 영국의 웸블리 스타디움, 미국의 로즈볼 스타디움을 비롯한 세계 음악 시장을 대표하는 공연장 첫 입성 등. 심지어 2019년이 저물어가는 지금까지도, 이들은 여전히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토록 많은 방탄소년단의 처음은 우리에게 끝내 어떤 의미로 남을까. 방탄소년단이 거둔 성과는 단지 그들 몫의 영광일 뿐, 그것이 한국 대중음악 전반, 나아가 한국의 밝은 미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는다는 현실을 자각한 차가운 머리를 통한 질문이다. 지금 당장 답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일 것이다. ‘가능성’. 한국에서 만들어진 대중음악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나 전략적 프로모션 없이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에서 인종도 국적도 천차만별인 사람들에게 동시에 사랑받을 수 있다는 꿈같은 가능성의 실현. 방탄소년단은 이 땅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어봤을 막연한 희망을 실제로 만들었고, 이것은 향후 한국 대중음악이 가진 정신력의 튼튼한 뿌리가 되어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이들에게서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받았다면? 특별한 현상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능성이 가진 희망의 에너지는 전염성이 무척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2019

    황금종려상 기생충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은 올해,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2019)으로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영화제, 그중 영화제가 주는 최고상이라는 상징성, 한국 영화사의 기념비적 해라는 무게감이 맞물리면서 이번 수상은 더 크게 주목받았다. <기생충>의 이번 결과는 한국 영화가 칸국제영화제에서 이룬 그간의 성취와 함께 이야기할 때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 영화가 처음 으로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건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2000). 얼마 되지 않아 임권택은 <취화선>(2002)으로 칸에서 감독상을 받는다. 2000년대 초반, 칸을 비롯한 세계 영화계의 관심과 주목은 한국의 고전적 서사와 전통 미학에 천착한 작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음을 얼마간 짐작하게 한다. 그다음은 <올드보이>(2003)로 심사위원 대상과 <박쥐>(2009)로 심사위원상을 받은 박찬욱, <밀양>(2007)으로 여우주연상과 <시>(2010)로 각본상을 받은 이창동이다. 이들은 한국 영화가 제작과 투자 시스템을 만들고 산업적 측면에서 몸집을 키우던 시기에 등장한 시네아스트, 작가주의 감독들이다. 이들은 세계 영화인들에게는 한국 영화를 접하는 마중물이 돼줬고, 국내 영화인들에게는 세계 시장을 두드려볼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봉준호다. 그의 이번 시도는 ‘동양적인 것 ’, ‘한국적인 것’을 앞세우지 않고도 국제 영화 시장에서 한국의 시대상을 보여준 최신의 방식이다. 당대 한국 사회의 계급적 갈등을 그린 ‘가족 희비극’이 동시대 세계 영화인들에게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음을 확인했다. 특히 <기생충>은 국내외 평단뿐 아니라 대중의 지지와 적극적인 선택까지 이끌었다. 그 어렵다는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기생충>은 176개국에 판매된 <아가씨>(2016)의 기록을 넘어서며 192개국에 판매,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해외시장 세일즈에 성공했다. 한 예로 프랑스에서는 <기생충>이 개봉 한 달여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이례적으로 더빙판까지 제작됐다. 물론 2019년 상반기 한국 영화 시장도 <극한직업>(2018)과 <기생충> 덕을 톡톡히 보며 2013년 이후 6년 만에 상반기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 50%를 넘어섰다. —정지혜(영화 평론가)


    유튜브랜드
    유튜브는 콘텐츠 민주주의 국가다. 그동안 콘텐츠는 방송국, 고위 관계자, 취미 삼아 제작비를 대는 거부가 만들어 일방적으로 공급했다. 그런 시대는 갔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콘텐츠를 생산하고, 수억 개의 선택지 중에 원하는 것만 소비할 수 있다. 이전의 콘텐츠가 익명의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표준에 맞춰 거세되고 적당히 다듬어졌다면, 유튜브에는 수많은 덕후와 하위문화가 살아 움직인다. 그중 특별한 유튜버, 1인 크리에이터들은 돈과 명예를 얻었다. 국세청의 세금 조사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새로운 계급이 되었고, 이제 초등학생들은 아이돌뿐 아니라 크리에이터가 되길 꿈꾼다. 대유행 뒤에는 잔해가 남기 마련이다. 1인 크리에이터 광풍은 무엇을 남길까.

    누명 벗은 임신중절
    누군가가 낙태는 살인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누군가는 임신중절수술을 받기 위해 국경을 넘고, 무면허 의사일지 모를 자에게 현금 다발을 내밀고 위험천만한 수술을 받고, 진짜일지 가짜일지 모를 임신중절 약물을 삼켰다. 대한민국에서 임신중절이 ‘죄’인가 하는 논쟁은 1953년 형법에 이를 ‘죄’로 명시할 때부터 시작됐다. 형법 269조는 임신중절을 한 여성은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의 벌금형을 받도록 규정했으나 남성에게는 어떤 ‘죄’도 묻지 않았다. 임신중절은 ‘죄’였지만 현실에선 끊임없이 일어났고 여성의 건강권만 위험에 놓였다. 모두 임신한 여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었으니까(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목숨을 잃은 여성의 숫자는 전 세계에 5만여 명에 이른다). 이 기형적인 법은 2019년 4월 11일 비로소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자기 낙태죄 조항이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음을 비로소 인정했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국민투표를 위해 트렁크를 끌고 귀국하는 아일랜드 여성들의 물결을 목격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낙태 전면 금지를 선포한 폴란드 정부에 맞서 3만 명의 여성이 ‘검은 시위’를 벌여 이틀 만에 ‘없었던 일로’ 만든 이후 4년째였다. ‘My Body, My Choice’. 자기 몸에 대한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비로소 진짜 주인에게 돌아왔다.

      에디터
      조소현, 김나랑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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