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PHORIA UTOPIA

Beauty

EUPHORIA UTOPIA

2019-12-26T08:21:33+00:00 2019.12.30|

런웨이를 강타한 ‘ 유포리아 메이크업 ’. HBO 시리즈의 Z세대 뷰티 트렌드가 은하계를 집어삼켰다.

슈퍼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가 연출한 Z세대 아이 메이크업의 정석. 눈매를 따라 이어 붙인 크리스털 파츠가 영롱하게 빛난다. 드레스는 생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다운타운에 자리한 어느 호텔의 펜트하우스. 종종 유대교 소녀들의 성인식 ‘바트 미츠바(Bat Mitzvah)’를 치르는 곳이다. 최근 나는 유대교 성인식을 모티브로 한 어느 패션쇼에 섰다. 참가자들의 열띤 수다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대 민속음악 클레즈머(Klezmer) 밴드의 연주가 흘러나왔고, 분홍과 흰색 풍선 수백 개와 반짝이는 푸크시아빛 테이프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친구이자 디자이너인 수잔 콘이 그녀의 브랜드 ‘수잔 알렉산드라’의 봄 컬렉션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수잔은 내게 자신이 인스타그램으로 발탁한 코미디언, 작가, 아티스트와 함께 모델로 서주길 부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한껏 부풀린 적갈색 부팡 스타일 가발에 과감한 옷차림의 내 모습을 발견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밝은 녹색 아이섀도를 눈썹 바로 아래까지 거침없이 칠했는데, 이게 요즘 수많은 패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등장하는 ‘유포리아 메이크업’이라나?

이름 모를 캘리포니아 교외를 배경으로 10대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샘 레빈슨 감독의 HBO 히트작 <유포리아>.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일명 ‘유포리아 메이크업’이 최근 런웨이를 휩쓸었다. 극 중 실험적이고 매력적인 뷰티 룩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이름이다. 유포리아는 나보다 한참 어리고 주체적 삶을 사는 주인공들을 조명한 드라마임에도, 지난여름 방영한 첫 시즌은 40대 초반 워킹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극 중 캐릭터들은 Z세대 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온갖 문제를 떠안고 있다. 짝사랑, 부모와 갈등, 절교, 임신에 대한 두려움, 우울증, 자기혐오, 마약중독, 성별 비순응, 섹스팅, 캣피싱, 캠걸, 동성애자 데이트 앱 그라인더를 통한 ‘원 나잇’ 파트너 탐색까지. 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요즘 10대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용감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듯하다. 극 중 주인공의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반짝이는 다크 퍼플 글리터 눈물이나 관자놀이까지 이어진 3D 입체 아이라인은 Z세대 버전의 니나 하겐을 보는 것만 같다. 희한하게도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도넬라 데이비는 극 중 주인공들의 지나치리만큼 화려한 화장이 뷰티 월드에 유행처럼 번진 현상에 대해 “구시대적 성 관념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거예요. 메이크업이 굴레에서 벗어난 자아를 표출하는 강력한 표현 수단인 거죠”라고 설명했다. 극 중 알렉사 데미가 분한 못된 치어리더 ‘매디’는 진주로 눈썹 라인을 연출한다. 헌터 샤퍼가 열연한 트랜스젠더 ‘줄스’는 눈가에 구름 모양 라인을 그린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제임스 칼리아도스가 로지 애슐린 컬렉션에서 연출한 바로 그 아이라인처럼. 칼리아도스는 애슐린의 다섯 살짜리 딸아이의 낙서에서 영감을 얻어 맥 ‘크로마그래픽 펜슬’로 감각적 아이라인을 선보였다고 말한다. 극 중 전형적 금발 캐릭터 ‘캐시’를 연기한 22세 여배우 시드니 스위니는 8화에서 아이스 스케이팅 퍼포먼스를 위해 얼굴 전체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붙이고 카메라 앞에 섰다. 최근 그녀는 속눈썹 라인에 크리스털을 얹은 ‘유포리아 스타일’로 어느 행사에 등장했다. 개인적으로 유포리아 메이크업의 매력에 푹 빠진 모양이다. “‘쎈캐’가 된 기분이었죠.” 시드니가 웃으며 말했다. 수잔의 쇼를 비롯해 스프링 컬렉션 쇼 곳곳에서 유포리아 메이크업의 존재감이 느껴졌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에어리어 봄 컬렉션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베켓 포그와 피오트레크 판시치크는 피그먼트와 파우더의 빈자리를 크리스털과 진주로 메웠다. 마크 제이콥스 봄 컬렉션 중 팻 맥그라스는 두 눈은 보라색 스팽글로, 뺨엔 블러셔 대신 골드 글리터를 두껍게 발랐다.

하지만 한때 뷰티 구루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여겨진 ‘런웨이 뷰티’를 유심히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유포리아 열풍은 새로운 현상이 아님을 눈치챘을 것이다. 전설적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는 안나 수이 쇼에서 분방하게 그려낸 흰색 아이라인 아래 별 모양 스팽글을 얹었다. 백스테이지에서 그녀는 이 메이크업을 일컬어 ‘신선하고 솔직한 표현 방식’이라 묘사했다. “어찌 보면 제 커리어 전반에 걸쳐 해온 일이죠.” 패션과 뷰티는 늘 동시대 문화를 반영한다고 설명하며 그녀가 덧붙였다.

이제 끊임없이 변모하는 문화의 흐름을 유심히 들여다볼 때다. <유포리아> 속 상처투성이 주인공들은 낯설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환각을 보여줄 한 줌의 가루 대신, 몇 가지 화장품으로 일탈을 감행해보라고 속삭인다.

다시 토요일 오후, 수잔의 쇼는 막을 내렸지만 내 눈두덩을 채운 형형한 초록빛 아이섀도는 그대로다. 줄스나 매디가 봤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네온 그린 섀도를 바른 채 로어 이스트 사이드 크리스티 스트리트로 향했다.

이게 뭐라고 한층 어려진 기분이다. 걱정도, 책임질 것도 없는, 조금 무모한 캐릭터가 된 느낌. ‘자, 이제 다음 행선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밤새 약에 취해 광란의 파티를 즐겨볼까?’ 비록 현실은 코앞에 닥친 마감을 앞두고 딸아이의 일주일 치 도시락을 위한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마트로 가고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당당했다. 세상의 중심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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