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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티 우오모에서 만난 스테파노 필라티

2020.02.04

by 송보라

    피티 우오모에서 만난 스테파노 필라티

    “디자이너로서 내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런웨이로 나가기 직전에 모델들이 줄 서 있는 걸 바라볼 때입니다.” 스테파노 필라티는 랜덤 아이덴티티의 2020 F/W 컬렉션 쇼를 선보이는 피렌체의 스타치오네 레오폴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9세기 초 기차역으로 사용된 장소에서, 그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모델들과 사진을 찍었죠.

    필라티는 랜덤 아이덴티티를 통해 과거 프라다와 아르마니, 이브 생 로랑에서 일하던 시절엔 절대 벗어날 수 없었던, 성별과 시즌에 대한 사회와 패션업계의 관습에서 자유를 추구합니다. “랜덤(Random)은 존재의 임의성을, 아이덴티티(Identities)는 그 임의성에 대한 답을 뜻하죠. 두 단어는 사람들이 유행이 아닌 각자의 개성과 역할, 질과 디자인을 통해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독립 선언은 잘 진행되고 있을까요? “환상적입니다.” 밀라노 출신으로 현재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필라티는 명쾌하게 답합니다. “절대 뒤돌아보지 않아요.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죠. 자유의 느낌을 지켜나가는 데 집중하면 됩니다.”

    필라티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꾸뛰르와 결별하고 1년 후인 2017년에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랜덤 아이덴티티를 론칭했습니다. 지금은 도버 스트리트 마켓과 온라인 사이트 센스에서 판매 중이죠. “내 옷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옷은 이미 판매 중이고 어떤 옷은 며칠 혹은 몇 달 후에 판매를 시작하죠. 그리고 일부는 기존 시즌에 맞춰서 선보입니다. 난 그 시즌을 따르지 않지만요.”

    피티 이마지네 우오모에서 선보인 새 컬렉션은 버켄스탁, 중국 스포츠웨어 브랜드 리닝과 협업의 일환인 샌들과 스니커즈도 함께 선보였습니다. 샌들은 1월 10일, 스니커즈는 1월 17일에 판매를 시작하는데요. 샌들은 레오퍼드 프린트와 브로케이드 스타일로 선보입니다. 컬렉션의 대부분을 차지한 꼼꼼하게 재단된 그레이와 블랙 울 수트의 어깨선은 강하게 각지거나 부드럽게 흘렀고, 넉넉한 와이드와 아래를 향해 좁아지는 테이퍼드 팬츠가 번갈아 등장했습니다. 오버사이즈 니트 스웨터와 스카프를 장식한 대담한 기하학무늬는 화이트 셔츠, 체인 장식과 대비를 이뤘죠.

    랜덤 아이덴티티 2020 F/W의 스트라이프 울 수트를 입고 버켄스탁과 협업한 아리조나 샌들을 신은 모델.

    피날레 모델로 쇼 마지막에 직접 등장한 스테파노 필라티.

    “이브 생 로랑에서 일한 후 시대에 상관없이 유효한 걸 만들고 싶었어요.” 필라티는 설명했습니다. “내 목표는 상업적 성공에 대한 압박을 받으며 유행을 정의하는 게 아닙니다. 모두가 언제나 어떤 자리에서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거예요.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각자 ‘나답다’고 느꼈으면 합니다.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가 없어요, 그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면 되니까요.”

    이번 쇼를 위해 3월 20일에 ‘미래적인 포크 뮤직’ 컨셉의 데뷔 앨범 <Fountain>을 발표하는 뮤지션 리라 프라묵(Lyra Pramuk), 댄서 겸 안무가인 MJ 하퍼(MJ Harper), 앨빈 에일리(Alvin Ailey)와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의 댄스 컴퍼니 전 멤버이자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와도 자주 작업하는,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작가 겸 대중 연설가 파티마 자말(Fatima Jamal)도 모델로 런웨이에 섰습니다. 그들 모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죠.

    뮤지션 리라 프라묵.

    댄서 겸 안무가 MJ 하퍼.

    작가 겸 대중 연설가 파티마 자말.

    “젊은이들은 남성복, 여성복 같은 카테고리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성별은 내가 더 이상 고려해야 할 개념이 아니죠.” 필라티는 말을 이었습니다. “이 친구들 덕에 많은 것에 대해 열린 사고를 할 수 있게 됐어요. 빅 브랜드에서 일할 때는 고립되기 쉽지만, 일하지 않을 때는 오히려 고독을 찾고 일과 떨어지고 싶어지거든요.” 그는 랜덤 아이덴티티 작업 과정에 대해 “더 본능적이고, 더 개인적이고, 더 솔직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패션이 지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나는 옷을 입는 방식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패션은 주위 사람들에 대한 존중의 형태죠. 소통의 단계를 세우는 거라고 봅니다.”

      시니어 디지털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Paul Won Jeong, Random Identities, Birkenstock
      Liam Fre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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