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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수많은 볼일

2023.02.20

by VOGUE

    가볍고 수많은 볼일

    백현진은 온전치 못한 것들을 노래하며 아름다움의 사용처를 늘린다.
    그가 내놓은 가볍고 수많은 물건.

    노래할 때 백현진은 몸을 악기처럼 쓴다. 허공에 버튼이 있는 듯 눌러대거나 그냥 몸을 이상하게 흔든다. 음이 높아지거나 소리가 커지면 몸짓도 똑같이 비대해진다. 대단히 불규칙적이지만 뮤트를 하고 쳐다보고 있으면 노래 분위기가 전해지니 춤사위는 사실 대단히 정교한 셈이다. <반성의 시간>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새 앨범 <가볍고 수많은>에서도 백현진의 노래는 온몸에서 흘러나온다. 김오키의 색소폰, 진수영의 피아노, 이태훈의 기타는 자연스럽게 흐르고 그의 음악은 시집에 인쇄된 신명조체처럼 선명하고 또렷하다. 1995년 어어부 프로젝트로 무대에 선 이후 소리를 필요로 하는 건 음악으로 표현하고 그림으로 나와야 할 것은 미술로 표현해온 그가 이 시점에 노래라는 매체로 내놓은 것들이다. 삶과 작업이 최대한 일치하는 존재가 되길 바라며 변화와 변경에 골몰해온 목소리는 죽음, 침묵, 연민, 관계 같은 보편적이고 복잡한 정서를 노래한다. 완성도와 별개로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백현진의 음악은 여전히 그저 흘려듣기 힘들다. 한국의 공기 속에서 한국말이 선명하게 담긴 그의 노래는 감정을 이성적으로 보게 하는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의 감각을 활발하게 지피는 거칠고 고요한 노래다. 마흔 후반인 백현진은 더 이상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운드를 만들지 않는다. 세상에 동요를 일으키는 음악을 한다.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에서 개장수 역할을 맡은 후 배우로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겠다. 얼마 전 영화 촬영이 끝났다고 들었다. 조진웅, 최우식 주연의 영화 <경관의 피>에 특별 출연처럼 잠깐 나온다. 사채업자 중에서도 돈을 크게 만지는 사람인데, 마약도 하고 그런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는 고아성, 이솜, 박혜수가 주인공인데 재벌 2세 상무 역할이다.

    오랜만에 돈 많은 역할을 맡았다. 어떤 연기가 더 편했나. 둘 다 괜찮다. 더 편하고 그런 건 없다. 영화 <경주>에서 지방대 꼰대 교수로 나온 뒤 상업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락이 왔다. 그때 진짜 지방대 교수 섭외해 찍었냐는 소리 들었으니까(웃음).

    연기 활동은 미술가, 음악가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화가로 매일 철저히 혼자 일하고 음악 작업 역시 합주할 때를 제외하고는 혼자 일한다. 그러다 촬영 현장에 나가 연기자로 일하면 일시적 소속감을 잠깐 맛본다. 계속 혼자 일하다 보니 균형상 괜찮게 느껴진다.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림 그리거나 소리를 다루는 것만큼 맛은 못 봤지만 재미있는 일인 것 같다.

    2018년 한 해 동안 공연 횟수가 가장 많았다. 90년대에 어어부 프로젝트로 홍대 인디 신에서 이글이글하던 청년 시절보다 더 많이 했다. 사실 공연을 매우 좋아하는데 많이 못하게 돼 좀 답답했다. 방백의 경우에는 정식 멤버가 여덟 명까지 늘어 일정 조율이 쉽지 않았다. 연주자들도 동네 사는 사람들로 단출하게 꾸리면 공연에 기동성이 좋아질 것 같았다. 그리하여 김오키, 이태훈, 진수영과 인연이 돼 주야장천 공연했다.

    연주자들과 합이 좋다고 생각했다. 김오키, 이태훈, 진수영은 어떤 파트너인가. 서로들 재미있다. 존중하는 뮤지션들이고 굉장한 연주자들이라 사실 그냥 쓱쓱 한다. 내가 노래를 멋대로 부른다. 메트로놈에 맞춰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호흡도 아니고 그때그때 변수가 많은 상태에서 노래하기에 함께 연주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내 노래를 다 받아주고 자기들도 멋대로 하면서 나를 끌고 가고 끌어주기도 한다.

    연기로 비유하자면 어떤 애드리브도 다 받아주는 상대 배우를 만난 셈이다. 연기도 섭외가 들어오면 처음에 감독에게 전한다. 스크립트대로 못한다고. 그걸 원하시면 저와 일하면 안 된다고. 일을 대하는 내 태도의 디폴트다. 연기할 때건 그림 그릴 때건 소리를 다룰 때건 마찬가지다.

    순간순간 감정이 다르기 때문인가. 기후에 따라 사람 감정이 바뀌듯, 우리 몸도 실시간 변한다. 변하는 만큼 하는 거다. 나는 악보를 보는 데도 전혀 흥미가 없다. 건반 치는 수영이나 기타 치는 태훈이는 아카데믹하게 공부한 사람들이다. 수영이의 경우 오케스트레이션 편곡도 혼자 가능한데 나 같은 사람이나 김오키처럼 거리 출신들을 만나 완전히 열어놓고 연주한다.

    홍대에서 음반을 작업했다. 당신이 느끼는 홍대 노하우란 무엇인가. 홍대 노하우의 결과물이 이 앨범인 것 같다.

    듣는 내내 다른 지역은 떠오르지 않았다. 서울의 어떤 곳이었다. 뉴욕 같고 싶지도 않고 런던 같고 싶지도 않고 딱 서울 같기를 바랐다.

    지금 홍대는 음악 하기에 어떤 환경인가. 옛날 홍대가 그립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보다 지금 훨씬 다양한 음악이 있다. 이만큼 다양해진 게 좋고 다양해진 것 자체로도 큰 변화다. 그 변화를 지지한다. 나 같은 사람도 있고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도 있고 김오키도, 까데호도 있다.

    이번 앨범을 들으며 뭔가 계속 덜어내고자 한 게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림도 덜 그리는 쪽으로 바뀌었는데 사람이 그렇게 바뀐 것 같다. 덜어낸 무엇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아졌다. 뭘 덜어내고 싶다는 욕망에 집중할 뿐 덜어내서 어떤 물건이 되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해봐야 아는 거니까. 오히려 작업 끝내놓고 잠깐 생각하는데, 하다가 만다. 나는 늘 현재 새로운 일에 집중한다.

    이 노래를 만들 당시 어떤 상태였나. 마음이 정말 좋지 않던 시기도 있었다. 되게 차분한 상태에서 나온 곡도 있고 즐겁게 합주하다가 쓱 나온 곡도 있다. 여러 조건과 상황에서 나왔다.

    단편영화 같은 일상이 그려지는데 매일 당신이 마주하는 풍경은 어떤 모습인가. 작업실은 정말 엉망진창이고 집은 최근에 많이 정리했다. 원래 집도 엉망이었는데 최근 몇 달 사이에 정리했다. 다시 얘기하면 집과 음악 작업실과 사는 공간은 내 수준에서 잘 정리돼 있고 미술 작업실은 완전히 엉망진창인데 이렇게 균형이 잡히니 속이 좀 편하다. 집에는 식물이 많다.

    식물의 어떤 점이 좋나. 어릴 때 소피 마르소 책받침 사진 보고 있으면 한없이 좋았던 것처럼 지금은 식물을 보고 있으면 아주 좋다.

    많은 것을 덜어낸 반면 신시사이저가 중요한 사운드로 자리한다. 가장 인공적인 소리가 인간 본연의 목소리와 함께 사용됐다. 5년 전에 2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던 시간에 신시사이저를 공부했다. 그 경험과 기술을 이번 앨범에 적극 사용했다. 나는 소리 합성을 매우 좋아한다. 이 앨범에 담긴 곡은 작곡 자체가 헐렁헐렁한 구조다. 앨범 중간중간 많이 비어 있어서 헤드셋이나 이어폰으로 듣다 보면 차 소리, 옆 사람 얘기 소리, 지하철에서 ‘다음 역은 어디입니다’ 방송도 다 들릴 것이다. 도시에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소리와 내 음악이 한 덩어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큰 목표는 아니었지만 여러 생각 중에 있었다.

    죽음, 상실이 느껴지는 곡도 있다. 내 나이가 되면 문상 갈 일이 많아진다. 주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꽤 생긴다. 리투아니아가 치고 들어와 OECD 자살률 1, 2위를 다투지만 한국의 자살률은 압도적이다. 자살은 이곳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고 이번에 그저 이 정도가 담긴 것 같다.

    개인적으로 슬픈, 비참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바쁜 일상으로 외면하곤 하는데 당신의 노래는 힘든 감정을 상기시킨다. 그런 감정을 인정하고 다독이면서 가는 게 괜찮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한국은 젊은이들과 65세 이상 노인들이 스스로 꽤 많이 죽는다. ‘늦여름’ 비디오에 출연한 학생도 얼마 전 죽었다. 작업으로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려는 마음은 없다. 세상이 끔찍하다는 말을 굳이 하려는 마음도 없다. 그런 마음이었다면 음악도 조용하고 평화롭게 연주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많이 벌어지는 일을 어떤 식으로든 기록하고 싶었나 보다. 청년 시절 어어부 프로젝트 때는 ‘다 엿 먹어라. 어디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녀. 세상이 이 모양인데’ 하는 마음이 있긴 했다.

    당시와 지금이 뮤지션으로서 어떻게 다른가. 더 성장했다고 얘기할 수 없다. 그때보다 확실히 많이 변했는데 그때보다 확실히 덜 무리하며 일한다. 그때는 가사 쓰고 곡 만들 때 엄청 무리했다. 치기 어린 와중에 뭔가 미덕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제법 안정적인 상태에서 즐겁게 일하는데 기성세대의 기득권, 꼰대 같은 면도 있을 거다. 뭐가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없다.

    당시 노래를 공연할 때 부르기도 하나. 부르지 않게 된다. 나 역시 노래를 부르며 가사를 바로 듣게 되니 내 몸에 맞지 않는 느낌이 들면 불편하다. 예전 노래에 대해서는 그냥 ‘젊은 청년이 되게 수고했구나’ 여긴다.

    마흔 후반인 지금, 사람들이 그토록 얻고자 하는 안정감도 느끼나. 식물을 보면 안정감이 느껴진다. 예전에는 ‘브루클린도 가봐야지’, ‘캠던 가서 에이미 와인하우스 사는 데도 구경해봐야지’ 하는 욕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공기 좋은 지역이면 어디든 좋다. 세상이 너무 복잡할 때는 나 역시 그 흐름에 동요되기도 하지만 곧 내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기득권의 민낯을 봤을 때 만약 청년이었다면 부글부글 끓는 감정에서 못 헤어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나 포함해 나이 먹은 사람들은 다 죽어야 돼’ 같은 생각을 하다가도 ‘그래도 일해야지, 생활해야지’ 스위치가 운용이 된다. 산책할 때든 작업할 때든 어떤 상태든 더 무리가 없는 상태로 가보고 싶다.

    무해한 존재를 지향하는 건가. 나만 해도 일종의 기득권층이니 무해할 수 없다. 아직 월세 살지만 그래도 운 좋게도 먹고 싶은 거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하기 싫은 거 거의 안 하고, 하고 싶은 거만 하며 살게 됐다. 날이 서 있는 어떤 청년한테 나는 딱 기득권층이다. 내가 아무리 민폐를 안 끼치려고 해도 존재 자체가 사람들한테 해가 될 수 있음을 잘 안다. 그러니까 스스로 환기하면서 더 조용조용 살아야 할 것이다.

    분노와 농담의 힘으로 청년기를 통과한 당신은 중·장년기를 어떻게 통과하는 중인가. 그저 작업량을 더 늘리고 싶다 정도다. 더 단순해졌다.

    즉흥적이고 직관적으로 작업하고 있는데 자극을 주거나 환기를 위해 애쓰는 것도 있나. 작업을 많이 하고 싶다는 욕망과 다짐은 있는데 무슨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씩 나이를 먹으며 온전치 못한 어떤 것들을 꾸준히 기록해야겠다 정도는 생겼다. 연기할 때 말도 씹고 비문도 막 말하는 건 사람들이 스크립트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림도 딱 떨어지기보다 언어나 논리로 해석이 안 되는 어떤 요소도 빼곡히 기록하고 싶은 큰 방향은 뭉게뭉게 있다. 일단 최대한 작정을 안 한 상태에서 한다는 게 오히려 규칙이다.

    손으로는 붓질하고 입으로는 흥얼거리며 곡을 만든다. 그림과 노래를 연결할 수 있나. 무드가 연결되어 있을 것 같다. 방향은 세계를 대하는 태도이므로 그 사람이 어떤 매체를 사용하든 유지된다. 한편 음악과 그림은 별개인 것 같다. 음악으로 할 수 있는 건 굳이 그림으로 그리지 않으니 확실히 다른 일을 보고 있다. 언어로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동영상으로 찍지 않고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그림으로 그리지 않는 훈련은 많이 했다. 큰 방향 안에서 모두 단단하게 링크가 엮여 있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예술을 위해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규모를 키우지 않는 것이다. 작업실을 큰 데로 옮길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규모를 키우다가 삐끗하면 무리가 생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도약하기 위해 크게 베팅도 하고 시스템도 바꾸는데 나는 그쪽으로 겁도 많고 안 믿는다.

    육체적 건강은 어떻게 챙기나. 여전히 우렁찬 성량에 감탄하는 팬들이 많다. 걷는 거 하나다. 가능하면 매일 걷는다. 제일 못 걸을 때가 한 달에 30만 보가 좀 안 되고 이번 달에 좀 걸었네, 하면 40만~50만 보쯤 된다.

    괜찮은 하루, 괜찮은 삶에 대해 묻고 싶다. 매일매일이 다 괜찮다. 공기만 좋다면.

    괜찮음은 평범함인가. 아마도. 괜찮아서가 아니고 괜찮다고 치는 것 같다. 심리적으로 좋지 않을 때도 사람이 이런 상태도 있고 이런 시즌도 있으니 다 괜찮다고 친다. 온전치 못하다고 ‘말 되어지는’ 것들 중에 얼마나 아름다운 게 빼곡한지 제법 알고 있다. 예전에는 아름다움이란 낱말을 거의 안 썼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개념도 비어 있는 것이니 내 식으로 그냥 사용하면 되겠구나 싶다. 그러다 보면 내 작업을 팔로우하는 사람들은 ‘저런 걸 아름답다고 볼 수도 있구나’ 느낄 수도 있을 거고, 그렇다면 나도 마음이 좋을 것 같다. 온전치 못하다고 ‘말 되어지는’ 것들을 예쁘게 볼 수 있다면 즐겁고 예쁜 게 천지다. 입으로 떠들어봤자 문장의 해상도가 그 뜻을 전하지 못할 테니 작업을 통해 꾸준히 기록을 남기겠다.

    아티스트는 아름다움의 사용처를 늘리는 존재다. 나도 다른 아티스트를 통해 그 덕을 많이 봤다. 어느 날 갑자기 혼자 깨달은 게 전혀 아니고 수많은 다른 사람이 해놓은 무언가를 보고 듣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어쨌든, 예술가로서 묵묵히 일하며 살아가겠다.

      피처 디렉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김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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