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MEGXIT: 영국 왕실에서 탈퇴한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2020.02.04

by 송보라

    MEGXIT: 영국 왕실에서 탈퇴한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삶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건 모두 예상한 일이죠. 하지만 현실은 훨씬 가혹했습니다. 지난해 9월, 영국 ITV 채널은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아프리카로 로열 투어를 떠난 서식스 공작 부부를 따라붙었습니다. 그리고 마클은 카메라 앞에서 아주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죠. “절대 쉬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공정할 거라고 믿었어요. 그 부분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영국 타블로이드지가 그녀의 삶을 망칠 거라는 지인들의 말을 듣지 않은 걸 후회했죠. “모든 게 복잡해지고 있어요.” 해리 왕자도 윌리엄 왕자와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인정했습니다. “분명하게 서로 다른 노선을 택하는 순간이 있었죠. 우리가 서로를 예전처럼 대하지 못하는 건 사실입니다. 각자 바쁘기도 하지만 그래도 형을 사랑해요.”

    언젠간 ‘큰 게’ 터질 거라는 것 역시 모두 잘 알고 있었죠. 지난 8일, 서식스 공작 부부는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통해 “영국 왕실의 고위직에서 내려오겠다”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그 파급력과 충격은 브렉시트 못지않아서, 영국 언론은 이 사건을 메그시트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사전 통보 없이 케임브리지 공작 부인인 케이트 미들턴의 생일 전날 터트린 기습 발표에 영국 왕실은 일제히 멘붕에 빠졌습니다. 해리 왕자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미리 알리지 않아서 할머니를 당황하게 만든 데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끼긴 했지만요.

    그리고 순식간에 온갖 이야기가 불거졌습니다. 부부의 지인들은 부부가 왕실을 공격할 수도 있을 거라고 염려를 표했고요. 서식스 공작 부부와 친분이 있는 저널리스트 톰 브래드비(Tom Bradby)는 영국 왕실이 소외된 젊은 부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두려워해야 할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인터뷰 전문이 나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가고도 남아요. 확실한 건 절대 모양새가 좋지 않을 거라는 거죠.” <런던 타임스>는 왕실이 서식스 공작 부인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왕실 사람들에게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붙일까 봐 걱정한다고요. 브래드비에 의하면 여왕 부부를 제외한 다른 왕실 멤버들은 서식스 공작 부부에게 “질투가 많고 불친절”했다는군요. 젊은 부부는 지옥 같은 곳에서 자신들의 기를 죽이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3일, 버킹엄 궁에서 서밋이 열렸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 찰스 왕세자, 윌리엄과 해리 왕자 외 왕실 주요 인물이 모였죠. ‘굳이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메건 마클은 캐나다에서 전화를 통해 합류했습니다. 그녀는 아들 아치와 함께 캐나다 밴쿠버에 머물고 있는 상태. 서밋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차분한 분위기에서 빠르게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젊은 부부의 새로운 삶을 지지하겠다는 영국 왕실의 공식 발표가 있었으니까요. 일부에서는 서열 6위로 왕위에 오를 확률이 희박한 해리 왕자의 거처를 결정하는 데 이렇게까지 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어쨌든 목표 달성입니다.

    왕족의 지위를 내려놓다니, 어마어마한 판단 착오라는 게 영국 내의 주된 의견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영국 국민의 세금에 기대어 살지 않겠다는 젊은 부부의 의지를 지지하는 쪽도 만만치 않죠. 그래서 이제 이들은 왕족에서 평민이 되는 걸까요?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그들이 원하던 대로 왕족의 지위와 의무에서는 벗어나게 됩니다. 과거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경우처럼 서식스 공작 부부라는 공식 직함은 계속 유지될 거라는 예상인데요. 그렇다면 몇 가지 의문점이 남습니다.

    부부는 캐나다와 영국을 오가며 생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영국에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윈저 성 인근 프로그모어 코티지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했는데요. 하지만 일부에서는 당시 왕족이었던 둘을 위해 영국의 세금으로 3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집 수리 비용을 댔으니 이제 수리 비용을 뱉어내고 집세도 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리가 있어요. 더 이상 왕족이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이제 직접 돈도 벌어야겠네요. 여태껏 이들은 대부분을 아버지인 찰스 왕세자의 개인 수익처인 콘월 가문의 토지 수익에 기대어 살아왔습니다. 만약 찰스 왕세자가 둘째 아들의 지원을 끊는다면? 혹은 찰스 왕세자가 왕이 됐을 때 콘월 가문 자산을 물려받은 윌리엄 왕자가 해리 왕자에게 지원을 끊는다면 어떻게 하나요?

    하지만 해리 왕자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수백만 달러를 물려받았고 마클도 드라마 <슈츠>를 통해 수백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당장은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게다가 오프라 윈프리는 부부에게 스스로를 브랜드화해서 수익을 창출해보라는 팁을 줬고요. 여태껏 자선 기금 마련을 위해서만 활동하던 이들이 그 인지도를 가지고 사적 이득을 취하는 게 적절한지는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문제지만요.

    이들이 해외에 있을 때 안전과 보호를 위한 비용은 누가 지불해야 할까요? 영국 밖이라면 더욱 만만치 않은 비용일 겁니다. 예비 내각 외무장관 에밀리 손베리는 “영국 납세자들이 부부와 가족의 안전을 비용을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영국의 전 총리들이 총리직에서 내려왔지만 국가에서 계속 그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과 동일한 논리입니다.

    이제 세금도 내야겠죠? 여기서 좀 복잡해지는데요. 영국 국적인 해리 왕자와 미국 국적인 메건 마클은 영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캐나다의 납세 시스템은 183일 이상 캐나다에 머무는 사람은 전 세계 어디에서 발생하든 수익에 대한 세금을 캐나다에 납부해야 합니다. 마클은 미국 시민으로서 어디서 살든 미국에 세금을 내야 하고요. 캐나다에서 머무는 기간을 조절하지 않으면 부부는 수익에 대해 각자 두 나라에 이중으로 세금을 내야 할 겁니다.

      시니어 디지털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AP Press,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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