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환경주의자 vs 이죽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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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환경주의자 vs 이죽이들

2020-01-21T16:51:36+00:00 2020.01.23|

환경 운동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 중 무엇이 환경에 덜 해로울까. 이들을 비판하는 대신 실천의 범위를 늘려가며 해답을 찾기로 했다.

PLASTIC DETOX
우리는 한쪽으로는 지구를 해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자잘한 친환경 행위를 실천하는 걸로 자족한다.
호텔 방 에어컨은 24시간 내내 켜두면서 플라스틱 빨대 쓰지 말라고 열 내는 건 이중적이지 않나.

2020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만찬은 비건식이었다. 기후변화에 관심을 촉구하는 이벤트였다. 이상고온과 가뭄으로 호주 산불이 몇 달째 계속되면서 동물 10억 마리가 죽고 기후학자들은 대재앙의 전주곡이라 진단한다. 공장식 축산은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메탄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되기 때문에 비건 만찬은 시의적절한 이벤트였다.

지난해 11월 전 세계 과학자 1만1,000명이 지구 기후가 비상사태라는 시국 선언을 내놓았는데, 그들이 거론한 대책에도 “육식보다는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할 것”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 이벤트에 초를 친 건 다름 아닌 오프닝 사회자 리키 저베이스였다. 골든글로브 사회를 다섯 번째 맡은 코미디언 저베이스는 시상식 사전 인터뷰에서 이죽거렸다. “800명이 모여 지구를 구한다니 좋은 생각이에요. 각자 리무진을 타고 도착해 채소를 먹으며 말이죠.” 저베이스는 이어진 오프닝 연설에서도 ‘나는 위선자가 싫고 나한테 일을 준 사람들한테 굽신대지도 않으며 상대가 그 어떤 파워 맨일지라도 기죽지 않고 욕할 수 있다’라는 태도를 유지했다. 성범죄 수사 중 사망한 제프리 엡스타인과 함께 난잡한 파티를 즐겼으리라 추정되는 할리우드 스타들, 10대 성 매수 의혹이 불거진 앤드루 왕자, 마블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고 욕했다가 입방아에 오른 마틴 스콜세지, 어린 모델만 사귀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희대의 망작 <캣츠>에 출연한 주디 덴치 등을 두루 조롱하던 그는 이렇게 연설을 끝맺었다. “만일 오늘 밤 당신이 상을 타면 그걸 정치적 발언 기회로 활용하지 마라. 당신들은 대중에게 뭘 가르칠 입장이 아니다. 당신들은 현실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당신들 대부분은 그레타 툰베리보다 가방끈이 짧다. 그러니까 그냥 에이전트랑 당신이 믿는 신에게나 감사하고 꺼져라, 알겠나?”

공로상을 받은 톰 행크스는 그의 연설 내내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거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베이스는 원래 문화 예술 엘리트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고발하는 아웃사이더 저항가로 유명하지만 정작 그의 연설에 영감을 받은 건 ‘인간은 모두 더럽기 때문에 깨끗한 척하는 건 위선이고 나는 위선자를 보면 속이 뒤틀린다’는 마인드의 전형적 ‘혐오자들’이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뉴스에는 ‘속이 다 시원하다. 뭣도 모르면서 대중 선동하는 한국 연예인 누구누구가 새겨들어야 한다’는 유의 댓글이 신나게 달렸다. 저베이스가 동물권 옹호 발언으로 상까지 받은 채식주의자고, 게이 인권과 동성 결혼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 “너부터 꺼져!”라고 소리칠 사람들이 말이다.

골든글로브 소동은 내게 202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영감을 제공했다. 원래 나는 <보그> 2월호에 낭만적 환경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칼럼을 쓸 계획이었다. 알잖나, 마트 플라스틱 봉지에 반대하면서 보헤미안 의류는 집이 미어지게 사들이는 히피들, 하이브리드 차를 타고 아침저녁으로 조깅을 하면서도 짧은 도보 이동은 거부하는 게으름뱅이, 에코 브랜드랍시고 프로모션 물품을 잔뜩 만들어 뿌리는 회사, 유기농 비건 화장품에 관심 있다면서 해외 직구는 꺼리지 않는 소비자,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면서 호텔 에어컨은 펑펑 트는 여행자들, 에코백과 텀블러를 패션 아이템처럼 수집하는 이들… 다시 말해 개인 리무진 타고 탄소 배출 잔뜩 하면서 채소 쪼가리 좀 먹는 걸로 환경 운동에 한마디 거들 자격이 있는 줄 아는 모순덩어리 같은 부류 말이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실제 텀블러로 일회용 종이컵보다 나은 환경보호 효과를 누리려면 제품 하나를 마르고 닳도록 써야 한다. 연구 기관마다 말이 다르긴 한데 최소 20번 이상이다. 플라스틱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면 인간들이 죽기 전에 각자 가진 텀블러를 모두 씹어 먹고 관에 들어가야 할 판이다. 덴마크 정부는 일반 면 에코백 7,100번, 유기농 면 에코백은 2만 번 써야 비닐봉지 대체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럼 ‘차라리 비닐봉지를 쓰자!’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게, 역시나 해양 생태계에는 비닐봉지가 가장 나쁘다. 인류의 안전을 위해 원자력을 포기하고 풍력, 태양열 등 천연 에너지를 쓰자는 주장은 얼핏 타당하게 들리지만 당장 화석연료 없이 친환경 발전만으로 인류의 에너지 소비량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니 호텔에서 에어컨 펑펑 틀면서 원자력에 반대한다는 낭만적인 헛소리나 하는 어설픈 환경론자들을 보면 속이 터진다. 그리 따지다 보면 결국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민폐다. 얼마 전 아마존 AI 알렉사가 망발을 해서 외신에 보도된 적 있다. 영국 사용자가 심장박동에 대해 질문하자 알렉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심장박동은 당신이 살아서 인구 과잉에 이를 때까지 꾸준히 천연자원을 소모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우리 지구에 매우 나쁘다. 그러니 심장박동은 좋은 일이 아니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당신 스스로 심장을 찔러서 죽어라.” 아마존 대변인은 알렉사가 위키피디아를 읽은 것뿐이라고 했다. 아직 기계들의 반란이 시작된 건 아니라는 소리지만 어쨌든, 알렉사가 한 말이 그리 틀리진 않았다. 다만 이 똑똑이 AI가 간과한 중요한 사실 중 이런 게 있다. 인터넷이니 스트리밍이니 하는 것도 그리 친환경은 아니라는 거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음악 한 곡을 20번 스트리밍하는 데 CD 하나를 제작, 운송하는 것보다 많은 에너지가, HD 영상을 한 번 스트리밍하는 데 DVD 하나를 제작, 운송하는 것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니 인간과 같이 죽자, 알렉사, 이 요망한 것아.

TUMBLER PARADOX
실제 텀블러로 일회용 종이컵보다 나은 환경보호 효과를 누리려면 제품 하나를 마르고 닳도록 써야 한다. 당신의 찬장 속에 먼지로 덮여 있는 텀블러는 몇 개인가?

인간은 살아서 숨만 쉬어도 지구에 민폐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자연스레 냉소의 늪을 맞닥뜨린다. 어차피 우린 다 죽을 건데 모든 게 부질없지 않나. 한쪽으로는 (살아 있으니 당연히) 지구를 해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자잘한 친환경 행위를 실천하는 걸로 자족하는 인간을 마주치면 화가 난다. 심지어 그 인간들이 그걸로 유세라도 떨면 단전에서부터 미움이 솟구친다. 이건 내 얘기다. 나는 동남아 관광지에 살기 때문에 유럽이나 북미 사람들이 비행기 타고 여행 와서 시장 상인들에게 “비닐봉지 쓰지 마라”, “플라스틱 빨대 쓰지 마라” 잔뜩 열 내면서 교육하는 꼴을 수시로 본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이 돌아갔을 때 호텔 방이 시원하길 바라서 에어컨은 늘 빵빵하게 켜두고, 오래 쓰지도 못할 토속 공예품이니 옷 쪼가리니 액세서리를 바리바리 사들인다.

미국 가정은 평균 30만 개의 물건을 소유한다는데 여기 사람들은 몇 개나 될 것 같나? 그 10분의 1도 안 될 거다. 전 세계 어린이의 3.7%밖에 안 되는 미국 어린이들이 전 세계 장난감의 47%를 소유하는 게 현실이다. 나는 이런 얘기를 실제로 유럽 친구에게 한 적 있다. 정작 지구에 해로운 건 자신들이면서 개도국, 후진국만 가면 가르치려 드는 거, 그것도 인종차별이고 선진국의 후발 주자 견제용 사다리 걷어차기일 수 있다. 그러니까 잔소리는 집에 가서 당신 이웃들한테나 하고, 투표나 똑바로 하란 말이다!

하지만 정초부터 ‘댓망진창’이 된 골든글로브 뉴스를 읽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적어도 이런 유의 히스테리보다는 자잘한 친환경 행위를 실천하면서 자족하는 편이 지구에 이롭겠다 싶어진 것이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려 했던가.

남들이 좋은 일을 할 때 허점을 찾아내고 비판하고 이죽거리는 건 쉬운 일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완벽한 인생도 없으니까. “너도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으면서 왜 깨끗한 척해?”라는 건 정치, 노동, 여성, 환경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무언가를 좋은 방향으로 바꿔보려는 사람들이 늘 맞닥뜨리는 반응이다. 나는 최근 “그레타 툰베리는 재수 없어. 너무 나대잖아”라는 말도 현실에서 들었다. 올해 1월 노르웨이 최고기온은 19도였다. 위기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북유럽 청소년들은 망설일 시간도 없거니와 나대는 것이야말로 운동가의 할 일인데 어쩌란 말인가. 인간이 아무리 존재 자체로 민폐라지만 적어도 열일곱 살짜리의 커리어를 질투하고 헐뜯는 것보다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누구나 할 수 있을 거다.

조바심은 좌절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세상을 가장 걱정하는 사람들이 가장 냉소적으로 굴 때가 있다는 소리다. 코미디언 저베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냉소로는 무엇도 바꿀 수 없다. 방구석에 앉아 타인을 조롱하는 것으로 연약한 자아를 간신히 지탱하는 부류에게 먹잇감이나 제공하는 꼴이 안 되면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포함한) 순진하고 낭만적이고 불완전한 환경주의자들을 비판하거나 자조하는 대신 서로 선동하고 격려하고 실천의 범위를 늘려가면서 해답을 찾는 한 해를 보내자고, 마침내 결심하게 되었다.

최근 배우 제인 폰다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앞으로 옷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더 이상 기술을 믿어서는 안 되고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말한다. 환경에 좋다는 무언가를 사는 것보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편이 지구를 위하는 길이라고. 반세기 동안 리무진을 타고 촬영장과 레드 카펫을 활보하며 보낸 어느 스타의 발언 덕분에 그래도 우리 같은 대중이 한 번 더 이 문제를 생각하게 되지 않나.

나는 제인 폰다처럼 당장 쇼핑을 끊지는 못하겠다. 또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잘못은 끊임없이 저지르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분명 있을 거라고 믿는다. 체념하고 좌절하고 이죽거리는 것보다는 그런 일을 하나라도 해내는 게 낫다고, 비록 코알라는 불타고 있지만, 올해는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