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과일은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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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과일은 누가 다 먹었을까

2020-01-21T15:38:38+00:00 2020.01.28|

맵고 짠 음식과 자극적 ‘먹방’으로 점철된 최악의 재난 상황. 신선 식품의 부재가 당신과 나의 건강을 위협한다.

“음, 감자군요!” 스타 셰프 제이미 올리버가 미국의 어느 초등학생에게 탐스럽게 익은 토마토를 보여주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10년 전, 미국은 신선한 식재료를 먹지 못하는 인구를 2,350만 명으로 추산했다. 그 여파로 다섯 명 중 한 명이 잘못된 식습관에서 비롯된 질병으로 사망한다. 한반도에는 그저 먼 나라 얘기일까? 이웃 나라 일본의 농림수산정책연구소에서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신선 식품 구입에 불편을 겪는 인구는 약 4,600만 명, 총인구의 36.2% 수준이다. 이미 식품 사막을 경험한 선진국은 사회 저소득층에게 닥친 복지 문제로 이를 밀착 관리했다. 그럼에도 슬픈 사실이 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 평가에서 한국의 전 연령 중 20대가 가장 질 낮은 식생활을 영위한다는 것. 주요 원인은? 생과일 섭취 부족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심장 질환, 암, 당뇨, 비만 등 만성 질환 예방을 위해 권고한 과채류 일일 권장량은 400g. 과일과 채소는 밥, 반찬 위주의 식단으로 채워지지 않는 칼륨과 식이섬유, 비타민 C, 엽산 함유량을 채워 균형 잡힌 영양 섭취를 돕는 일등 공신이다. 매일 과채류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 암 발생률과 각종 만성 질환과 조기 사망률이 낮아진다는 노르웨이 공중보건청의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한국 성인 남자들의 과일 섭취 실태는 권장량의 3분의 1 수준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식품 산업 전문가들이 젊은 세대의 신선 신품 섭취 현황에 눈을 돌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마지막으로 먹은 과일이 뭔가요?” 팟캐스트 ‘채식을 부탁해’ 박은주 PD의 ‘뼈 때리는’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21세기는 과일이 ‘없어서 못 먹는’ 현대인과 ‘있어도 먹지 않는’ 현대인으로 나뉜다고 말한다.

“얼마 전 역삼동 근처로 미팅을 가던 중 귤이라도 사갈까 싶어 과일 가게를 찾았어요. 인터넷 검색창에 아무리 뒤져도 주스 전문점만 나올 뿐 생과일을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죠. 강남은 상업 시설로 꽉 차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대로변 빌딩 숲만 조금 벗어나면 1인 가구가 밀집한 ‘원룸촌’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신선한 과일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덧붙인다. “삼성동 일대, 영동대로 주변의 강남 상업 지구를 비롯해 여의도, 종로에도 보이지 않는 과일 사막이 존재해요.”

과일을 쉽게 구할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까? 얼마 전 10대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래퍼 기리보이가 SNS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이 화제다. 그동안 이용한 배달 대행 업체 비용은 무려 ‘16,901,660원’. 자극적인 메뉴가 즐비한 ‘배달 애플리케이션’과 앉은자리에서 햄버거 10개쯤은 식은 죽 먹기인 스타 유튜버의 ‘먹방’, ‘고칼로리는 무조건 옳다’며 육식을 찬양하는 맛집 소개 프로그램 등 푸드 포르노가 일상이 된 요즘 젊은이들에게 과일은 향기 없는 꽃이다.

지난해 11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0년 외식 키워드로 ‘편리미엄’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등장했다. 편의성이 보장된다면 기꺼이 투자하겠다는 소비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다. 대형 마트보다 편의점과 온라인 소비 플랫폼을 애용하는 현대인은 일상이 ‘편리미엄’이다. “맵고 짠 음식에 익숙해진 혀가 과일의 참맛을 느끼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사과가 참 달다’고 깨우친 순간 과일의 소중함을 느꼈죠. 처음에는 동네 슈퍼나 대형 마트에서 구입했는데 지금은 온라인 마켓을 자주 이용해요. 간편한 건 두말할 필요 없고 산지 직송 과일을 한 박스 주문하면 중간 유통망이 줄어 비용 측면에서도 경제적이죠.” 1인 가구의 작은 냉장고는 사과 다섯 알만 넣어도 꽉 찬다는 푸념에 작가 황민연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덧붙였다. “하루 한 끼를 과일식으로 대체해보세요. 신선한 과일은 함께 섭취하는 다른 영양 성분의 체내 흡수를 돕기 때문에 종합 비타민을 챙겨 먹지 않아도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빠르게 충전할 수 있죠.”

기분 좋은 움직임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다. 쉽게 구할 수 있으나 신선도가 떨어지고 가격이 비싸 또 다른 ‘과일 사막’의 단상으로 비치던 편의점의 변화다. ‘CU’는 매월 지역 농가의 제철 과일을 선보이는 ‘이달의 과일’ 서비스로 참외, 복숭아, 단감 등을 매장에 들이며 편의점 과일의 대명사인 사과와 바나나의 지분을 점차 줄여나갔다. 지난해 10월에는 바나나 한 송이, 사과 다섯 알처럼 대형 마트에서 보일 법한 묶음 판매를 시작했는데 고품질 대비 저비용으로 입소문을 타며 ‘한컵 과일’ 매출을 뛰어넘었다. 비록 인구 밀집도가 높은 일부 매장에서 한정 시행한 프로젝트성 이벤트였지만 젊은 세대의 긍정적 반응에 힘입어 서비스는 더 확대될 예정이다.

“사회생활 2년 차에 접어든 친구가 야근 도중 복통으로 병원에 실려갔어요. 그 길로 위암 선고를 받고 1년 뒤 세상을 떠났죠. 어느 날 그 친구의 SNS 계정에 들어갔는데, 그동안 올린 사진이라곤 사무실 책상에 올려진 삼각김밥, 오렌지 주스, 컵라면이 전부였죠. ‘오늘도 힘내자’는 문구와 함께.” 박은주 PD가 속 얘기를 털어놨다. 2030세대 암 환자 증가의 저변엔 불균형 식습관이 자리한다. 과일로 대표되는 신선 식품 섭취 부족 문제는 스스로 식사를 마련해야 하는 1인 가구는 물론 손수 지은 따끈따끈한 밥상을 마주하는 신혼부부에게도 통용되는 이야기. 설탕, 나트륨, 방부제, 화학 색소 및 향료에 길든 저질 입맛이 당신의 건강을 위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