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봉준호의 불안

2020.02.27

by VOGUE

    봉준호의 불안

    지구를 휘저은 <기생충>이 마침내 아카데미 시상식에 도착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4관왕에 올랐다.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 사이, ‘지미 팰런 쇼’ 출연을 앞두고 만난 봉준호는 “정말, 정말 무서워요”라고 말했다.

    14년 전, 괴수가 칸을 점령했다. <괴물>이라는 한국 영화는 ‘감독의 밤’으로 알려진 번외 행사에서 상영되었다. 예상하다시피, 한 남자가 육식성 바다 괴물의 손아귀에서 딸을 구하려는 영화가 초청된 걸 알고 나이 든 칸 영화인들은 경악했으나, 영화를 보려고 기다리는 줄은 어마어마해 크루아제트 도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괴물이 나오지 않는 이전 영화부터 감독의 팬이기에 그 줄에 합류했다. 이 관객들에게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일반적인 영화광뿐 아니라 흥분한 주부들도 그 줄에 서 있었다. 비평가이자 관객으로 축제에 참석한 10년간, 영화를 보며 그와 같은 자연스러운 환호성과 자발적 기립 박수는 본 적 없었다. 대놓고 공포 영화를 만든다고 밝힌, 영어권 팬들에게 이미 ‘봉’이라고 알려진 키 크고 소심해 보이는 감독마저 그곳에서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사람처럼 보였다.

    14년의 테이프를 앞으로 감아보자. 2019년 칸에서 봉 감독은 부유한 가족의 가정에 스며드는 가난한 가족에 관한 장르를 넘나드는 스릴러 영화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번에 나는 칸에 있지 않았지만 영화가 끝나자마자 친구인 배우 틸다 스윈튼이 “<기생충>은 걸작이야!”라는 문자를 이모티콘 가득 채워 보내왔다.
    스윈튼의 말은 빠르게 퍼졌다. <기생충>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1994년 <펄프 픽션> 이후 축제의 최우수상 수상작 중 단연코 가장 인기 있는 영화였다. 상황은 봉준호를 변화시켰다. 어쩌면 반대일 수도 있다. 봉준호가 상황을 변화시켰다. “내 옷을 너무 작게 만들었어요.” 컬버시티에 있는 스매시박스 스튜디오에 있던 봉 감독은 한국에서 알려준 그의 옷 사이즈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게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벨벳 양복 상의 뒷면은 솔기가 풀려 벌어져 있었고, 뻣뻣한 팔다리로 우습게 비틀거리며 걸었다. 헤어스타일은 누가 머리 꼭대기에 특별한 새 둥지를 만들려고 한 것 같은, 아마 ‘봉프로’(부풀린 흑인 머리 모양)라고 부르는 것이 최선일 것 같은 모양이었다. 촬영 준비 중간에 봉 감독은 블랙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마지막으로 그는 가짜 푸른 하늘 아래서 갑판용 의자에 누워 있어야 했다.

    “우리는 이런 부분을 신경 써야 해요.” 그의 홍보 담당자인 마라 벅스바움이 소근거렸다. “이런 게 감독님을 매우 할리우드식으로 보이게 하는데, 감독님은 정말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녀가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선글라스를 쓰고 누운 봉 감독은 이케아에서 아내를 기다리며 긴 의자에 앉아 잠든 남자랑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외관상으로 그는 전혀 ‘연예계’ 사람이 아니 다. 그리고 이런 점이 정말, 그의 슈퍼파워다.

    PLACE IN THE SUN
    재킷과 팬츠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셔츠는 카날리(Canali), 신발은 J.M. 웨스통(J.M. Weston), 선글라스는 자크 마리 마지(Jacques Marie Mage).

    봉 감독은 훼방꾼이다. 이 표현은 기술업계와 스트리밍업계에서 공통적으로 고른 단어로, 이제 진부해졌지만 그는 걸어 다니고 말하는 진정한 문제아다. 자신만의 규칙을 쓰고 미국인들이 자막이 있는 영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통념을 반박하며 서울이 배경인 계급 전쟁 코미디 스릴러를 엄청나게 성공적인 영화로 변모시켰다. <기생충>은 미국에서 이미 250억원을 벌어들였고, 이는 단연코 지난해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외국어 영화가 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1,320억원을 벌어들였다. <기생충>의 한정판 시리즈는 HBO에서 제작 중이다. 봉 감독은 색다른 자신의 모습에 충실함으로써 이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외국어 영화상’으로 알려진 아카데미상의 이름을 올해는 ‘국제장편영화’로 바꿔놓았다. <기생충>이 국제영화상뿐 아니라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미술상, 편집상 등 여섯 개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지난해 <로마>가 그랬던 것처럼) 오스카가 좀더 진화하도록 도왔다. 그동안 한국 장편영화는 이 카테고리 중 어느 것에도 후보로 오른 적 없었다. 지명 작품이 발표되기 전 진행된 인터뷰에서 부담감에 대해 물었다. 봉 감독이 말하길, “저는 우리나라를 위해 영화를 만들지 않아요. 국가라든가 영토라는 개념을 거의 생각하지 않지요. 저는 정말 제 개인적 관심사를 추구해요.” 봉 감독의 영화 <옥자>(2017)에 케이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스티븐 연은 봉 감독의 강점이 독창성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저는 이 순간이 모든 문화적 경계를 초월한다고 생각해요. 봉 감독님이 여기 미국에서 노동의 열매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세상과 우리 모두가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죠.”

    하지만 분명히 봉 감독은 한국인의 엄청난 희망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2010년 동계 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김연아의 금메달에 대한 지나친 한국의 응원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나는 그가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록 스타가 받을 법한 환대를 받은 걸 기억한다. “오스카에서 거둔 좋은 결과에 대해 확실히 부담을 느끼고 있어요.” 봉 감독은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보다 시급한 일이 있었다. 그의 옷이 너무 작았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봉 감독은 미라 같은 걸음걸이로 탈의실로 가서 말쑥하고 편안한 회색 정장으로 갈아입고 왔다. “훨씬 낫군요.” 그가 팔을 접으며 웃었다. “합시다.”

    우리는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재즈 시대’ 영화 궁전 중 하나를 살펴볼 계획이었으나, 겨울비는 폭우로 변해버렸고 <기생충>의 클라이맥스처럼 폭풍우는 아무리 치밀하게 세운 계획도 그냥 끝내버리는 식이었다. 대신 우리는 컬버시티의 시모네트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히려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밖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공포 전문가인 봉 감독이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점차 고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미 팰런 쇼’에 가는 것이 “정말, 정말 무서워요”라고 했다. 이 50세의 영화감독은 속 편한 판다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어서 웃겼지만 (그도 우습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주위 사람들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저는 걱정이 많아요.” 그는 통역사인 샤론 최를 통해 자세히 설명했다. (봉 감독은 영어를 아주 잘하지만 절반 정도의 대답은 정밀한 그녀의 통역을 선호했다.) 때때로 그는 “마운드에 올라가야만 하는 야구 선수와 같은 기분이에요”라고 말한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누구나 아는 한국에서도 봉 감독은 라디오를 선호해 토크쇼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주류로 통하는 ‘투나잇 쇼’라서 이 프로를 찍기 위해 뉴욕으로 가는 야간 항공편에 오를 것이다. 긴장감에 더해 그가 탈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봉 감독은 2000년에 만든 장편영화 데뷔작인 다크 코미디 <플란다스의 개> 이후 휴가를 가본 적 없는 데다, 이후에 여섯 편의 장편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기생충>을 홍보하러 다닌 지 이제 여러 달이 지나, 24년간 함께 지낸 아내와 가끔 동행함으로써 ‘일상적 가족 생활’을 재창조하려고 했음에도 또 다른 인생의 여인을 그리워한다. 봉 감독은 “이 녀석들은 정말 사람 같아요”라고 영어로 얘기한다. 그는 휴대폰에 있는 노리치 테리어인 자신의 애견 ‘쭈니’의 사진을 수백 장 넘겨본다. “시상식 시즌이 끝나면 한 달 혹은 가능하면 1년 동안 휴식을 취하며 아마 남극에 갈 겁니다. 추운 날씨를 좋아해 어딘가 추운 곳으로 가고 싶어요. 쭈니만 데리고.”

    봉 감독은 미군 부대가 가까이 있는 대구에서 자라다가 아홉 살에 서울로 이사했다. 네 형제 중 가장 어렸던 그는 할리우드 서부 영화와 장르 영화를 TV로 보면서 컸다. 어릴 때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만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나중에 마쓰모토 다이요의 만화 <철콘 근크리트>와 그래픽 아티스트 토마스 오트의 말없는 공포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

    군사독재 시절인 80년대 후반까지 외국 여행과 교류가 통제되었던 사실을 지금은 잊기 쉽다. 민주주의 운동의 온상이던 연세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봉 감독은 ‘노란문’이라는 이름의 영화 동아리에 들어간 뒤 얼마 되지 않아 사회학 전공보다 더 몰두하게 되었다. 1992년에 이 동아리에서 ‘영화광’ 아내를 만났다. “아내가 저의 첫 독자였어요. 시나리오를 끝내고 아내에게 보여줄 때마다 굉장히 겁이 났지요.” 그리고 이 동아리에서 그의 열정은 만화에서 영화로 바뀌었다.
    봉 감독과 그의 동료 영화광들은 아시아에서도 순전히 현실도피적 유치한 작품이 아닌 예술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길을 보여준 영화 제작자들인 타이완의 호우 샤오셴과 에드워드 양의 영화 같은 외국 영화의 VHS 테이프를 찾아냈다. 오늘날까지 그의 개인적 취향은 예술 쪽으로 한결같이 기울어져 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분위기 있는 예술 공포 영화 <큐어>이고, 가장 좋아하는 크라이테리언(Criterion)사 영화 세트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화니와 알렉산더>다. 그는 켈리 리처드 감독의 영화 <웬디와 루시>의 첫 장면에서 개와 미셸 윌리엄스의 느린 추적 장면이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오프닝 장면 중 하나”라고 말한다.
    나는 2000년에 신생 뉴스 사이트의 젊은 영화 비평가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취재하러 갔다가 처음 봉 감독에 대해 들었다. 칸영화제의 자문위원이었던 故 피에르 르시앙은 <플란다스의 개>가 볼만하다고 계속 홍보했지만, 나는 한국 영화계에 분수령이 되는 해가 언제일 줄은 전혀 몰랐다. 그 남쪽 항구도시에 가본 적 없었고, 영화관 로비를 가리고 막은 젊은 연령층의 팬덤인 수천 명의 흥분한 고등학생 군중을 보는 것이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이 학생들은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해에 봉 감독의 영화는 물론, 한국 영화계의 거장 감독들의 첫 번째(혹은 초기의) 영화를 보았다. 박찬욱(나중에 <올드보이>로 알려진), 홍상수(이자벨 위페르와 영화 두 편을 찍은 칸의 총아), 김지운(나중에 <장화, 홍련>으로 알려진), 이창동(<버닝>으로 지난해 수상 경쟁의 주인공)과 그 밖의 감독들. 이렇게 매우 독창적인 한국 영화 제작자들의 전성기와 가장 흡사한 것은 코폴라, 스콜세지, 루카스, 스필버그, 애시비, 프리드킨 등이 활동한 1970년대일 것이다. 그때 막 서른한 살이었던 봉 감독은 이 집단의 막내였다. “그 영역에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봉 감독이 반 농담조로 말했다. “우린 아주 운 좋은 세대예요. 그때는 스튜디오가 좀 순수했지요. 영화 제작자들을 보호해주는 적극적인 프로듀서들이 많았거든요.”

    그는 영화광 감독들에 대해 애정을 담아 말한다. 그들은 김지운의 집이 훌륭한 홈 시어터 시스템을 갖추었기 때문에 거기서 DVD 특집을 보려고 만났다. 그에게 이런 종류의 동료애는 여전히 세상 전부와 같다. “저는 사실 하루 24시간 매우 불안해요.” 블랙커피를 세 잔이나 마신 후 그가 말했다. “사실 정신과 의사가 그러는데 저는 심각한 불안감이 있는 데다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매우 강박적 경향이 있다고 해요. 하지만 영화 제작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죠.”

    봉 감독이 영화를 보거나 영화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때는 자기 영화의 모든 스토리보드를 강박적으로 직접 그린다. “스토리보드 없이 촬영하면 속옷만 입고 중앙역에 서 있는 기분이에요.” 촬영 후 그는 편집 작업의 모든 면과 최고로 맛깔나는 최종 작업에 관여한다. 사운드 믹싱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오아후나 발리에 대해 말할 때나 보일 만한 일종의 한숨 어린 기쁨을 내비치며 ‘사운드 믹싱’에 대해 말한다. <살인의 추억>(2003)에서 우아한 경찰 수사 묘사에 한번 감탄한 사람들은 이런 디테일에 관한 그의 헌신에 놀라지 않는다. <마더>(2009)에서 중년 엄마의 기민한 보호자적 1인칭 카메라 시점 장면, 그리고 최근작인 <기생충>의 용수철이 장착된, 쉬운 걸 매우 복잡한 방법으로 구사하는 희극적 세트 피스에서 절정에 달하는 완벽하게 눈금을 매긴 듯한 장면. 영화 <기생충>은 어떤 집의 건축적 경이로움 속에서 끊임없이 습격의 기회를 노리는 발레 같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충격적이고 피에 젖은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봉 감독의 모든 작품에서 특이한 점은 기발한 재주나 모험을 요구하는 상황에 빠진 평범한 (종종 서투르고 어리석기도 한) 한국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의 주인공들은 사실상 주인공답지 않다. 취하고, 토하고, 자위하고, 추하게 울고, 싸구려 음식을 먹고,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다. 심지어 그의 공포 영화 <옥자>(2017)에 나오는 사랑스러운 슈퍼돼지도 방귀를 뀌고 트림을 한다. 게다가 봉 감독의 도덕적 경험 세계는 말하자면, 스필버그의 가장 사랑받는 영화 중 비난할 여지가 없는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기생충>의 중심에서 고군분투하는 김 씨 가족이 본질적으로 사기꾼인 것과 같이 의도적으로 어둡다. “한국인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이 달라요. 저는 ‘별난’이라는 단어가 가장 좋은 설명인 것 같아요. 제 영화의 많은 가족이 큰 혼란에 빠져 있죠. 그들은 가족으로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요. 저는 그런 인물들을 쓸 때가 제일 기분 좋아요.”

    그의 흠 많은 인물들을 응원하도록 세상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은 추진력 있는 스토리텔링과 어조에 관해 교묘한 수완을 가진 그의 마술사와 같은 본능 덕이 다. 봉 감독의 영화는 바보같이 시작해 무섭게, 심지어 비극적으로 변했다가, 발레처럼 자연스럽게 트리플 악셀을 하듯 다시 유머와 따뜻함으로 돌아간다. 그의 전문 분야는 대담한 서스펜스고, 그건 마술사와 마찬가지로 기교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밤에 잠들지 못하게 만드는 그의 불안감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POWER SUIT
    틸다 스윈튼은 봉준호 감독을 “영화계에서 홀로 싸우는 자”라고 부른다.

    큰 스튜디오 영화 또는 모두 갖춰진 기계의 도움으로 걱정을 덜 수 있는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를 찍고 싶지 않나요? “아뇨.” 봉 감독은 강조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저를 정말, 정말, 정말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요. 제가 그렇게 한다면, 저는 죽을 만큼 숨이 막힐 거예요.” 그러나 그는 이것이 스튜디오의 개입에 관한 입장이라기보다 개인적 선호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모든 것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완전히 끝내야만 안심이 돼요. 저는 슈퍼히어로 영화와 고예산 영화를 쉽게 만드는 감독들을 정말 존경해요.” 봉 감독은 큰 프로덕션에 대한 환상이 없다. 봉 감독에게 꿈의 미국 프로젝트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을 따라서 설정한, 오손 웰즈의 <악의 손길> 같은 방식의 분위기 있는 누아르이며, 어린 시절 우상인 잭 니콜슨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다. 어떤 영화에 출연하든 자신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봉 감독의 또 다른 꿈은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대탈주> 같은 액션 대작일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며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던 기억이 나요. 제2차 세계대전 중 포로수용소를 탈출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상한 로맨스 장면이 있어요. 저는 뭔가 이런 식으로 연출하고 싶어요.”

    스윈튼은 지금껏 봉 감독의 영화 두 편에 출연했다. 그녀는 예상 밖의 뮤즈 같지만, 두 가지 면 모두를 소화해 완벽하게 어울린다. 그들은 연기에 대한 헌신적 감각과 건강을 무시하는 범주까지 공유한다. 가족들도 가까워지고 있다고 봉 감독이 말한다(그의 아들과 그녀의 쌍둥이는 비슷한 나이다). 봉 감독은 강아지 다섯 마리와 닭 열두 마리가 있고 그녀가 만들어주는 맛있는 해기스를 먹을 수 있는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에 자리한 그녀의 집에 방문하는 걸 좋아한다.

    봉 감독은 2011년 황금카메라상 심사위원장(데뷔 영화를 심사하는)을 맡아 칸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스윈튼을 처음 만났고, 그녀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로 참가하던 중이었다. 봉 감독은 1993년 영화 <올란도>에서 반전된 성 역할을 했던 그녀를 본 후 팬이 되었다. “오랜 친구를 만난 것 같았어요. 그리고 굉장히 빠른 시간에 서로를 형제라고 불렀죠.” 스윈튼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스윈튼은 봉 감독을 “출력 강화된. 레이저같이 빠른. 완전히 진심 어린… 정치적으로 과격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굉장히 웃긴”이라고 묘사했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봉 감독은 최고로 현대적인 동시에 고전적인 것을 대표한다고 말하고 싶어 요. 그는 대형 스크린 영화에서 청중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스릴, 서스펜스, 액션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한 사람이에요.”

    봉 감독은 열차 안 계급 전쟁 영화 <설국열차>(2013)를 쓰면서 원래 남자 역이었던 악랄한 장관인 메이슨을 스윈튼의 역으로 수정할 수 있다고 여겼다. “틸다와 일하는 것은 탁구 게임 같아요.” 봉 감독이 말했 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서로에게 던지고, 주고받았어요.” 스윈튼은 잔뜩 긴장한 메이슨 역을 위해 보철 치아와 특대 안경을 착용했고, 4년 뒤에도 그녀와 그녀의 파트너인 산드로 콥이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 <옥자>에서 그와 비슷한 쌍둥이 적대자 역을 맡았다.

    봉 감독은 현재 차기작인 두 영화의 각본을 이 모든 캠페인 활동 때문에 매우 느리게 쓰고 있다. 그가 말하길 하나는 한국이 배경인 공포 영화고, 다른 하나는 2016년 영국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영어 대사로 만든 매우 인간적인 영화다. 두 영화에 관해 봉 감독이 말을 잘 해주지 않더라도, 스윈튼이 또 출연할 것이라는 점에는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나중에 봉 감독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봉 감독은 루카스 헤지스(“영화에서 조화로운 모습이 좋아요”)와 토니 콜렛(“정말 좋아해요!”)과 일하고 싶어 한다. 토니 콜렛은 33세의 천재 감독 아리 에스터의 2017년 공포 영화 히트작 <유전>에서 귀신 들린 여성 가장으로 뛰어난 모습을 선보였다. 아리 에스터 감독 얘기가 나오자 봉 감독이 환하게 빛난다. “아, 아리 감독은 천재예요! 그는 강박의 전형이죠!”

    HIS OWN MAN
    프랜차이즈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존경하는 봉 감독.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가야만 한다.

    이 기쁜 선언을 보며 나는 엘리트 브로맨스를 살짝 엿보게 된 걸 알았다. 에스터 감독은 한동안 그의 팔로워들에게 봉 감독에 대한 사랑을 트위터에 드러냈고, 심지어 그의 영화인 <미드소마>를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데도 <기생충>의 특별 상영회를 주최했다. “봉 감독님은 저에게 절대적 영웅 중 한 명이에요.” 에스터 감독이 말했다. “그처럼 강박적 창작자가 그같이 빠른 속도에다 완전한 편안함에, 사실상 그가 하는 일에 대해 전혀 느슨함이 없을 때조차 느슨함을 갖춘 일관된 느낌을 성취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어요.”

    해가 다시 나왔다. 나는 봉 감독이 시계를 보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을 느꼈다. 카페를 나오기 전, 인접한 테이블의 팬 한 쌍이 우리를 방해했다. 지난해 나온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세 감독 중 하나인 로드니 로스맨과 드라마 <로스트>의 제작 책임자인 브라이언 버크였다. 둘 다 <기생충>이 걸작이라고 봉 감독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봉 감독은 그런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는 몹시 기뻐했지만(그는 스파이더-버스(Spider-Verse) 영화를 사랑했다) 이런 것으로 긴장이 풀리지는 않는다. 아무리 많은 선의도 지미 팰런에 대한 그의 두려움을 덜어줄 수 없다. “이 모든 걸 즐기려고 노력해요.” 봉 감독은 고개를 숙이며 기분 좋은 감사 인사를 건넸다. 비는 그친 것 같았지만, 뉴욕으로 가는 야간 비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후, ‘투나잇 쇼’에서 여유 있는 회색 정장을 입고 산뜻하고 점잖은 토크쇼 손님으로 나온 봉 감독을 봤다. 팰런이 칸영화제에서 <기생충>을 보고 8분 동안 기립 박수를 쳤다고 한 뒤에도 그 말을 반복하자, “감사합니다, 이제 모두 집에 갑시다!”라고 말했다. 봉 감독은 사람들이 모두 배고프고 짜증 났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객들은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가 조용히 미소 짓는 걸 보며 나는 그가 크게 안도하는 걸 느꼈다.

    역시 봉 감독은 그저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있음으로써 성공했다. 예상대로 그의 불안감은 다른 곳에서 펄떡일 것이다. 아마 오스카의 밤에 무대에 선다는 생각 아닐까? 그걸 위해 봉 감독은 <기생충>에 나오는 어떤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모른다. 고군분투하던 김 씨가 용기가 산산조각 나기 시작할 때 아들에게 한 말을 기억하나?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어떤 건 줄 알아? 전혀 계획이 없는 거야.”

      샌디 탠(Sandi Tan)
      포토그래퍼
      켈리아 앤 맥클러스키(Kelia Anne MacCluskey)
      스타일리스트
      데보라 아프샤니(Deborah Afshani)
      메이크업
      레이첼 버니(Rachel Burney)
      세트
      브리트니 포터(Brittany 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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