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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무비 4

2020.03.13

by 김나랑

    바이러스 무비 4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뒤 한국과 일본 등으로 확산되어 아시아를 타깃으로 한 세균전이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왔지만, 역시 바이러스에게 자비란 없다.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중동, 유럽, 미국, 아프리카 등 안전한 지역은 어디에도 없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온 이탈리아는 이미 600명이 넘는 사망자를 기록했다. 10여 년간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의 위협을 지나왔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지만 계속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공포는 점점 커진다.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녹고 있는 남극의 빙하나 티베트의 만년설 아래에 잠들어 있던 태고의 바이러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는 과학자의 보고도 있었다. 바이러스의 공포가 현실을 넘어 일상으로 들어온 지금, 바이러스의 악몽을 그린 영화를 되짚어봤다.

    <컨테이젼>(2011)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출연 마리옹 코티아르, 맷 데이먼

    <컨테이젼>은 이제 고전으로 남을 영화가 되었다. 홍콩에 출장을 다녀온 베스가 발작을 일으키며 사망한 후, 세계 곳곳에서 같은 증상으로 사람들이 죽어간다. 바이러스는 일상적인 접촉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감염된 사람이 만졌던 것에 접촉하면 전염되는 것이다. 순식간에 세계로 퍼진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는 최초 발병 경로를 조사한다. 박쥐의 변을 먹고 자란 돼지를 요리한 요리사였다. 신종 바이러스는 박쥐, 낙타, 원숭이 등 주로 동물을 통해서 시작된다. <트래픽>, <헤이와이어> 등 사실적인 스타일의 영화에 재능 있는 감독답게 10년 전에 만든 <컨테이젼>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정확하게 그려낸다.

    <감기>(2013)

    감독 김성수 출연 장혁, 수애

    한국에도 이미 바이러스의 공포를 그린 영화가 있었다. <무사>의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감기>는 호흡기 감염, 감염 속도 초당 3.4명,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를 등장시킨다. 언제나 극으로 치닫는 우리들 성향답게 바이러스도 최악이다. 하지만 <부산행>이 보여준 것처럼, 최악은 좀비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중국인 밀입국자들에게서 시작된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로 결국 분당이 폐쇄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자신들의 이익만 따지는 국회의원이나 관료들이다. 지금이라면 언론도 포함되었을 듯. 개봉 당시 포스터의 카피도 “진짜 재난은 바이러스가 아니다”였다. 흥미로운 한국의 바이러스 퇴치 과정을 그린 영화지만 바이러스 감염을 진정시키고 퇴치하는 과정은 그리 과학적이지 않다.

    <퍼펙트 센스>(2011)

    감독 데이비드 맥킨지 출연 에바 그린, 이완 맥그리거

    인간의 일상을 파괴하는 바이러스는 영화와 소설에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 그려지기도 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원작인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가 그렇듯이. <퍼펙트 센스>도 바이러스를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이 바이러스는 인간의 오감을 파괴한다. 후각, 미각, 청각, 시각 순으로 감각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오감이 파괴된 인간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퍼펙트 센스>는 남자 주인공의 직업을 요리사로 설정한다. 감각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그는 어떤 음식을 만들어낼까. 그리고 여인과의 사랑을 어떻게 지속해갈 것인가. 지금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았어도, 우리는 천천히 오감을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혹은 하나의 감각에만 몰두하며 시야를 좁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일상의 감각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28일 후>(2002)

    감독 대니 보일 출연 킬리언 머피, 나오미 해리스

    오감을 잃어버린 인간이라면 <28일 후>의 그들이 바로 떠오른다. 좀비가 아니다. 그들은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다. 동물 권리 운동가들이 동물실험을 하던 연구소에 침입해 동물들을 풀어준다. 그중에는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가 있었다. 단 28일 만에 영국은 초토화된다.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돼, 인간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비과학적인 좀비를 현실에서 가능한 존재로 만들었던 <28일 후> 덕분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상상력의 지평이 열렸다. 인간의 형상 그대로이면서 인간이 아닌 존재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힌 인간은 이웃을, 가족을 잡아먹고 세상을 절멸시킨다는 진리.

    에디터
    김나랑
    김봉석(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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