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새로운 세상

Fashion

샤넬의 새로운 세상

2020-03-13T13:43:59+00:00 2020.03.19|

그랑 팔레와 방돔 광장. 두 곳에서 만난 샤넬은 이전과는 달랐다.
소녀를 닮은 순수함과 정형화되지 않은 아름다움이 가득한 샤넬의 새로운 세상.

SECRET GARDEN 오뜨 꾸뛰르와 엄숙한 수도원은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극소수의 고객을 위해 한 땀 한 땀 제작되는 고급 맞춤복과 교리에 따라 절제와 검박을 수행하는 수도원의 삶 사이에서 교집합을 찾기는 힘들다. 그 사이에서 연결 고리를 찾은 인물이 있으니 바로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 그녀는 올봄을 위한 오뜨 꾸뛰르 컬렉션의 아이디어를 프랑스 지방에 자리한 소박한 수도원에서 발견했다.

물론 프랑스 중부 시골에 자리한 오바진(Aubazine) 수도원은 평범한 성전은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1895년 샤넬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언니와 여동생, 가브리엘을 이곳 고아원에 맡긴 채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열두 살의 소녀 가브리엘은 이곳에서 엄격한 수녀의 가르침을 받고 바느질을 배우며 자랐다(물론 코코 샤넬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고아원’이라는 언급 대신 무서운 ‘이모(Aunt)’들과 자랐다고만 말했다).

‘시토회(Cistercian)’의 수녀가 지키고 있는 수도원이 이 위대한 디자이너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에는 추측할 만한 힌트가 가득하다. 그 유명한 더블 C 로고는 수도원 내부 스테인드글라스를 닮았고, 유난히 검은색을 애호한 이유도 수녀와 원생이 입던 검정 유니폼 때문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한 적 있다.

칼 라거펠트가 세상을 떠난 이후, 두 번째 오뜨 꾸뛰르 컬렉션을 준비하던 버지니 비아르는 지난해 9월 샤넬 서사의 시작을 살펴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가장 먼저 제 눈에 띈 건 수도원 내 회랑의 정원이었습니다. 전혀 가꾸지 않은 듯한 매력을 품고 있었습니다.” 비아르는 아마 그 정원에 서서 소녀 샤넬의 모습을 상상했을지 모른다. 세상을 바꿀 재능을 지닌 소녀는 이곳에서 오감으로 풍경을 느꼈을 것이다. 비아르 역시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저는 여름과 꽃향기로 가득한 바람을 떠올렸습니다. 식물도감에서 발견할 법한 섬세한 꽃 자수가 생각났어요. 단순함으로 가득한 공간과 오뜨 꾸뛰르의 세련된 매력 사이에 존재하는 패러독스 역시 영감이 되었습니다.”

지난 2월 21일, 쇼장이었던 그랑 팔레에 초대된 관객들은 비아르가 목격했던 그 소박한 시골 수도원의 풍경을 그대로 맞이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화초가 자라난 정원 중앙에는 오바진의 그것을 그대로 닮은 분수와 돌의자 등이 자리했고, 쇼장을 둘러싼 하얀색 커튼은 고아원 빨랫줄에 걸린 바람에 휘날리는 침대 시트를 닮아 있었다.

단정한 트위드 스커트 수트를 입고 등장한 첫 번째 모델 비토리아 체레티부터 영감은 뚜렷했다. 소녀를 위한 샤넬. 지지 하디드가 입은 넓은 피터 팬 칼라의 단정한 드레스, 스트라이프 패턴의 미니드레스 등도 있었다. 게다가 하얀 스타킹 위로 신은 발목을 감싸는 하얀 양말과 로퍼까지. “칼은 그런 스타일을 싫어했죠.” 36년간 칼 라거펠트 곁에서 일했던 버지니 비아르는 언젠가 소녀를 주제로 컬렉션을 선보이기로 마음먹었다. 오바진 수도원이야말로 그 다짐에 기폭제가 되어준 셈이다.

코코 샤넬이 어린 시절 입던 유니폼과 다른 점이 있다면, 비아르가 선보인 것은 패션계 최고의 기술과 소재를 필요로 하는 오뜨 꾸뛰르라는 점이다. 거친 광목과 울 재킷 대신 시퀸을 시폰 소재와 함께 직조해 놀랍도록 부드럽고 가벼운 소재가 탄생했다(수도원 내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 패턴을 본떠 완성했다). 무엇보다 꾸뛰르가 빛나는 건 소수만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디테일이다. 특히 스커트 아래에 입은 튤 스커트 밑단에는 수도원의 정원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 자수와 깃털로 만든 나비 등이 숨어 있기도 했다.

컬렉션의 마지막은 그 어느 때보다 수수한 실크 셔츠 드레스 스타일의 웨딩드레스. 그 순간 버지니 비아르가 발견한 비밀스러운 정원의 향기가 그랑 팔레에까지 불어왔다.

NEW NORMAL 오뜨 꾸뛰르 쇼가 파리 곳곳에서 열리던 지난 1월 중순, 루브르 박물관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찾는 이들로 붐볐다. 지난해 10월 처음 그 문을 열었던 다빈치 특별전이 그 현장이다. 사후 500주년 기념으로 열린 전시는 역사상 가장 많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162개 작품 중에도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는 베니스에서 소중히 ‘모셔온’ <비트루비안 맨(Vitruvian Man)>(빛에 오래 노출되면 안 되기에 이번 전시가 끝나면 다시 5년간 암흑 속에서 휴식에 들어간다). 동그란 원 속에서 네 팔과 네 다리를 가진 남자가 그려진 이 그림은 다빈치가 주장한 황금 비율을 알렸다. 세상 모든 것이 1:1.618의 비율을 갖추었을 때 가장 안정적인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천재의 주장이다. 아마 루브르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던 이는 세상 모든 것을 이 정형미로 재단하는 눈을 길렀을 것이다.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와 멀지 않은 곳에선 이탈리아 거장의 주장과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었다. 방돔 광장 18번지에 자리한 샤넬 화인 주얼리 부티크의 숨은 공간이 그 현장이었다. 검은 돌 위에 이끼를 깔고, 푸르른 이미지로 쇼룸을 꾸민 샤넬은 이곳에서 새로운 하이 주얼리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번 컬렉션은 불규칙한 것이 더 아름답고, 비정형적인 것이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준다고 설득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컬렉션은 이름하여 ‘트위드 드 샤넬(Tweed de Chanel)’.

우리가 아는 샤넬은 조형적이고  질서의 미가 돋보이는 브랜드에 가까웠다. 두 개의 알파벳 C가 팔짱을 끼고 있는 로고부터, 블랙과 화이트가 대조를 이루는 매장 인테리어 등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트위드 드 샤넬은 이러한 전통에서 살짝 비켜서 있다. 불규칙한 매력을 그대로 담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렇다고 샤넬이라는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않았다. 1920년대 코코 샤넬이 연인이었던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옷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여성복에 처음 사용한 이후, 샤넬을 상징하는 소재가 된 트위드가 그 발상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골드와 다이아몬드를 통해 트위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가 그 시작이었어요.” 샤넬 하우스는 이번 주얼리의 시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총 45개 피스로 구성된 컬렉션은 트위드 원단이 지닌 깊이와 풍성함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한 분절 기법으로 완성했다. 다이아몬드, 진주, 사파이어 등을 겹치거나 뒤얽히게 만들어 목걸이와 반지, 팔찌와 특별한 시계 등을 디자인한 것이다. “직접 만져보면 그 매력이 더욱 돋보입니다.” 고정된 목걸이를 살짝 움직이자 또 다른 색상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손으로 쓸면 그 매력이 느껴지는 스코틀랜드산 고급 트위드처럼 이번 주얼리 역시 특별한 텍스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샤넬 쇼룸 한쪽 벽에선 푸른 강의 이미지가 반짝이는 주얼리로 변신하는 매혹적인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트위드의 탄생지로 알려진 스코틀랜드 트위드강의 거친 물결이 방돔 광장을 거쳐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변신하는 여정을 영상으로 표현했다. 완벽하게 꾸미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이 나는 보석. 트위드 드 샤넬 컬렉션은 황금비 없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새로운 기준을 흐르듯 전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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