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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게 좋아

2022.11.30

by VOGUE

    끝내주게 좋아

    리조는 뮤지션을 넘어 하나의 무브먼트다. 파워, 긍정, 자기애에 관한 메시지 덕분에 컬트 수준의 추종자가 그녀를 따른다.

    실크 러플 미니 드레스는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글리터 샌들은 로렌스 디케이드(Laurence Dacade), 팔찌는 베르두라(Verdura).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이 열리던 토요일, 바깥 기온이 섭씨 30도에 달했고 리조(Lizzo)는 자립에 관한 확신을 심어주며 3만 명의 관중을 이끌고 있었다. “여러분이 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여러분 자신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리조가 말했다. “여러분,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가 거울을 보고 말해보세요. ‘나는 너를 사랑해, 너는 아름다워. 그리고 너는 뭐든 할 수 있어’라고.” 그러자 관중이 그녀를 향해 함성으로 따라 했다. “나는 너를 사랑해! 너는 아름다워! 너는 뭐든 할 수 있어!”

    이 상호적 콜 앤 리스폰스(Call & Response)는 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모던 팝 스타들이 전형적으로 활용하는 가식적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리조의 콜 앤 리스폰스는 거의 영적 경험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것은 그녀가 무대 입구에서 “여러분 모두 교회에 가실 준비가 되었나요?”라고 물으며 입장한 것이 그런 분위기를 더 북돋았다. 만약 어떤 스타가 혼자 한 도시를 엄청난 열기로 달궜다면, 31세의 휴스턴 출신 가수이자 제대로 훈련받은 플루티스트인 그녀는 뉴욕, 런던, 베를린을 훨훨 불타오르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이번 공연이 그녀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데뷔 무대는아니었다. 2014년 페스티벌을 되돌려보면 이 가수가 열심히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나중에 그 공연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관객 10명과 함께한 커다란 텐트 안에서의 공연’이라는 글과 함께. 영국에서 열리는 가장 큰 음악 페티스벌에 처음 참여하던 때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뭐 별 볼 일 없는 가수였죠. 비욘세도 그랬잖아요. 2011년인가 뭐 그랬던 것 같아요. ‘이런, 젠장!’이라고 말했죠.”

    리조의 본명은 멜리사 제퍼슨(Melissa Jefferson)이다. 내가 그녀를 웨스트 런던의 한 호화로운 호텔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모스키노의 스케이터 톱, 블랙 바이크 반바지에 화이트 닥터 마틴 차림이었다. 그 당시 그녀는 굉장히 길게 느껴지는 기간에 걸쳐 투어를 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Cuz I Love You>에 수록된 복고풍 타이틀곡 ‘Juice’가 지난 1월 미국 음원 차트를 석권한 이후부터였다. 앨범은 RIAA(미국음반산업협회) 인증 골든디스크를 받았고, 싱글곡 ‘Truth Hurts’가 6주 연속 빌보드 핫 100에 진입함으로써 그녀는 입지를 더 굳건히 했다. 이는 혼자 활동하는 여성 랩 아티스트로는 최장 기록이며, 그녀가 말했듯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안겨주는 결과물”에 대한 증거다.

    그녀는 매우 열성적 활동을 보여주었다. <엘런 드제너러스 쇼>에 출연해 대담한 플루트 솔로 무대를 선보였다(그 무대는 그녀의 시그니처가 되었고, ‘플루트 & 슛’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서 자넬 모네(Janelle Monae)와 함께 몸을 낮추고 엉덩이 춤을 추는 트워킹을 했다. 또 MTV 무비 & TV 어워드에 참석해 <시스터 액트 2> 헌정 무대를 선보였으며, 몇 주 후에는 BET 어워드에서 거대한 웨딩 케이크에 올라 공연했다.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무대에서는 거대한 엉덩이 모양 풍선 앞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열리는 웬만한 뮤직 페스티벌에는 모두 참여해 공연했다. 어디를 가든 리조의 새로운 팬(셀럽들도 포함)들이 도처에 깔린 듯했다. 엘튼 존은 그녀에게 페이스타임으로 전화해 그녀의 앨범이 ‘완전한 승리’였다고 말해주었다. 미시 엘리엇은 리조의 곡 작업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화려하지만 저속한 노래 ‘Tempo’ 피처링에 참여했다). 무엇보다 최고의 애정 공세는 바로 리한나가 팬임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녀가 9월에 열린 뉴욕 패션 위크 ‘새비지×펜티’ 쇼에서 이렇게 말했다. “리조, 정말 사랑해요! 진짜 멋져요!”

    이런 일이 빠르게 일어날 거라는 걸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제 팬들이 점점 늘고 있었죠.” 리조가 꼼꼼하게 젤을 바른 잔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하룻밤 사이에 얻은 그런 성공이 아니었죠. 100명에서 3만 명으로 갑자기 늘어난 게 아니에요. 100명에서 1,000명, 4,000명, 1만 명, 그다음 2만 명으로 늘어난 거죠.”

    사람들은 잘 몰랐지만, 그녀가 무명의 설움을 떨쳐내기까지 10여 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금 그녀는 LA에 살고 있다. 하지만 태어난 곳은 디트로이트의 어느 독실한 기독교 가정이었으며, 자란 곳은 텍사스였다. 어린 시절에 클래식 플루트를 배웠으나 학교에서 랩을 시작했고 록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당시 그녀의 꿈은 사뭇 다른 듯했다. “제가 밴드에 들어가고 그 밴드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아보게 해주세요.” 그녀가 당시 희망을 기억해내고는 말했다. “‘그것은 내 꿈이야!’라고 자신에게 주문을 걸며 여정을 시작했죠. 저는 인큐버스(Incubus)처럼 되고 싶었죠. 무슨 말인지 알죠?”

    밴드 해체 후 그녀는 미니애폴리스로 옮겨가 2013년 첫 솔로 힙합 앨범 <Lizzobangers>를 발매했다. 그 앨범은 기교가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았고, 인디 랩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래퍼가 되고 싶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제 노래 실력은 형편없었죠.” 나는 믿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리조의 목소리는 조금 더 느린 R&B 노래를 부를 때면 아이작 헤이즈(Isaac Hayes)를 당황시킬 만큼 소울이 넘쳤다. “래퍼로서 투어를 다니다 보니 노래도 잘하는 가수가 되었어요.” 그녀가 설명했다. “제가 랩으로 했던 부분이 멜로디로 바뀌게 되었죠. 그래서 진정으로 소울 넘치고 극적인 노래로 바뀌어갔어요.” 그 목소리를 연마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했다. 그리고 비욘세처럼 보컬 런(애드리브) 훈련도 많이 받았다. “이것은 비책이 아니었어요. 제가 섬세하게 조정하고 만들어나가던 도구였죠.”

    리조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리조의 메시지는 힘찬 자기 확신(“I just too a DNA test, turns out I’m 100 percent that bitch(내가 방금 DNA 테스트를 받았거든. 내가 100% 그런 년이라는 결과가 나왔어)”)과 여성 권위 개선, ‘남자를 차버릴 수 있는’ 과감함을 섞어놓은 것이라 설명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녀는 그런 신념을 ‘Like a Girl’(“Woke up feelin’ like I just might run for President Even if there ain’t no precedent(그런 선례가 없을지라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 같은 기분으로 깨어나)”)과 ‘Good as Hell’(“If he don’t love you anymore. Just walk your fine ass out the door(걔가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그냥 훌훌 털어버려)”) 같은 노래에서 손쉽게 소개하고 있다. (정말이지 엄청난 곡이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은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힘들게 배우며 터득한 것이다.

    실크 턱시도 수트는 랄프 로렌 컬렉션(Ralph Lauren Collection), 브라는 새비지x펜티(SavagexFenty), 벨벳 샌들은 쥬세페 자노티(Giuseppe Zanotti),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쇼파드(Chopard), 반지는 베르두라(Verdura).

    깃털 아플리케를 부착한 실크 태피터 코르셋
    드레스는 16알링턴(16Arlington).

    그녀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저 자신에 대한 많은 기억이 있어요. 괴롭힘을 당하거나 놀림을 받았고, 저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가졌죠. 어린아이들도 정말 나쁠 수 있다고 봐요.” 그녀가 중학생이었을 때 같은 반 아이들이 체육 시간이 끝난 뒤 그녀의 옷을 라커 룸에 숨기곤 했다. “저는 ‘왜 하필이면 내 옷을 숨기는 거야?’라고 말했죠.” 게다가 다른 여자아이들 모두 이미 다리털을 면도하고 있었지만 리조는 하지 않았다. “저는 단지 다리털이 복슬복슬한 지저분한 중학생이었어요. 아마 그것 때문에 아이들이 크게 웃어댔던 것 같아요.” 가장 유명한 남자아이 하나는 스쿨버스에서 매일 그녀를 힘들게 했다. “아침마다 걔가 이렇게 말했죠. ‘안녕, 이 뚱보야?’ 등교하는 아침마다 그랬어요. 정말 그런 말을 내뱉었죠. 그럼 저는 ‘젠장, 좋은 말로 하면 안 되냐?’라고 되받아쳤죠.”

    어린 시절 그녀는 로알드 달(Roald Dahl)의 <마틸다>에 심취했다. 마틸다는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맞서기 위해 초능력을 사용하는 학교 부적응자였기 때문이었다. 리조 역시 그녀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을 찾아냈다. “제가 그들이 저에게 상처를 주도록 허용하면,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그 못된 말을 참았고 특정 시점에 이르면 그런 말에 익숙해지고 말았죠. 그런 말 때문에 서러웠으면서도요. 그래서 그런 말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었죠.” 고등학생이 되자 그녀는 버스에서 놀리던 그 남자아이와도 결국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자존감에 미치는 미디어의 악영향에 대해 굉장히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제가 TV에서 이런저런 것을 보고 잡지도 읽죠. 그러고 나면 저 자신을 보지 않게 되죠. 당신이 당신 자신을 보지 않으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당신이 TV나 잡지에서 본 듯한 모습으로 보였으면 좋겠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제기랄, 나한테 어떤 문제가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것이 제가 성장할 때 심리적으로 가장 큰 해를 입힌 요인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내게 건넸을지도 모를 그 어떤 말이나 행동보다도.”

    지난해 6월 리조는 자신의 정신 건강 상태를 공개했다.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포스팅한 것이다. “저는 우울해요.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요.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요. 삶이 상처받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이런 글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 또한 지나가겠죠.”

    “제게도 불안감이 있어요. 그것은 제 경험의 흥미로운 부분이죠.”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절제하며 말했다. 그녀의 불안감은 갑자기 엄습하는 것으로, 긴장되는 사교적 상황이나 많은 사람을 만날 때 발생한다. “심장이 달음박질치고 뇌는 빨리 돌아가고 저는 그저 이런저런 농담을 쏟아내죠. 다음에는 실제로 빙글빙글 돌게 되죠. 목소리는 더 커지고 저는 더 재미있는 사람이 되죠. 그러면 사람들이 제게 괜찮은지 묻기도 하죠.” 그러면서 그녀가 웃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정말 불안해질 때는 공연을 하면서 점점 오버하고 미친 듯 날뛰게 됩니다.” 그녀는 지금도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그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불안감이 때로 공연가와 예술가로서 자신을 더 북돋우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제 불안에 적합한 곳이나 그 용도를 찾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드레이프 보디스를 덧댄 실크 태피터 드레스는 16알링턴(16Arlington), 화이트 골드 & 다이아몬드 귀고리는 메시카(Messika).

    그녀는 결국 침 치료, 명상, 호흡 연습 등을 통해 그것을 통제할 수 있었다. “제가 지금 스물한 살이었다면 엄청난 불안감과 공황 발작 없이는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제 여정은 모두 자기 스스로를 돌보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찾아가고, 자신에게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에 관한 것이죠. 그것이 바로 아티스트에게 그 무엇보다 더 필요하죠.” 리조가 마침내 그런 일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가 바로 21세 때였다. 아버지가 그녀의 생일 직전에 돌아가신 것이다. 남은 가족은 다른 도시로 이사했다. 그녀는 며칠 밤을 차나 친구네 집 바닥에서 자야 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빈털터리가 되면 비로소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때 정신을 분산시키는 요인 없이 자신을 처음 마주했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그녀를 몸에 대해 긍정적으로 노래하는 이 시대 팝의 여왕 자리에 오르게 해준 것은 그녀의 사회의식과 정직성이었다. 그런 이미지가 그녀의 신경에 살짝 거슬리기도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노래하는 특대 사이즈 여성이 획기적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도 많은 여성이 리조에게 자신의 모습을 찾는 이유다. 오늘날처럼 보이는 모습에 집착하는 시대에 그녀는 자기 확신의 길을 안내하는 메가와트급 신호등이며, 그녀의 확신이 얼마나 단호한지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정도다. 그것이 팬들이 100명에서 시작해 3만 명까지 늘어난 이유일 것이다.

    “뭔가를 설득하기 위해 자기 몸 긍정주의를 활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그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게 핵심 포인트예요! 저는 처음부터 뭔가를 납득시키지 않아요. 그냥 우리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우리 자신에게 그 생각을 납득시켰죠.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을 우리 자신에게 납득시켰다고요. 아시겠어요?” 그녀는 웃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는 분명 확고했다.

    “저는 당신에게 저를 납득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저는 당신에게 당신 자신을 납득시키게 하려고 노력하죠.”

    징 쳉(Zing Tsjeng)
    포토그래퍼
    클로스 필름스(Kloss Films)
    스타일리스트
    데나 지아니니(Dena Giannini)
    헤어
    유세프 윌리엄스(Yusef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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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너 헬론 프로덕션(Honor Hellon P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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