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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정이라는 확장자

2023.02.20

by VOGUE

    예수정이라는 확장자

    배우 예수정은 삭제되거나 생략되었던 여성의 서사를 돌려놓고 있다.
    40년을 무대에서 보낸 그녀는 콜럼버스처럼 인간을 탐험한다.

    <부산행>과 <신과 함께-죄와 벌>이 연이어 개봉했을 때 영화계는 예수정이라는 새로운 어머니의 탄생을 반겼다. 사랑과 헌신만 남긴 채 다른 감정은 하얗게 증발시켜버린 듯한 예수정을 보며 우리 역시 증발한 줄 알았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헌신의 초상화로서 예수정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집착으로 비틀린 어머니(<행복의 나라>), 피도 눈물도 없는 재벌 회장이자 어머니(<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등으로 어머니상을 확장시키더니 매듭장(<공항 가는 길>), 정년 퇴임을 앞둔 교사(<블랙독>) 등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 캐릭터의 가지를 뻗어나갔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놀라곤 했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장 회장과 <신과 함께-죄와 벌> 어머니가 같은 배우라고요?”

    최근 몇 년 사이 여성 캐릭터가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예수정은 영화나 드라마가 생략하거나 지워버리며 돌보지 않았던 나이 든 여성의 삶을 복기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자식 대신 죽거나 며느리를 괴롭힐 시간에 일을 하고 돈을 벌며 매일을 살아간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 삶은 어떻게 될지 궁금했지만 조력자가 아닌 모습을 극에서 찾아보긴 힘들었다. 예수정은 온전한 서사를 가진 나이 든 여성을 보여줌으로써 다양성이라는 당연한 가치를 더한다. 그녀는 여자들의 삶의 마지막 퍼즐의 대변자다.

    극 중에서 끌어안은 여자들처럼 예수정으로부터는 이상하리만치 시대가 느껴지지 않는다. 반짝거리는 은발은 공상과학영화적 느낌마저 든다. 툭 떨어지는 베이지색 코트에 비슷한 채도의 머플러를 두르고 <보그> 스튜디오로 들어온 예수정은 외투를 의자에 걸쳐놓으며 말했다. “오늘은 저를 소품이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보그> 사무실에서는 데님 팬츠와 옥스퍼드화를 즐겨 착용하는 예수정의 평소 스타일에 대해 감탄이 오가곤 했다.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문장을 새긴 디올 티셔츠를 입고 촬영한 어느 잡지 화보는 정점이었다. “제가 그 셔츠를 입고 찍겠다고 했어요. 의미를 넓히기 위해 ‘we should all be’ 아래는 잘라 찍자고 했죠.” 데님 팬츠와 티셔츠는 예수정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이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아이템이자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아이템. 마지막 사진에서 예수정은 제나 로우랜즈가 프린트된 펜디 티셔츠와 지퍼가 달린 가죽 팬츠, 스트랩 힐을 직접 골랐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예수정과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복잡한 인물들을 가장 탁월하게 연기한 배우 제나 로우랜즈의 고집스러운 실루엣이 한 프레임에 담겼다. 얼마 전 지방시가 선보인 샬롯 램플링과 마크 제이콥스의 캠페인 영상이 떠올랐다. 연기 수업 중 마크 제이콥스가 “나는 샬롯 램플링이다”라고 소리쳤을 때 스트라이프 재킷과 버뮤다 팬츠를 걸친 1946년생 샬롯 램플링은 대꾸한다. “아니요. 당신은 절대로 될 수 없어요.” 예수정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고유성은 영원성을 담보하고 우리는 그런 존재에 목말라 있다.

    니트 드레스는 오프화이트(Off-White),
    네크리스는 르이에(Leyié), 체인 브레이슬릿은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부츠는 자라(Zara).

    <침입자>에서 엄마 윤희 역할을 연기합니다. 잘못의 근원지를 떠나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죄책감이 있을 법한 인물입니다. 어떤 점이 눈길을 끌었나요.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었어요. 한강의 다리를 지나는 길에 ‘누구를 찾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요. 외국에 나갔다가 15년이 지나 돌아왔는데도 계속 걸려 있어요. 플래카드를 지날 때마다 아이를 찾는 부모님에 대한 감동이 있었고 짠했어요. 살기 바쁘니까 포기할 수도 있는데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었어요. 막연히 기다리는 건 기다리는 게 아니라 세월이 갈 뿐이죠. 되찾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 기다림이지요.  그런 기다림에 대한 해석이 좋았어요. 또 하나는 사회적으로 봤을 때 생각지도 않은 침입의 요소가 인간을 파괴하는 일면이 강렬했어요.

    최근 <허스토리>,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등에서 독보적 캐릭터를 보여줬지만 꾸준히 누군가의 어머니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를 연기하며 어머니에 대해 깨달은 점은 무엇인가요.
    공통적으로 ‘어머니는 가만히 기다려주고 포용해주는 존재구나’라고 느꼈어요. 과거의 저는 ‘하지 마’ 하고 야단치는 존재였는데 작품 속에서 만난 어머니들은 많이 참고 인정해줬죠.

    우리 사회가 어머니에게 바라는 점 아닐까요. 내가 만난 어머니는 성장한 자식의 엄마였기 때문에 포용해주지만, 열 살까진 부모 책임이라고 해요. “매를 절약하면 아이를 망친다”는 영국 속담도 있죠. 너무 안 가르쳐서 지금 아이들은 독재자가 되어 있더라고요. 유아독존의 세계라면 괜찮지만 우리는 여럿이 어울려 살아야 하니 질서도 가르쳐야죠.

    실제로 엄한 어머니에 가까운가 봅니다.
    엄했고 질서를 강요하던 엄마였어요. 그리고 아이가 자주적이어야 했기에 많이 도와주지도 않았어요. 두 가지 개념에서 아이들이 좀 괴로웠죠. 일면 애들이 사회에 누를 끼치지 않고 살겠다는 게 보여서 좋고, 다른 한편 엄마의 교육 방침 때문에 사회에서 손해를 많이 보겠구나 싶죠.

    <침입자>는 스릴러 영화입니다. 스릴러 장르의 미덕은 무엇인가요.
    이게 뭐지? 다음에 무엇으로 연결되는 거지? 쉬지 않고 자꾸 두뇌를 쓰게 하죠. 우리는 일부러 머리 좋아지게 하기 위해 수학 공부, 게임도 하는데 스릴러가 그 역할을 하지요. 스릴러는 두뇌의 헬스클럽이에요.

    좋아하는 장르인가요.
    아니요. 별로요(웃음). 너무 구태의연해서 말하기도 창피하지만 철학성을 갖고 있는 작품을 좋아해요. 인간의 근본적 문제나 인간으로서 넘어설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심오한 탐구. 그렇게 열심히 사는 인간과 사회가 부딪치는 지점에 대해 사색이 있는 작품을 좋아해요.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방영 후 팬덤이 생겼습니다. 전형성을 벗어난 장 회장 캐릭터에 열광했지요. 연기하는 입장에서 재미도 상당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가가 대사를 ‘찰지게’ 잘 썼어요. 저는 장 회장이 영혼 없는 말을 하지 않고 쓸데없는 미소도 짓지 않는 점이 좋았어요. 장 회장은 ‘너 그렇게 하면 자른다’라고 확실하게 얘기하지, ‘수고했어요’ 하고 뒤에서 자르지 않아요. 분명하게 자기 속을 드러내서 좋았어요. 그리고 적어도 성을 갖고 놀진 않아요. 대표적으로 남자애 벗겨놓고 그림 그리는 장면이 있었죠. 그림이 좋아 그리지 남자애와 관계 때문에 교태 부리는 게 없잖아요. 피사체일 뿐이죠. 이런 점에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죽 코트는 나체(Nache), 프린트 티셔츠는
    펜디(Fendi).

    팬들이 맡아주었으면 하는 캐릭터 트윗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사회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치는 전직 저널리스트라든지 밤마다 킬러로 변신하는 할머니 등이 있었어요.
    킬러라면 개념과 이유가 있어야 해요. ‘왜 죽이냐’에 대한 분명한 컨셉. ‘넌 바이러스니까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선 없어져야지’라든지 아주 편협하게는 ‘넌 내 딸을 강간했으니까 죽어야지’ 같은 이유. 아무 근본 없이 낮에는 사람 좋고 밤에는 킬러 같은 역할은 안 해요.

    구병모 작가의 소설 <파과>의 주인공을 맡아달라는 의견도 쏟아졌습니다. 60대 여성 킬러 역할이죠.
    팬한테 그 책을 선물 받았어요. 마음에 들었어요. 명상을 하든 법당에 올라가 예불을 드리든 사람을 죽이든 철저히 수행에 성실하다는 것. 그런 인물이 마지막에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직접 투쟁하고 다치는 것. 거의 그리스 비극의 영웅이죠. 기가 막힌 작품이었어요. 60세면 많은 부분을 포기하기 시작하는 나이일 수 있어요. 나쁜 의미로는 기력이 빠져서, 좋은 의미로는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 하며 두루뭉술한 선을 긋는 나이. 자기개념을 분명히 가지고 마지막까지 인생을 운전하는 것이 좋았어요.

    최근 나이 든 여성을 극 중에서 보여주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직접적으로 느끼나요. 그럼요. 제가 맡은 역할부터 조폭의 엄마라든지 피아노 조율사라든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그 나이까지 직업을 갖는다는 건 삶을 놓지 않는다는 의미예요. 계속 다양하게 나올 것 같아요.

    <블랙독>에서 교장실에서 나누는 마지막 인사가 인상 깊었습니다. 평생 한 가지 직업을 갖고 성실하게 살아왔다면 그 시대를 함께해온 동료에게 담백하게 인사를 건넬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나의 비밀을 들켰군요. 내 마음도 그거였어요.

    <모두의 거짓말>에서 부검의 역할도 무덤덤했지만 단단했습니다. 그 인물이 본래 제 모습에 상당히 근접해요. 그 작품 할 때는 정말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었어요. 별로 부드럽지 않고 말도 돌려서 안 해요. ‘잠깐만, 핵심이 이거야? 그래 알았어. 해달라고? 알았어. 할게. 안 하면 안 돼? 알아서 할게. 가.’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어요.

    등장하는 시간이 길든 짧든 연기하는 인물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곤 합니다.
    조연 때는 그 상황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해요. 그 상황이 없다면 이 드라마에서 맥이 빠지는 부분을 공부해 가야죠. 빼도 되는 장면이 되면 안 되니까 그 장면의 역할을 많이 공부해야 하는 피로감은 있어요. 짧게 촬영해서 좋지만 공부하는 시간과 촬영 시간을 합하면 마찬가지예요. 길게 나가는 역할은 작가들이 써주는 대로 기류를 타고 가다 보면 뭘 해도 그냥 흘러가요. 하지만 짧게 나가는 부분에는 주인공의 악센트만 있어요. 강조점을 잘 알고 들어가줘야 그 장면이 탁 살아요. 그 장면이 살면 주인공뿐 아니라 나까지 기억하게 되는 거죠. 이 장면이 빠지는 것과 빠지지 않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우리의 숙제예요. 농담으로 얘기해요. 우리는 여분의 빛을 받는 거라고. 여분의 빛 속에서 살아남는 역이라고.

    지난해 장 회장 역할이 회자됐지만 개인적으로 영화 <행복의 나라>의 어머니 역할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장 회장보다 훨씬 더 집념이 강하니까요. 약간 일본 영화 같지 않아요? 그로테스크하죠. 남자 주인공에게 “우리가 가고 나면 제사 네가 지내야지?” 했을 때 장르가 바뀌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죠? 너무 골몰하면 사람이 그렇게 돼요. 아들을 너무 사랑해 두루뭉술한 선함으로는 안 되고, 칼날을 들이대야 하는 인물이었어요. 나도 옛날에 애들 키울 때 그랬어요. 군것질 못하게 하고, 9시면 무조건 소등 그리고 5시면 일어나라고 음악 틀었어요. 그걸 견뎌낸 우리 애들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성숙했을 것 같은데요? 다만 사랑을 표현하는 편이 아니었나 봐요.
    우리 시대는 좋은 감정은 감춰야 한다는 억압이 있었어요. 거기다가 엄마 역할을 잘해야 한다는 엄청나게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었죠. 그러다가 갑옷을 내려놓았을 때 진짜 좋았어요. 아이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예를 들면 대학교 들어가서 남들은 밤 12시 되면 들어와야 된다 그러는데 저는 아무 때나 들어오는 대신 수업 시간에 맞춰서 정확히 집을 나서라고 했어요.

    사랑보다 책임감이 크던 시간이군요.
    누군가가 나한테 “맥박까지 참는다”고 표현했어요. 독일에 있을 땐 이틀에 한 번 잤어요. 날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처리하려면 시간이 모자라니까. 지금보다 훨씬 말랐죠. 잠을 못 자니까 예민했고요.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원칙 아래 커리어를 이어온 인상도 받았어요.
    연기에 관심이 있어 배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우리 엄마가 배우였기 때문에 호기심이 없었으니까요. 흠모하는 연출가이자 극작가 브레히트의 “극장은 시민의 계몽 공간”이라는 말에 연극을 시작했어요.

    테일러드 드레스는 레하(Leha), 싱글 이어링은 르이에(Leyié), 애니멀 프린트 부츠는 지안비토 로시(Gianvito Rossi).

    반면 어머니이신 배우 정애란 여사는 딸이 배우가 되는 걸 반대하셨죠.
    한국에서는 대접받지 못한다고 하셨어요. 옛날 분들은 배우를 광대라고 했잖아요. 선생님이 되라고 하셨는데 전 몰래 나가 새벽에 연극 연습하고 공연 올리고 공부는 공부대로 하는 이중생활을 했어요. 그때는 배우가 아니라 작품이 먼저였어요. 대한민국 서울 땅에서 이런 작품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동시대인들과 공감하는 데 관심이 컸어요.

    사명감에 가까웠나요.
    아니요. 소박한 설렘은 있었죠. 진흙탕에 깨끗한 물 한 방울 떨어뜨린다고 새 물이 되냐고 그래도 농도는 달라진다고 믿었어요.

    지금도 작품에 접근하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나요.
    마찬가지죠. 그래서 무명 배우인가 봐요. 이제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인물을 봐요. 사람이라는 전제 속에서 내가 궁금한 점 혹은 한 번쯤 눈여겨보고 싶었던 점이 보이면 돼요. 아무도 못 봐도, 단 한 명이라도 그 안에 비친 상처, 상처 안에 있는 생살을 봐주면 고마운 거고요.

    배우는 지겨울 수 없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계속 탐험이죠. 우리는 콜럼버스예요.

    어머니, 형부, 딸까지 연극/영화계 종사자예요. 다른 집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 있나요.
    진지하게 긴 시간 대화를 나눌 때는 오직 이 장르에 대해 얘기할 때뿐이에요. 그 밖에는 별로 얘기가 없어요. 밥 먹을까? 시간 없는데? 다음에 만날까? 이 정도예요. 그러다가 연극과 영화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아까 시간 없다고 해놓고 3~4시간씩 치열하게 얘기해요.

    문학을 공부한 경력은 배우로 활동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굉장히 도움이 돼요. 제가 인생을 다양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문학을 통해 세상을 힐끗힐끗 본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젊은이들은 잘 들어보지 못한 단어, 아스라이, 사무치게처럼 굉장히 촌스러운 단어를 시나 소설에서 봤을 때 비수가 되죠. 사무치게 훅, 그냥, 핏덩어리처럼 확 살아나지요. 정말 문학은 대단합니다.

    좋아하는 시인이 궁금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릴케 좋아해요. 우리 시인 중에서는 이문재 씨. 독하게 써요.

    곧 연극 <화전가>의 막이 오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6·25까지 그 시대에 우리 여인들이 의연하게 뜨겁게, 심지어 섹시하게 삶 속을 뚜벅뚜벅 걸었다는 것. 꽃을 보고 행복해하고 함께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고 삶 속의 아름다움을 끈질기게 두르고 왔다는 얘기예요. 극에는 아홉 명의 여자만 나와요. 시대를 말하죠. 아버지, 오빠, 남편, 아들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죽었거나 빨갱이로 몰려 감옥 들어가 있었던 기간이죠. 남자가 없어도 의연하게 삶을 존중했던 여자들의 얘기가 아주 편안하게 그려져요.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찾는 태도가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긍정적 태도와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죠. 배삼식 작가가 참 잘 썼어요. 센 얘기를 싹 감추어놓았어요. 예를 들면 총 얘기를 하지만 총은 나오지 않아요. 피, 대포, 시체 얘기를 하는데 커피, 케이크, 요구르트 등이 나오죠. ‘댄스 위드 미’ 하며 신나게 춤을 추고 탁 돌아봤는데 나랑 같이 춤췄던 사람이 죽어 있는 데서 시작하죠.

    <화전가>에서는 환갑잔치 대신 화전놀이를 떠납니다. 1955년생으로 예순이 넘은 지금, 나이를 의식하면서 지내나요.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하고 다니겠어요. 주책맞게.

    우리는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는 사회에 살고 있어요.
    젊으니까 그렇겠죠? 그런데 쉰 넘어가면 받아들여야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터널의 끝이 보여요. 젊을 땐 왜 터널이 안 끝나는지 깜깜해하지만 좀더 지나면 여명이 보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일 역시 레이스와 같아 이탈자가 생깁니다. 계속 새로운 창작자, 배우들이 유입되고 다른 세대와 섞여 일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어떻게 통과해왔나요.
    정말 좋아요. 전생 같아서. 세 개의 삶을 산 것 같은 느낌이에요. 연출자들이 많이 바뀌니까 300년을 한 것 같고 정말 재미있어요.

    대선배를 어려워하는 후배는 없나요.
    별로 안 어려워하던데요? 후배에게 조언하려면 다신 안 만나야죠(웃음). 모두 함께 작업하는 동료예요. 외국어는 높임말을 안 해서 참 좋은 것 같아요. 더 허심탄회하게 친구가 되고 싶어요.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를 좋아해요. 너무 반듯한 제자의 경우 마음은 알지만 미안해요. 백로한테 검정 물을 묻히는 것 같아서. 예술 근처에 있는 장르에서 위아래를 따지면 아무 일도 안 되죠.

    평소 아름답게 느끼는 것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찾는다기보다는 놓치지 않는 거예요. 우린 늘 아름다움 옆에 살고 있거든요. 하늘, 나무, 새, 아주 많죠. 공기까지도. 사실 밥알의 윤기도 설레잖아요. 나의 본능하고 맞닿아 있는 거예요.

    요즘은 정신이 신체를 지배한다는 말보다 신체가 정신을 지배한다는 말에 더 공감합니다. 어떻게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해 지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나는 게 최고의 건강법이에요. 우리 집은 엥겔계수가 높은 집이었어요. 즉 삼시 세끼가 보약이었죠. 제 세대로 넘어와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요. 서울
    예대 선생으로 나갈 때도 저녁 연습은 안 해요. “얘들아, 저녁에 술집에서 예술이 어떻고 이런 거 하지 마. 쓸데없는 얘기만 반복하게 돼. 그러면 뇌가 활성화되는 아침에 못 일어나니까 그냥 자. 내일 아침에 태양 광선을 보면 새로운 날이 건네는 말이 있어. 그걸 놓치지 않으려면 자.” 그래서 아침 7시에 연습을 시작했어요. 수업은 9시 반인데 7시에 출석을 불렀죠.

    삶에 자극을 주는 요소가 궁금합니다.
    역시 태양 광선이죠. 비 싫고 눈도 싫어요. 비 내리는데 태양이 있으면 오케이. 춥고 눈 내리는데 태양이 있으면 오케이. 그리고 군데군데 단어, 환기가 되는 색깔… 이 정도면 충분해요.

    프린트 티셔츠는 펜디(Fendi), 지퍼 디테일 팬츠는 롱샴(Longchamp), 스트랩 힐은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니트 드레스는 오프화이트(Off-White),
    네크리스는 르이에(Leyié), 체인 브레이슬릿은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레더 부츠는 자라(Z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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