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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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의 허와 실

2020-04-14T11:23:59+00:00 2020.03.23|

건강과 번영의 여신 ‘살루스’, 장수를 기원하는 이탈리아 건배사 ‘살루테’,
태초의 인류 ‘수메르’의 근원, 바로 그 소금의 허와 실.

대한민국만큼 소금에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나라가 또 있을까? ‘짜게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는 밥상머리 교육에도 김치 없인 못 살고, 찬 바람이 불면 뜨끈한 짬뽕 한 그릇이 간절하다. 꽃샘추위가 맹렬하던 지난달, 얼큰한 버섯전골 냄비를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안에 얼마나 많은 소금이 들어 있을까?’

소금을 향한 나의 집착은 그렇게 시작됐다. 준비물은 염도 측정 키트와 애플리케이션 ‘솔투조이(Sal2Joy)’. 신용카드처럼 생긴 측정 키트에는 작은 금속 패치가 붙어 있는데, 위에 음식물을 올린 뒤 애플리케이션을 작동하면 염도가 자동 측정되는 원리다. 소금과의 공생(혹은 전쟁) 첫날 아침 메뉴는 생과일 스무디. 우유에 바나나, 블루베리 한 줌을 갈아 넣은 웰빙 음료의 염분 함량은 0.1g/100ml로 집계됐다. 우유 속 나트륨이 측정된 듯하다. 500ml 잔에 가득 부어 들이켰으니 도합 0.5g. 점심 식사로 먹은 짬뽕 한 그릇은 무려 11g을 찍었다. 두 끼 만에 이미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성인 하루 소금 섭취량 5g을 훌쩍 넘어서다니! 물론 식단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매일 내 몸에 불필요한 소금이 쌓이고 있다는 사실만은 너무도 분명했다.

정설대로라면 5년 안에 나의 허리 라인은 증발하고 20년 후 관절염과 고혈압 약을 달고 살 것이다. 이 모든 원흉은 체내 노폐물 배출을 억제하고 혈압을 높여 관절과 심장에 무리를 주는 소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뇌졸중과 심근경색의 주요인인 고혈압을 국민 병처럼 앓아온 한국은 소금에 그 죗값을 물었다. 2012년 출범한 정부 산하기관 ‘나트륨 줄이기 운동본부’는 ·· 급식을 저염식으로 재편했고, ‘저염식 신드롬’ 아래 ‘저염 도시락’, ‘저염 다이어트’ 등 연관 검색어가 포털 사이트에 도배됐으며, 저염식 레스토랑은 물론 관련 서적의 매출이 급등했다.

그렇다면 저염에서 무염까지 소금에 울고 웃던 한국인들은 얼마나 건강해졌나. 국립보건연구원 통계를 보자.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심혈관계 의약품 매출은 2,275억원 증가했고 고혈압,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을 포함한 4대 만성 질환 환자 역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하물며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예상한 30대 젊은 고혈압 환자 절반 이상이 확진 판정 전. 혹시 우리는 소금에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있는 건 아닐까?

미국 가정 의학 전문의이자 100만 구독자를 거느린 스타 유튜버 켄 베리는 “소금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유튜브와 저서 <Lies My Doctor Told Me>를 통해 소금과 건강의 불협화음을 적극 반박했다. “90년대 소금이 고혈압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이 황당무계한 루머가 ‘노시보 효과’에 사로잡힌 건강염려증 환자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이 박혀버렸죠.” 동국대 심장혈관센터 이무용 교수 역시 건강 도서 <짠맛의 힘>에서 “소금 3g 섭취 시 혈압은 고작 1mmHg 상승해 매일 30~40mmHg을 오르내리는 데 비하면 정도가 매우 경미한 수준”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일부 전문가의 주장으로 치부하기엔 이를 뒷받침할 연구 결과가 몹시도 풍족하다. 미국인 7,000만 명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한 의학 저널 <The American Journal of Medicine>은 소금을 다량 섭취할수록 심장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낮아진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미국식품의약국(FDA), 미국농무부(USDA), 미국심장협회(AHA)와 손잡고 고혈압에 대응하는 나트륨 저감화 가이드라인을 선포한 미국의학학술원(IOM)은 2014년 어느 보고서를 통해 저염식이 건강에 이롭다는 과학적 근거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소금을 옹호하고 나섰다.

“짠 음식이 위궤양을 유발한다는 논란은 어불성설입니다. 소금을 천연 방부제로 활용한 음식 속 헬리코박터균, 즉 박테리아가 장에 감염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됩니다. 소금의 짠맛보다 소금 채취 과정에 동반되는 미세 플라스틱과 중금속이 문제라면 문제죠.”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동재준 교수는 과유불급의 미덕을 강조했다. “약학서 <본초강목>에는 ‘소금이 소화를 돕고 위장을 튼튼하게 한다’고 명시되어 있어요. 이처럼 동양의학은 수백 년 전부터 소금의 장점을 강조해왔습니다. 바닷소금에는 요오드 같은 천연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죠. 그렇지만 다량 섭취하면 탈수 증상을 일으키고 신장 계열이 약하다면 문제는 심각해지죠.”

1930년대 하버드 의과대학 학장을 지낸 시드니 버웰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의학도로 습득한 지식의 절반은 10년 이내 거짓으로 판명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금은 여전히 미지의 결정체이자, 생명 유지에 필수 불가결한 자연의 산물이다. 근육의 수축과 이완, 신경세포의 신호 전달 등 원활한 신체 활동을 위해서는 혈액에 약 0.9% 농도의 나트륨이 필요하다. 또 필요 이상의 소금이 몸 안에 들어오면 소변이나 땀으로 배출하고 물을 더 마시도록 신호를 보낸다. 핵심은 과도한 통제가 아니라, 조화와 균형인 것이다.

자, 이제 먹을 상황이라면 맛있게 먹자. 요리 연구가 홍신애는 불순물을 걸러내 풍부한 감칠맛을 자랑하는 ‘태안 자염’을 추천했다. 8년 동안 간수를 빼 단맛이 도는 ‘태평염전 토판염’과 정제염처럼 입자가 곱고 한 번 구워내 혀끝에 기분 좋은 짠맛이 맴도는 ‘육형제 황토 소금’도 있다. 이 기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그야말로 평생 먹을 소금을 맛보고 또 먹었다. 한반도 곳곳에서 공수한 천일염은 물론 히말라야 핑크 소금으로 유명한 ‘리브 솔트’ , 프랑스 청정 지역에서 채취한다는 ‘플뢰르 드 셀 드 게랑드’ ,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해풍으로 말린 ‘일 보스케토 천일염’까지. 첫맛은 혀가 알싸할 만큼 짰다. 그러나 끝 맛은 쓰거나 달거나, 심지어 개운하기도 했다.

소금의 어원은 건강과 번영의 여신 ‘살루스(Salus)’다. 대체 누가 짠맛을 곡해했나. 저염의 굴레를 벗는 순간 당신의 혀에 미각의 신세계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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