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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THE DREAM

2023.02.20

by VOGUE

    LIVING THE DREAM

    16세기 영국 왕실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쉬퍼 가족과 미술관을 탈출한 작품, 정체불명 영혼과의 기묘한 동거.

    벽난로 앞에 앉아 반려견과 휴식을 취하고 있는 클라우디아 쉬퍼. 드레스는 알투자라(Altuzarra), 레이스업 플랫 슈즈는 아쿠아주라(Aquazzura).

    1세대 슈퍼모델, 원조 게스 걸, 칼 라거펠트의 뮤즈, 수많은 <보그> 커버를 장식한 여인 그리고 영화감독 매튜 본(Matthew Vaughn)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 이 모든 수식어는 클라우디아 쉬퍼(Claudia Schiffer)로 향한다. 20년 전, 금발의 독일 모델과 무명의 영화 연출자가 정원 진입로만 800m에 달하는 대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준비 없이 불청객을 맞이한 집주인에게 ‘이 집, 정말 마음에 들어요!’라고 말했죠. 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연유로 이 집을 원하는지 몰랐어요. 정말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저는 거침없이 초인종을 누를 거예요.” 이들의 진심 어린 설득은 몇 달간 이어졌고 2002년 5월, 클라우디아와 매튜는 그들의 첫 만남처럼 한눈에 사랑에 빠진 고고한 저택 앞마당에서 120명의 하객을 불러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키 큰 가로수가 지키는 정원 끝에 자리한 메인 하우스.

    런던에 신혼집을 마련한 부부는 한동안 이곳을 주말 별장으로 사용했다. 그러다 몇 해 전, 훌쩍 큰 세 아이 캐스퍼(Caspar), 클레멘타인(Clementine), 코지마(Cosima)를 위해 동물들과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보금자리로 새롭게 단장했다. 개, 고양이, 돼지, 양까지 동물 농장에 버금가는 친환경적 삶을 살고 있는 부부에게 가장 오랜 친구가 되어준 식구는 거북이다. “매튜와 데이트를 시작하기 전이었어요. 지인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거북이를 키워보고 싶다고 말했죠. 그 한 마디에 매튜는 제 생일날 저희 집 문 앞에 선물이라며 거북이 한 마리를 놓고 갔어요.” 사랑의 큐피드가 되어준 그 거북이는 여전히 행복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15만㎡(65만 평) 드넓은 대지에 우뚝 솟은 이 집의 역사는 1574년 시작됐다. 침실만 무려 14개에 이르는 이 대저택의 첫 번째 소유주는 헨리 8세를 찬양하며 건물 외관에 크고 작은 H 형태 장식과 문양을 새겼다. 엘리자베스 1세가 이곳에 잠시 머물렀을 때 차가운 햄이 식탁에 올라 ‘콜드햄 홀(Coldham Hall)’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가톨릭 신자들이 핍박받던 16세기에는 절박한 사제들에게 지하실을 은신처로 내주기도 했다. 여전히 마룻장 아래 보존된 그곳은 이제 호기심 가득한 세 아이의 비밀 아지트다.

    그레이슨 페리(Grayson Perry)의 붉은 동판화가 시선을 사로잡는 안락한 응접실.

    부부가 애용하는 보르달로 핀헤이로, 데일스포드 오가닉(Daylesford Organic) 그릇과 벨레로이앤보흐(Villeroy&Boch) 커틀러리를 세팅한 식탁. 패트릭 드마쉘리에 사진의 거대한 사자가 그곳을 지키고 있다.

    오래된 목재와 대리석을 사용한 부부의 고급스러운 욕실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베닝엔 로이드(Benningen Lloyd)의 솜씨.

    클라우디아는 집에 깃든 역사를 존중하고자 최대한 형태를 보존하며 천천히 인테리어를 손보고 있다. 대부분의 침실에 나무, 꽃, 전원 풍경 패턴의 클래식한 벽지를 사용했고 클라우디아와 매튜의 본가에서 가져온 가보로 집 안 곳곳을 장식했다. “저희의 과거가 깃든 물건이죠. 우리 가족이 이 집의 역사 한쪽에 자리했으면 합니다.” 클라우디아가 응접실에 놓인 쉬퍼 가문의 참나무 문갑과 남편의 부모님 댁에서 가져온 방패 문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품 있는 인테리어와 대조를 이루며 벽면을 가득 메운 현대미술 작품은 예술 애호가 클라우디아와 매튜의 취향.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같은 동시대 거장들의 작품이 공생하고 있다. 클라우디아가 최근 마음을 뺏긴 것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아이패드로 영국 전원 풍경을 남긴 작품이다. “우리가 뿌리내린 이곳을 보여주는 것 같아 집에 들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녀가 모델 세계에 갓 입성하고 파리 마레 지구에 거처를 마련할 무렵, 내성적인 소녀 클라우디아는 친구들과 어울려 파티에 가는 대신 거리에 즐비한 갤러리를 탐방하는 것이 취미였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앤디 워홀(Andy Warhol) 전시에 갔다 훗날 성공하면 그의 작품을 모조리 사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10년 뒤, 꿈에 그리던 앤디 워홀의 ‘카무플라주(Camouflage)’를 집에서 감상할 수 있었죠.”

    로로 피아나 레드 캐시미어 소파와 존스톤스 오브 엘진(Johnstons of Elgin), 에르메스 패브릭으로 감싼 안락한 의자로 채운 영화 관람실. 루치안 프로이트와 피터 비어드(Peter Beard)의 흑백 작품이 벽면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안타깝게도 몇 년 전 이 집에 큰불이 났다. 불이 집 안 전체로 번질 경우를 대비해 어떤 작품을 챙겨야 할지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부가 동시에 달려가 지켜낸 것은 포토그래퍼 애슈칸 사히히(Ashkan Sahihi)가 촬영한 세 아이의 사진과 아기 코지마의 모습이 담긴 포토그래퍼 아담 퍼스(Adam Fuss) 사진 그리고 ‘Marry Me’와 ‘Yes’가 적힌 에드 루샤(Ed Ruscha) 작품이었다. 전자는 매튜가 클라우디아에게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고 후자는 클라우디아의 대답이었다.

    에트르 세실×클라우디아 쉬퍼 캡슐 컬렉션 3.

    에트르 세실×클라우디아 쉬퍼 캡슐 컬렉션 3.

    클라우디 버터플라이 바이 클라우디아 쉬퍼 에디션.

    부부의 책상이 나란히 놓인 서재는 클라우디아와 매튜가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 중 하나다. 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서재에서 차를 나눠 마시며 함께 일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클라우디아는 이곳에서 30년간의 모델 활동을 담은 <클라우디아 쉬퍼>를 집필했고, 남편 매튜 본의 대표작 <킹스맨: 골든 서클> 책임 프로듀서 임무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샤넬 J12 워치 캠페인 얼굴로도 활약 중인 그녀가 최근 몰두한 프로젝트는 1960~1970년대 레트로 감성을 살린 ‘에트르 세실(Être Cécile)×클라우디아 쉬퍼 캡슐 컬렉션’이다.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스웨터와 니트, 티셔츠로 구성되고 6월, 에트로 세실 글로벌 홈페이지(etrececile.com)에서 공개된다.  7월에는 자연 친화적 디자인으로 유명한 포르투갈 도자기 브랜드 ‘보르달로 핀헤이로(Bordallo Pinheiro)’, ‘비스타 알레그레(Vista Alegre)’와 함께 클라우디 버터플라이 바이 클라우디아 쉬퍼(Cloudy Butterflies by Claudia Schiffer)’ 리미티드 에디션 론칭을 앞두고 있다. 클라우디아가 나비, 구름 등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꽃병과 세라믹 작품은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만날 수 있다.

    쉬퍼가 어린 시절부터 모은 인형들은 이제 셋째 코지마 차지다. 아기자기한 패턴의 소파와 어린이용 의자는 각각 크리스토퍼 파(Christopher Farr), 내메이 새메이(Namay Samay)에서 공수한 천으로 제작했다.

    사랑스러운 둘째 클레멘타인의 선택은 뷰 던(Beau Dunn)의 바비 인형 초상화와 루크 스티븐슨(Luke Stephenson)의 아이스크림 그림.

    사랑스러운 둘째 클레멘타인의 선택은 뷰 던(Beau Dunn)의 바비 인형 초상화와 루크 스티븐슨(Luke Stephenson)의 아이스크림 그림.

    첫째 캐스퍼의 방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의 푸른 벽지로 꾸몄다. 인테리어 포인트인 피아노는 분위기에 맞춰 선명한 주황빛으로 도색한 것. 클래식한 의자는 로버트 마우스맨 톰슨(Robert Mouseman Thompson).

    콜드햄 홀의 고요함이 깨지는 순간이 있다. 주말이면 ‘클라우디아 랜드’로 변신하는 이곳은 하루 종일 그들의 절친한 지인들과 함께 크리켓, 수영, 테니스, 반려견 산책 등 야외 활동으로 바삐 돌아간다. 저녁에 어른들은 스크린 룸에서 영화를 감상하거나 응접실 벽난로 옆에서 카드 게임을 즐기고 아이들은 잠들기 전까지 놀이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집 안 대부분의 가구는 탄탄하게 누빈 면이나 코듀로이처럼 실용적인 소재로 이루어진다. “저희는 그다지 격식을 차리며 살지 않아요. 모든 인테리어는 가족과 친구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고안했죠. 그래야 개들이 마음 편히 돌아다니고 아이들이 손에 잼을 묻혀도 전전긍긍하지 않을 것 같더군요.” 가족과의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클라우디아와 매튜는 아무리 바빠도 꼭 지키는 철칙이 있다. “주말에는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어요.” 평소 철저한 식단 조절로 몸매와 건강을 지키는 부부지만 이 시간만큼은 예외다. 클라우디아는 파이와 푸딩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식탁을 차린다고 말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취재 막바지에 클라우디아와 매튜는 장작을 피운 따뜻한 난로 앞에서 와인 한 잔을 건네며 생각지 못한 장르의 이야기를 꺼냈다. “조금 전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요?” 500년도 더 된 집이니 그런 소리가 들릴 법도 하다는 반응에 클라우디아가 이내 낯빛을 바꾸고 말했다. “갑자기 음악이 흘러나오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죠?” 일순간 정적이 흐르자 특유의 우아한 손짓과 함께 겁먹지 말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 반복돼 집으로 심령술사를 부른 적도 있어요. 거실과 방을 둘러본 그녀는 실제로 다양한 영혼이 이곳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설명했죠. 다행히 모두 온화한 심성을 지녔으니 걱정 말라고 하더군요.” 호락호락하지 않은 패션계에서 성공을 이루고 전 세계가 열광하는 액션 영화를 제작한 부부는 이 상황이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집의 오랜 주인들이 클라우디아 가족을 지켜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Jane Keltner De Valle
      포토그래퍼
      Simon Upton
      스타일링
      Lawren Howell, Lucie McCul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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