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내막증이 두렵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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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내막증이 두렵지 않다고?

2020-05-08T16:40:11+00:00 2020.05.04|

소리 없이 엄습하는 고통. 자궁내막증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풋풋한 사회 초년생이건 연륜의 지혜로 사는 지천명이건 누구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때를 직감한다. 서른에 접어들던 해, 내 몸 한구석 어딘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당시 그 싸늘한 공포감을 차마 입 밖으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굉장한 두려움에 압도된 것만은 사실이다.

맨체스터의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 백화점 화장실에서 초경을 경험했다. 열한 번째 생일이었다. 그날 이후 난 한결같은 증상에 시달렸다. 매달 뼈를 깎는 듯한 고통과 끔찍한 메스꺼움에 관절마저 약해져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한 축 처진 느낌으로 10대 시절을 연명했다. 의사는 월경통(‘생리통’의 전문적 표현)에 시달리는 소녀를 보며 안타까워했고 강력한 진통제를 처방해주곤 했다. 마침내 20대엔 잘 맞는 진통제를 찾았고 덕분에 생리 기간에도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 생리는 여전히 나에게 두려운 대상이긴 했지만 조금이나마 통제할 결정권을 갖게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문제를 마주한 것은 결혼 후 임신을 시도할 때였다. 6개월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았고, 1년이 지나도 다를 게 없었다. 우리 부부는 검사를 받았고 딱히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18개월 동안 소식이 없었다. ‘원인 불명의 불임’이라는 석연치 않은 이름표가 우리 부부에게 붙었다. 그러는 사이 생리는 더 이상 진통제로 막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잊고 지낸 그날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미끄덩하고 붉은 피가 비치는 생리의 시작은 임신 실패를 뜻하기 때문이다. 생리가 시작될 때마다 좌절에 빠진 나는 한 달의 열흘을 고통스럽게 누워 있었다.

자궁, 생리와 관련된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 ‘자궁내막증’이라는 단어와는 썩 친숙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불임’을 고백한 몇 안 되는 사람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친구와 아침 식사를 하면서 우연히 그 단어에 대해 알게 됐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푹신한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내게 친구는 똑바로 앉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다. 몇 주 전 스톡홀름에서 휴가를 보낼 때도 아파서 걷지 못하고 줄곧 벤치에 쓰러져 있던 나는 친구의 걱정을 불식시키며 “생리 기간에는 제대로 앉을 수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설명했다.

친구는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실은 별일이라고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궁내막증에 대해 설명했다. 극심한 복부 통증이 주요 증상으로 매달 여성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야 하는 자궁의 안쪽 조직과 점막이 수년간 축적되어 장기에 달라붙는 것, 그리고 이것이 결정적으로 불임과 관련된 주요 문제를 야기한다고 말이다. 지난 통증으로 미루어볼 때 자궁내막증일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나는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증상을 찾아보던 중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월경통, 불쾌한 메스꺼움, 생리 기간에 발생하는 고통스러운 설사, 재앙 같은 난임 등 자가 체크리스트의 빈칸이 하나둘씩 채워졌다.

재빨리 움직여야 했다. 실력 있는 의사에게 진료를 예약했다. 자궁내막증 진단과 주요 치료법으로 사용되는 복강경 검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내막증 유무를 파악할 유일한 방법이지만 무엇이 발견되는지, 수술 필요 여부에 따라 몇 분 혹은 몇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가족들은 살면서 한 번도 수술을 받아본 적 없는 딸을 몹시 걱정했다. 성급하게 수술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도 했다. 그러나 수술대에 오른 뒤 2시간 반 만에 나는 자궁내막증을 앓고 있으며 진행 상태가 4단계 중 2단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과 방광이 내막 세포로 덮여 있지만 그나마 희소식은 난소나 나팔관은 괜찮다는 것이다. 만약 4단계였다면 임신에 필요한 장기가 내막 세포로 두껍게 덮여 있었을 것이다. 나팔관이 모두 막혀 있었다면 제거 수술이 훨씬 더 까다로웠을지 모른다. 다행히 레이저로 유해한 세포를 떼어낼 수 있었고 3개월간 몸조리를 하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자궁내막증의 원인에 대해 속 시원히 밝혀진 바는 없다. 자궁내막증을 치료하고 명확하게 처치할 방법을 아는 사람도 없다. 심지어 그 질환이 불임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다만 자궁내막증을 앓고 있는 수많은 여성이 임신하려고 고군분투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나 역시 더 이상 불임의 원인을 두고 이것저것 추측하지 않게 되어 한결 편안해지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창피했다. 결론과 해결을 명확히 도출해야 하는 언론인이라는 직업의 내가 스스로 질병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무지에서 오는 수치심이었다. 만약 우리 부부가 임신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푸릇푸릇한 젊은 시절을 엉망으로 만들어온 원인을 두고 전문가들에게 적극 도움을 청하지 못했고 결국 불임 상태로 지내온 지난 몇 년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20년간 딸의 몸을 파괴한 골칫덩어리를 마주한 엄마의 얼굴에 핏기가 싹 사라졌다. “나도 내막증을 겪었단다. 그런데 한 번도 제대로 진단받은 적이 없었지.” 엄마도 평생 생리할 때마다 고통이 극심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여성의 운명이라고 치부한 것이다. 엄마는 아이를 하나만 낳았지만 더 많이 낳고 싶었을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생리할 때마다 고통스러웠던 외할머니 역시 아이를 하나밖에 낳지 못했다. 그리고 출산 후 자궁절제술을 받아야 했다. 이렇듯 우리 여자들은 생리통이 자연적 순리이기에 인내해야 한다고 받아들인다. 이 불편한 시각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자궁내막증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극소수뿐이다. 집안 내력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되며, 적어도 가임기 여성 10명 중 한 명이 앓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다. 제대로 진단받기까지 평균 7년 반 정도 (나의 경우는 20년) 걸린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2018년 영국 공중보건국(Public Health England)이 발표한 획기적 연구가 많은 여성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성 기능 장애와 임신 문제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조사 대상 여성 7,367명 중 31%가 고통을 인정했다. 또 심한 생리 출혈, 요실금, 불임, 수월하지 않은 성관계를 겪으면서도 의사에게 진료를 받지 않는 여성들의 암울한 단면을 보여줬다. 불명예스러운 인식과 마주하기 힘든 두려움 앞에 서는 것, 결정적으로 엄마들처럼 고통을 그저 섹스 탓으로 돌리는 무지한 인식으로 절망의 구렁텅이가 예견된다. 생리는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동시에 여성의 삶에 존재하는 일상적인 리듬 중 하나지만 여전히 불편한 시선으로 인해 껄끄럽거나 부끄럽고 불결한 존재로 내비친다.

비록 속도가 더디기는 하지만 다행히 인식이 바뀌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의 열린 마음과 인터넷 덕분에 요즘 여성들은 서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영화감독 겸 배우인 레나 던햄이 인스타그램과 미국 <보그>를 통해 자궁내막증을 수년간 앓다가 자궁절제술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에 감정이 북받쳤다. 모델 알렉사 청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질환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곧 생리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 영국 교육과정을 강타할 것이다.

감사하게도 나는 행운아다. 정확한 진단 덕분에 우리 부부는 NHS(국민 건강 서비스)로부터 시험관 시술(IVF) 자격을 얻었다. 자궁내막증 수술 직후 6개월 이내에 자연 임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임신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시기다)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그리고 정말 믿기지 않지만 24개월 전에 아이를 출산했다. 여전히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아들과 같은 시기에 태어난 여자아이들이 ‘자궁내막증’이라는 진단을 받기까지 10년, 20년을 허송세월로 보내지 않기를. 신체의 변화에 귀 기울이고 수수방관하지 않으며 주체적으로,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여자들에게 자궁은 내 몸을 사랑할 수 있는 원천이자 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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