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스스’ 한혜연의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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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스스’ 한혜연의 성공기

2020-04-27T22:04:09+00:00 2020.05.06|

스타일리스트, 인플루언서, 엔터테이너, 크리에이터. 패션을 무기로 한 한혜연의 성공기는 끊임없이 다음 단계를 향한다.

매일같이 패션이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한다. 꽃무늬 패딩 드레스는 4 몽클레르 시몬 로샤(4 Moncler Simone Rocha).

“태어날 때부터? 푸하하” 언제부터 패션이 좋았느냐는 질문에 한혜연은 한참을 고민했다. 멋쟁이 사촌 언니를 따라 이대 앞 옷 가게에 놀러 가던 중학생 시절부터 패션 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했을 때, 교수님의 어시스턴트로 처음 스타일링을 배울 때까지 늘 패션은 새로웠고 흥미로웠다. “예쁜 옷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좋아졌던 거 같아.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 두근거림은 ‘슈스스’ 삶의 끊임없는 원천이다. 20년 넘도록 화면 뒤에서 이미지를 만드는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 전면에 나서서 스스로의 삶을 지휘하고 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을 차지했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연예대상’ 시상식에 참석하는 엔터테이너가 되었다. 83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지닌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었고, 이제 그 앞을 내다보고 있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해왔을 뿐이야. 치밀하게 다음 단계를 계획해본 적도 없고, 거창한 비즈니스를 꾸려나갈 생각도 없었어. 운이 좋았을 뿐이야.”

“근데 그 패션이 내 삶을 바꿀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 한혜연은 패션만 고집하던 삶이 새롭게 바뀌는 걸 스스로 경험하고 있다. 꽃무늬 패딩 드레스는 4 몽클레르 시몬 로샤(4 Moncler Simone Rocha).

운이 좋은 것만으로 ‘슈스스’가 탄생하진 못했을 것이다.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태도가 스스로의 삶을 정의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2000년대 초, 김정은이라는 당대 스타를 만나 처음 연예인 스타일링 방법을 몸과 마음으로 익혔다. “나라고 왜 연예인이 두렵지 않았겠어.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무조건 열심히 했어. 단순히 어떤 옷을 입힐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 그 뒤로 이효리, 김태희, 소지섭, 공효진, 임수정, 한지민 등과 일할 기회가 이어졌다.

그다음 찾아온 도전의 과제는 방송이었다. “데리고 살든가 그럼!”이라는 희대의 ‘짤’을 남긴 다큐멘터리, 온스타일을 비롯한 패션 채널도 가리지 않았다. 지금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출연하는 홈쇼핑 채널도 빼놓을 수 없다. “CJ오쇼핑 ‘엣지’를 진행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 생방송으로 소통하며 사람들이 나에게 뭘 원하는지 실시간 알 수 있었으니까. 한마디로 방송 맷집이 생긴 거지.”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팔로우미> 등은 패션에 몰두하면서도 즐길 줄 아는 한혜연에게 꼭 어울리는 프로그램이었다. <라디오스타>, <나 혼자 산다> 등의 지상파 방송에서도 한결같았다. “흔히 말하는 ‘예능감’이 좋은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대본도 없는데, 막 던진 거지! 그래도 내 직업이 드러날 때만큼은 전문성을 보여주고 싶었지. 패션에 대한 편견을 좀 없애고 싶었고.”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말해. ‘냅다 까라’ 하는 거라고.” 스타일리스트에서 1인 미디어 왕국의 여왕이 된 한혜연. 유튜브는 그녀의 솔직한 매력을 알리는 긍정적인 채널이 되었다. 넓은 어깨의 회색 튜닉 드레스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방송을 거듭할수록 그녀는 묘하게 자신을 둘러싼 벽을 허물고 있었다. 하이패션과 셀러브리티, 청담동 등 대중과 다소 거리가 먼 세상 이야기는 한혜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친근하게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아이디어는 유튜브였다. “2016년쯤 아는 동생에게 부탁한 적 있어. 채널 좀 만들어달라고. 내가 보고 즐기는 것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면 얼마나 재밌을까 싶었거든.” 2017년까지 고민만 거듭하던 그녀는 이듬해 3월 드디어 ‘슈스스TV’를 ‘개국’했다. ‘고품격 패션 방송’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파리 패션 위크부터 새로운 컬렉션 소개까지 콘텐츠는 다채로웠다. 청담동의 으리으리한 플래그십 스토어와 동대문시장을 오갔고, 수백 개의 핸드백과 신발을 소개했다. 구독자 수는 80만 명을 넘겼고, 조회 수가 100만 회를 넘는 영상이 줄을 이었다. “헬로, 베이비들!”이라는 인사말은 이제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다.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말해. ‘냅다 까라’ 하는 거라고. 완벽하게 가꾸고 세팅된 상태의 영상보다 떡볶이 국물 흘리면서 웃는 날것의 영상이 더 반응이 좋으니까.”

의도하지 않았지만 한혜연은 세상 변화에 누구보다 민첩하게 반응했다. “우리가 손에 쥔 휴대폰이 하나의 작은 광고 책자가 된 세상이잖아. 이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더라고.” 자신의 회사 ‘메종드바하’를 좀 더 키우겠다고 고민하던 중에 찾아온 건, 다름 아닌 카카오엠의 인수 제안. 대기업에서 디자이너 브랜드를 인수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스타일리스트가 운영하는 회사를 매력적으로 여긴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한혜연이라는 브랜드가 탐이 났다고 생각했어. 흥미로운 제안으로 여겼지. 내가 이제껏 해왔던 경력이 새롭게 발현될 수 있다는 거니까.” 지난해 말 성사된 거래 덕분에 이제 그녀는 거대한 테크 기업의 일원이 되었다. 그 속에서 이미 존재하는 채널을 좀 더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오래 다듬어온 취향을 활용한 또 다른 사업을 준비 중이다.

“난 행복의 ‘끓는점’이 낮은 편이야. 그런 잦은 성공이 내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더라고.” 자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새로운 에너지가 된다. 깃털 장식 모자는 큐 밀리너리(Q Millinery).

“40대 중반쯤 너무 닥치는 대로 살아온 건 아닌가, 되돌아본 적 있어. 하지만 대안이 없었어. 패션이 좋아서 여기까지 달려왔으니까. 그 패션이 내 삶을 바꿀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면서 그녀는 또 새 힘을 얻는다. 길을 걸을 때마다 전해오는 반가운 ‘베이비’들의 인사,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포스팅에 달리는 재치 넘치는 댓글, 패션계의 오래된 친구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행복의 ‘끓는점’이 낮은 편이야. 그런 잦은 성공이 내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더라고.” 패션과 대중이 만나는 접점에 서 있는 한혜연은 또다시 전진할 준비를 마쳤다.

스타일리스트에서 거대한 테크 기업이 내세우는 브랜드가 된 한혜연. 꽃무늬 실크 드레스는 지방시(Givenc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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